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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에게 책장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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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변진영 (218.♡.110.70)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3,099회   작성일Date 23-10-29 14:34

    본문

    나에게 책장이란 다양한 책들을 편하게 진열하다 꺼내서 볼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문이 없는 견고한 장롱 형태 정도로 보면 되는 걸까. 장롱에 정리된 옷들을 보면 그 사람의 개성과 취향, 라이프 스타일을 들여다 볼 수 있듯이 책장을 들여다 보면 세계관, 호기심을 간접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다. 하지만 옛날에 산 옷을 정리하지 않고 장롱에 묵혀놓는 사람이 있듯이, 운전면허를 취득하고 나서 오랫동안 장롱에 묵혀놓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듯이, 책을 사놓고 문이 없는 장롱에 오랫동안 묵혀놓는 사람도 있다. 


    어린 시절 내가 바라본 책장은 부모님과 선생님의 욕망으로 채워져 있었다. 이 책장의 끝에는 어른들이 나에게 제시한 길이 드러나 있었다. 물론 어른들의 욕심 사이에서 나의 호기심이 피어나기도 했다. 하지만 아스팔트 도로 위에 피어난 새싹처럼 새로운 꽃을 피워내기엔 어려웠다. 성인이 되었을 때 내가 바라본 책장은 나의 욕망과 호기심 그리고 허영심으로만 채워졌다. 이 책장의 끝에는 내가 닿고 싶은 곳이 드러나 있다. 하지만 닿고 싶은 곳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길은 드러나 있지 않다. 이 길은 내가 그곳에 닿기 위해 스스로 몸부림쳤을 때에야 서서히 드러나게 된다. 어른이 되었을 때 바라본 책장은 나의 욕심과 허영심 그리고 호기심으로 뒤엉켜 있어 정글처럼 난잡해져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이 중에서 무엇을 먼저 읽고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내 책장이 난잡해진 이유는 내가 궁극적으로 추구하고픈 사유의 방식이 연역적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한 쪽만 선택하고 반대쪽을 배척하던 어린 시절의 내가 부끄러워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 까치가 흰색과 검은색으로만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면 이 세상의 모든 까치를 확인해야 하지만 이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하나의 가설을 세워놓고 연역적인 방식으로 수정을 거듭하는 추론을 거치면 나름 그럴싸한 답을 얻게 된다. 난 이러한 방식이 확실성에 가까워지는 길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을 품게 된 계기는 나 스스로가 깨달은 게 아닌 비트겐슈타인을 시작으로 하여 최진석, 훔볼트와 같은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얻게 된 1g짜리 지혜에 가깝다. 내가 지향하는 사유의 방식으로 인하여 내 책장은 더 난잡해졌다. 그래서 나는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정리되지 않은 책장과 책장 속 버려지기만을 기다리는 책은 그 사람의 사고 방식과 세계관이 얼마나 정리되지 않았고, 정체되어 있는지를.
    몇몇 사람들이 나에게 어떤 책을 읽는지, 추천할 만한 책이 있는지 묻는다면 난 가슴속에 있는 책을 말하지 않고 머릿속에서 이제 곧 떠날 예정인 책을 말한다. 그것이 나의 욕망과 호기심 그리고 허영심과 거리가 가장 멀기 때문이다. 어쩌다 화상 대화를 하게 되어 내 책장을 보여주게 될 때에도 누군가가 내 방에 들어서게 될 때에도 거짓된 책장을 보여준다. 책장에 책을 이중으로 진열하는 것이다. 내 욕망과 호기심, 허영심이 드러나 있는 책은 안쪽에 놓고 이를 가릴 목적과 가볍게 읽을 목적으로 사놓은 대중적인 책들은 바깥쪽에 진열해 놓는다. 책상 가장 가까이 그리고 깊숙이 있는 책 중에서 내 세계관과 미래의 세계관을 가리키는 책들은 제목이 보이지 않도록 뒤집어서 진열해 놓는다. 더 나아가 카메라 앵글 밖에 진짜 책장이 따로 놓여져 있다. 이렇게 하면 내가 어떤 창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은지 그리고 나의 결점이 무엇인지를 가릴 수 있다.

    내 책장이 욕망과 허영심 그리고 호기심 또는 무지로 채워져 있다는 걸 알게 되면, 다른 사람들에게 내 책장을 보여주고 싶지 않게 된다. 더 나아가 책 추천도 하기 싫어진다. 결국 책장과 내가 읽었던 책들은 나의 결점을 고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유명 오피니언 리더나 학자, 정치인이 서재에서 인터뷰를 할 때는 본인이 어떤 사람인지 드러내기 위해 책장을 활용한다.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뒤에 놓인 서재를 놓고 나처럼 욕망, 허영심 그리고 호기심의 결과물로 이해하기 보다, 모든 것을 해결한 결과물로 받아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내가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하지만 대한민국 평균에 비하면 그렇다. 알라딘 인터넷 서점에서 약 2,000만 원 정도 쓰니까, 알라딘 상위 0.1% 정도로 나왔다. 그런데 알라딘 상위 0.01%는 얼마를 썼을까 궁금해서 보니까, 4,000만 원을 썼다. 나 보다 2배 가까이 쓴 셈이다. 다시 보면, 알라딘에서 책을 단 한 권도 사지 않은 사람과 알라딘 상위 0.1%의 격차는 알라딘 상위 0.1%와 상위 0.01%의 격차와 같은 셈이다. 어쩌면 이 격차가 유명 오피니언 리더, 학자, 정치인과 나의 격차에 가까울 것이다.

    앞으로는 나처럼 책장 콤플렉스를 가진 사람들이 서서히 줄어들 것이다. 이제 책장은 피규어와 같은 장난감을 놓기 위한 장으로 진화하는 걸 넘어, 명품 가방과 의류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바뀌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내가 원하는 것을 편하게 볼 수 있는 조도를 허락하지 않는다. 반면에 전자기기는 언제 어디서나 내가 원하는 것을 편하게 볼 수 있는 조도를 형성해 준다. 미래의 사람들이 종이책이 아닌 스마트폰이나 전자책으로 사유하기 위해 떠난다면, 이제 책장은 지금의 내 책장보다 더 비밀스러워질 것이다. 비밀스럽고 음흉한 성적 취향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이는 콤플렉스로 다가오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떻게 해야 책장 콤플렉스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가장 쉬운 답은 빳빳함에서 벗어나길 바라는 책들을 부지런히 어루만져 주다가 내 머릿 속에서 떠날 때 즈음이면 책장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새롭게 채워넣는 과정을 거쳐야 하지 않을까. 

    (* 이 글을 쓴 진짜 이유 눈 앞에 놓인 과제가 너무 어려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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