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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F] 90년대생들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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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변지선 (223.♡.204.103)
    댓글 댓글 2건   조회Hit 9,244회   작성일Date 23-07-31 02:00

    본문

    2021년일까 2022년일까 눈이 엄청나게 쏟아지던 날이었을까. 90년대생 영택이는 80년대생 민지와 같은 테이블 앉아 삼겹살을 먹게 되었다. 둘의 취미는 글쓰기였는데, 취미에 대한 철학을 아주 짧게 주고받게 되었다.
    민지에게 글이란 자신의 자식과 같아 소중히 여겼던 반면에 영택이는 익명으로 글을 배설하는 걸 선호했다. 민지는 그런 영택이의 철학을 이해하지 못했다.
    영택이는 자신에게 익명성이란 가치가 무엇인지 민지에게 설명할까 고민했다. 하지만 삼겹살이 너무 맛있어서 말을 아꼈다. 말을 하지 않고 삼겹살을 하나라도 입에 채워 넣는 것이 오히려 합리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영택이는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90년대생 특징>이란 글을 봤다. 가장 공감 갔던 내용은 ‘90년대생은 사회적 권위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였다.
    영택이가 생각하기에, 90년대생이 사회적 권위를 가벼이 여기는 가장 큰 이유는 어린 시절 익명성의 탈을 쓰고 활동하던 인터넷에서의 경험을 꼽는다. 90년대생인 영택이는 어렸을 때부터 컴퓨터를 만질 수 있는 환경에서 자랐다. 미취학 아동 시절에는 MS-DOS 운영체제의 컴퓨터를 만지기 시작했고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즈음에는 마우스로 쉽게 다룰 수 있는 윈도우 운영체제의 컴퓨터를 만지게 되었다. 인터넷 인프라까지 갖춰진 덕에 영택이는 조작하기 쉬운 윈도우 컴퓨터로 인터넷 세계를 자유롭게 누빌 수 있었다.

    영택이의 초등학생 시절, 가장 인기 있었던 만화는 포켓몬스터였다. 영택이는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포켓몬스터 빵을 사서 코스트코 피자 가게로 향했다. 당시 코스트코는 3만 원의 회원 카드를 소지하고 있어야 입장이 가능했는데, 피자가게는 회원 카드가 없어도 입장이 가능했다. 코스트코 피자 가게는 약 700ml 또는 1온즈 정도의 커다란 컵을 500원에 팔았다. 500원짜리 컵 하나만 사면, 영국의 햄버거 가게인 파이브 가이즈처럼 원하는 음료를 무한으로 리필할 수 있었다.

    5~6명의 영택이와 친구들의 하루 평균 용돈은 500원 정도였다. 친구들은 돈을 모아 2,500원 정도 되는 얼굴 만한 크기의 코스트코 피자 한 조각과 500원짜리 컵 하나를 주문해서 함께 나눠 먹었다. 피자로는 배를 채울 수 없었기에 음료를 무한으로 즐기며 배를 채울 수 있었다. 음료만 마시던 게 따분했던 영택이와 친구들은 콜라와 환타 그리고 사이다 등 다양한 음료를 섞어, 초록색 거품이 나오는 음료를 따로 제조하기도 했다. 물론 영택이와 친구들은 피자가게 종업원에겐 진상에 가까웠다. 그래서 피자가게에 손님이 들어찬 날에는 정중하게 나가줄 것을 요구받기도 했다. 종업원들이 우리에게 정중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주말마다 엄마의 손을 잡고 찾아오는 단골손님이었기 때문이다.

    영택이와 친구들이 매일 코스트코 피자 가게에 간 것은 아니다. 당시 근처에 있던 백화점은 전단지를 부지런히 뿌렸는데, 운이 좋은 날에는 백화점 전단지 우측 하단에 빨간색으로 칠해진 ‘맥도널드 무료 음료 쿠폰’이 있었다. 이 부분만 가위로 오려서 백화점에 있는 맥도널드로 가져가면, 콜라 또는 사이다를 무료로 제공해 줬다. 백화점에서 음료수를 공짜로 마시는 날에는 친구들과 어린이 코너로 가서 장난감과 게임, 만화책을 구경하며 놀았다. 백화점과 코스트코에 가지 않는 날이멷 비비탄 총을 들고 아파트 단지에서 총싸움을 하며 놀기도 했다. 그러다 각자 학원 갈 시간이 되면 뿔뿔이 흩어졌다.
    90년대생 영택이가 살던 세상은 배고팠던 부모님의 어린 시절과 달랐다. 주머니에 돈이 없어도 어른들의 도움 없이 음료수만큼은 배불리 마실 수 있었다.


    영택이가 친구들과 모여 있을 때 가장 많이 나눈 대화는 포켓몬스터였다. 영택이는 포켓몬스터 세계관에 흠뻑 빠진 나머지 포켓몬스터 게임을 가장 좋아했다. 영택이는 포켓몬스터와 관련된 더 많은 정보와 새롭게 출시되는 포켓몬스터 게임을 즐기기 위해 인터넷 세계를 적극적으로 탐험하기 시작했다.

