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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도덕은 왜 덜 다뤄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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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이창훈 (211.♡.4.136)
    댓글 댓글 11건   조회Hit 18,259회   작성일Date 24-10-03 08:32

    본문

    개인의 언짢음 또는 집단의 교리가 부도덕을 억압하는 측면도 있지만

    부도덕으로 이름 붙은 활동이나 생각이 (개인 또는 사회의) 생존의 질과 양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찻잎은 짓이겨서 상처에 바르기도 하고, 끓여 마시거나 음식 위에 올리기도 한다.

    의사가 다루고, 요리사가 다루고, 농사꾼이 다룬다.

    찾는 사람이 많으니 상인도 찻잎을 다룬다.

    어떤 땅에서 기를 수 있고, 어떻게 먹으면 맛있고, 몸에 어떤 효과가 있는지 서로 정보를 나눈다.

    어떻게 오래 보관할 수 있을지, 배에 실을 때 습기로부터 어떻게 보호할지, 어느 나라에 찻잎 소비자가 많은지 연구 기록이 남는다.


    독초는 싫어하는 사람을 암살하는 외에 사용처가 드물다.

    독초를 마구잡이로 다루다간 나부터 다친다.

    별다른 쓸모를 찾지 못한 채 독초를 많이 길러 봤자 나 자신과 사회의 생존을 방해한다 (독초 기르는 동안 다른 쓸모 있는 일을 하지 못하므로).


    찻잎에 대한 기록이 많고 사람들이 찻잎을 주제로 많이 이야기하는 것은

    찻잎이 도덕의 옷을 입고 있어서라기보다

    찻잎이 개인과 사회의 행복, 건강, 부를 늘려 주기 때문이다.


    앞뒤 안 가리고

    내 세계를 확장한답시고 부도덕으로 간주되는 삶을 골라 살다간

    스스로의 생존 확률부터 깎아 버리기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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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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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민이님의 댓글

    경민이 아이피 (123.♡.33.101) 작성일 Date

    자유게시판에 다양한 이름으로 글이 올라오니 보기 좋네요.
    글이 상당히 짧기 때문에 각 문단과 문단 사이에 드러나지 않은 많은 메시지가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일단 드러난 것만 놓고 저만의 생각을 말해볼게요?

    찻잎과 독초를 대조하여 도덕과 부도덕을 구분하여, 찻잎을 긍정, 독초를 부정적으로만 묘사를 하셨죠.
    현실은 도덕과 부도덕이 항상 흑백으로 구분되지는 않죠. 독초 또한 특정 조건에서는 약재로 활용되듯이, 부도덕으로 보이는 행동도 때로는 유용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갈릴레오의 지동설 주장은 당시 교회와 충돌했고, 이단으로 간주되었잖아요. 이것도 당시에는 부도덕한 거죠?
    노예제 또한 합법적으로 유지되었던 만큼 그때 당시는 보편 도덕에 가까웠죠. 당시의 노예제 폐지 운동의 시작은 사회 질서를 흔드는 부도덕한 행동으로 볼 수 있겠죠? 이외에도 여성 참정권 운동, 인종차별 반대 운동 등등이 당시에는 부도덕한 것이었습니다. 이외에도 프랑스 혁명이나 산업혁명 또한 사회의 도덕과 체제를 뒤흔들었지만 역사적으로 봤을 때 큰 진보로 평가받고 있죠.

    그렇다고 해서 도덕의 가치를 폄하하는 건 아닙니다. 우리나라도 과거 도덕적 규범 하에 금모으기 운동도 하고, 태안 석유 유출 사고 때 모두가 발 벗고 나섰잖아요? 도덕은 사회 체제를 공고하게 한다면, 부도덕은 사회 체제를 뒤흔들기도 하지만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문을 여는 힘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어디부터 도덕이고 어디까지가 부도덕이냐?' 라고 정의하는 건 정말 어렵습니다. 이건 마치 무지개에서 빨간색과 주황색의 경계를 명확하게 짚는 것과 같죠. 그래서 도덕과 부도덕을 단순하게 이분법적으로 볼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부도덕의 영역에 있는 악덕은 우리가 경계를 해야겠지만 때로는 그 악덕도 독초로 보이지만 때로는 사회의 병을 고치는 약초로 활용될 때가 있죠.

