엄마! 나는 커서 모난 돌이 될래요!!
페이지 정보
본문
예술 작품은 작가의 손을 떠나 관람자와 마주했을 때 완성된다. 작가의 의도가 어떠한 것이든 관람자 개인의 감상과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예술 작품은 예술 작품으로서의 가치를 가지는 것이다.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주저리주저리 설명하는 것을 싫어한다. 예를 들면, 영화감독들은 열린 결말에 대해 어떠한 결말이라고 명확히 말해주지 않는다. 개인의 감상으로 작품이 완성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미술 작품도 비슷하다. 예전 작품들은 제목으로나마 이 작품이 어떤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지 힌트를 주었지만, 요즘은 제목마저 무제로 짓는다. 그야말로 꽁꽁 싸매어, 답답해 보이는 롱패딩같다. (* 롱패딩은 자신을 나타내고자 하는 패션의 의미를 그대로 죽여버리는, 누가 발명했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 옷이다.) 그런데 어떤 예술가는 자신의 작품에 관해 설명해주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하지 않았을까? 관람자가 자신만의 해석을 펼칠 때 ”아…. 그거 아닌데…. 그거 아니라고!! 말귀 참 못 알아먹네“ 외치고 싶지 않았을까? 맞든 아니든 사실 상관없다. 나는 단지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작품의 의도를 숨기니까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졌기 때문이다.
이상하리 만치 모든 사람이 다 좋다고 하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어느 행사장에서 무료로 손글씨를 작성해주는 이벤트를 한 적이 있었다. 그 장면을 설명하자면, 작가가 책상에 앉아 있고, 앞에 여러 손글씨 예시가 있었는데 대부분 감동적이거나 사랑에 관한 것들이었다. “다시 태어나도 너와 함께“, ”우리 사랑 포에버“같은 것들…. 예시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메시지를 요청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연인, 부모님, 아이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어달라고 하였다. 그런데 그 모습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대뜸 작가에게 ”남들과는 다르게, 라고 써주세요.” 했다. 작가는 갸우뚱하더니 가끔 이런 분들이 있다며 웃음을 지었다. 속으로는 “뭐야 이 미친놈은”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이 손글씨는 아직도 냉장고 한쪽에 자랑스럽게 붙여져 있고 볼 때마다 괜스레 뿌듯한 마음이 든다. 최근 화제가 되는 한강 작가의 작품도 비슷한 이유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몇 년 전 채식주의자를 재미있게 읽었음에도 모든 사람이 한강의 책을 찾고 문고의 베스트셀러들이 한강의 책들로 줄 세워져 있는걸 보고는 뭔가 모르게 뾰로통한 마음이 든다. 그야말로 못된 심보임이 틀림없다. 이 특유의 반골 기질은 어쩌면 인정욕구에 기반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싫어함으로써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 말이다. 그러나 나는 나의 반골 기질이 썩 마음에 들고 앞으로도 바꿀 마음은 없다.
사실 예술가들이 작품의 의도를 숨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예술가가 작품의 의도를 대놓고 드러낸다던가 그것에 대해 장황한 설명을 달아 놓는다면 그 작품은 한가지의 의미만을 지니게 된다. 우리는 모두 다른 환경에서 태어나고 살아왔으므로 다른 생각,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한가지 작품이라도 그것에 대한 설명이 없다면 관람자에 따라 무한한 해석을 가질 수 있고 그런 방식이 예술 작품을 영원하게 만들어주는 길일지도 모른다. 또한, 예술 작품은 관람자 개인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겨주는 것이 목적이므로 설명으로 작품을 가두는 일은 예술 작품을 더는 예술 작품이 아니게 하는 방법일 수 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못된 심보”를 가진 나는 글과 그림을 하나로 만드는 작업을 하려고 한다. 그림을 긴 글로 설명하고 긴 글을 그림으로 함축하는, 그야말로 “글림”이고 “글림는” 것이다.
- 이전글삶을 인식한다는 것 24.10.25
- 다음글음표는 문자보다 추상적인가 24.10.24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