    초등학생 영택이가 인터넷 세계에서 배운 생존 전략은 익명성을 지키는 것. 영택이는 포켓몬스터 게임뿐만 아니라 낯선 사람들과 대결을 하는 온라인 게임도 즐겼다. 초등학생인 영택이는 중 고등학생 형, 누나 그리고 성인을 만나면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하지만 온라인 세계에서는 가볍게 제압할 수 있었다. 간혹 가다가 게임 속 세계에서 말싸움이 벌어질 때가 있었다. 온라인상에서 말싸움을 할 때 패배하지 않으려면 개인정보를 노출하면 안 된다. 특히 초등학생이라는 걸 노출하는 순간 상대방이 얕잡아 보기 때문이다.

    온라인 게이머 : 너 몇 살인데 까부냐?
    영택 : 너는 몇 살이냐?
    온라인 게이머 : 27살이다.
    영택 : 그 나이 먹고 게임하는 게 자랑이다. 지금 너네 부모님이 우리 집에 와서 신세 한탄하고 있다. 빨리 정신 차리고 컴퓨터 꺼라.

    90년대생 부모님들이 모르는 사실 중 하나는 우린 게임을 할 때 부모님의 명예를 걸고 했다. 플레이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바로 부모님을 욕하는 채팅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프로게이머들이 세계 최정상 레벨에 자리할 수 있었던 진정한 이유는 부모님을 욕보이지 않으려는 치열한 태도로 임했기에 가능했을지도…

    초등학생 영택이가 인터넷 세계에서 형, 누나 그리고 어른들을 상대로 게임뿐만 아니라 말싸움까지 이기고 부모님의 명예를 지키려면, 자신의 익명성을 끝까지 지켜야 한다는 지혜(?)를 자연스레 체득했다. 이에 익숙해져서 그럴까. 영택이는 인터넷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상대의 지위를 파악할 수 있는 나이, 출신 등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어떤 사람인지 알기 위해, 행동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취미, 가치관 등을 물어보며 관계를 형성했다.



    영택이가 중,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도 게임을 돈 주고 구매하는 것은 아깝게 여겨졌다. 부모님께 게임을 구매하기 위해 손을 벌리려면, 1시간가량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래서 영택이는 어쩔 수 없이 불법 다운로드 경로를 개척해야 했다. 당시에는 컴퓨터 게임뿐만 아니라 콘솔 게임기인 플레이스테이션 2, 휴대용 게임기인 PSP를 따로 해킹하여, 게임 타이틀을 불법으로 다운로드하여 즐길 수 있었다. 당시 게임의 가격은 5~7만 원 정도였음에도 부모님에게 손을 벌리지 않고도 하고 싶은 게임을 공짜로 즐길 수 있었다. 이런 문화는 꽤 오래 지속되었다. 아이폰4가 처음 출시되었을 때에도 유료 어플을 결제하기 싫다는 이유로 아이폰을 따로 해킹하여 유료 어플을 무료로 사용하고 유저 인터페이스를 자유롭게 꾸미기도 하였다.

    당시 영택이가 하고 싶었던 게임, 재미있는 게임을 무료로 다운로드하기 위해 인터넷 세계를 더 열심히 탐험했다. 영택이가 원하는 게임을 불법다운로드 하려면 한국의 인터넷은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영택이는 영어권 웹사이트로 건너가게 되었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포챤이라는 곳에 닿았다.

    포챤은 한국의 디시인사이드, 일본의 니찬과 같은 자유로운 커뮤니티 사이트다. 다만 워낙 자유롭다 보니 욕설과 각종 불편한 게시물들이 올라온다. 그럼에도 용납할 수 없는 규칙이 있었는데 아동 포르 x, 모럴패그는 금기시되었다. 모럴패그를 우리식으로 바꾼다면 십선비로 볼 수 있다.
    모럴패그를 설명하려면 예비군 훈련장을 예로 들어야 한다. 예비군 훈련장에 가면 예비군복을 단정하게 입은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데 예비군 A가 복장이 불량한 예비군들에게 옷을 제대로 갖춰 입으라고 잔소리를 하기 시작하면, 수많은 예비군들은 예비군 A를 십선비 취급을 하게 된다.
    예비군 A 같은 존재가 모럴패그다. 조금 더 어른스럽게 표현하자면, 지나치게 하얀 것은 오히려 더러워 보인다는 의미인 大白若辱(대백약욕)과 가까운 존재다.

    영택이는 게임 불법 다운로드를 목적으로 웹 페이지를 탐험하다 포챤이라는 곳에 닿게 되었지만 낯설지 않았다. 이곳은 사용하는 언어만 다를 뿐 익명성을 지켜야 한다는 한국의 인터넷 생존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영택이는 포첸의 핵티비스트 성향이 강한 사람들과 가까워지게 되었고 추후 비밀 채팅방에 따로 모이게 되었다. 그리고 이 모임은 유명 해커단체로 기억되고 있다.
    영택이는 포첸의 핵티비스트 비밀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고 함께 한 시간들은 한국의 온라인 게임에서 형, 누나들을 상대로 승리할 때보다 더 짜릿했다. 비밀 채팅장은 현실에서 건드릴 수 없는 유명인의 치부를 공격하여 항복하게 만드는 것을 시작으로 보안 기업, 엔터테인먼트 회사, 외국 방송사, 사이비 종교 그리고 국가 기관 등을 공격했다. 영택에는 인터넷이라는 가상 세계에서 사회적 지위와 위계를 전복하는 재미를 만끽했다.
    이는 영택이만의 특별한 경험이 아니다. 당시 인터넷이 보급된 국가의 어린이나 청소년이라면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형, 누나 그리고 어른들을 무너트린 경험을 갖고 있다. 말하지 않았을 뿐 기업이나 국가 기관을 공격한 경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90년 대생들이 어렸을 때부터 인터넷에서 쌓아온 승리의 경험은 사회적 권위를 가볍게 여기게 된 기틀이 되었다.

