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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기본학교에서 공부하고 싶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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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변진영 (218.♡.110.70)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3,074회   작성일Date 23-09-11 05:41

    본문

     

    - 운명을 거부한.

     

    누군가는 누구에게나 정해진 운명 같은 게 있을 것이라며 믿고 살아간다. 그 이유는 자신이 이 세상에 왜 던져졌는지 명확한 이유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이 세상에 내 의도와 관계없이 던져졌지만 두 남녀의 뜨거운 사랑의 부산물 정도로 해석하기 시작하면, 내 존재가 처량해진다. 그래서 그나마 나은 이유로 설명해 주는 운명이라는 모호하고 애매한 개념을 찾는 게 아닐까????? 누군가는 운명을 사주, 역학, 혈액형, MBTI 등 다양하게 처방을 받아 품에 안고 살아간다. 하지만 처방받은 운명은 품에 안고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닌, 극복하기 위한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여기서 운명을 품지 말아야 한다는 이유는 과거 나치 정권에 대한 공포심이기도 하다. 이 공포는 과거 유전법칙에 기인한 우생학을 앞세운 독일의 나치 정권에 대한 두려움에 가깝다. 과거 나치 정권은 우생학을 앞세워 범죄자와 장애인, 정신질환자, 알코올중독자와 같은 사람들이 똑같은 아이를 낳아 국가를 병들게 할 수 있다는 이유로 불임수술 합법화에 이어 가스실에 넣어놓지 않았나. 이 이야기를 접하면, 유전자가 우리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게 아닌, 각자에게 놓인 환경 그리고 후천적으로 익힌 학습 내용에 따라 윤리관과 가치관 그리고 삶과 운명이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는 걸 넘어, 바뀌어야 한다는 선택적 사고를 하게 된다.

    물론 운명을 처방하며 먹고사는 사람들은 내 말을 미워할 수 있다. 하지만 요즘 유행하는 MBTI를 시작으로 하여 불교의 윤회론, 주역, 기독교의 교리 등을 함께 살펴본다면 알 수 있다. 운명은 빈틈을 파고들 수 없는 단단한 암석이 아니라, 얼마든지 어루만져 변형할 수 있는 찰흙이라는 것이다. 다만, 찰흙을 오랫동안 만지지 않고 방치하면 딱딱하게 굳어버리지 않나. 운명 또한 물을 묻혀도 말랑말랑해지지 않고 단단해진 찰흙이 되기 전에 부지런히 어루만져줘야 한다. 


    요즘에는 운명론을 믿는 사람보다 고통을 회피하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안빈낙도(安貧樂道)라는 개념에서 조금 더 확장된 개념인 '경제적 자유'가 대표적인 예이다. 경제적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상태에서 편안한 삶을 꾸려나가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삶은 운명을 극복하는 게 아닌, 정해진 상황에 그대로 체념하겠다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이러한 체념은 나에게 처해진 운명을 감당하게 만들어줄 뿐, 극복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지 않는다. 21세기 꼰대들이 하는 말에는 반발하면서, 더 과거의 꼰꼰대, 꼰꼰꼰대들이 해놓은 말인 안빈낙도를 떠받들며 복종하는 것일까. 안빈낙도는 강자가 약자를 부려먹기 위한 사회를 만들려는 고도의 정치적 메시지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안빈낙도의 끝에는 결국 복종이다. 내 삶이 배고프고 고달파도 만족하고 행복한 듯이 웃어야 하는 거짓된 삶을 살아야 한다.

