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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F] 90년대생들의 비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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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변지선 (77.♡.245.11)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2,459회   작성일Date 23-11-27 03:02

    본문

    영택이는 겜돌이였다. 어렸을 때 원하는 게임을 공짜로 다운 받으려면 인터넷 세계에서 가볍게 서핑하는 게 아닌, 깊은 심해를 탐험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심해를 탐험하다 보면, 수면 위에서는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루머를 접할 수 있다. 당시 영택이가 접한 루머는 CIA와 같은 정보기관이 이란과 리비아 정부를 공격하기 위하여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프리랜서 해커들을 고용한다는 것이다. 당시 영택이가 터무니 없는 음모론이 그럴 수 있다고 받아들인 이유는 현재는 완전히 해체된, 해커단체 L 때문이었다. 그곳은 영택이가 소속된 핵티비스트 모임이 받던 관심을 빼앗기 위해 등장한 곳이다. 그래서 영택이의 핵티비스트 모임과 성격이 비슷했다. 해커단체 L은 영택이의 팀이 공격하지 못했던 곳을 성공적으로 정복시키며 능력을 입증했고 인터넷 밈을 중심으로 대중성까지 얻으며 몸집을 키웠다. 그런데 영택이의 눈에 해커단체L이 공격하는 대상들을 보면, 종종 CIA의 시녀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당시 호기심을 갖게 되어 정보를 살펴봤는데, 백트레이스 집단이 밝혀낸 해커 집단 L의 명단을 보면, 핵심 멤버의 국적은 파키스탄, 프랑스, 네덜란드가 중심이었다. 물론 이 또한 루머일 뿐 확인된 사실이 아니다.
    깊은 심해를 탐험하던 영택이는 해커단체L에 대해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 이들은 해킹 능력도 뛰어났지만 말발이 훌륭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영택이의 핵티비스트 집단에서 파생된 곳에 가까웠기에 더 친근하게 느껴진 것일 수도 있다. 그곳은 영택이의 핵티비스트 집단이 등장하면서 주창했던 자유로움보다 더 강렬해보였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외부 논리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자율성에 바탕을 둔 신념체계로 무장한 존재 같았다. 조금 더 쉽게 표현하자면, 두려울 게 없는 금수저 코미디언에 가까웠다. 영택이는 기억력이 좋지 않지만, 그들이 뱉었던 말 중에서 가장 멋진 말을 어설프게 기억한다. "시곗바늘을 쳐다보게 하는 타이타닉호의 침몰이었다." 대형 게임회사를 디도스 공격으로 완전히 마비시킨 다음 그들이 남긴 메시지였다.

    영택이가 간절히 원해서 그럴까. 아이러니하게도 이들과 잠시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정보 확산의 자유를 지향하는 유명 단체의 리더와 영택이는 함께 전략을 짠 적이 있었다. 당시 영택이가 활동했던 핵티비스트 모임은 모 정부의 기밀 정보가 담긴 스프레드 파일을 탈취 했는데, 암호를 풀지 못한 상태였다. 그래서 영택이는 해커단체 L에 접근하여 비밀번호를 풀기 위한 논의를 했다. 당시 그들은 기밀정보가 담긴 파일을 넘겨주길 바랬다. 하지만 영택이는 파일을 넘겨주지 않고 설명만 했다. 물론 정보 확산 자유를 지향하는 사람. 어차피 1편에 말했으니, 어산지로 불러야겠다. 영택이는 함께 하기로 한 줄리언 어산지에게도 기밀정보가 담긴 파일을 넘겨주지 않았다. 그 이유는 해커집단 L과 어산지가 이 파일 내부의 정보를 만천하에 여과 없이 공개하면, 나약한 개인까지 공격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영택이와 함께했던 핵티비스트 모임이 이 기밀 정보를 탈취한 이유는 국가 기관을 공격하여, 이에 소속된 개인들이 병들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물론 영택이는 도중에 활동을 그만두었기 때문에 추후 이 파일이 어떻게 다뤄졌는지는 모른다.