    물론 60, 70, 80년대생 또한 인터넷 세계에서 90년대생처럼 자유롭게 놀 수 있다. 그런데 큰 차이점은 60, 70년대생에게 컴퓨터와 인터넷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에 가까웠다면, 80, 90년생들에게 컴퓨터는 게임기였고 인터넷은 놀이터에 가까웠다. 다만 90년 대생들은 80년 대생들에 비해 나이가 어려, 공부와 취업의 압박으로부터 자유로웠다. 그래서 90년생들은 60, 70년 대생들이 만들어 놓은 수많은 게임과 도구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인터넷이란 가상 세계에서 더 마음껏 뛰어놀고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아이들이 밖에서 놀다가 사고를 칠 수 있듯이 90년 대생들은 인터넷 세계에서 수많은 사고를 쳤다. 요즘은 게임에서 욕설을 하면 경찰서에 연락이 오기도 하지만 그때 당시의 인터넷은 무법지대였다. 그래서 부모님들은 모른다. 90년 대생들이 컴퓨터 앞에서 얼마나 많은 사고를 치고 다니는지.

    영택이가 소속된 포첸의 핵티비스트들의 비밀 채팅방에는 대략 5~6명이 있었다. 몇몇은 자연스럽게 자기소개를 했지만 모두 실명이 아닌 닉네임을 사용하였다. 그리고 익명성이 중요한 만큼 진짜 자신이 아닌 가상의 캐릭터를 만들어서 소개한 것으로 보였다. 누군가는 16세 여학생이라 소개를 하였고 또 다른 누군가는 스페인으로 방학 여행을 떠나 잠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대학생이라며 구질구질하게 소개하기도 했다. 영택이는 이러한 소개조차도 나중에 꼬리가 밟힐 수 있다는 이유로 자기소개는 생략했고 우리가 여기에 모인 이유에 대해서만 간략하게 말했다. 물론 이 멤버들은 익명성을 목숨처럼 여기는 존재들이었기 때문에 채팅방에서 서로의 비밀을 철저하게 유지하려 했고 사적인 질문은 하지 않으려 했다.
    평소 사용하는 컴퓨터에는 개인정보와 실명을 남기지 않을 정도로 관리했다. 더 나아가 SD카드에 관련 정보를 따로 저장하는 방법을 고안하기도 했다. 당시 순수한 생각으로는 경찰이 들이닥쳤을 경우 SD카드만 꿀꺽 삼키면 관련 증거를 1초 만에 인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핵티비스트가 모인 비밀 채팅방이라 하면 모두가 해킹에 능통할 것 같은데 꼭 그렇지 않다. 누군가는 해킹 툴을 만드는 데 능하다면, 또 다른 누군가는 합성을 잘하고 또 다른 누구는 수십 만의 봇을 보유한 능력자도 있었다. 여기서 봇이란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리소스를 활용할 수 있는 좀비 컴퓨터 정도로 보면 된다.
    특히 영택이는 어렸을 때부터 컴퓨터를 만졌지만 게임만 하는 겜돌이 었다. 그래서 해킹은커녕 컴퓨터 언어도 모르는 바보였다. 단지 게임을 불법 다운로드하기 위해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그런 영택이가 맡은 역할은 사회공학과 선동이었다. 선동은 포첸 이용자들에게 해킹툴을 배포하여 행동으로 옮기도록 이끄는 게 목적이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존재는 봇을 보유한 능력자였다. 비밀 채팅방에서 공격하고 싶었던 곳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봇을 보유한 능력자가 접속하지 않으면 진행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물론 꼬리가 길면 밟힌다. FBI에 의해 영택이와 비밀채팅방 멤버들이 함께 작전을 수행한 일원이 잡혔다는 뉴스를 접했다. 다행히도 비밀 채팅방에서 군대를 움직이는 멤버가 아닌, 영택이가 배포한 해킹 툴을 사용한 포첸 유저들이었다. 그들은 프로그램이 계속 실행되고 있는지도 모르고 방치하다가 덜미를 잡힌 셈이다.

