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명랑함의 되새김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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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석 교수님께서는 종종 ‘명랑함’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명랑함은 단순 밝고 쾌활한 태도 정도로 볼 수 있는데요. 그런제 마냥 밝고 쾌활한 것은 동네 바보와 다를 게 없습니다. 최진석 교수님께서는 우리가 동네 바보가 되길 바란 건 아닐겁니다.
전 최진석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명랑함을 어둠이 안겨주는 두려움을 감당하려는 의지, 고통을 견디고 일어나려는 힘으로 해석했습니다
기본학교 3기 졸업식에서 가장 멋진 기억은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함께 어우러진 스승의 은혜 합주였습니다. 바이올린을 켠 동지는 평소 수줍음이 많은 소년에 가까웠습니다. 그런 그에게 오프닝 무대를 꾸려보지 않겠냐는 제안이 있었는데요. 그는 무시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마지막으로 기억될 모습은 수줍은 소년으로 남지 않갰다는 명랑한 도전처럼 느껴졌습니다.
미디어 콘텐츠에서 다루는 천재들을 보면 4차원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4차원적에 가까운 엉뚱한 생각을 당당하게 드러내는 모습은 극한의 명랑함을 느끼게 합니다.
극한의 명랑함을 품었던 실존인물을 떠올리자면 미디어 콘텐츠가 다루는 전형적인 4차원 천재의 표준이라 할 수 있는 리처드 파인만을 꼽을 수 있겠네요. 이 사람은 너무 식상하니, 제 가슴속에 품고 있는 인물 중 세 명인 작가 조르주 페렉, 음악가 모차르트를 예로 들고 싶습니다.
제가 이들에게서 느낀 명랑함은 어둠과 두려움을 견디고 환하게 밝혔을 때, 환하게 바라볼 수 있을 때 부여되는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이미 환하게 밝혀놓은 결과물인 전문지식을 많이 쌓은 것만으로는 극한의 명랑함에 닿기 어렵겠죠.
조르주 페렉은 ‘w 혹은 유년기의 추억’에서 지성의 힘을 끝까지 밀어붙여 용서할 수 없는 분노를 극복한 명랑함을 보여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전쟁터, 어머니는 아우슈비츠에서 세상을 떠나셨는데요. 그럼에도 그는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보며 다른 사람들과 건강한 관계를 맺었습니다. 그가 소설뿐만 아니라 수필과 영화 등 다양한 장르의 글을 남긴 것만으로도 알 수 있죠. 낯설고 이질적인 세계와 새롭게 관계를 맺어나가는 조르주 페렉의 모습은 5분 간격으로 새로운 놀이를 하러 떠나는 어린이처럼 일관성이 결여된 산만함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산만함이 아닌 끊임없이 확장하는 명랑함으로 보입니다.
모차르트는 정해진 질서보다 자기 자신 그리고 다른 사람을 더 사랑하는 명랑함을 보여줬습니다. 그가 살던 시대는 작곡가를 위한 저작권료 같은 로열티가 없었습니다. 시장에서 거래하듯 돈을 받고 주문한 곡만 넘기면 끝이었습니다. 물론 정점에 올라간 작곡가는 풍요로운 생활을 할 수 있었지만, 성공한 작곡가들처럼 저작권료를 연금처럼 받는 탄탄한 기반이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모차르트는 초기에 음악가가 아닌 연주자의 길을 걸었지만 자신의 재능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 상대적으로 가난한 음악가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의 작품을 보면 다른 사람들도 크게 사랑한 것처럼 보입니다. “사랑에 신분은 중요하지 않다.” 란 메시지를 담고 있는 ‘피가로의 결혼’을 시작으로 “진정한 지혜는 죽음의 공포를 극복했을 때 따라온다.” 란 메시지를 담은 ‘마술피리’란 걸작을 내놓았기 때문입니다.
평소 조르주 페렉, 모차르트를 명랑한 존재 사람이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요. 이제서야 명랑하다 말할 수 있는 이유는 기본학교에서 6개월 동안 명랑한 분의 가르침 덕이라 생각합니다.
명랑하게 오프닝 무대에 도전한 동지의 얼굴은 발갛게 달아오른 상태였지만 손끝은 차갑게 유지하려 노력했슴니다. 그런데 손끝은 차가움을 넘어 얼음처럼 딱딱하게 굳어서 그런지 삑사리가 이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주를 마친 동지테게 뜨거운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의 도전 자체가 저에겐 명랑했으니까요.
명랑함은 큰 감동과 여운 그리고 영감을 안겨줍니다. 이는 저에게 큰 자극제가 되어 성장 동력으로 이어지기도 하죠. 다만 그 대가로 공정하게 비평할 힘을 빼앗아 갑니다.
모차르트의 ‘마술피리’를 놓고 “대본 전개 구조가 너무 어수선하여 개연성이 부족하다.”, 동지의 바이올린 연주를 놓고 “오늘 연주에서 그나마 용납할 수 있었던 부분은 스승의 은혜 도처에 등장한 B플랫음뿐이야.” 같은 비평이 아닌 따뜻한 시선과 뜨거운 박수만 보낼 수밖에 없었던 이유입니다. 최진석 교수님 또한 저와 같은 감동을 받으셨는지, 그 어떤 비평도 하지 않고 바이올린 연주를 마친 동지의 얼어붙은 손을 뜨겁게 감싸주셨습니다.