    2020년 즈음 영국의 중대조직범죄청(Serious Organised Crime Agency) 소속의 화이트 해커 출신이자, 현 칼럼니스트 겸 작가라고 소개한 사람은 영택이에게 인터뷰 요청을 했다. 2023년 초에 인터뷰를 진행한 적이 있었다. 당시 영택이는 민감한 질문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답하지 않고 끝냈다. 약 7시간가량 이루어진 인터뷰에서 충분히 많은 걸 답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가라고 소개한 사람은 영택이와의 인터뷰가 만족스럽지 못한 것 같았다. 그래서 집요하게 인터뷰 요청을 계속 해왔다. 이에 영택이는 "소설을 쓰고 싶으면 본인의 상상력으로 부족한 걸 채워야지. 왜 계속 인터뷰를 하려고 하나요? 당신은 소설가를 때려치우고 기자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맨정신이었다면 그의 인터뷰 요청을 조용히 거절했을 것이다. 그런데 술에 거나하게 취한 나머지 인터뷰를 진행하게 되었다. 원래 영택이는 술에 취할 정도로 마시는 스타일이 아니다.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택이는 비슷한 기억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즐거운 나머지 술에 취한 것을 잊어버릴 정도로 무식하게 마셔버렸다. 덕분에 술자리에서는 평소 하지 않아도 되는 이야기까지 여과 없이 뱉어냈다. 이 술기운은 집에 갔을 때에도 이어져 버리는 바람에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인터뷰까지 하게 되었다. 아래는 인터뷰 내용을 최대한 요약했다.


    Q. 과거 핵티비스트 활동할 때의 기분과 감정에 대해 다시 한번 듣고 싶다.
    A. 불안하고 초조했다. 의심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심해에서 활동하는 해커라면, 정신적 구조, 인지와 감상의 범주에 대하여 의심하는 태도로 일관해야 한다. 이 의심은 정답을 향하는 것이 아닌, 정답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의 연속이다. 그러니 불안하고 초조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정답이 아닌, 완전히 틀린 답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Q. 무엇을 의심했나? 그 이유는 무엇인가?
    A.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진 문화적 질서다. 이 질서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자발적인 복종을 이끌어낸다. 그렇다 보니 몇몇 사회는 급진적이지 않은, 건설적인 비판마저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 비판을 질식시키고 기존의 문화적 질서를 수호하는 존재가 누구인가? 우리는 그 존재를 찾아 숨통을 끊어, 더 자유로운 세상을 실현하고 싶었다. 우리가 종교, 방송사, 공룡기업, 국가를 공격한 이유다.

    Q. 불안함과 초조함을 어떻게 견뎌냈나? 그리고 그 존재를 찾았나?
    A. 정답으로 향하고 있다는 희망, 착각 환상 덕분에 견뎌냈다. 물론 불안함과 초조함을 견디는 건 쉽지 않다. 같은 인터넷 세계이지만 따사로운 햇살이 비추는 수면 위와 햇빛마저도 질식시키는 음침한 심해는 다른 세계라는 걸 넘어, 양립 불가능한 것에 가깝다. 심해는 수면 위의 원칙뿐만 아니라 세상을 인식하고 감각하는 방식 자체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내가 머물던 심해는 사회의 취향과 도덕, 세계관 등등의 것들과 상반되어 있었다. 하지만 심해라는 가상 세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나라는 존재도 실제 사는 세상은 수면 위에서 서핑하는 사람들과 다를 게 없지 않나. 결국 심해라는 가상 세계, 내가 실제 존재하는 현실 세계는 내 안에서 끊임없이 충돌하고 겹치며 아노미 현상으로 빚어진다. 사이비 종교에 빠진 것처럼 맹목적인 믿음을 품은 사람이거나 강한 배짱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이 아노미 현상을 쉽게 견디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견딜 수 있었던 이유는 심해에서 써내려간 샤르트르의 이야기 덕분이다. 프랑스의 대문호인 샤르트르는 노벨 문학상을 거부하지 않았나. 당시 그는 "그들이 나에게 노벨상을 수여하여 그들의 편으로 넣으려 했다." 난 그의 말이 불안함과 초조함을 깊은 심해에서 견딜 수 있다는 강한 의지로 해석했다. 이런 흥미로운 반골적인 이야기가 나를 견디게 만든 힘이었다.
    그리고 내가 앞서 말한 그 존재는 찾지 못했다. 당신의 상상력으로 발견해주길 바란다.


