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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까마귀에서 독수리가 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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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3기 졸업생 (218.♡.110.45)
    댓글 댓글 2건   조회Hit 8,457회   작성일Date 23-11-23 05:23

    본문

    갈까마귀의 삶

    최진석 교수님의 <나를 향해 걷는 열 걸음> 에서 이솝우화 편을 보면 갈까마귀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갈까마귀는 독수리가 높은 곳에서 양 한 마리를 낚아채는 모습을 보고 시샘했는지, 숫양을 덮치려다 양털에 발톱이 박혀 아등바등하다 목자에게 잡힌다. 목자는 “이 새는 갈까마귀가 분명한데 독수리가 되고 싶어 하는 것 같구나."라고 말한다. 이는 내 이야기에 가깝게 느껴졌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5학년 때까지 유행처럼 번지던 놀이가 있었다. 노트에 마음에 들지 않는 친구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써서 반 친구들에게 돌리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동식이라는 친구가 맛있는 빵을 친구들과 나눠 먹지 않고 혼자 먹었다면, 다음날 또는 그날에 동식이를 주제로 소설을 써서 돌려 읽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동식이는 오늘도 중얼거린다.
    "윙가르디움 레비오우사,, 윙가르디움 레비오우사.."
    소설 해리포터에서 무언가를 들어 올리기 위해 사용하는 마법 주문이다. 동식이가 들어 올리고 싶었던 것은 뱃속에 가득 찬 똥이었다. 그것도 설사똥. 무엇을 혼자 처먹었길래 설사똥으로 배가 가득 채워져 있던 걸까? 아마 어제 혼자 처먹은 포켓몬스터 빵이 분명하다.
    '뿌우우우우우웅~~!!!!'
    수업 시간 도중에 울려보진 동식이의 방귀 소리. 동식이는 마법 주문을 외워 뱃속에 있는 설사똥이 엉덩이 밑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들어 올렸지만 방귀는 들어 올리지 못했다.
    ‘ 푸릉푸릉파르르르르륵!! ’
    동식이의 방귀 소리가 연이어 터졌다. 그리고 교실은 고약한 방귀냄새로 가득 채워졌다. 친구와 선생님들은 코를 막으며, 방귀의 범인이 누구인지 찾기 위해 조용히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동식이의 마법 주문은 방귀 냄새마저도 들어올릴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동식이는 친구들은 못본척한 상태로 빵을 처먹을 때처럼 역한 방귀를 뀌었음에도 모른 채하고 있었다. 이에 불편함을 느낀 같은 반 영택이는 마법주문을 외쳤다.
    ” 라카르넘 인플레마래 ! “
    그러자 갑자기 치솟은 불길은 교실 내부를 가득 채웠던 동식이의 방귀를 모두 태워버렸다. 그리고 불꽃은 방귀의 출처인 동식이 엉덩이로 향했다. 우린 그 순간 똥방귀의 범인이 누구인지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봤다.

    초등학생이 쓴 소설이었기 때문에 유치하기 짝이 없다.  이외에도 빼빼로를 주고받은 남학생과 여학생을 시기, 질투하는  이야기까지 정말 다양하게 있었다. 그중에서도 재미있는 이야기는 반 친구들 모두가 읽을 뿐만 아니라, 선생님의 손에 닿기도 했다.  그런데 내가 쓴 이야기는 같은 모둠에서도 제대로 읽히지 않고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경우가 많았다. 갈까마귀 그 자체랄까.

