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읽고 (카를로 로벨리, 김정훈 (옮긴이), 쌤앤파커스 2023)
페이지 정보

본문
이 책은 기본학교 책 읽기 모임에 선정된 책이다. 물론 모임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딴 소리지만, 기본학교를 지원하려는 칭구들이라면 이 책을 읽고 면접장에 가보는 걸 권하고 싶다.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의 저자 로벨리에 따르면 전자는 무언가와 상호작용할 때 위치를 갖는다. 그런데 나도 다르지 않다. 나라는 존재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어떤 대상과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다르게 드러난다. 나는 이 사실을 물리학이 아닌 명절 친척 모임에서 먼저 배웠지만. 내가 기본학교에 지원한 이유도 다르지 않았다. 낯선 대상과 관계를 맺으면 아직 관측된 적 없는 또 다른 내가 드러날 것이고, 그것이 나를 새로운 길로 이끌 것이라 생각했다. 다만 전제가 하나 있다. 지금의 삶에 회의와 한계를 먼저 마주하는 것이 1번이라는 것. 자기 삶에 아무 불만이 없는 사람이 굳이?
다시 돌아와서, 내가 이 책을 펼치기 전에 품은 관심은 하나였다. "어려운 양자역학을 어떻게 쉽고 친근하게 풀어냈을까?"
사람들이 양자역학이라고 하면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떠올린다. 귀여운 고양이를 떠올리면 친근하고 쉽게 다가올 수 있으나, 그 고양이는 복잡한 미분 방정식을 숨기고 있따.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양자역학은 물포자(물리 포기자) 양산 시스템에 가깝다. 나름 물리 좀 한다고 자부하던 친구들도 양자역학 앞에서는 조용해졌기 때문이다. 시위도 질문도 항의도 없이 그냥 조용해졌다. 그냥 어느날부터 강의실에 보이지 않기도 했다. 마치 양자역학처럼 관측하는 순간 사라져 있는 것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그동안 우리가 풀어온 문제들은 답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말해준다. 공을 던지면 어디에 떨어지는지, 전류를 흘리면 전구가 켜지는지. 그런데 양자역학은 다르다. 명확하지 않은, 무엇도 아닌 것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계산하는 학문에 가깝다. 다시 말해 무엇도 아닌 것의 행동을 계산한다는 것. 이건 프랑츠 카프카 소설 만큼이나 난해하다.
이공계 대학생이 마주하는 양자역학의 기본 문법은 대략 다음과 같다.
1. 어떤 사건이 일어날 확률은 '확률 진폭'이라는 복소수의 절대값을 제곱한 값이다.
2. 하나의 사건이 여러 방법으러 일어날 수 있고 그 방법을 구현할 수 없으면 진폭들을 더한 뒤에 제곱한다.
3. 어느 방법으로 일어났는지 알아낼 수 있는 실험을 하면, 확률을 그냥 더한다.
양자역학을 공부하면서 마주하게 되는 파울러의 스핀 행렬을 시작으로 수소의 미세 갈라짐, 반도체와 초전도까지가 위 세 줄의 변주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보면 참 쉬워보이는데 그렇지 않다. 슈뢰딩거의 방정식이 결국 물포자를 양산하는 미분 방정식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굳이 비교해보자면 전자공학 같은 분야는 영자역학의 복잡한 미분 방정식을 다루지 않기 때문에 비교적 쉽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복잡한 미분 방정식만 계산하는 게 아니다. 양자역학이 어려운 이유는 빗댈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평생 총알처럼 행동하는 것과 물결처럼 행동하는 것만 보며 자랐다. 그런데 전자는 당구공도 구름도, 파동도 아니다. 그저 기분에 따라 양쪽을 번갈아 흉내 낸다. 무언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이미 아는 것에 빗대는 일에 가까운데, 전자의 경우 빗댈 대상이 우주에 명확하게 존재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이것은 마치 ㅇㅇ 같아!!" 라고 말하고 싶은데 ㅇㅇ에 넣을 게 없다. 그래서 양자역학을 제대로 익히려면 기존의 경험적 지식을 모두 내려놓고 추상적인 상상의 나래를 펼쳐야 한다. 그런데 이는 매일 오른손으로 젓가락질 하던 사람이 이제부터 엉덩이로 젓가락질을 해야 한다는 것과 비슷한 요구다.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딱히 하고 싶지 않다.
많은 이공계 칭구들이 물리학에 매료되는 이유는 단순하다. 물리학은 무엇이 일어날지를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자역학은 확률만 논하는 것 같다. 그렇게 대학생이 마주하는 거대한 벽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관측할 수 없는 대상을 논하는 게 의미 있냐고? 없지. 그러니 계산이나 하고,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묻지 마라ㅋㅋ".
진짜 싸대기 마렵다.
<나 없이는 존재하는 세상>은 양자역학을 어떻게 다뤘나?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은 이 높은 벽을 어떻게 다뤘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이 책은 벽을 낮추지 않았다. 대신 벽 앞까지 가는 길을 아름답게 포장해놓았다. 이 책에 등장하는 수식은 단 하나, XP−PX=iℏ 뿐이다. 내가 방금 세 줄의 문법을 열심히 소개해놓고 정작 책에는 다른 수식이 나온다니 다소 뻘쭘하지만, 여기엔 이유가 있다.