    Q. 심해에서 활동하는 모든 플레이어가 당신과 같지 않았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A. 달랐던 것은 맞다. 다만, 특별한 생각은 없다. 우리가 유명해지면서, 우리와 비슷한 모양새를 한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심해로 직접 뛰어들었다. 우리와 유사한 활동을 하기 위함이 아닌, 새로운 자리를 얻기 위한 플레이어들도 많았다. 사실 이는 매우 단순한 삶의 전략이다. 현실에서도 급진적인 활동을 통해 다수의 관심을 받아 새로운 자리를 취하려는 사람들이 많지 않나. 그렇다보니 심해의 플레이어들 사이에서도 대기업이나 정보 관련 기관에 취업하기 위해 또는 더 많은 돈을 만지기 위해 다양하게 시도되었다. 상당히 급진적이고 무모한 실험에 성공하여 새로운 자리를 꿰차는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자리를 꿰차려면 아이러니하게도 수면 위의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아야 한다. 심해의 이야기가 수면 위로 전달되려면 소행성 충돌과 맞먹는 스펙타클한 파괴력을 발휘해야 한다. 당시 이에 심취했던 몰지각한 플레이어 몇몇은 객기를 부리다 새로운 자리를 얻기는커녕 감옥에서 서서히 시들어가고 있지 않나. 과거에는 심해의 플레이어들의 가치가 높았다면, 자리를 꿰차기 위해 뛰어든 플레이어로 인하여 심해의 가치가 낮아졌다. 하지만 이를 나쁘게 볼 수 없다. 원래 세상의 수많은 가치라는 것들이 다 그렇지 않나. 내가 활동을 그만둔 이유를 과거에 부끄러움이라 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이 부끄러움은 가치 하락의 조짐을 마주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Q. 새로운 플레이어가 두려웠던 것은 아닌가?
    A. 아니라고 말하면 거짓말에 가깝겠다. 우리의 첫 번째 시작은 기존의 질서를 조롱하려는 동기와 수면 위에 존재하는 새로운 세력들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망이 포함되어 있었다. 우리가 처음 등장했을 때에는 새로운 규칙을 선포하여, 기존의 질서를 향해 총구를 겨눴다. 내가 따르는 대한민국의 철학자는 이를 다섯 글자로 줄여'새 말 새 몸짓'이라 한다. 우리가 세운'새 말 새 몸짓'은 시간이 지나 ' 내 말 내 몸짓'이 된다. 그런데 뒤늦게 등장한 새로운 플레이어도 우리와 비슷한 가치를 품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가 선포했던 새로운 질서이자 나에게 익숙한'내 말 내 몸짓'을 향해 총구를 겨눴다. 해커들 사이에서 전쟁이 벌어진 이유다. 익명성을 지키고 싶어했던 당시의 나는 수많은 총구가 두려웠다. 그리고 나에게 정말 특별하고 소중했던 '내 말 내 몸짓'그들에 의해 무너지는 걸 보고 싶지 않아, 도망친 것도 있다.

    Q. 심해에 활동한 사람의 특징이 있는가?
    A. 특별히 없다. 당신은 동네 수영장에서 잠수부와 서핑족들을 구분할 수 있는가? 신체 모든 곳을 모두 들여다 볼 수 있는 샤워장에서도 누가 잠수부이고 누가 서핑족인지 구분할 수 없다. 구분할 수 없는 이유는 심해와 수면 위는 서로 다른 세계인 것으로 보이지만 결국 하나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플레이어의 마음가짐에 따라 언제든지 달라진다. 심해와 수면 위를 모두 경험한 누군가는 더 좋은 세계로 자신을 수렴시킨다면, 또 다른 누군가는 더 나쁜 세계로 자신을 수렴시키기 때문이다. 심해에서 활동한 사람의 특징은 없다.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의 특징만 있을 뿐이다.