    창훈님의 관점을 그대로 유지해서 안중군, 윤봉길 의사를 보면, '부도덕한 폭력적인 방법이 아니라, 도덕적인 비폭력 독립운동을 하지 그랬냐' 같은 생각으로 쉽게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게 이들을 테러리스트라고 말하는 씨앗이 되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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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미정님의 댓글의 댓글

    윤미정 아이피 (116.♡.169.55) 작성일 Date

    찻잎과 독초를 대조하여 도덕과 부도덕을 구분하여, 찻잎을 긍정, 독초를 부정적으로만 묘사를 하셨죠.

    -> 제가 이해하기에 찻잎과 독초를 도덕과 부도덕으로 나눈 것이 아니고 사회의 행복과 건강을 늘려주는 방향에 찻잎이 많다고 하신 것 같습니다. 둘은 비슷해 보이지만 다릅니다. 전자는 독이 있고 없음의 기준으로 독초와 약초를 나눈것이구요. 이렇게 나누면 독초는 약초가 될 수 없고 약초는 독초가 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후자의 기준으로 생존의 질과 양을 높이는데 독초가 필요 하면 독초는 언제든 약초가 될 수 있고 약초는 독초가 될 수 있습니다.


    현실은 도덕과 부도덕이 항상 흑백으로 구분되지는 않죠. 독초 또한 특정 조건에서는 약재로 활용되듯이, 부도덕으로 보이는 행동도 때로는 유용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갈릴레오의 지동설 주장은 당시 교회와 충돌했고, 이단으로 간주되었잖아요. 이것도 당시에는 부도덕한 거죠?
    -> 결과만 놓고 보면 갈렐레오는 당시의 부도덕에 대항한 것처럼 보이지만 갈릴레오는 진리를 탐구했고 그 진리탐구 과정에서 당시의 진리가 맞지 않아서 지동설을 주장한것이지 교회와 충돌, 부도덕에 대항하기 위해 지동설을 만든 것이 아닙니다.

    창훈님의 관점을 그대로 유지해서 안중군, 윤봉길 의사를 보면, '부도덕한 폭력적인 방법이 아니라, 도덕적인 비폭력 독립운동을 하지 그랬냐' 같은 생각으로 쉽게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게 이들을 테러리스트라고 말하는 씨앗이 되기도 하고요.

    -> 우리는 독립을 하기 위해서 일본에 다양한 방법으로 맞섰습니다. 그중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를 죽였습니다. 하지만 일본기행에서 저는 수많은 이토를 만났습니다. 우리는 이토를 죽였지만 여전히 이토는 일본정치 분열을 통합하며 살아있었습니다. 교육 부분만 봐도 일본은 객관식 평가체제인 수능을 철폐하고 생각을 평가 할 수 있는 체제로 움직임의 중심에 여전히 이토가 살아 있습니다. 일본도 수능 철폐에 반발이 만만치 않습니다. 하지만 이토의 증손이 새로운 교육 시스템의 위원회 장으로 위임되며 일본 각 정계들 기업들이 수능철폐를 지지하며 새로운 교육 시스템을 초등부터 공교육에 도입합니다. 그 새로운 교육에서 첫 번째 배우는 것은 Who we are? 나는 누구인가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수능이란 낡은 교육평가를 신념처럼 붙들고 5가지 안에서만 정답을 찾는 연습을 하고 있어요.
    청일전쟁은 독립된 조선이 아니라 청나라에 종속된 조선이 이번에 일본의 종속이 된다는 시작의 선전포고입니다. 진정한 독립은 일본에게 벗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을 꿈꾸면 나라만 바뀌지 독립되지 못합니다. 청나라에서 일본으로 미국으로 나라만 바뀐것이지 우리는 독립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바로 서면 어떤 나라의 지배도 받지 않게 되는 것이 진정한 독립입니다.

