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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자식 지상주의와 공동체적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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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하보라 (218.♡.110.70)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2,983회   작성일Date 23-08-23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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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진석 교수님께서 유튜브 커뮤니티에 또 글을 쓰셨다.

    평소 생각하지도 않았던 사안인데, 교수님 덕분에 재미난 생각을 잠시 할 수 있어서 참 좋다. '내 자식 지상주의'와 '공동체적 학교'란 개념은 다소 모호하다. 다만, 어느 교육감님과 최진석 교수님은 두 개념을 구분하고 계셔서 양자택일해야 할 것처럼 보여진다. 하지만 학교라는 특성을 고려한다면, 양자택일보다 상호 보완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내가 생각하는 학교란, 국민을 형성하는 곳이다. 그리고 학교를 졸업하여 국민이 된 사람들은 제도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생명력이 부여된 제도는 전통을 고수하거나 변화를 꾀한다. 학교는 학생의 신체와 정신을 함양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 관습을 바탕으로 타인과 어우러지게 이끈다. 이를 바탕으로 지적, 기술적인 능력을 자유롭게 발휘하여 제도가 전통을 고수하거나 변화를 꾀하도록 이끌어낸다. 학교는 사회를 그리는 토대이자 변화를 이끄는 실천의 뿌리이다. 


    그렇다면 어느 교육감의 말처럼 내 자식 지상주의가 아닌 공동체적 학교로 이끌어 나가야, 학교가 사회를 그리는 토대, 변화를 이끄는 실천의 뿌리로 제대로 작용할 수 있을까? 

    내 자식 지상주의와 공동체적 학교는 상호보완적인 것이어야지, 양자 택일할 문제는 아니다. 예를 들어 학교 폭력이 발생했을 경우 누가 규칙을 어겼는지 찾고, 그에 대한 처벌로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 그다음 당사자 간의 대화로 피해를 회복할 수 있는 해결책을 통해 어긋난 공동체를 재결합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이는 내 자식 지상주의, 공동체적 학교라는 양자택일 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굳이 둘의 비중을 고려하자면, 내 자식 지상주의를 중심으로 공동체적 학교의 성격을 추가하여 보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내 자식 지상주의를 벗어나야 한다는 말은 과거를 망각한 것일지도 모른다. 왜 요즘 학부모들이 내 자식 지상주의자가 되었을까. 난 아이를 지켜주지 않은 학교를 향한 불신이라 생각한다. 

    학부모들은 학교폭력으로부터 아이를 지키기 위해 학교에 의지하지 않게 되었다. 아이의 폭력 피해를 학교에 알리더라도 교육청이 학교폭력실태조사에 적극적으로 응하지 않는다는 것은 간첩도 아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내 자식 지상주의가 된 것은 학교가 지켜주지 않는 내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형성된 강력한 생각의 틀이다.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피해 학생 측은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개최를 요청해야 한다. 그리고 학교는 의무적으로 학교폭력대책위원회를 개최하도록 규정한다. 그러나 학생과 학부모 사이에서 학폭위의 공정성이 결여됐다고 인식한다. 학교폭력 징계 처분은 9단 게로 나뉘어 있다. 1호는 피해학생에 대한 사과, 2호는 신고자와 피해자에게 접촉 금지 및 보복 금지, 3호는 교내 봉사, 4호는 사회봉사, 5호는 특별교육이수, 6호는 출석정지, 7호는 학급교체, 8호는 전학, 9호는 퇴학이다. 하지만 학교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학교 교장이나 교감에게 학교폭력 사실이 서면으로만 고지되지만, 학교폭력 대응 방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논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서면으로 고지되는 이유는 나중에 피해자에게 학교에 학폭위 개최를 요구했다는 사실을 주장하기 위함이다. 


    이제 학부모들은 학교를 믿지 않는다. 이제 물리적 학교폭력으로부터 아이들을 지키기 위하여, 학교에 알리지 않고 사건 당일에 증거를 수집하려 한다. 가장 첫 번째로 상해진단서를 발급받는 것이다. 

    상해진단서는 학폭위를 포함하여 법적 절차상의 손해배상, 형사고소 등 피해를 증명할 수 있는 객관적인 증거 중 하나이다. 우리나라의 형법은 폭행보다 상해를 더 무겁게 처벌하고 있는 만큼 상해진단서의 중요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 폭행은 합의만 하면 종결되지만, 상해는 합의를 한다 하더라도 양형에만 영향을 줄 분 법적 진행이 계속된다는 차이가 있다. 그래서 이제 학부모는 학교폭력을 해결하기 위해 학교로 향하지 않고 의사와 변호사로 향한다. 학교폭력으로부터 보호해 줄 시스템조차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내 자식 지상주의를 내려놓고 공동체적 학교를 향해야 한다는 말은 아이러니다.


    서울의 전교조 소속 어느 초등학교 교사가 개인적인 사상과 신념을 학생들에게 편향적으로 주입한다는 뉴스가 나오기도 했다. 이것이 그들이 외치는 공동체적 학교인가? 1930년대 충실한 독일 나치 대원을 기르는 것과 다를 게 무엇인가. 

    선생이 잘못이냐, 아이를 지키기 위해 민원을 넣은 학부모가 잘못이냐, 교권에 도전하는 학생이 잘못인지 묻기 전에 현실과 동 떨어져 제대로 맞물리지 않아 멈춰버린 시스템부터 어떻게 해야 하지 않을까. 


    만약 학교가 아이를 학교폭력으로부터 지키기 위한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작동시킨다면, 몇몇의 교직원이 아이들에게 특정 정치 성향을 주입하려는 행위를 하지 않았다면, 아이들이 세상에 나와 본인만의 고유한 지적, 기술적인 역량을 자유롭게 발휘할 있다면, 자식 지상주의던 공동체적 학교던 상관없다. 탕수육도 튀김옷이 바삭바삭하다면 찍먹, 부먹 상관 없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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