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사단법인 새말새몸짓
로그인
  • 참여
  • 자유게시판
  • 참여

    자유게시판

    세상이 거꾸로 돌아간다고?(번외)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김민석 (175.♡.230.114)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3,172회   작성일Date 24-06-10 15:56

    본문

    지금까지의 논의가 존재론적 논의로 들어가기 전에 짧은 에움길을 제시하고 싶다.

    하나의 현상을 목격하고 그 현상이 다른 현상들과 맞물려 들어가는 듯한 직감과 같은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일지 모른다.
    또한, 그 현상이 어디서부터 기인했는지와 그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고 있으며 초래할지를 예측하는 것도 물론 흥미로운 일이다.

    더군다나 그 현상이 인간에게서 비롯되고 있는 것이라면 말이다.
    어떤 인간의 행동과 말이 일상이라고 하는 평평하고 밋밋한 세계를 뚫고 나타나는 것에서 부터 주체에게서 끊임없이 무엇인가가 문제시되고 있다.

    만약 문제시 되는 대상이 자연 존재자인 나무라고 한다면, 그 나무에 대한 지식을 다양한 분야에서 습득한 뒤 자신이 최초로 마주한 현상과 끊임없이 부딪히게 된다.
     그러나, 그 대상이 인간이라면?
    인간은 특이한 존재자다. 자연존재자이면서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자연은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아니 그럴 필요가 없다. 만약, 자연존재자들에게서 질문이 나타나지 않음을 문제시하는 그런 예민한 감성을 지닌 자가 나타난다면 그 질문은 '인간은 왜 질문하는가?'에 대한 물음과 연관될 것이다.

    질문을 던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질문을 발생시킨 대상에 대한 것을 궁금하기 때문에?
    아니면, 그 대상을 이해하기 위해서 인가?
    모두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질문의 대상과 질문을 던지는 주체가 일치하지 않아서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말인듯 싶지만, 그리 당연한 것은 아니다. 주체는 이 당연함을 무의식적으로 느끼면서도 거부하기 때문이다.  당연함을 극복하고 부정하기위해 수많은 고투가 있었음이 자명하다. 인간의 모든 행위는 주체의 욕망과 관련하여 끊임없는 갈증에 빠져있는데, 그 갈증을 모면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로써 질문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질문은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 능력일까? 인류의 먼 조상의 유전인자에 각인되어 있는 것으로써 수십만년이 흐른 뒤인 현재까지 보존되어 온 것일까?
    이런 인식론적, 생물학적 관점은 차치하고서도 인류문명의 일관적 흐름 상 언제나 주체는 질문하는 자들임을 충분히 추측할 수 있다.
    질문하는 자인 인간은 시•공간을 뛰어넘어서 어떤 연결점을 부여하고 있다. 나는 이 연결점에서부터 다음에 진행될 논의를 시작할 예정이다. 즉, 현상을 역추적하여 그것의 깊은 곳까지 가닿은 후 그것으로부터 끌어올린 여러 개념들을 현재에 최종판단에 대한 해석으로까지 나아갈 것이다.
     
    한편, 질문의 고유한 기능이 퇴색되고 질문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며 질문의 대상이 바뀌었다는 이유로 그것이 과거와 현재의 단절이 되는 매개가 되는 이상 (심지어 이것이 어떤 탁월한 능력으로, 위대한 능력으로, 고매한 능력으로까지 추앙받는 이상) '질문하는 인간'은 질문하지 않은 인간들에게서 끊임없는 차이로 나타날 것이고 그 차이에서부터 본질적으로, 질문이 보여주는 인간에 대한 물음과 같은 더 중요한 문제는 삭제될 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러한 사태는 더욱더 많이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게서 중요한 것은 있을지도 없을지도 모르는 어떤 가치를 목도하고 그것을 소유하고 있는지 없는지가 아니라, 인간이 어떤 방식으로 자연속에서 살아왔으며 그 살아온 방식을 존중하면서도 그 방식 자체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다.
    (전자의 문제는 그리고 그런 문제의식 자체에서  '질문'의 반대급부인 '권력의지'가 나타난다.)
    추천0 비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