    난 승부욕이 없는 성격이다. 그래서 친구와 게임을 할 때, 친구가 계속 져서 분해하면 마지막은 한 판 져주고 같이 웃으면서 게임을 마무리했다. 승부욕이 강한 편은 아닌데 수학 문제가 제대로 풀리지 않으면, 학교에 가지 않고 아파트 주차장에 홀로 앉아 문제를 풀었다. 그래서 지각하는 날이 상당히 많았다. 그러다 이름 모르는 아주머니는 나를 문제아로 생각하셨는지 내 손을 잡고 학교까지 끌고 가 주시기도 했다. 학원도 셔틀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데, 문제가 제대로 풀리지 않으면 30분 동안 걸어가면서 문제를 풀었다. 그래서 항상 지각했다. 어쩌다 운이 좋아 수학, 과학 경시대회에서 2등을 한 적이 있었다. 당시 나 혼자만 과학을 100점 받았고 2등은 72점이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고로, 내가 수학을 잘해서 2등한 게 아니라, 과학 점수가 좋아서 2등을 하게 된 것이다. 당시 선생님들은 나를 과학 천재로 생각하셨는데, 난 머리가 좋은 게 아니었다. 초등 과학은 등교, 하굣길에 과학책과 교과서만 읽으면 누구나 100점을 받는 게 가능하다. 초등생 수준의 수학 경시대회는 높은 사고력을 요구한다면, 과학 경시대회는 지식을 요구할 뿐이다. 고로 하늘과 땅 차이이다. 나를 포함한 여러 성인들을 모아놓고 초등학생 수준의 전국 수학경시대회 문제를 풀라고 해도, 오랫동안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이는 개념에 대한 이해에 그치지 않고 더 높은 시선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초등 수학과 과학은 수준이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던 이유는 경시대회 1등인 친구가 곁에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1등을 한 친구는 내가 2시간 동안 씨름하던 수학 문제를 5분 만에 풀고, 우리 형은 1분 만에 풀었다. 내가 갈까마귀라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 잘 알 수밖에 없었떤 이유다. 어른들도 그러한 사실을 잘 아셨던 것 같다. 명절이나 제사 때 시골에 가면, 처음보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나를 볼 때마다 항상 "네가 ㅇㅇ이냐?" 라며 우리 형인지 물어봤다. 이에 동생이라 답하면, 집안에서 총명하기로 소문난 우리 형을 불러오라고 시켰다.

    몇몇 사람들은 내가 지식이 엄청나게 많은 걸로 오해한다. 그런데 별거 아니다. 그냥 읽으면 된다. 다만, 나는 갈까마귀이기 때문에 100을 읽으면 5 정도만 머리에 남는다. 그래서 5를 이야기한 것일 뿐인데, 사람들은 내가 세상만사를 알고 있는 만물박사로 오해한다. 그래서 요즘은 고민이 많다. 어쩌면 내가 말하는 태도가 오만해서 그렇게 보이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안다. 다른 사람들이 나와 똑같이 읽었을 때 나는 5를 남긴다면, 다른 사람들은 적어도 50을 남길 것이다.
    대학교 때 시험을 마치고 교수님을 우연히 마주친 적이 있었다. 당시 교수님은 "질문도 많이 하고, 수업 분위기를 끌어올려 줘서 참 고마웠어. 이번에 C+을 줘서 미안하게 생각해. 그런데 왜 수업시간에 알려준 이론을 활용해서 문제를 풀지 않은 거야? "
    당시 내가 어떻게 답변 했는지 기억은 나지 않고 웃었던 것만 기억에 남는다. 난 100을 읽으면 머리에 5 정도만 남기 때문이다. 아마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머리가 나빠서 이해를 못 했으니까 그렇지........' 라고  27,617,817번 정도 되뇌였을 것이다.


    독수리로 착각한 갈까마귀

    멍청한 나도 갈까마귀에서 독수리가 되어본 듯한 착각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게 독서였다. 멍청한 나를 외면하고 싶어서 그런 걸까. 책을 정말 많이 읽었다. 못난 나를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 그런지 어려워 보이는 책들만 골라서 읽었다. 가장 먼저 선택한 책의 저자는 카를 마르크스였다. 당시 나는 형이 수학과 과학을 좋아해서 형을 따라 수학과 과학만 공부했고 이공계로 진학했다. 그게 멋있다고 생각해서 책도 과학과 공학에 관련된 것들을 주로 읽었다. 그래서 당시의 나는 마르크스가 뭐하는 사람인지 그리고 공산주의,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같은 게 뭔지 모른 상태였다. 그를 선택한 이유는 단순했다. 어느 신문 사설에서 인용한 카를 마르크스의 <포이에르바흐에 관한 테제>의 문장 때문이었다.
    "철학자는 지금까지 세상을 해석해왔을 뿐이다. 이제는 세상을 바꿀 차례다."
    이 문장을 보면 철저한 보수주의자들도 가슴이 콩닥콩닥 뛰어서, 이 책에 손이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당시의 나는 세상을 바꾸는 것에 큰 관심이 없었다. 나를 갈까마귀에서 독수리로 바꾸고 싶을 뿐이었다.

