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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독하다_서평] 데미안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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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한상도 (218.♡.116.5)
    댓글 댓글 1건   조회Hit 5,927회   작성일Date 24-02-23 15:50

    본문

    모든 인간은 알을 깨고 나와야 하는가? 알을 깨고 나오지 않아도 괜찮지 않은가? 애초에 알이라는게 있기는 한가? 도대체 알은 누가 규정한 것인가?


    책 소개

    독일의 유복한 집안의 아들 싱클레어는 따뜻하고 평온한 집을 사랑했고, 화목한 집안에서 만족해 하며 살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음울하고 폭력적인 옆 골목에 흥미를 가지고, 탕아의 이야기를 탐독하는 모습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싱클레어에게 크로머라는 불량 친구가 엮이기 시작한다. 싱클레어는 크로머와 어울리고 싶어 자신이 절도를 했다는 거짓말을 했고, 크로머는 이를 빌미로 싱클레어를 협박하고 금품을 갈취한다. 싱클레어는 크로머로 인해 혼란과 공포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되는데, 그 때 데미안이라는 구원자가 등장하여 싱클레어를 해방시켜준다.

    이후 싱클레어는 데미안과 관계를 맺게 되는데, 이는 싱클레어로서는 이전에 경험해본 적이 없던 것이었다. 데미안은 늘 싱클레어에게 영감을 주었다. 그들의 대화 주제는 수준이 높았는데, 주로 기존의 가치관에 대한 부정, 자신만의 시선, 그리고 원하는 것을 얻는 방법 등이었다. 이내 데미안은 여행을 떠났고, 싱클레어는 데미안과의 교류 속에서 크게 흔들렸다.

    데미안이 없는 동안, 싱클레어는 방황을 시작한다. 학교 생활을 뒤로 하고, 불량배들과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주변의 경고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방탕한 생활을 이어나갔다. 그는 이 생활을 만족하지 않았지만, 멈추지도 못했다. 시간이 흐르고, 데미안이 다시 나타나 싱클레어에게 말한다.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원하고 모든 것을 우리 자신보다 더 잘하는 누군가가 우리 안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 두면 좋아.’ 이후, 싱클레어는 자기 자신에게 몰두한다. 

    고독한 자가 된 싱클레어는 데미안의 어머니 에바를 만난다. 에바를 사랑하게 된 싱클레어는 역설적이게도 사랑할 능력이 없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에바를 향한 사랑을 꾸준히 완성해 나간다. 에바를 향한 싱클레어의 사랑이 조금씩 성숙해지는 중, 전쟁이 일어난다. 싱클레어는 참전했고, 새로운 세계에 던져진다. 그는 전쟁을 겪으며 알을 깨고 나오려는 수많은 영혼들을 마주했고, 자신 또한 알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평가 (별점: 3.5점)

    이 작품은 ‘인간의 삶은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향해 걷는 일’ 이라는 메시지를 분명하게 남긴 소설이기에 그 자체로 귀하다. 작품이 너무 길지 않고, 이야기의 흐름이 ‘던져짐과 극복’의 반복으로 구성된다는 점에서 독자들에게도 읽기에 부담이 덜 할 것으로 보인다. 작품이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가 군데군데 명시되어 있어 감상 중에 환기의 역할 또한 톡톡히 한다. 1차 세계대전이 지나간 후 당시 사회가 겪고 있던 아픔을 물고 늘어졌던 작품이라는 점에서 작품성을 세계적으로 인정받았지만, 내가 당시의 사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그만큼의 공감을 하지 못한 점은 아쉽다. 또한, 작품에서 드러나는 고도의 은유 장치들을 충분히 독해하지 못한 문해력을 원망하게 된다.


    논의할 만한 내용

    나의 알은 시대가 부여한다. (찬/반)

    알을 깨고 나오려는 몸부림이 없는 삶은 무의미하다. (찬/반)

    자신의 알을 죽을때까지 인식할 수 없는 사람도 있다. (찬/반)

    선진국일수록 자신의 알을 인식하는 사람이 많다. (찬/반)

    알은 여러 겹으로 되어 있다. (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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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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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만내님의 댓글

    논만내 아이피 (77.♡.246.9) 작성일 Date

    1. (찬)
    알이라는 것은 그 시대의 관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의 알은 그 시대가 부여한다고 생각해요.
    2. (반)
    저는 상당히 가치있다고 생각합니다. 알을 깨고 나오려는 몸부림은 나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니까요. 몇몇 사람들은 내가 아닌 '인간', '국가', '사회', '우리'에 생각하려는 경향이 있는데요. 그런데 이에 대해 생각하면, 나라는 고유한 측면을 보지 못하는 선택적 맹인이 되고 맙니다. 물론 인간이나 국가 등에 대해 생각하는 것 또한 충분히 가치가 있죠. 그런데 죽을 때까지 인간, 국가, 사회, 우리에 대해서만 생각하느라 나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면 무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의미는 나로 이어졌을 때 드러난다고 생각해요.
    3. (찬)
    앞서, 나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국가, 우리, 사회, 인간 등에 대해서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가장 대표적인 예라고 생각합니다.
    4. (찬)
    저는 야구를 즐겨 보지 않아서 야구를 비유로 하기가 멋쩍네요. 그럼에도 떠오르는 게 이거 밖에 없으니 이걸로 답해보겠습니다. 우리나라 투수들이 공을 던지는 폼과 미국 메이저리그의 투수들이 던지는 폼에서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투수들은 모두 정형화 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 반면에 메이저리그의 투수들은 자신만의 고유한 폼으로 공을 던집니다. 전 이게 알의 인식 여부라고 생각해요. 대한민국의 투수들은 자신의 알을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에 정해진 틀에서 공을 던진다면, 미국의 투수들은 자신의 알을 인식했기에 고유한 폼으로 공을 던질 수 있는 거라 생각합니다.
    후진국은 더 빠른 이동수단을 확보하기 위해 더 훌륭한 말을 키우는 데 집중했다면, 선진국은 말보다 더 오래, 빠르게 달리고 똥도 덜 싸는 자동차를 발명했죠.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확장하기만 하는 것은 기존의 알을 깨기는 커녕 인식하지도 못하며, 저는 이게 후진국의 특성이라 생각합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인데요. 선진국은 원리를 바탕으로 사고를 전개하기 때문에 기존에 알고 있던 것에 국한되지 않고 알을 인식하고 이를 깨는데 능합니다. 하지만 후진국은 원리가 아니라 배경지식, 기존의 관념을 바탕으로 유추를 통한 추론을 하기 때문에 알을 깨기는 커녕 인식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5. (반)
    알은 여러 겹으로 되어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아주 두터운 한 겹으로 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이 한 겹은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관념과 가치관이라 생각합니다. 알을 깨고 나오는 순간 자신의 자아를 발견하는 것이고요. 그 다음은 자유롭게 날아다니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날아다니면서 수 많은 풍파를 겪을 수 있겠죠. 그래서 누군가는 이 풍파까지도 또 다른 알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데미안에서는 이를 다루지 않았으니, 한 겹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