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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김민석 (175.♡.230.114)
    댓글 댓글 1건   조회Hit 5,920회   작성일Date 24-02-13 21:17

    본문

    죽음은 온전히 자신의 몫이며(고유성)
    모든 존재연관에서 단숨에 단절되고(무연관성) 그 누구도 면제될 수없는 필연적인 것(건너뛸 수 없음)이라면, '헛됨' 앞에서 하염없는 절망과 슬픔에 몸서리침과 동시에 어쨋든 살아있음과 더불어 강력한 동력이 나타나게 된다.
    "내가 보고 들었던 것들이 그리고 모두가 그렇게 여겨진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도대체 (죽을)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이것은 진정 참이다. 그러면 위와 같은 질문들이 등장하기 이전의 상태를 고찰해 볼 수 있다면 내린 결론은 '두려움'이다.
    어떤 두려움? 타자와 다르다는 두려움, 나아가 존재자들과의 '근본 괴리성'. 그것이야말로 바깥의 존재자들을 단숨에 빨아드리는 그리고 접목할 수 있었던 이유였음이 틀림없다.
    하지만, 두려움만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것일까? 두려움만이 가능했다면 차라리 정신병자의 증세만이 가능한 것이 아닐까? 괴리만이 남아 있었다면 그 괴리가 충분히 나타날 정도로 그렇게 존재하는 것으로 충분한 것이 아니었을까!

    두려움 속에서 단숨에 해결책으로 등장하는 '확신'의 문법들. 이것은 전체성을 대표하며 단숨에 괴리들을 봉합한다. 이 확실한 처방을 따르지 않은 자는 거의 없다고 알려져 있다.
    "나는 아니 우리들은 어떤 것을 어떤 것이라고 믿는다. 아니, 그것이 그것임을 확신한다. 아니, 저것은 저것이 아니라 오직 저것일 뿐이다. 모든 것은 정해져 있다! 그리고....."라고 말한다.
    바로 그것을 동의라고 할 수 있다면 (여기에는 계약이라는 거창한 말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명료해지고 선명해지며 자신의 말이 바깥의 모든것과 일치하는 신비스러운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내면화된 절대적 명령은 언제가 알게될 그 나름의 세계를 유지하는 종신적 노동조항과 "그리고..."라는 말 뒤에 붙을 그 누구도 알려주지 않고 스스로가 알아야될 이면계약의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죽음은 책임져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때, 무너지게 되는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은 신뢰들은 죽음은 삶과 같이 시작되어 있음을 말해준다. 근본 괴리성은 죽음과 같이 존재한다. 그래서 죽음을 통해 말이 시작될 때 했었던 동의를 다시금 불러 세울 수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오직 여러 동의와 억압 그리고 에움길로의 회피들이 관념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 뿐이다.
    말 이전으로도 갈 수 없고 그렇다고 완전히 그것에 동의할 수 없음을 이미 깨달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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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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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가스 박사 싹둑이님의 댓글

    돈가스 박사 싹둑이 아이피 (77.♡.246.4) 작성일 Date

    오.. 많은 걸 깨달으셨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