    최진석 교수님은 "성공에 관련된 책을 읽으면 성공한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당시의 나 또한 독수리들이 내놓은 사유의 결과물을 읽으며 독수리가 된 착각과 환상에 빠진 갈까마귀 그 자체였다. 물론 당시의 나 또한 내가 그렇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빠져나오기 힘들었던 이유는 이 착각과 환상이 중독처럼 찌들었기 때문이다. 독수리들이 내놓은 사유의 결과물은 최소 수년의 시간을 쏟은 것이다. 그런데 난 단 일주일 남짓의 시간만 투자하여 책을 모두 읽으면, 그들이 내놓은 수 년의 시간을 쟁취한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책을 읽으며 수 많은 텍스트를 분해하는 순간에는 그와 동일시 된 것 같은 착각, 독수리가 된 것 같은 환상에 사로잡히게 된다. 독서에 한 번 빠져들면 쉽게 빠져나오기 어려운 이유이며, 글을 읽지 않으면 초조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무엇이 가장 재미있었느냐 묻는다면,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모호하고 추상적인 내 생각과 존재, 나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을 명료하게 정의할 수 있는 텍스트를 발견하는 재미였다. 두 번째는 새롭게 정의하는 것이다. 난 책을 읽을 때 텍스트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어쩌면 멍청해서 받아들이지 못한 게 맞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마주하는 텍스트들을 나만의 어휘로 번역하고, 나만의 경험을 반영하여 새로운 맥락을 구축하고, 또 다른 기억으로 정의했다. 난 이 정의하는 과정이 제일 재미있었다.

    번역이라고 하면, 외국어를 한국어로, 한국어를 외국어로 바꾸는 작업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한국어로 쓰여 있는 책을 읽어 나가며 이해하는 과정 또한 번역의 연속이라 생각한다. 물론 어린이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읽어나가는 것도 번역이라 할 수 있으나, 내가 말하는 번역이라 보기는 어렵다. 진정한 번역은 내가 평소 사용하지 않았던 낯선 어휘, 생소한 수사, 난해한 문맥 등으로 이루어진 책을 읽어서 이해해 나가는 것이다. 번역 또는 오역이라도 하면서 읽어 나간다는 것은 독수리가 되었따는 환상과 착각에 빠지는 지름길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어려움에도 고전 철학을 시작으로 다양한 지식인들이 내놓은 책들을 읽었다. 물론 혼자 읽기에 너무 어려워서 항상 사전을 곁에 두고 읽었다. 예를 들어 미셸 푸코에 관한 책을 읽는다면 유명한 학자가 다시 써놓은 푸코에 관한 책이 아니라, 푸코가 직접 쓴 <말과 사물>, <담론과 질서> 등을 읽는 것이다. 지식인이 쓴 니체에 관한 책이 아니라, <즐거운 지식>, <비극의 탄생>, 아리스토텔레스에 관하여 누군가가 쓴 책이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직접 읽는 것이다. 물론 원서를 읽는 게 가장 좋겠지만 난 외국어 능력이 떨어지니 어쩔 수 없었다. (* 함재봉 교수님이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해야한다는 말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어려운 책을 읽으며 번역하고 새로이 정의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와야 하는 한 마디가 있다. 바로 '왜' 이다. "왜?" 라는 질문을 하게 되는 순간 수많은 말들을 쏟아내야 한다. 이 말을 쏟아내려면 내가 접했던 세계와 생각들을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 일종의 복습인 셈이다. 물론 난 머리가 좋지 않아 100을 읽으면 5 정도만 남는다. 그럼에도 부족한 것들을 나열해서라도 그럴싸한 답을 만들어 내야 한다. 그리고 이 과정은 수학 문제의 답을 내기 위해 써내려가는 풀이과정, 기본학교 2차 에세이 시험의 답안을 작성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왜 어른들이 수학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했는지 알 것 같다. 당시 어린 시절 학교에 가지 않고 홀로 수학 문제를 풀었던 내 모습을 떠올려보면, 수학이 좋아서, 승부욕이 강해서 그런 게 아니었다. 그냥 혼자 정의를 내리며 생각하는 게 재미있었던 것이다. 

