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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고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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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한상도 (1.♡.46.95)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4,259회   작성일Date 24-02-27 22:34

    본문

    민준이는 매 주말마다 과천 경마장에서 경주를 하며 밥벌이를 하는 기수다. 그는 어릴때부터 기수 훈련을 받았고, 평생을 기수를 할 생각으로 살아왔다. 민준이는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덤덤히 받아들였고, 늘 성실하게 기수로서 살아왔다. 민준이는 특색이 있는 기수는 아니었다. 좋은 말을 만나면 상위권을 차지했고, 나쁜 말을 만나면 하위권을 차지했다. 어차피 경마는 말의 역량에 크게 좌우되기 때문에, 민준이는 매 경기마다 그저 성실히 임하고 적당한 봉급을 타며 연명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심심했던 민준이가 초한지를 읽다가 항우와 오추마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초나라의 왕 항우는 굉장한 무력을 자랑했던 용장이었다. 힘은 그를 당할 자가 없었고, 용맹함 또한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전장의 별이었다. 어느 날 항우가 오추마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오추마는 야생마로, 마을의 농작물을 짓밟고 사람들을 공격하는 말이었다. 너무 힘이 세고 사나워 아무도 길들이지 못하고 쩔쩔매고 있었던 것이다. 이를 들은 항우는 오추마를 길들이기로 마음먹고, 맨손으로 오추마의 갈기를 휘어잡으며 사투를 벌였다. 몇시간을 사투한 끝에 오추마는 땀으로 범벅이 되었고, 결국 항우에게 기가 꺾여 재갈을 물었다.


    민준이는 살면서 경험해보지 못한 두근거림을 느꼈다. 말고삐를 휘어잡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다음 날, 민준이는 휴직을 하고 몽골로 날아갔다. 그는 몽골로 가는 내내 ‘모리’를 되뇌었다. 몽골어로 ‘말’이라는 뜻이다. 그는 몽골에 도착하자마자 초원을 찾아 떠났다. 가장 처음 보는 게르를 마주하자, 그는 ‘모리’라고 말했다. 몽골 사람들은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 말고기를 줘보기도 하고, 마유(馬乳)를 줘보기도 했다. 그러나 민준이는 고개를 젓고 말갈기를 휘어잡는 시늉을 하며 ‘모리’를 외쳤다.


    말귀를 알아들은 몽골 원주민들은 말을 길들이는 법을 민준에게 알려주기 시작했다. 민준이는 말 길들이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으나, 역시나 보통 일이 아니었다. 경마장의 길들여졌던 말만 마주했던 민준이는 야생성이 넘치는 말의 예측불가능한 움직임에 정신을 못차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승부욕이 끓어오르고 눈빛에 초점이 맞기 시작했다. 경마를 할 때도 느끼지 못했던 황홀감. 민준이는 ‘이거다’ 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말갈기를 더욱 세게 쥐고, 이를 악물고 말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버텼다.


    그의 말 길들이기 첫 경험은 실패로 끝났다. 수없이 떨어지고 밟혔다. 온 몸이 욱신거리고 힘이 하나도 남지 않았지만 그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느낄 수 있었다. 내일도 말갈기를 휘어잡고 싶었다. 민준이는 내일 아침까지 근육통이 낫기만을 간절히 기도하며 잠에 들었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민준이는 야생마와 사투했다. 반복에 반복을 거듭하니 말을 길들인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조금씩은 알 것 같았다. 물론 말을 잘 길들이는 데 까지는 너무나 많은 시간이 필요함을 느꼈지만, 그에게는 그 시간들이 쌓여있는 놀잇거리와 같았다.


    2년이 흐른 뒤, 민준이는 어지간한 말을 길들이는 법을 터득했다. 몽골 원주민들도 민준이의 빠른 성장에 깜짝 놀랐다. 이제 민준이는 멀리서 말의 실루엣만 보아도 길들이는 법이 훤히 보였다. 왠지 길들이기 쉬운 말이라면 흥미가 떨어졌다. 말을 안들을만한 힘 센 말들만 골라 길들이곤 했다. 민준이에게 갈기를 잡힌 말들의 눈빛은 순해졌고, 반대로 민준이의 눈빛은 야성이 돌았다. 그는 말들이 가지고 있는 야생성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웠다.


    3년 째 되는 날, 민준이는 과천으로 돌아왔다. 다시 기수로 밥벌이를 하게 된 민준이는 직접 경주마를 고르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배정된 경주마를 받기만 했던 민준이었기 때문에 주변의 기수들은 깜짝 놀랐다. 게다가 민준이가 고르는 말들은 대개 우승하기 까다로운 말들이었다. 비오는 날에는 빗길에 약한 말을, 장기레이스에는 지구력이 약한 말을, 그리고 간혹 기수를 떨어뜨리는 말을 고르기도 했다. 주변 기수들은 까다로운 말을 해소해주는 민준이가 좋을 뿐이었다.


    경주가 시작될 때마다 민준이의 눈에는 광기가 감돌았다. 주변에서는 그런 민준이를 보고 ‘말에 미친놈’이라고 불렀다. 민준이의 겉모습만 보면 마치 우승에 한참 목말라 있는 듯 보이는데, 막상 민준이의 경주를 보면 우승을 갈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어떻게 하면 빨리 달릴지, 어떻게 하면 1등을 할지, 어떻게 하면 코너에서 역전을 할 지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는 듯 보였다. 민준이는 그저 말과 둘만의 세계에 빠져있는 듯했다. 자주 꼴찌를 했고, 간혹 잘했을 때는 3등을 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민준이의 표정은 언제나 밝았고 눈에는 빛이 났다. 경주가 끝나면 민준이는 항상 혼자 중얼거렸다. “아름다운 경주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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