    시간이 갈수록 비밀 채팅방에 있는 사람들은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 특정 지지자들에게 활동자금 성격의 기부금을 요청했고 생각보다 열렬한 지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부금은 비트코인이란 가상화폐로 송금을 받았다. 당시 비트코인의 가치는 지금처럼 비싸지 않았다. 1 비트코인당 1달러 정도였다. 후원을 받기 시작한 다음 해에는 비트코인의 가치가 약 8달러까지 치솟았다. 물론 건당 들어오는 후원금의 크기는 0.01~0.02 비트코인 정도였으니, 그리 큰돈은 아니었다. 당시 후원받은 비트코인을 달러로 환산해 보니, 12,000달러 정도였고 이를 1/n하기로 결정했다. 문제는 환전이었다. 환전을 신경 쓴 이유는 우리에게 후원한 비트코인 중 일부가 FBI 또는 화이트해커가 보낸 것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가짜신분을 생성할 수 있는 사이트가 있었다. 그래서 가짜 이름과 주소, 직급까지 발급 받는 게 가능했다. 여기에 비트코인으로 선불 카드를 가상으로 만든 다음 연락처와 카드 명세서를 받을 주소가 동일하다면, 온라인 스토어에 해당 카드의 출처에 대해 의심을 갖지 않았다. 영택이는 이외에도 다양한 환전 방법을 고안했다.
    결국 선택한 방법은 비트코인 주소 여러 번을 거친 다음 당시 해외 지불 프로세서를 거치고 나서 다시 한 번 비트코인 주소를 여러 번 거쳐, 또 다른 지불 프로세서 계정을 지나 페이팔 그리고 개인 은행계좌로 이어지는 방식을 선택했다.
    비밀 채팅방의 어떤 멤버는 1/n한 후원금로 비싼 위스키, 유흥을 즐겼다면, 영택이는 VPN 계정을 추가로 구입하여 조력자들을 보호함과 동시에 서버 공간 확충에 투자했다. 그리고 남은 돈은 멀리 떨어져 지내고 있는 형에게 운동화를 아빠에게는 크로스백 가방을 선물했다. 그리고 영택이의 사소한 헛소리도 항상 귀담아 들어주던 소중한 엄마에게는 옷 여러벌과 영양제 그리고 페라가모 펌프스 하이힐을 선물했다. 영택이가 엄마에게 더 많은 선물을 한 이유는 엄마를 향한 애처로운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영택이의 엄마는 6남매 외동딸로 자랐고 시집 간 곳에 며느리라고는 영택이네 엄마 혼자였다. 어렸을 때부터 감나무를 타고 다니던 남자 형제들과 어울리지 못했고 시집간 곳에서도 항상 외톨이처럼 지냈던 엄마를 향한 마음을 페라가모라는 브랜드로 대체한 셈이다.
    페라가모라는 브랜드는 구찌나 프라다 등의 브랜드에 비해 네임벨류가 비교적 떨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택이가 페라가모를 고집한 이유는 브랜드의 스토리 때문이다. 페라가모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여동생은 찢어진 신발을 신고 다닌다는 이유로 친구들에게 놀림당했는데, 당시 9살이었던 페라가모는 구두방에 있는 자투리 가죽들을 모아 직접 구두를 만들어 여동생에게 선물한다. 페라가모 역사의 시작은 여동생을 향한 순수한 사랑이었다. 영택이가 자신의 엄마를 향한 마은 페라가모가 여동생을 향한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의 마음을 전할 수 있는 방법은 자신의 마음을 대변할 스토리를 품은 브랜드뿐이라 판단했다. 만약 대한민국의 ‘김태석 구두방’이 페라가모와 같은 스토리를 품고 있었다면, 영택이는 김태석 구두방의 구두를 엄마에게 선물했을 것이다.
    그렇게 영택이는 처음이자 마지막 후원금으로 그동안 돈이 아까워 구매하지 않았던 것들을 가족에게 선물하여 사치의 쾌락을 간접적으로 누렸다.

    영택이가 있는 비밀채팅방을 향한 후원금과 열렬한 지지 그리고 세상의 관심은 영택이를 조금씩 불안하게 만들었다. 특히 영택이는 컴퓨터 언어는 물론이거니와 해킹에 대해 쥐뿔도 몰랐다. 그럼에도 영택이는 사회공학과 선동 역할을 통해 집단을 대변한다는 이유로 리더처럼 비쳐졌기 때문이다.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어도 만인의 시선이 집중되는 순간 익명성이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영택이를 긴장하게 만든 또 다른 이유는 다른 곳에서 들려온 소식도 한 몫했다. 영택이가 머물렀던 비밀 채팅방과 대척점에 있었던 어느 해커가 체포당했다는 소식이었다. 체포당한 이유는 2010년 즈음 네덜란드 정부를 해킹할 당시, IP주소를 지우지 않고 로직 툴을 이용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비밀 채팅방 인원들은 몸집을 더 키우기 위해 새로운 멤버들을 끌어모았다. 초창기에는 5~6명 정도였지만 강렬한 지지를 기반으로 11~12명까지 불렸다. 몇몇 멤버들은 긴 시간 동안 함께 했다는 이유로 친근함을 느꼈는지 자신의 일상을 가볍게 공유하기도 했다. 익명성의 가치를 망각한 것이다.

    그런데 어느날 영택이는 상황이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당시 토피넛이란 닉네임을 사용하던 비밀 채팅방 멤버가 있었다. 그갸 살던 동네에는 마약 중독자들이 많아 경찰들이 종종 가택 수사를 한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날 토피넛은 비밀 채팅방에 “마약 단속이 왔군.” 이란 메시지 작성한 이후로 한 동안 침묵을 유지했다.