    Q. 당신과 함께했던 구성원 몇몇은 결국 덜미가 잡혔다. 당신도 잡힐거라 생각하지 않았나?
    A. 딱히 없었다. 나는 구성원들의 소식을 몰랐기 때문이다. 만약 그 소식을 바로 접했다면 나도 두려워 했을 것이다. 어쩌면 내가 대한민국 사람인 덕분에 잡히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대한민국 남성들은 군 복무를 해야 한다. 그런데 나는 의무경찰로 복무했고 경찰서가 아닌, 가급 국가 중요시설에서 근무했다. 이곳에 계신 분들은 소위 엘리트 경찰들로 가득했다. 사법고시와 행정고시, 외무고시 중 2개 합격한 대장을 시작으로 경찰대학을 차석으로 졸업하여 갓 임용된 경위인 소대장, 사이버수사대 특채 출신이자, 청와대에서 오신 부관도 있었다. 덕분에 나는 이분들과 매우 사적인 대화를 나누게 되었는데, 당시 사이버 수사대가 사용하던 프로그램은 내 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힘이 부족하다는 걸 느껴 다소 안심할 수 있었다.

    Q. 미국의 FBI와 영국의 SOCA 공조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나?
    A. 물론 해외 공조 수사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나를 특별히 아껴주셨던 대장님과의 대화 덕분에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당시의 나는 의무경찰로 군 복무를 하면서 큰 감사함을 느끼고 있었다. 모든 군대가 그러하겠지만 내가 근무하는 곳 또한 악습이 상당히 많았다. 그래서 이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 위해 대원들 간의 부조리한 악습들을 조용히 없애기 위해 노력했다. 물론 좋은 성과를 거둔 것은 아니지만, 나를 지지해주고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많았기 때문에 경찰의 날에 표창장까지 받았다. 하지만 과거의 내 행동이 온 세상에 드러나면 사명감으로 무장한 멋진 경찰분들에게 피해를 끼칠 수 있을 거란 걱정을 했다. 당시 나와 대장님은 책 알레르기로 인해 아무도 오지 않는 독서실에서 악습이 더 이상 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근무, 청소, 배식 시스템 개편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나눴는데, 그러다 내 과거에 대해서도 털어놓게 되었다. 대장님은 그게 너였냐며, 깜짝 놀라하셨는데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며 여러 이야기를 해주셨다. 

    Q. 구체적으로 어떤 이야기를 들었는지 말해줄 수 있나?
    A. 내부 상황에 관한 이야기였다. 대한민국 국내 정보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기관을 국가정보원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국내 정보는 대한민국 경찰이 가장 많이 알고 있다. 내가 군 복무를 하던 곳은 가급 국가 중요기관이었기 때문에 다른 경찰뿐만 아니라 국가정보원에서도 감사를 온 적이 있었다. 당시 국가정보원은 자신의 신분을 감추기 위해 가짜 신분증을 제시했다. 그 자리에 있던 경찰들은 국가정보원이 떠나고 난 다음, 그가 어떤 신분이고 누구인지 단 1분 만에 알 수 있었다. 이 정보력은 경찰 내부 조직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더욱 방대해진다. 과거 대통령의 곁에서 국내 사정에 관해 이야기한 자의 소속이 국정원이 아닌 경찰이었던 이유다. 그만큼 나에게 놓인 상황에 대해서도 잘 이해하고 있었다.
    당시 대장님께서는 내 이야기를 조용히 들어주시더니, 집행관할권과 범죄인도 조약에 관해 이야기를 해주셨다. 집행관할권은 국제법적으로 다른 나라에서 다른 나라의 주권을 침해하는 것에 대응하는 것이다. 대한민국도 범죄인도 조약이 있지만, 미국과 영국에 비하여 상당히 보수적이라고 하셨다. 미국은 미국에서 태어난 아이에게 시민권을 주듯이, 다른 국가A에서 범죄를 저지르면 국가A에서 처벌을 받도록 범죄자를 인도한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다르다고 해주셨다. 국가A에서 범죄가 발생하더라도 우리나라가 직접 처벌하기 위해 해외로 인도하지 않을 정도로 보수적이라 말씀해주셨다. 그 외에도 여러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기억력이 좋지 않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이야기를 해주신 덕분에 잡힐거란 불안함이 크지 않았다.

