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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6] 살아있는 지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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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목격자(1) (223.♡.190.125)
    댓글 댓글 5건   조회Hit 46,443회   작성일Date 23-05-15 06:53

    본문

    살아있는 지식인.

    누군가는 한국을 ‘죽은 지신인들의 사회’라 합니다. 
    물론 이 말은 요즘이 아닌, 약 10년 전부터 우리 주위에 멤돌았기 때문에 날카로운 송곳처럼 다가오지 않을 것입니다. 어쩌면 이보다 훨씬 전, 소수의 지식인들이 강하게 외쳤을 수도 있겠지만, 지적 앞잡이들에 의해 묵살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죽은 지식인들의 사회란 말이 나온 이유는 다양할 것입니다. 이성으로 세공한 지식인의 펜이 권력과 자본을 향하지 못한다는 것도 있겠지만 또 다른 이유는 지구 반대편, 특히 미국에서 생산된 담론을 가공하여 전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우리만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담론을 생산하지 않고 오로지 선진국에 녹아들겠다는 마음 하나로 지식 식민지화를 자처한 게 아닐까 합니다.

    그들은 선진국이 내놓은 담론들이 우리를 선진국으로 이끌어줄 것 같은 착각을 부릅니다. 하지만 이는 대한민국의 처참한 현실을 은폐시키는 이데올로기로 작동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마주한 문제는 우리만의 이질적인 요소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지구 반대편에서 생산된 담론으로는 해결할 수 없을 뿐더러 문제를 마주할 수도 없습니다. 지적 앞잡이들이 지구 반대편의 담론에 절대적인 권위를 부여하는 순간, 우리 안에서 생산된 담론은 이 기준에 의하여 정당성이 좌우되는 꼴입니다.

    죽은 지식인들의 사회는 바다 위를 둥둥 떠다니는 폐사한 물고기로 가득한 풍경과 비슷합니다. 이는 폐사한 물고기들로 가득한 바다로 뛰어들고 싶지 않게 합니다. 어쩌면 이는 우리나라 엘리트들이 급여수준과 안정성이 보장되는 의대를 선호하는 이유일 지도 모릅니다. 국민들도 살아있는 생명체가 없는 썩은 곳이기에 다른 곳을 바라보고 싶어지게 합니다.

    제가 기본학교에서 목격한 풍경은 폐사한 물고기들이 둥둥 떠다니는 바다 깊은 곳에는 유유히 헤엄치는 거대한 고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고래들은 폐사한 물고기처럼 수면 위에 둥둥 떠다니며 존재감을 드러내기 보다, 깊은 바닷속을 유유히 헤엄치며, 작은 파도를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특히 미국, 프랑스, 독일제 담론을 전파하는 게 아니라, 한국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한국제 담론을 생산하려 직접 움직이셨습니다.

    누군가는 심해에 머무르던 지식인이 수면 위로 올라 육지로 나아가려 하면, 바다로 돌아가라 돌을 던집니다. 어쩌면 이는 지식 식민지화를 자처한, 죽은 지식인의 사회인 우리나라에 어울리는 풍경일 지도 모릅니다. 바다에서 바라본 육지의 문제를 해결하려 뛰어든 것인데 육지의 편안한 삶에 안주하려는 것으로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존 스튜어트 밀, 애덤 스미스, 존 롤스, 장 자크 루소, 헤겔, 마르크스, 미셸 푸코, 리오타르 등 수 많은 지식인들이 내놓은 결과물들을 보면  모두 육지의 문제을 해결하기 위한 정치적인 것들이었습니다. 꼭 지식인들로만 한정지을 수 없습니다. 음악가인 모차르트의 오페라인 ‘피가로의 결혼’은 프랑스 대혁명의 씨앗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지식인이 이성으로 세공하여 갈고 닦은 펜이라 할지라도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장 자크 루소의 사회계약론은 절대왕정을 무너트리고 민주주의의 씨앗을 발아시켰지만, 평등주의적인 견해는 전체주의의 씨앗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헤겔의 국가지상주의란 개념은 독일 나치 정권이 악용하여 더 큰 힘을 발휘하였고, 절대정신이란 개념은 전체주의로 이끌기도 했습니다. 이외에도 수 많은 지식인들이 낳은 부정적인 영향은 많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최진석 교수님의 말을 빌리자면, 일상은 강력합니다. 일상은 특정 개념이 세상을 어지럽힌 요소들을 지우고 좋은 것들만 남겨놓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역사를 배울 때 지식인들의 오점이 아닌 업적들을 배우는 이유라 생각합니다.