    영택이는 한동안 섬뜩함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경찰이 토피넛에게 방문한 이유가 마약 단속이 아닌, 비밀채팅방에서 특정 단체에 진행했던 디도스 공격 혐의로 방문했을거란 직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멤버였다면 영택이가 평소 말했던 것처럼 매일마다 데이터를 지우거나 SD카드에 관련 데이터를 모두 관리했다가, 경찰이 오면 삼켜버리는 방법을 취할 수 있다. 하지만 토피넛은 비밀 채팅방에서 오만하면서도 게으른 존재였다. 그래서 영택이는 토피넛이 두 방법 모두 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여기서 영택이는 세 가지의 시나리오를 떠올렸다.
    하나는 토피넛이 자신의 IP를 제대로 숨기지 않고 IRC 채널에 로그인한 기록 남아, FBI에게 덜미를 잡힌 것이다. 두번째는 이미 FBI로 우리의 정보를 빼돌리는 첩자가 비밀 채팅방에 있었고 토피넛이 첫번째로 잡힌 것이다. 세번째는 토피넛이 추후 FBI에게 우리의 정보를 전달하는 시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불안한 영택이는 조용히 소식들을 취합하기 시작했다. 당시 영택이가 사용하던 VPN 제공사는 영국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그런데 영국 경찰이 VPN 회사에 법원 명령을 발부하여, 악의적 사용자를 가려내고자 IP주소와 로그인 시간을 추적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물론 당시 VPN 회사는 해당 루머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였다. 하지만 이 이슈 때문인지 완전히 망해서 서비스를 종료했다

    영택이는 시간이 갈수록 초조해질 수밖에 없었다. 가장 큰 이유는 이미 여러 수사기관들이 비밀채팅방과 밀접한 두 곳을 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사기관이 노린 한 곳은 우리가 받던 관심을 빼앗기 위해 만들어진 해커집단이었다. 그곳은 당시 전 세계 IT기업 시가총액 7위 안에 드는 곳들을 공격했고, 브라질 경찰의 부패 혐의가 담긴 내부문서를 폭로하며 이름을 떨쳤다. 그리고 수사기관이 노리던 또 다른 한 곳은 위키리크스의 창립자인 줄리언 어산지였다.
    영택이는 수사기관이 줄리언 어산지를 노리기 전에 그를 만난 적이 있었다. 직접 만난 것은 아니며, 위키리크스가 소개한 IRC 서버를 통해 줄리언 어산지와 접촉했다. 그들은 멤버들에게 30초 분량의 짧은 동영상을 보여줬다. 30초짜리 동영상은 빈틈없이 구겨진 흰색 셔츠를 입은 백발의 남성이 영택이가 머물러 있는 IRC 채팅방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는 게 전부였다. 그리고 그 남성은 줄리언 어산지였다. 30초 분량의 짧은 동영상은 곧바로 삭제되었지만 멤버들은 믿기로 했다. 이미지 합성에 능통한 토피넛은 짧은 시간 내에 동영상을 촬영하고 거기에 어산지의 이미지를 합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힘주어 말했기 때문이다. 멤버들은 내색하지 않았지만 줄리언 어산지라는 인물과 무언가를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열광했다.

    그럼에도 영택이는 점점 더 불안해졌다. 일이 점점 커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줄리언 어산지가 우리에게 접촉하여 전략을 함께 세우게 됐다는 것은 그만큼 비밀채팅방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숲 속에 있는 나무가 홀로 치솟기 시작하면 가벼운 바람에도 쉽게 꺾이기 마련이다. 영택이가 머물렀던 비밀 채팅방의 명성이 높아질 때마다 자신의 익명성이 위태로워졌음을 느끼게 되었다. 인터넷에서의 익명성은 목숨과 같기에 영택이는 하루하루가 초조하여 키보드를 손에서 뗼 수 없었다.

    당시 영택이에게 비밀 채팅방은 익명성이라는 탈을 쓴 수많은 사람들과 하나가 되어 재미있게 즐기는 하나의 놀이였다. 하지만 세상은 영택이가 머문 비밀채팅방을 다르게 보고 있었다. 무엇보다 영택이를 불안하게 만든 것은 토피넛의 태도였다. 그는 마약 단속이 왔다고 말한 뒤에 조용히 자취를 감췄다가 태연하게 등장하여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대화 방식에 변화가 생겼다. 그는 무언가를 추궁하고 캐내려는 듯한 태도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토피넛은 영택이의 생각처럼 FBI의 시녀가 되어 우리의 정보를 빼돌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특히 위키리크스와 전략을 세우는 과정에서 브루트포스* 방식과 다른 해커집단이 주로 활용한 SQL 인젝션** 방식에 대한 논의가 이어질 때 토피넛은 평소와 다르게 의견을 적극적으로 제시했다. 줄리언 어산지와 함께 한다는 이유로 흥분한 건지 모르겠지만 이는 합성 능력자인 토피넛이 낄 대화가 아니며, 의견을 제시할 짬도 안 된다.
    (*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모든 문자 조합을 맞추고 틀리면 다른 문자 조합을 적용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침입 방법.)
    (** 웹 사이트 서버의 정보를 검색하여 조작하는 기술. 이를 통해 운영권을 쥐고 있는 사람의 계정과 비밀번호를 찾아낼 수 있다.)