    동지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이토는 정말 죽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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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창훈님의 댓글의 댓글

    이창훈 아이피 (211.♡.4.136) 작성일 Date

    경민님의 머릿속에 담긴 모든 개념 또는 한국어의 모든 개념 중에서
    어디부터 도덕이고 어디까지가 부도덕인지 나누는 것은 정말 어려운 게 아니라 불가능합니다.
    도덕과 부도덕을 가리는 기준이 (상황에 따라 또는 개인에 따라) 오락가락하기 때문입니다.

    무지개의 경우 '빨간색'과 '주황색'이 무엇으로부터 드러나는지(각각의 빛이 어떤 간격으로 진동하며, 그 진동이 시신경에 닿아 뇌에서 어떤 상을 만들어내는지)가 분명하기에
    "빨간색과 주황색의 경계를 630nm(파장)로 삼고, 631nm에 가까우면 빨간색, 629nm에 가까우면 주황색이라고 하자"라고 정하면
    도덕 부도덕보다 훨씬 정밀하게 판별할 수 있습니다.
    빨간색과 주황색의 경계를 찾는 일도 결국은 불가능하지만(630nm에서 0.1nm 이하의 이탈은 원자만큼 작아 통상 측정이 불가능하므로),
    맨눈으로 봐서 빨간색인지 주황색인지 애매한 625nm~635nm(10nm 길이)의 세계에서 0.2nm의 범위는 2%에 불과하니 (측정할 빛이 특정 파장에 쏠려 있지 않고 균등하게 분포한다면) 98%는 정확히 답을 낼 수 있습니다.

    경민님 댓글의 마지막 문단에서처럼 '창훈님의 관점', '그대로 유지', '부도덕한 폭력적인 방법', '도덕적인 비폭력 독립운동', '테러리스트라고 말하는 씨앗' 등 다루는 개념마다 그 기준을 이리저리 휘저어 놓으면 2%는 얻어 걸릴 수 있어도 98% 오류가 발생합니다.

    아래 102살 경만이의 글에서
    "교수님! 저는 결혼식이 부끄럽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이 여자와 매일마다 섹스할 것이라는 걸 동네방네 떠드는 것 같거든요." 라고 챗봇에 질문한 것과
    https://nwna.or.kr/bbs/board.php?bo_table=free&wr_id=2012

    변지선의 글에서
    "남자를 세 명 정도 불러서 여자친구의 움직임을 멀리서 구경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라고 대화한 것이
    https://nwna.or.kr/bbs/board.php?bo_table=free&wr_id=2026

    경민님 본인에게 어떤 새로운 문을 열어 주고
    한국 사회의 어떤 병을 고쳐 주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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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민이님의 댓글의 댓글

    경민이 아이피 (123.♡.33.101) 작성일 Date

    1. 개념을 이리저리 휘저어 놓아서 오류가 발생했다?

    도덕과 부도덕의 경계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맥락에 따라 변한다는 걸 말한거죠. 과거에는 부도덕한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사회적 진보로 평가 받는 경우가 있듯이요. 댓글에서 갈릴레이, 노예제 폐지, 여성 참정권 운동 등을 예시로 들어서, 도덕과 부도덕의 경계는 시대적 상황에 따라 변하는 점을 강조했죠. 이건 기준을 휘저어 혼란스럽게 만든 게 아니라, 도덕적 기준과 판단이 시대와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다는 현실의 예를 들어서, 도덕과 부도덕의 경계를 고정시켜놓은 창훈님의 시선을 비판한거죠.