    난 내 의도와 관계없이 대한민국에 던져졌다. 난 국적, 고향, 살고 싶은 동네, 성별, 생김새 등 내가 선택한 것은 단 하나도 없다. 하지만 내가 가야 할 길만큼은 내가 스스로 정하고 싶다. 전라남도 함평에 있는 기본학교가 출발점이다. 물론 태어나서 단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가볼 일이 없는 전라남도 함평으로 향하더라도 내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기본학교가 정해놓은 커리큘럼에 복종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복종에 가까운 커리큘럼을 따르기로 결정한 이유는 운명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아닌, 운명을 극복하기 위해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는 과정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운명을 거부한다는 것은 그동안 내가 따라왔던 것들을 등질 준비가 되어야 한다. 주말마다 함평에 간다면, 부모님과 만날 시간이 급격하게 줄어든다. 그리고 부모님은 굳이 위험하게 함평까지 갈 필요가 있냐고 묻는다. 효자, 효녀라면 이 말을 따르겠지만, 난 이 6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효라는 도덕을 내려놓고 운명을 거부하려 한다. 인위적으로 형성된 도덕률은 누군가가 정해놓은 운명에 스스로 체념하도록 만드는 가장 강한 힘이기 때문이다. 정해진 운명, 신 그리고 부모에게 갖춰진 권위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이 나 자신으로 거듭나, 운명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더더욱 함평으로 향하기로 결정했다.

    부모님의 말을 듣지 않는, 권위를 부정하는 것이 꼭 불효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부모님의 권위를 인정하여, 부모님의 생각과 뜻을 따르겠다는 의무감으로 살아가는 것은 운명과 신을 따르며 살아가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부모님을 롤모델로 삼으며 비슷한 사람이 되길 바라는 것이 아니라, 이들보다 더 멋지고 나은 사람이 되겠다는 나만의 옹졸한 포부가 오히려 효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그런 내 포부를 우습고 같잖게 보실 수 있다. 하지만 찰흙이 단단하게 굳기 전에 무엇이든지 만들어야 한다는 내 조급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해줄 거라 생각한다. 내 마음으로부터 발현된 행동이 뒤따랐을 때야 말로 내가 앞서 언급한 독일 나치가 앞세웠던 ‘우생학’ 이란 개념을 거부하는 데 조금이나마 큰 힘이 될 거라 생각한다. 알코올중독자, 범죄자, 정신질환자의 자녀여도 더 멋진 사람이 될 수 있는 세상이 구현될 것이라는 믿음을 품으려면, 정해진 운명과 도덕부터 거부할 줄 알아야 한다. 


    물론 기본학교에서 6개월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공부한다 하여도, 긴 시간 동안 나의 육체와 정신을 지배해 왔던 관념, 생각, 습관들을 빠른 시일 내로 지워버리긴 어렵다. 하지만 나처럼 정해진 커리큘럼에 올라타, 운명을 극복하기 위해 앞으로 정진하려는 사람들과 함께한다면 달라질 것이라 믿는다. 아무리 훌륭한 씨앗도 좋은 토양이 갖춰지지 않으면 썩어 문드러지기 마련이다. 난 기본학교의 커리큘럼과 함께하는 학생들이야 말로 내가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비옥한 토양이라 생각한다. 이곳에서의 짧은 시간은 내가 미처 보지 못한 새로운 운명을 마주할 수 있게 해 줄 수 없을지 몰라도 운명을 새롭게 재창조할 힘을 키워줄 거라 믿는다.

     

    내가 바라본 최진석 교수님 또한 정해진 운명과 도덕을 거부하는 강한 힘을 갖고 계신 분이다. 난 그동안 운명과 도덕을 거부해 본 경험이 그리 많지 않다. 그만큼 정해진 것을 거부하여 더 나은 나를 만드는 경험이 다소 미숙하다. 기본학교에서 함께 공부하는 학생 뿐만 아니라, 최진석 교수님의 이야기와 수업을 통해 운명과 도덕이라는 외부의 힘으로부터 벗어나 나 자신을 더 자유롭고 아름답게 가꿔나갈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될 거라 생각한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아빠! 엄마! 미안해!!! 우리!!!! 6개월만!!!! 이별하자!!!! 

    운명아!!! 넌!!! 오늘부터!!! 영원히 보지 말자!!! 기본학교 떨어져도 안 찾아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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