    과거 알제리가 프랑스의 식민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독립운동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프랑스의 대문호인 샤르트르는 알제리 독립을 지지하는 걸 넘어, 자금을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대통령은 샤롤 드골이었는데, 그의 측근은 샤르트르를 손봐야 한다는 조언을 건냈습니다. 이에 샤롤 드골의 답변은 “샤르트르, 그도 프랑스야.”
    우리가 살아있는 지식인들을 더 많이 만날 수 있다면, 프랑스 대통령이었던 샤롤 드골처럼 육지로 향하는 지식인들을 향해 돌을 던지지 않을거라 생각합니다.

    물론 저와 생각이 다르신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와 다른 걸 보고 느낀 동지들도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이보다 더 가치있고 멋진 풍경일 수도 있습니다.
    이 풍경은 제가 기본학교에서 마주한 풍경 중 가치있고 아름답다고 느낀 것입니다. 그래서 저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신 새말새몸짓 후원자 분들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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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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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상도님의 댓글

    한상도 아이피 (220.♡.163.17) 작성일 Date

    "그런데 여기서 최진석 교수님의 말을 빌리자면, 일상은 강력합니다. 일상은 특정 개념이 세상을 어지럽힌 요소들을 지우고 좋은 것들만 남겨놓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역사를 배울 때 지식인들의 오점이 아닌 업적들을 배우는 이유라 생각합니다." -> 이 부분이 잘 이해가 안됐습니다. 여기서의 일상이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이라는 의미인지요? 가능하시다면 이 부분에 대한 설명 좀 부탁드립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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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격자(1)님의 댓글의 댓글

    목격자(1) 아이피 (223.♡.178.61) 작성일 Date

    맞습니다.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이고요. 일상이 아닌 시간으로도 표현할 수 있습니다.
    당시 교수님은 “전쟁 속에서도 꽃은 핀다, 전쟁 중에도 사랑을 한다. 일상은 강력하다.” 같은 말을 해주셨습니다.
    마르크스도 비슷한 말을 했는데요. ‘시간은 모든
    것이고 사람은 무가치하다. 사람은 시간의 시체일 뿐이다.’
    저는 이 두 표현을 섞어서 ’일상은 혼란의 지우개다‘ 라는 의미로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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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상도님의 댓글의 댓글

    한상도 아이피 (220.♡.163.17) 작성일 Date

    '지식은 사회를 비생산적인 방향으로 유도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일상을 통해 이를 돌파한다. 역사는 돌파의 기록이다.'

    위 부분을 제가 멋대로 해석해보았는데, 본 뜻과 어느 정도 상통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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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격자 (1)님의 댓글의 댓글

    목격자 (1) 아이피 (223.♡.178.17) 작성일 Date

    맞습니다!! 굳이 분류를 해보자면, 돌파의 기록이라 할 수 있는 일상은 ‘단조로운 일상’이 아닌 ‘더 나아지려는 일상’으로 봐야 제 뜻에 가까워질거 같습니다.
    제가 받아들인 최진석 교수님의 ‘일상은 강력하다.’ 란 말은 ‘세상의 혼란조차도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상에 의해 무감각해진다.’라는 방향으로도 볼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단조로운 일상은 혼란을 해결하는 게 아니라 방치시킬 뿐이다. 더 나아지려는 일상만이 혼란을 지운다.’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역사를 배울 때 지식인들의 오점이 아닌 업적을 배우는 이유’라고 말한 이유도 특정 지식이 촉발시킨 혼란은 더 좋은 일상을 꿈꾸는 인류에 의해 지워지고 좋은 것들만 순수하게 남겨져 있기 때문이고요.
    저보다 훨씬 똑똑한 3기 동지들이 그리워지네요. 저보다 더 맛깔나고 명료하게 설명할 수 있을텐데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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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상도님의 댓글의 댓글

    한상도 아이피 (210.♡.149.16) 작성일 Date

    답변 감사합니다. 덕분에 '일상의 힘으로 돌파'라는 새로운 개념을 탑재하게 되었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