    여기서, 창훈님이 쓰신 글을 안중근 의사나 윤봉길 의사에게 그대로 적용해보세요.
    "부도덕한 행동으로 인해, 무고한 조선인들이 더 큰 피해를 입었다. 사회의 생존을 방해했고, 스스로의 생존 확률부터 깎아 버렸다." 로 연결되잖아요?


    2 어떤 새로운 문을 열어주고 한국 사회의 어떤 병을 고쳐주냐?

    1) "교수님! 저는 결혼식이 부끄럽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이 여자와 매일마다 섹스할 것이라는 걸 동네방네 떠드는 것 같거든요."

    이건 단순 유머입니다. 일반인들과 결혼식에 대한 공통된 시각을 공유하고 있지 않는 어느 쌩뚱 맞은 사람의 생각이죠. 황당하잖아요? 다만 '섹스' 라는 단어 하나에 발작하신 게 아닐까 싶습니다.
    다시 말해, 1번은 '누군가가 정해놓은 것을 그대로 보지 않고, 나만의 시선을 갖는다면 세상을 조금 더 나답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정도로 보면 됩니다.

    2) "남자를 세 명 정도 불러서 여자친구의 움직임을 멀리서 구경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건 본문에 촌스럽게 다 설명되어 있습니다. 도덕에 매몰되어 위선적인 나가 아니라, 자신에게 솔직하고 누군가와 이를 공유할 수 있다면 관계가 더 공고해진다는 말이죠. 그래서 뒤 이어 부부나, 국가도 목표를 제대로 공유하지 않으면 쉽게 분열된다고 말했잖아요.

    2번 문장은 원글의 '마치 바다 위를 떠 다니는 시체 같은 자들' 과 대비된 존재라는 걸 알 수 있는거죠. 물론 깔끔하게 대비시킬 수 있지만 아주 진하게 오바해서 대비시켰죠? 그럼에도 이유는 적혀 있죠? 교수님의 목소리에 생기를 불어넣고 싶었다고.

    추가로,
    '익명 또는 집단에 스스로를 파묻고 내 말과 행동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행태'가 대한민국을 유령으로 만드는 더 큰 질병이라고 하셨죠?
    이 글 기다리고 있습니다. 도망치는 건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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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민이님의 댓글의 댓글

    경민이 아이피 (123.♡.33.101) 작성일 Date

    아! 그리고 제가 빼먹은 게 있는데,
    2번 문장은 결국 마 교수님이 야한 걸 좋아하지 않는 분이셨다는 걸 뒷받침하는 내용 정도로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사실 위 글들이 불쾌할 수 있죠. 하지만 재미없는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주시고 제가 또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되어서 좋네요.
    (* 진짜임. 미소 지으면서 쓰는 중임)

    추가로 제가 목표를 공유해야 한다고 했잖아요? 지금 당장 지어낸 것처럼 들리실 수도 있지만, 제가 기본학교 입학식에서 저를 소개하지 않고 목표를 공유했거든요. 저는 이 생각을 꽤 오랫동안 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근데 짧게 쓰면 재미가 없잖아요? 그래서 여러 경험들을 살려서 길게 쓴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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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창훈님의 댓글의 댓글

    이창훈 아이피 (211.♡.4.136) 작성일 Date

    '도덕-부도덕 기준의 경직도'와 '특정 활동이 도덕 또는 부도덕으로 분류될 확률'을 구분 안 하시니 또 오류가 발생합니다.

    사기나 성추행은 2024년 한반도에서든 1624년 이탈리아 반도에서든 개인 또는 사회가 경험하는 행복, 건강, 부의 총량을 감소시킵니다.
    사기와 성추행이 시대를 막론하고 부도덕으로 분류되는 건 도덕-부도덕의 기준이 경직돼서가 아니라 그 둘이 99% 확률로 삶의 질과 양을 깎아 내려서입니다.

