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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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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한상도 (118.♡.11.78)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3,698회   작성일Date 23-01-29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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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살이

    어느 외진 물웅덩이에 하루살이 한 마리가 알을 낳았다. 1500일즘 지난 후, 하루살이의 후손들은 군락을 이루었다.

    군락을 이룬 하루살이들은 패를 형성했다. 가장 힘이 센 패는 '얇은꼬리' 패로, 다른 하루살이들에 비해 꼬리가 얇은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얇은꼬리'패의 일원들은 다른 일원들보다 먼저 먹이를 먹고, 먼저 물을 섭취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검은홑눈' 하루살이가 웅덩이 근처에서 거미를 발견했다. 근처에 집을 지으려는 것으로 보였다. '검은홑눈'은 주변의 하루살이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검은홑눈'의 이야기를 들은 하루살이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어떤 하루살이는 "새로운 이웃을 반갑게 맞이하자" 라고 하고, 어떤 하루살이는 "그냥 가만히 있자"고 하고, 또 어떤 하루살이는 "도망치자"고 했다.

    '얇은꼬리'패의 우두머리인 '세꼬리'는 이렇게 말했다. "'검은홑눈'이 헛소리를 퍼뜨리고 있으니, 다들 동요 말고 평소대로 지내면 된다".

    이 이야기를 들은 '파란홑눈'은 호기심이 생겼다. '검은홑눈'에게 요청하여 거미를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거미를 직접 확인한 '파란홑눈'은 주변의 다른 하루살이 군집을 군데군데 방문하여 거미라는 존재가 어떤 존재인지를 물어보았다.

    '파란홑눈'이 관찰한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우리의 군락 근처에 분명히 거미가 집을 지으려고 하고 있다. 둘째, 거미가 거미줄을 치는 순간 하루살이 군집의 95%는 몰살당한다. 셋째, 하루살이가 거미에게 몰살당하기까지는 10일 정도 걸린다. 넷째, 하루살이는 하루를 산다.

    '파란홑눈'의 더듬이는 그 어느때보다 곧게 서 있었다. 10세대가 지나기 전에 주거지를 옮겨야 한다는 인식을 하게 되었다.

    '파란홑눈'에게 남은 생의 시간은 2시간. 그는 열심히 다른 하루살이들에게 본인이 알게 된 사실을 알리고, 주거지 이동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였다.

    그러나 다른 하루살이들은 관심이 없었다. 대개 축 처진 더듬이를 하고 있었고, 빙빙 날아다니면서 짝짓기를 하거나 말장난을 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다. 다시말해 그들은 '파란홑눈'에게 무관심하거나, 아니면 노망난 하루살이라는 생각뿐이었다. 그들에게 10일은 까마득히 긴 기간이었다.

    '파란홑눈'은 쉬지 않고 이야기를 했다. 다행히도 1000마리 중 한마리 꼴로 쳐진 더듬이가 꼿꼿해지는 경우가 있었다. 그들은 '파란홑눈'의 이야기를 이해하였고, 그들 또한 이야기를 전파하는 존재가 되었다.

    2시간이 지나 '파란홑눈'은 죽었다. 그러나 '파란홑눈'의 제자들은 그의 뜻을 쉼없이 전파했다. '파란홑눈'의 제자들로 인해 분위기가 어수선해지자, '얇은꼬리'파에서는 이들을 몰아내야 한다는 인식을 하게 되었다.

    '얇은꼬리'의 우두머리인 '세꼬리'는 운명을 다하기 전,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우리 웅덩이에 거미가 있었던 적은 없었다. 앞으로도 거미는 없을 것이다."

    군락의 지도자인 '세꼬리'가 말하는 것을 듣고, 하루살이 군락의 대다수는 '파란홑눈' 제자들의 이야기에 완전히 등을 돌렸다.

    그렇게 5일이 지났다. 5일이 지나도 하루살이 군락에는 별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파란홑눈'의 제자들은 비웃음거리가 되었고, 제자이기를 중단하는 하루살이들도 생겨났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더듬이가 꼿꼿이 서있던 제자들은 알고 있었다. 거미는 이미 5개의 집을 지었고, 소득이 없어 이리저리 옮겨다니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최근에 하루살이 군집의 활동 반경에 집을 짓기 시작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파란홑눈'의 제자들은 몰살 일자가 예상보다 가까워 졌음을 알게 되었다. 이제 이틀이 남았다. 군락의 멸망이 가까워졌다. 하지만 그 어떤 제자도 군락을 떠나 살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군락의 구성원이었기 때문이었다.

    '파란홑눈'의 제자들은 계획을 세웠다. 제자의 절반은 안전한 웅덩이를 찾으러 떠났다. 남은 절반은 군락에 남아 다른하루살이들을 마저 설득하기로 했다.

    다음날, 거미의 포식이 시작되었다. 수많은 하루살이들이 거미줄에 붙어 몸부림 치고 있었다. 그러나 더듬이가 쳐진 대부분의 하루살이는 여전히 세상 편하게 날아다니며 짝짓기를 했다. 그들은 거미를 본 적도, 거미줄을 본 적도 없었기 때문에, 어떤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지조차 인식하지 못했다.

    뒤늦게 멸망의 시그널을 인식한 소수의 하루살이들은 '파란홑눈'의 제자들을 찾았다. 하지만 이미 시작된 포식은 막을 수가 없었다. 안전한 웅덩이를 찾으러 간 제자들은 돌아오지 못했다.

    남아있던 '파란홑눈'의 제자들은 필사적으로 다른 하루살이들을 안전한 곳으로 이끌었다. 그러나 아비규환이 된 군집에서 그들의 노력은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 '파란홑눈'의 제자들은 그렇게 다른 하루살이들과 함께 전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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