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견보다 썰매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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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말 새 몸짓은 새로운 말과 몸짓으로 새로운 시대를 열겠다는 거창한 포부처럼 느껴진다. 용맹한 경비견보다 정해지지 않은 곳으로 썰매를 이끄는 썰매견이 되겠다는 의지로 다가왔다.
경비견보다 썰매견.
난 강아지를 좋아한다. 경비견과 썰매견, 안내견, 목양견 그리고 동네 똥강아지 모두 좋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경비견인 진돗개도 좋다. 그런데 썰매견, 안내견, 목양견처럼 똑똑한 강아지들은 모두 지구 반대편에 뿌리를 두고 있다.
매일 아침마다 수많은 지식으로 무장한 기고글이 쏟아진다. 내가 닿지 못한, 닿지 못할 높은 수준의 생각들로 채워진 세상. 참 좋은 세상이다. 그런데 이미 정해진 지적 체계 내에서 생각을 전개한 기고글이 쏟아지고 있다면, 새말 새 몸짓이 피어나는 세상이라 할 수 있을까.
이를 굳이 표현하자면 낯선 사람이 오면 맹렬하게 짖고 주인이 오면 조용히 침묵하며 꼬리를 흔드는 충실한 경비견으로 가득한 사회가 아닐까. 물론 이 분들은 나보다 훨씬 똑똑하고 훌륭하다. (* 그들은 낮잡아 표현할 수밖에 없는 내가 부끄럽다.)
새말 새몸짓에 가까운 강아지를 굳이 꼽자면 썰매견이 아닐까. 경비견은 한 곳에 묶여 짖거나 침묵하는 게 일이라면, 썰매견은 썰매를 새로운 곳으로 끌고 간다. 이들은 매번 똑같은 자세로 달리지 않는다. 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균열이 생기는 얇은 얼음판 위를 지나갈 때는 빙판에 가해지는 힘을 분산시키기 위해 익숙한 몸짓을 버리고 바닥에 납작 엎드려 기어가는 새 몸짓을 보여준다.
물론 경비견과 썰매견은 인간의 도구가 되기를 자처한 것이기에 똑같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묶여서 짖기만 하는 경비견과 썰매를 정해지지 않은 곳으로 끌고가는 썰매견은 다르다. 지식인도 그렇다. 누구는 사회의 불의를 보면 짖고 누구는 침묵한다. 또 다른 누구는 세상에 직접 뛰어들어 새로운 곳으로 이끌려 하지 않던가
새 시대를 연 사람들은 익숙한 말, 익숙한 몸짓과 긴장관계를 유지할 줄 알았다. 얇은 빙판을 건너가기 위해 익숙한 몸짓을 과감하게 버릴 줄 아는 썰매견처럼.
지구 반대편에 있는 견종은 새로운 곳으로 썰매를 이끌었고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이 새 시대를 열었다. 이제는 우리도 열 수 있지 않을까. 새로운 말과 새로운 몸짓이라도 해봐야 할 때가 오지 않았나.
새로운 시대를 연 지식인들이 태어난 지가 100년을 넘겼다. 아직 살아있는 노엄 촘스키, 하버마스 같은 지식인도 이제 100살에 가까워쟜다. 이제 새로운 시대가 열릴 때가 되지 않았나. 우리가 새로운 시대를 열지 못하더라도 새말 새몸짓을 하기 위한 준비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오늘은 멕시카나에서 선보인 치토스 치킨이란 신 메뉴로 새 몸짓을 연습해야겠다.
(* 멕시카나 관계자가 이 글을 보고 저에게 쿠폰을 주고 싶다면, 감사히 받을 생각 있음. 100장도 받을 수 있음.)
경비견보다 썰매견.
난 강아지를 좋아한다. 경비견과 썰매견, 안내견, 목양견 그리고 동네 똥강아지 모두 좋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경비견인 진돗개도 좋다. 그런데 썰매견, 안내견, 목양견처럼 똑똑한 강아지들은 모두 지구 반대편에 뿌리를 두고 있다.
매일 아침마다 수많은 지식으로 무장한 기고글이 쏟아진다. 내가 닿지 못한, 닿지 못할 높은 수준의 생각들로 채워진 세상. 참 좋은 세상이다. 그런데 이미 정해진 지적 체계 내에서 생각을 전개한 기고글이 쏟아지고 있다면, 새말 새 몸짓이 피어나는 세상이라 할 수 있을까.
이를 굳이 표현하자면 낯선 사람이 오면 맹렬하게 짖고 주인이 오면 조용히 침묵하며 꼬리를 흔드는 충실한 경비견으로 가득한 사회가 아닐까. 물론 이 분들은 나보다 훨씬 똑똑하고 훌륭하다. (* 그들은 낮잡아 표현할 수밖에 없는 내가 부끄럽다.)
새말 새몸짓에 가까운 강아지를 굳이 꼽자면 썰매견이 아닐까. 경비견은 한 곳에 묶여 짖거나 침묵하는 게 일이라면, 썰매견은 썰매를 새로운 곳으로 끌고 간다. 이들은 매번 똑같은 자세로 달리지 않는다. 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균열이 생기는 얇은 얼음판 위를 지나갈 때는 빙판에 가해지는 힘을 분산시키기 위해 익숙한 몸짓을 버리고 바닥에 납작 엎드려 기어가는 새 몸짓을 보여준다.
물론 경비견과 썰매견은 인간의 도구가 되기를 자처한 것이기에 똑같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묶여서 짖기만 하는 경비견과 썰매를 정해지지 않은 곳으로 끌고가는 썰매견은 다르다. 지식인도 그렇다. 누구는 사회의 불의를 보면 짖고 누구는 침묵한다. 또 다른 누구는 세상에 직접 뛰어들어 새로운 곳으로 이끌려 하지 않던가
새 시대를 연 사람들은 익숙한 말, 익숙한 몸짓과 긴장관계를 유지할 줄 알았다. 얇은 빙판을 건너가기 위해 익숙한 몸짓을 과감하게 버릴 줄 아는 썰매견처럼.
지구 반대편에 있는 견종은 새로운 곳으로 썰매를 이끌었고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이 새 시대를 열었다. 이제는 우리도 열 수 있지 않을까. 새로운 말과 새로운 몸짓이라도 해봐야 할 때가 오지 않았나.
새로운 시대를 연 지식인들이 태어난 지가 100년을 넘겼다. 아직 살아있는 노엄 촘스키, 하버마스 같은 지식인도 이제 100살에 가까워쟜다. 이제 새로운 시대가 열릴 때가 되지 않았나. 우리가 새로운 시대를 열지 못하더라도 새말 새몸짓을 하기 위한 준비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오늘은 멕시카나에서 선보인 치토스 치킨이란 신 메뉴로 새 몸짓을 연습해야겠다.
(* 멕시카나 관계자가 이 글을 보고 저에게 쿠폰을 주고 싶다면, 감사히 받을 생각 있음. 100장도 받을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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