명랑한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졸업식에 대한 여운이 짙은 이유, 기본학교 수업이 그리운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어떤 결과가 따라올지 알 수 없음에도 새말새몸짓에 후원해주신 명랑한 분들을 향한 감사함을 내려놓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덕분에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전 최진석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명랑함을 어둠이 안겨주는 두려움을 감당하려는 의지, 고통을 견디고 일어나려는 힘으로 해석했습니다
기본학교 3기 졸업식에서 가장 멋진 기억은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함께 어우러진 스승의 은혜 합주였습니다. 바이올린을 켠 동지는 평소 수줍음이 많은 소년에 가까웠습니다. 그런 그에게 오프닝 무대를 꾸려보지 않겠냐는 제안이 있었는데요. 그는 무시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마지막으로 기억될 모습은 수줍은 소년으로 남지 않갰다는 명랑한 도전처럼 느껴졌습니다.
미디어 콘텐츠에서 다루는 천재들을 보면 4차원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4차원적에 가까운 엉뚱한 생각을 당당하게 드러내는 모습은 극한의 명랑함을 느끼게 합니다.
극한의 명랑함을 품었던 실존인물을 떠올리자면 미디어 콘텐츠가 다루는 전형적인 4차원 천재의 표준이라 할 수 있는 리처드 파인만을 꼽을 수 있겠네요. 이 사람은 너무 식상하니, 제 가슴속에 품고 있는 인물 중 세 명인 작가 조르주 페렉, 음악가 모차르트를 예로 들고 싶습니다.
제가 이들에게서 느낀 명랑함은 어둠과 두려움을 견디고 환하게 밝혔을 때, 환하게 바라볼 수 있을 때 부여되는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이미 환하게 밝혀놓은 결과물인 전문지식을 많이 쌓은 것만으로는 극한의 명랑함에 닿기 어렵겠죠.
조르주 페렉은 ‘w 혹은 유년기의 추억’에서 지성의 힘을 끝까지 밀어붙여 용서할 수 없는 분노를 극복한 명랑함을 보여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전쟁터, 어머니는 아우슈비츠에서 세상을 떠나셨는데요. 그럼에도 그는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보며 다른 사람들과 건강한 관계를 맺었습니다. 그가 소설뿐만 아니라 수필과 영화 등 다양한 장르의 글을 남긴 것만으로도 알 수 있죠. 낯설고 이질적인 세계와 새롭게 관계를 맺어나가는 조르주 페렉의 모습은 5분 간격으로 새로운 놀이를 하러 떠나는 어린이처럼 일관성이 결여된 산만함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산만함이 아닌 끊임없이 확장하는 명랑함으로 보입니다.
모차르트는 정해진 질서보다 자기 자신 그리고 다른 사람을 더 사랑하는 명랑함을 보여줬습니다. 그가 살던 시대는 작곡가를 위한 저작권료 같은 로열티가 없었습니다. 시장에서 거래하듯 돈을 받고 주문한 곡만 넘기면 끝이었습니다. 물론 정점에 올라간 작곡가는 풍요로운 생활을 할 수 있었지만, 성공한 작곡가들처럼 저작권료를 연금처럼 받는 탄탄한 기반이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모차르트는 초기에 음악가가 아닌 연주자의 길을 걸었지만 자신의 재능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 상대적으로 가난한 음악가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의 작품을 보면 다른 사람들도 크게 사랑한 것처럼 보입니다. “사랑에 신분은 중요하지 않다.” 란 메시지를 담고 있는 ‘피가로의 결혼’을 시작으로 “진정한 지혜는 죽음의 공포를 극복했을 때 따라온다.” 란 메시지를 담은 ‘마술피리’란 걸작을 내놓았기 때문입니다.
평소 조르주 페렉, 모차르트를 명랑한 존재 사람이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요. 이제서야 명랑하다 말할 수 있는 이유는 기본학교에서 6개월 동안 명랑한 분의 가르침 덕이라 생각합니다.
명랑하게 오프닝 무대에 도전한 동지의 얼굴은 발갛게 달아오른 상태였지만 손끝은 차갑게 유지하려 노력했슴니다. 그런데 손끝은 차가움을 넘어 얼음처럼 딱딱하게 굳어서 그런지 삑사리가 이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주를 마친 동지테게 뜨거운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의 도전 자체가 저에겐 명랑했으니까요.
명랑함은 큰 감동과 여운 그리고 영감을 안겨줍니다. 이는 저에게 큰 자극제가 되어 성장 동력으로 이어지기도 하죠. 다만 그 대가로 공정하게 비평할 힘을 빼앗아 갑니다.
모차르트의 ‘마술피리’를 놓고 “대본 전개 구조가 너무 어수선하여 개연성이 부족하다.”, 동지의 바이올린 연주를 놓고 “오늘 연주에서 그나마 용납할 수 있었던 부분은 스승의 은혜 도처에 등장한 B플랫음뿐이야.” 같은 비평이 아닌 따뜻한 시선과 뜨거운 박수만 보낼 수밖에 없었던 이유입니다. 최진석 교수님 또한 저와 같은 감동을 받으셨는지, 그 어떤 비평도 하지 않고 바이올린 연주를 마친 동지의 얼어붙은 손을 뜨겁게 감싸주셨습니다.
명랑한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졸업식에 대한 여운이 짙은 이유, 기본학교 수업이 그리운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어떤 결과가 따라올지 알 수 없음에도 새말새몸짓에 후원해주신 명랑한 분들을 향한 감사함을 내려놓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덕분에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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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훈님의 댓글
이창훈 아이피 (223.♡.21.232) 작성일 Date명랑핬떠끄님께서 축적해오신 지식의 양이 제가 함부로 엄두낼 크기가 아님을 느낍니다. 기본학교의 명랑함이 다시 한번 이곳으로 전해지면서도 핫떠그님의 꾸준함과 용기가 또 다른 자극을 주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