    Q. 경찰이 당신의 말을 듣고 수사하지 않은 게 이해되지 않는다.
    A.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사실 나와 함께 근무하셨던 분들은 경찰에 대한 자부심과 사명감으로 무장한 분들이었다. 사실 나도 대장님께 이 이야기를 하면 수사 대상이 될 줄 알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대장님은 내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셨다. 그리고 돈을 많이 벌면 맛있는 제육볶음을 사달라고 하셨다. 그분이 빛나는 보석처럼 소중하게 지켜오던 경찰에 대한 사명감과 자부심, 공직자 마인드가 나로 인해 균열이 생긴 것 같아 정말 죄스럽게 느껴졌따. 그래서 그 분 앞에서 길 잃은 아이처럼 한동안 울었다. 대한민국의 몇몇 사람들은 경찰을 견찰이라 하지만 나는 견찰이라 할 수 없는 이유, 길거리에서 경찰차를 볼 때마다 고개를 숙이고 걷는 이유다. 항상 마음의 짐을 품고 있다.물론 나의 모든 잘못을 눈감아 준 것은 아니다. 핸드폰을 몰래 쓰다가 걸려서 경찰특공대에서 특별 교육을 받고 왔다. 당시 일주일 동안 제대로 걷지 못했다. 다만 벌점 20점을 받으면 외박 제한이었는데, 나를 아껴주셔서 벌점 19점만 주셨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 그곳에 있던 모든 경찰들이 날 예뻐한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그곳에 계셨던 팀장님은 나를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 내 사회성이 많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당시 그 분은 나에게 "네 선임이 기분이 좋지 않으면 너도 눈치를 보듯이, 나도 대장님 기분이 좋지 않으면 대장님 눈치를 보면서 살살 피해다닌다. 네가 대장님과 함께 있을 때에는 대장님의 기분이 좋아질 만한 말 좀 해라. 왜 많은 혜택을 누리면서 말을 못하냐" 라며 핀잔을 자주 주셨다. 이런 말이 나온 이유는 나와 대장님이 직접 대면하는 풍경 자체는 대한민국에서도 쉽게 그려지지 않는 풍경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내 후임도 내가 종종 대장님과 대면한 걸 목격해서 그런지 이런 풍경을 자연스럽게 여긴 것 같았다. 대장님이 바뀌고 내가 전역한 다음, 대장실로 벌컥 들어가 불만을 토로했다가 부대가 뒤집어졌다고 하더라.

    Q. 경찰 스카웃 제의는 없었나?
    A. 농담 식으로 있었다. 하지만 지금 난 경찰이 아니다. 결국 거절한 셈이다. 당시 대장님은 내 과거 활동 때문에 스카웃 제의를 한 것은 아니었다. 대장님은 글을 잘 쓰고 체력이 좋은 경찰들이 진급시험에서 승승장구한다고 말씀해주셨다. 내가 글을 끼적이는 걸 좋아하니, 경찰이 되더라도 높은 곳에 올라갈 수 있을 거라 말씀해주셨다. 그리고 사이버 수사대 특채 출신인 부관님의 아내분도 경찰인데, 두 분이 버는 돈이 대장님보다 더 많다며, 같은 경찰과 결혼하면 경제적으로도 문제 없을 것이라며 따뜻하게 이야기를 해주셨다. 하지만 나는 청개구리 심보로 가득하다. 직업정신과 자부심, 사명감으로 무장한 조직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싶지 않다.

    Q. 요즘은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
    A. 특별한 거 없다. 그냥 먹고 자고 일하고의 반복이다. 방금 주문한 커피가 도착했다. 난 오늘 일이 너무 많아 밤샘해야 한다. 여기서 더 답변하면 이틀 동안 잠을 자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만 가보겠다. 나머지는 당신의 상상력에 의존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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