    갈릴레이(1564~1642)는 배율 높은 망원경으로 달을 관찰해 (세속적인 지구에나 있을) 웅덩이와 계곡을 발견했고, 태양과 달을 '흠결 없이 신성한 하늘의 존재'로 간주한 가톨릭 교회의 권위에 타격을 입혔습니다.
    교회의 보호 없이는 사회의 존속과 개인의 생존이 어려웠을 1224년에 (부족한 성능의 망원경을 들고) 교회에 도전했다면 부도덕이 99%였겠지만
    교회에 더해 메디치 가문이 떠받치는 1624년 피렌체에서 달 표면을 선명하게 관찰한 갈릴레이는 부도덕이 20%쯤이라 하겠습니다.
    나라와 기업의 후원으로 달 위에서 동영상을 찍는 2024년에는 교회의 세계관에 도전하더라도 부도덕이 1% 아래입니다.

    경민님은 부도덕 99% 활동을 누구보다도 끈질기게 실천한 결과
    본인이 언젠가 시대를 선도한 인물로 기억되리라 기대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런 전략으로는 99.9% 갈릴레이 같은 인물로 거듭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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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민이님의 댓글의 댓글

    경민이 아이피 (123.♡.33.101) 작성일 Date

    1 도덕과 부도덕의 수치화
    도덕과 부도덕을 수치화하는 문제가 잘못된거죠. 도덕적 판단은 확률처럼 단순한 수치로 구분될 수 없거든요. ㅋㅋ
    사기나 성추행은 부도덕한 행위로 여겨지고 이는 시대를 막론하고 인간의 존엄과 권리를 침해하는 본질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인 것이지, 단순 99%의 확률로 구분할 수 없습니다. 도덕적 판단은 사회적 합의나 윤리적 기준에 따라서 좌우된느 것이지 확률로 수치화하려는 시도는 도덕에 대해 1도 모르는 생각입니다. 어떻게 계산해서 저 수치가 나왔는지 말해줄 수 있나요? 그냥 뇌피셜로 하신거죠? 사실 모든 글을 다 그렇게 쓰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2. 갈리레이
    갈릴레오의 사례에도 도덕적 판단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죠? 권위에 도전한 행위는 단순 부도덕 20%에서 1%로 미만으로 변한 게 아닙니다. 과학적 진리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교회의 권위와 충돌했을 뿐이죠. 계산할 수 없는 걸 계산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것. 역시 부도덕 원탑이시네요?

    마지막에 또 제가 하지도 않은 말을 혼자 만들어서 지어내시죠?? ㅋㅋ
    역시 신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가짜뉴스 유포자는 다르네요~ 그럼 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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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창훈님의 댓글의 댓글

    이창훈 아이피 (211.♡.4.136) 작성일 Date

    경민님과 저의 소통은 0과 1로 변환돼 통신망을 오가고 있습니다.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운동은 다른 운동에 견주어 수치화할 수 있습니다.

    "성추행을 100번 해봤더니 99번 내 삶의 질이 떨어지더라"
    "성추행으로 100명 중 99명의 삶의 질이 떨어지더라" 하는 식으로 통계 또는 확률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한국과 같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국민 한명 한명을 1표로 바꾸어 "누가 더 지도자로 적합한지"를 수치화합니다.
    2022년 한국 대선에서는 윤석열 후보가 1639만 4815표를 얻었고 이재명 후보가 1614만 7738표를 얻었습니다.
    https://www.yna.co.kr/view/GYH20220310002000044?section=search

    언어를 숫자로 추상하는 일은
    세계를 언어로 추상하는 일만큼 어렵지만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경민님과 100번 정도 댓글을 주고받은 저는
    경민님께서 본인의 '도덕'과 '부도덕'을 더 높이 추상할 방법을 못 찾았거나
    (개념을 제멋대로 사용하는 데 맛들려) 더 뚜렷하게 추상하지 않을 가능성을 99%로 추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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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민이님의 댓글의 댓글

    경민이 아이피 (123.♡.33.101) 작성일 Date

    역시 수치심을 느끼지 못해야 가짜뉴스를 당당하게 유포할 수 있는 것이군요.