    영택이는 불안감, 초조함으로 인해 키보드에 손을 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컴퓨터와 거리가 멀어진 이유는 썸 타는 여자애가 생겼기 때문이다. 당시 여자애는 연락이 10분이라도 늦으면 일주일 동안 한을 품고 살아가는 독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영택이는 모니터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줄이고 여자애의 연락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렇게 영택이는 비밀 채팅방에서 조용히 자취를 감췄고, 관련 데이터가 따로 담겨 있던 SD카드는 부모님 집을 떠나 독립하기 위해 이사 가는 과정에서 잃어버렸다.
    그럼에도 영택이는 그곳을 그리워하지 않았다. 이제 영택이는 익명성의 탈을 쓴 다수의 사람과 소통하며 위계를 전복시키는 재미보다 자기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고 답을 내는 과정에서 자기 안의 가치관을 전복시키는 것에 더 큰 재미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렇게 영택이는 집단을 이루며 소속감을 만끽하는 어린아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익명성이 안겨주는 재미를 잊지 못해 익명으로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글로 배설하는 취미는 여전히 누리고 있다.

    영택이는 자신에게 익명성이 어떤 의미인지 80년대생 민지와 삼겹살을 먹으며 할 자신이 없었다. 당시 삼겹살이 너무 맛있었다보니 하나라도 더 먹는 게 이득이었다

    영택이를 포함한 90년 대생들은 인터넷이라는 세계에서 익명성의 힘을 경험했다. 영택이는 포샨에서 경험했다면 또 다른 누군가는 디시인사이드에서, 니챤에서, 네이버 카페에서, 다음 카페 등 다양한 곳에서 익명으로 군중을 이뤄 위계를 뒤엎어 본 경험을 해봤을 것이다. 이처럼 90년대생은 어린 나이에 인터넷이라는 가상의 공간에서 똘똘 뭉쳐 다니며 우리보다 더 큰 존재들을 괴롭혀보기도 했고 무너트려 승리한 경험이 있다. 하지만 90년 대생들의 부모님은 모른다. 부모님께 잔소리를 들을까 봐, 사회부적응자로 비칠까 봐 우리만이 간직하고 있던 비밀이다.
    영택이를 포함한 90년 대생들이 인터넷 세계를 통해 누렸던 승리의 원천은 익명성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익명성의 가치를 그 누구보다 소중히 여기고, 익명성에 의해 무너진 위계질서와 사회적 지위는 가볍게 여기게 되었다.
    물론 이 경험을 90년대생이라고 묶기는 다소 어렵다. 영택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 연령대를 굳이 고려하자면 84년생부터 95년생까지 묶는 게 가장 적합할 것이다. 국내에 스마트폰이 본격적으로 보급된 시기는 2010년이다. 당시 84년생은 대학교 졸업반 또는 취준생, 사회초년생인 26살, 95년생은 컴퓨터 조작이 익숙한 15살이기 때문이다. 이 정도의 나이대가 스마트폰 보다 컴퓨터를 더 익숙하므로 영택이와 비슷한 기억을 갖고 있을 것이다.

    인터넷 세상에서의 84~95년생 세대가 기성세대와 다른 점은 불의에 저항하기 위해, 정의를 위해 피를 흘리며 투쟁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우린 구녕 컴퓨터 앞에 앉아 가벼운 땀을 흘리며 부정의 해 보이는 존재들과 재미를 위해 싸웠을 뿐이다. 대신 우리는 보다 효율적으로 부정 의한 존재들이 감추고 있는 실질적인 증거들을 보다 빠르게 탈취하여 세상에 알렸다.
    몇몇의 기성세대는 승리 후에 완장을 차려했다면, 우리는 승리 후에 또 다른 재미를 찾아 나섰다. 영택이가 조용히 자취를 감출 때 활동자금 명분으로 후원받은 비트코인을 추가로 챙기지 않았던 이유다. 영택이는 현재 가치가 치솟은 그때의 비트코인에 대한 미련이 없다. 다만, 성인이 된 후 매주 일요일 아침 9시가 되면, 로또 5,000원어치를 꾸준하게 구매한다.




    2022년 여름이었을까. 영택이는 10년을 훌쩍 넘긴 추억의 아이팟 터치를 만지다 비트코인 환전을 위해 가짜로 발급받은 헝가리 국가번호인 +36으로 시작하는 번호와 이에 연계된 이메일 주소를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리고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메시지는 2020년 즈음 영국의 중대조직범죄청(Serious Organised Crime Agency) 소속의 화이트헤커 출신이자, 현 칼럼니스트 겸 작가인 톰 포스트에게 온 매일이다. 톰은 그가 맞냐는 질문과 함께 우리 이야기를 토대로 소설을 쓰고 싶으니, 질문에 대한 답변만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마지막에는 그가 아니어도 좋으니, 아무 말이나 해달라고 부탁했다.