    (* 만약 나와 같은 재미를 경험하고 싶다면, 어려운 책을 한 권 선택한 다음 사전을 품에 안고 번역하며 읽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물론 현대인의 시간은 매우 값지다. 가치있는 문화 콘텐츠도 매우 많다. 책에 많은 시간을 투자할 여력이 없다면 <최진석의 말>을 추천한다. 지적 사유의 결과물을 짧은 문장으로 승화해놓았기 때문에 읽기도 번역하기도 비교적 쉽다.)
    (** 기본학교에서 이 책을 보내줘서 애써 홍보하는 건 아니다. 받은 김에 생각이 나서 쓰는 것이다.)
    (*** 물론 최진석 교수님의 <나를 향해 걷는 열 걸음>을 보면, 갈까마귀와 독수리를 지능 차이로 구분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처럼 머리가 좋지 않은 사람을 갈까마귀라고 하지도 않으셨다. 갈까마귀는 다른 사람의 꿈과 소망을 쫓는 사람이라면, 내 꿈과 소망을 쫓는 사람이 독수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한계가 있다. 이 과정을 계속 반복하면 독수리처럼 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역시 갈까마귀는 갈까마귀다. 위의 독서 방법을 거친 덕분에 소위 시선의 높이가 지하 3층에서 지상 1층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하지만 지상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고 버겁다. 너무 많이 읽어서 요즘은 지쳤기 때문이다. 어쩌면 재미가 조금 무뎌진 것일 수도 있겠다. 여기에서 무엇을 해야 한 단계 상승할 수 있을까. 과거에 했던 방식으로 책을 읽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것 같다. 새로운 방식으로 책을 읽어야 할까? 아니면 직접 체험하는 시간을 가져야 할까?


    일단 갈까마귀가 아닌 독수리가 되려면 익숙한 것들을 모두 내려놓아야 한다.
    가장 먼저 책을 읽었던 방식, 번역하는 방법들이 아닐까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도 이제는 갈아타야 할 것 같다.

    이제 고추장 제육은 안녕!!!!!!!!!!!!!!!!!!!!!!!!!!!!!!!!!!!!!!!!!!!!!!!!!!!!!!!!!!!!!!!!!!!!!!!!!!!!!!!!!
    간장 제육으로 건너가자!!!!!!!!!!!!!!!!!!!!!!!!!!!!!!!!!!!!!!!!!!!!!!!!!!!!!!!!!!!!!!!!!!!!!!!!!!!!!!
    추천7 비추천0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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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벽돌맨님의 댓글

    벽돌맨 아이피 (211.♡.163.114) 작성일 Date

    이 글을 보니 저도 기본 학교를 다니는 동안 교수님의 시선과 동일한 시선을 가진 것 같은 착각, 독수리가 된 듯한 환상을 가졌던 것 같네요..
    교수님의 가르침보다 그것을 실천하는 삶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됐습니다. 

    반성하며 앞으로는 가방에 벽돌 대신 어려운 책과 사전을 넣어 다녀야겠습니다.(어려운 책과 사전이 멋있어 보여서 그런 건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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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부터 운동한다님의 댓글의 댓글

    오늘부터 운동한다 아이피 (218.♡.110.45) 작성일 Date

    ㅋㅋㅋㅋㅋㅋ 재미따 ㅋㅋㅋㅋㅋㅋㅋㅋ <최진석의 대한민국 읽기> 1부를 보면 '경박한 자신감'에 대한 내용이 짤막하게 나오는데, 벽돌맨님은 그 '경박한 자신감'에 휩싸이지 않은 모습이 가장 멋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도 댓글을 보고 한 수 배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