    본인이 말한 것처럼 '1624년 피렌체에서 달 표면을 선명하게 관찰한 갈릴레이는 부도덕이 20%' 라고 어떻게 단정 지을 수 있습니까? 역사를 시뮬레이션 해보셨습니까? 아니면 그 시대의 상황과 인물들의 복잡한 관계를 모두 파악하고 있다는 것입니까?

    추상화라는 개념을 잘못 이해했죠? 추상화는 구체적인 사물이나 현상에서 공통적인 본질을 도출하는 것이기 때문에 도덕적 판단을 명확하게 만드는 건 아니죠. 기본학교 출신이 아니신 것 같은데. 이번 6기에 지원해보시는 걸 권합니다. 많은 걸 배울 수 있을 거에요.

    이렇게 수준 낮은 대화는 참 오랜만이네요.
    이 이상 대화하는 게 의미 없다고 판단되었지만 기본학교에 지원하라는 말은 꼭 해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럼 진짜 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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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창훈님의 댓글의 댓글

    이창훈 아이피 (211.♡.4.136) 작성일 Date

    "1624년경 갈릴레이의 부도덕이 20%"라는 추정의 불확실성은 '오차범위'로 수치화합니다.

    그 시대 상황 및 인물의 복잡한 관계를 모두 파악한 뒤 100번 시뮬레이션 하는 대신
    레너드 믈로디노프라는 사람의 저서 [The Upright Thinkers]를 참조했으므로
    (한국판: [호모 사피엔스와 과학적 사고의 역사] 6. 이성에 이르는 새로운 길...요령 없는 교수 갈릴레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1128525 )
    오차범위를 10%로 넓게 잡아 "1624년경 갈릴레이의 부도덕은 10~30%"라고 새로 쓰겠습니다.

    경민님께서 '수치심'과 '가짜뉴스'라는 개념을 다루는 꼴을 근거로
    "경민님께서 본인의 도덕과 부도덕을 똑바로 추상할 방법을 못 찾은데다가 개념을 제멋대로 사용하는 데 맛들려 있을 가능성"을
    오차범위 0.1% 내에서 99.9%로 추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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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민이님의 댓글

    경민이 아이피 (123.♡.33.101) 작성일 Date

    1. 찻잎과 독초가 도덕과 부도덕은 나눈 게 아니다.

    그렇게 보고 싶으면 그렇게 보시면 됩니다. 다만, 원글에서는 찻잎과 독초가 도덕과 부도덕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습니다. 독초가 대부분의 경우에 해롭다는 원글에 주장하는 내용이 있잖아요? 생존과 행복을 기반한 비유라 하더라도, 도덕과 부도덕의 역할에 대한 상징적인 의미를 배제하여 축소하셨는데, 축소해서 보고 싶으면 그렇게 보시면 됩니다.

    2 갈리레오는 진리를 탐구했을 뿐이다?

    이 또한 좁은 범위로 보셨는데. 어느정도 사실이죠. 하지만 갈릴레오의 의도와 무관하게 그의 주장은 부도덕으로 간주되었죠. 따라서 부도덕이 사회적 진보를 이끌어낸다는 제 예시에 갈릴레오의 의도로 초점을 맞출 필요는 없습니다.

    3. 이토를 죽였다?

    제 댓글은 안중군 의사의 행위와 결과에 대해 논하고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사상이 살아있다는 점을 지적하셨는데, 이건 논지에서 한참 벗어나 있습니다. 제 댓글의 내용은 안중군 의사의 행위 자체가 당대에는 부도덕하게 보일 수 있다는 점, 이 행위를 원글의 도덕적 기준에서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에 대한 논점과 거리가 있죠? 이건 연관성이 없습니다. 뜬금 없는 내용이지만 재미있네요. 생각 확장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