    톰은 영택이의 메일을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수사기관은 페이스북에서 가짜 신용카드를 판매하던 사람을 붙잡았는데, 그 자가 비밀 채팅방 멤버 중 한 명이었던 것이다. 그는 비밀 채팅방 멤버의 정보를 모두 알리는 대가로 형을 감경받는 쪽으로 FBI와 딜을 마쳤다고 했다.
    톰에 따르면, FBI에서 파견된 요원들과 중대조직범죄청이라는 수사 기관은 이미 영택이를 한국인으로 추정 중이었다. 당시 수사기관이 입수한 채팅방에서의 영택이는 어린아이 같은 문장력과 어긋난 문법 속에서 제법 어른스러운 단어를 선택하여, 영어권 국가에 속하지 않았을 거란 추정을 했다. 그리고 영택이가 채팅방에서 가끔 사용한 감정표현 이모티콘이 있었는데, 이는 한국의 웹페이지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던 것이었다. 수사기관이 영택이를 한국 사람으로 추정한 결정적인 이유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택이를 추적하지 못한 이유는 그를 향한 쏟아지는 루머와 사칭 계정 때문이었다. 당시 영택이를 불안하게 만들었던 유명세는 오히려 영택이를 보호해 주는 꼴이 되었다. 영택이를 사칭하는 페이스북, 트위터 계정을 시작으로 하여, 영택이를 흉내 내는 해커 집단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여기에 영택이의 정보를 캐내려는 백트레이스와 같은 조직들이 우후죽순 생기는 바람에 영택이와 관련된 잘못된 정보가 수 없이 쏟아졌다.

    톰 포스트가 작가,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을 때에도 시간이 날 때마다 영택이 관련 정보를 끝까지 들여다봤다고 밝혔다. 수많은 백트레이스 집단이 밝혀낸 수많은 정보들을 모두 취합하니, 영택이가 사용한 것으로 의심되는 이메일 주소 3,500여 개였다. 톰 포스트는 긴 시간 동안 3,500여 개에서 13개로 목록을 줄였다. 그중 9개는 중국인들이 만든 어뷰징 계정이었고. 4개는 아직까지 미확인이라고 하더라. 그리고 미확인된 4개 중 하나가 영택이가 비트코인 환전 방법을 고안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아이팟 터치에 남겨진 이메일 주소였다.

    톰 포스트는 자신의 순수한 의도가 변질될 까봐 양택이에게 본인의 이름과 소속을 밝혔다. 더 나아가 자신의 이름과 가족을 걸고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동영상을 보내면서 인터뷰 요청을 했다. 정말 궁금했나 보다. 대항해시대를 연 민족은 역시 다르다.

    영택이 또한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고 글쓰기가 취미였기에 질문에 짧게 응하기로 마음먹었다. 영택이는 톰 포스트에게 ”난 그가 아니지만, 그로 빙의하여 당신의 호기심을 충족시킬 수 있을 만한 답변은 해줄 수 있다.”라는 답장을 보낸 후 인터뷰가 시행되얶다.
    아주 짧은 인터뷰는 2023년 2월이었을까 3월이었을까 4월이었을까 아무튼 그때 즈음에 진행되었다.


    아래는 인터뷰를 최대한 요약한 내용이다.



    Q. 당시의 경험을 돌이켜 본다면 어떤가요?

    A. 지금 돌이켜보면 부끄럽다. 더 잘할 수 있었던 것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재미를 추구하기도 했지만, 더 나은 결과를 내기 위해 노력했다. 특히 사적인 감정과 욕망으로부터 휘둘리지 않기 위해 더 강한 감정으로 스스로를 제지하려 했다. 때로는 익살스러워 보이는 무례한 농담을 던지기도 했지만 우리가 한 행동만큼은 세계시민들의 상식과 시스템 간의 간극을 채우려 노력했다.
    부끄러운 또 다른 이유는 속인주의, 속지주의 그리고 세계주의를 초월한 행동을 했다. 그러니 지금의 시선으로 보면 부끄러워하는 것이 맞다. 제가 활동을 중단한 시기 또한 무법지대였던 인터넷에 법치주의가 피어나 이 행동에 대한 부끄러움이 생겨날 때 즈음이었다.


    Q. 무엇이 가장 부족했다고 느꼈나?

    A. 정당한 절차였다. 원칙은 있었지만 절차는 명료하지 못했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 <The Hateful Eight>을 보면, 무법지대로 보이는 조그마한 잡화점 안에서도 교수형에 집행하기 위해 정당한 절차를 거친다. 정당한 절차의 유무가 야만과 문명을 구분한다고 생각한다. 우린 정당한 절차가 없었다. 그래서 인터넷 친구들을 선동하여 우리 편으로 이끌어야 했던 이유다.
    다만 원칙은 명확했다. 우린 이 활동을 돈벌이 수단으로 여기지 않았다. 물론 비트코인 후원을 받았지만 활동하기 위한 비용이 부족했다. FBI와 화이트 해커에게 덜미를 잡히는 수 있을거란 불안감 때문에 지속적으로 후원을 받지 못한 것도 있다. 다만 우리는 사적인 감정과 욕망에 의해 움직이지 않았다. 정당한 절차는 빈약했지만.


