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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팩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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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한상도 (210.♡.149.16)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2,978회   작성일Date 23-08-03 11:22

    본문

    30년 된 오락실에는 아직도 고장이 안난 팩맨 게임기가 있었다.

    아무도 플레이 안한지 10년이 넘자, 팩맨은 몸이 근질거렸다.

    “난 이렇게 살다 가고 싶지 않아. 80년대에야 신나게 일을 했지만, 이제는 일거리도 없어. 만일 팩맨 붐이 다시 분다고 해도, 이제는 노란 점이나 체리를 먹는 것으로는 성이 안차는걸.”


    팩맨은 게임에서 탈출했다.

    일단 세상에는 나왔는데, 할 일이 없었다. 10년간의 유급백수생활은 그의 몸을 한껏 달아올려놨지만, 그 욕구를 충족시켜줄 무언가가 없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사람들은 다양한 일들을 하고 있었다. 글을 쓰기도 하고,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춤을 추기도 했다. 물론 대부분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듯 했으나, 팩맨에게 사무직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별로 눈길을 주지 않았다.


    뭐라도 하자는 마음에 팩맨은 패스트푸드점 알바를 했다. 지루하고 답답했다. 1달만에 그만두고 청소부가 되었다. 무언가를 치우는게 개운한 느낌을 주었지만, 게임기 안에서의 삶과 뭐가 다른가 싶었다.


    “돈벌이는 아닌가 보다.”


    그는 1달만에 청소부도 그만두었다. 어차피 먹지도 자지도 않는 팩맨에게 돈은 필요 없었다. 그저 일거리가 필요했을 뿐.

    글도 써보고 운동도 해보고 그림도 그려보았지만, 성에 차지 않았다. 내면에 답답함이 느껴졌다.

    스트레스를 받자, 뭐라도 삼켜버리고 싶었다. 답답함도 삼켜버리고 싶었다. 이 답답함을 해소하기 위해 지구라도 삼켜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마구잡이로 삼키기 시작했다. 옆에 굴러가던 공도 삼키고, 들판에 난 풀도 삼켰다. 지나가던 고양이도 삼키고 자동차도 삼켰다. 아무리 삼켜도 허기가 가시지 않았다. 삼켜버린 것들이 어디로 가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팩맨은 날 때부터 뭐든 삼키도록 설계되어 있었을 뿐이었다. 삼켜진 것들은 그저 사라지게 설계되어 있었을 것이다. 물론 팩맨은 자신이 어떻게 설계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마구마구 삼켜버리니 팩맨은 기분이 좀 나아졌다. 이제 닥치는대로 다 삼켜버리고 싶다는 마음이 들자, 단번에 한강의 물을 전부 삼켜버렸다. 그러자 점점 세간의 비난을 받기 시작했다. 팩맨의 삼킴을 제어해야 한다는 사회의 목소리가 커지고, 팩맨을 만들어낸 코드를 분석해서 해체시켜버려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


    사회의 차가운 반응을 마주하자, 팩맨은 무언가를 느꼈다. 아주 미세하게 느껴졌지만 유심히 관찰했다. 사람들이 말하는 ‘불쾌함’이라는 감정이었다. 이제 그는 ‘유쾌함’을 유발할 수 있는 삼킴이 어떤 삼킴인지를 사색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해주면 될까? 내가 싫어하는 것들을 삼켜버리면 될까? 아니면 냄새나는 것들을 삼키면 어떨까? …’. 다양한 가능성을 생각해 본 후, 팩맨은 독서를 시작했다. 이제는 되는대로 삼켜버렸다가는 코드단위로 해체가 될 수 있으니, 조심조심 행동해야 했다. 그는 최대한 많은 것들을 구체화시키고 싶었다. 삼킴이란 무엇인가? 유쾌함이란 무엇인가? 삶이란 무엇인가? 유익함이란? 선함이란? 존재란? 욕망이란?


    천권의 책을 독파한 팩맨은 마음을 세웠다.

    ‘내가 나로 살아가는 것에 방해되는 것들을 전부 삼켜야겠다’


    팩맨은 우선 오락실로 돌아가 자신이 살았던 오락기를 삼켰다.

    그리고는 대기에 있는 이산화탄소를 삼키고, 바다로 나아가 둥둥 떠다니는 플라스틱들을 삼켰다. 해변가에 널부러진 깨진 술병도 삼켰고, 쓰레기장의 불연성 폐기물들도 삼켜버렸다.

    팩맨의 행동을 본 사람들은 환호를 했다. 팩맨을 진정한 영웅이라고 떠받드는 사람들도 있었다. 물론 팩맨은 사람들의 반응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 다음, 팩맨은 글을 쓰기 시작했다. 동화부터 시까지 수많은 문학작품을 썼다.

    쉽고 재미있게 읽히면서도 감동을 주는, 고도의 미적 자극을 줄 수 있는 작품을 썼다.

    그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삼키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팩맨의 작품들은 인기를 끌었고, 수많은 팬을 확보하게 되었다.

    팩맨의 열혈팬인 한 꼬마가 물었다.

    “어떻게 하면 팩맨처럼 훌륭한 존재가 될 수 있나요?”
    팩맨이 대답했다.

    “나는 그저 삼킬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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