    Q. 정당한 절차가 없었는데, 사이버 공격 대상은 어떻게 설정했나?

    A. 도덕적 감각이다. 감각이라고 하니, 다소 주관적이고 야만스럽게 보인다. 도덕적 감각이란,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을 바탕으로 사회구성원들이 미처 인지하지 못한 어둠을 드러낼 수 있는 직관이다. 당시에는 어린 학생이었기에 부족한 점이 많았다. 그래서 부족한 부분까지 포장하고 싶지 않지만 우리는 사적인 방향이 아닌 공적인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물론 우리를 도발하던 보안회사의 CEO부터 유명 오피니언 리더를 공격하기도 했지만, 우리 활동에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다.


    Q. 도덕적 감각에 대해 묻겠다. 그것이 공적인 곳을 사이버 공격하게 이끌어주는 감각인가?

     A. 꼭 그렇지 않다. 제가 따르는 대한민국의 철학자는 시대가 아파하는 병을 함께 아파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시대의 급소를 노려야 한다고 말했다. 저는 시대가 아파하는 것을 함께 아파할 수 있는 감각, 시대의 급소를 발견할 수 있는 감각을 도덕적 감각이라 표현하고 싶다. 이 감각이 잘 발달되어 있다면, 공격을 할 때 개인이 아닌, 사회 시스템을 향하게 될 것이며, 시대를 아프게 하는 바이라스를 공격하게 될 것이다.


    Q. 개인을 향해 공격하면, 도덕적 감각이 덜 발달된 것인가?

    A. 앞서 언급한 도덕적 감각은 개인을 공격할 것이냐, 기업을 공격할 것이냐, 국가 기관을 공격할 것이냐 같은 방식으로 접근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시대를 병들게 하는 개인을 향한 사이버 공격과 폭로를 나쁜 것이라 부정할 수 없다. 개인을 향한 몇몇의 사이버 공격 기저에는 국민의 상식과 시스템 간의 괴리를 향한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개인을 향한 공격 중 90% 가량은 감정과 이념에 의한 사적 보복에 가깝다. 도덕적 감각에 의한 것은 감정적인 분노에 따른 선택이 아니라, 우리의 상식과 시스템 또는 질서의 한계 사이에 벌어진 빈틈을 향해야 한다고 거듭 말하고 싶다.
    개인을 향한 사이버 공격을 할 수 있지만, 가능하다면 국가의 정당한 절차에 맡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법치주의를 수호하는 태도다.
    우리는 정당한 절차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고 보여질 시에는 해당 절차를 책임지고 있는 기관이나 기업의 부서를 향해 사이버 공격을 가했다. 우린 해당 절차를 맡고 있는 책임자에 대해서는 공격하지 않았다. 우리가 폭로한 내용을 바탕으로 해당 국가의 사법 시스템에 맡겼다


    Q. 최근 신상털기와 같은 개인을 향한 사이버 공격이 자주 이루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A. 긍정적이지 않다. 난 인터넷에 법치주의가 피어나고 있을 때 즈음 부끄러워 그만 뒀다고 밝혔다. 개인을 향한 사이버 공격은 법치주의를 훼손하는 사적인 보복에 가깝다.
    내가 조용히 활동을 마치고 수 년이 지난 뒤에 대한민국이란 곳에는 우리처럼 인터넷 자경단처럼 활동하는 자들이 등장했다. 그들은 주로 개인을 공격 타겟으로 삼았다. 흉악 범죄자들의 신상을 폭로하는 디지털 교도소와 유흥업소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신상을 폭로하는 강남패치, 한남패치 그리고 양육비를 주지 않는 부모들의 신상을 공개하는 배드페어런츠, 배드파더스란 곳이 대표젹이다. (* 난 여기서 베드페어런츠는 조금 예외로 두고 싶다.)
    최근 대한민국은 사적 보복을 주제로 한 콘텐츠가 꾸준히 생산되고 있으며, 큰 사랑을 받고 있다. 가장 대표적으로 드라마 빈센조, 글로리 등을 꼽을 수 있겠다. 아마 넷플릭스에 올라왔을 수 있으니 한 번 보시길 바란다. 이러한 콘텐츠들이 끊임없이 나오고 사랑 받는 가장 큰 이유는 국민의 상식과 사법 시스템 간의 괴리다.
    누군가는 이를 우리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 앞서 언급한 곳들은 개인을 공격했다면, 우리의 주요 공격 타겟은 조금 더 강한 권력자, 사이비 종교, 치명적인 오류를 숨기는 공룡기업 그리고 부패한 국가 기관이였다. 이들의 공통점은 국민의 상식과 시스템 간의 괴리를 일으키거나 괴리 속에서 활동하여 사회를 병들게 만드는 존재였다.
    방금 주문한 BHC의 신메뉴인 마법클이 도착했으니. 이만 가보겠다. 앞으로는 메일을 받지 못할 것이다.
    추천1 비추천2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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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성길님의 댓글

    윤성길 아이피 (61.♡.98.142) 작성일 Date

    앗~! 실수로 추천 버튼을 누른다는게..
    비추 버튼을 눌렀네요! TT;;
    실..수.. 입니다.
    글 읽고 영감이 오는 것 같아 좋았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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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경민님의 댓글

    노경민 아이피 (223.♡.178.71) 작성일 Date

    앗..!! 실수로 비추 누름 ㄹ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