내가 양자역학 찍먹충이라는 것도 있겠으나, 위에서 언급한 기본 문법은 확률 진폭에 관한 내용이다. 진폭이 주어졌을 때 그걸 어떻게 조합해 확률을 얻느냐는 규칙인 것이다. 그런데 내가 하나 빼놓은 게 있따. 위치나 운동량 같은 구체적인 물리량이 어떤 성질을 갖고 있는지 정해주는 내용이다. 저자인 로벨리가 내놓은 수식이 바로 그 일을 한다. X(위치)와 P(운동량)는 보통의 숫자가 아니기 때문에 곱하는 순서를 바꾸면 결과가 달라지고, 그 차이가 정확히 iℏ, 플랑크 상수 규모라는 것이다. 먼저 위치를 재고 운동량을 재는 것과 그 반대가 다르다는 것이다. 여기서 몇 단계만 거치면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가 튀어나온다. 로벨리가 이 식 하나에 양자론 전체가 집약되어 있다고 말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 책의 매력은 친근함
대학생들이 양자역학을 공부하며 미분 방정식에 고문당하다 조용히 사라지는 것을 로벨리도 목격했는지, 그는 이야기를 꺼낸다. 1925년 여름, 알레르기 때문에 꽃가루 없는 북해의 섬 헬골란트로 피신한 23살 하이젠베르크. 그가 새벽 3시에 계산을 끝내고 너무 흥분해 잠들지 못한 채, 바위에 올라 일출을 기다리는 장면. 이 책의 원제가 'Helgoland'인 이유다. 흥미로운 점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과학 혁명 중 하나가, 콧물 때문에 섬으로 도망간 20대 청년의 밤샘에서 시작됐다는 것이다. 만약 알레르기 약이 조금만 더 좋았다면 양자역학의 등장은 더 늦어졌을지도 모른다.
여기에 슈뢰딩거가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청춘 드라마에서 막장 드라마로 바뀐다. 그 위대한 파동방정식은 대학 연구실이 아니라 알프스 산장에서, 비밀 연인과의 휴가 중에 태어났다. 옥스포드에서 쫓겨나고 프린스턴에서 거절당한 그의 사생활. 이 책을 읽다보면, '크나벤피직(청년물리학)이라고 불린 20대 천재들의 군상극을 정주행하는 기분이다.
친근함의 두 번째 장치는 저자에게도 있다. 저자인 로벩리는 볼로냐 대학에서 등록 줄이 가장 짧다는 이유로 물리학과를 선택했다고 고백한다. 인류의 우주 이해를 한 단계 끌어올린 커리어의 출발점이 줄을 서기 싫어서였다는 것이다. 그는 책을 사기 전에 냄새부터 맡는 습관이 있다고 너스레를 떨며, 디렉의 책과 씨름한 한 달을 "내 인생 최고의 한 달"이라 부른다. (딴 소리이지만, 기본학교 책 읽기 모임을 진행하며 어느 책을 한 달 동안 씨름한 사람이 있었을까? 있었다면 개인적으로 존경한다.) 심지어 슈뢰딩거의 고양이조차 그의 손을 거치면 순해진다. 원래 사고 실험에서 고양이는 독가스로 죽는데, 로벨리는 "고양이의 생사를 가지고 놀고 싶지 않다"며 독을 수면제로 바꿔버린다. 잠든 고양이와 깨어 있는 고양이의 중첩. 그는 가상의 고양이의 복지까지 챙긴 것이다. 이 사소한 배려가 이 책의 온도와 대중성을 대변하고 있다.
단순 쉬운 설명이 끝이 아니다.
로벨리는 서두에서 실토했다. 이 책은 양자역학을 이해하는 방법을 설명하는 게 아니라, 양자역학을 이해하기가 왜 그렇게 어려운지를 설명하는 책일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그 어려움의 정체를 밝히는 과정에서 자신의 답, 관계론적 해석을 내놓는다. 세계는 확정된 속성을 가진 사물들의 집합이 아니라, 상호작용의 그물망이자, 대상의 속성의 다른 대상과 상호작용하는 순간에만, 오직 관계 속에서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전자는 관찰되지 않을 때 어딘가에 있는 게 아니다. 위치라는 속성 자체가 다른 무언가와의 만남에서만 발생한다.
그러므로 이 책의 제목인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 '나'는 인간이나 의식이 아니다. 모든 사물에게 해당되는 '상대'에 가깝다. 상대와 관계 없이는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 세상인 것이다. 나의 스마트폰, 고양이, 길거리 고양이, 심지어 나도 홀로 있을 대는 확정된 무언가가 아니라는 얘기다. 이것이 위로가 되는지 모욕이 되는지는 각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그렇게 이 책은 물리학을 지나 철학으로 건너간다. 레닌과 보그다노프의 논쟁, 마흐의 경험비판론을 거쳐 로벨리는 뜬금없이 2~3세기 인도 사상가 나가르주나의 공(空) 사상에 도달한다. 아무것도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것은 다른 것에 의존해서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사물은 자립적인 실체가 아니라 비어 있다는 것. 별을 바라보는 나조차도 서로 연결된 현상들의 일시적 매듭이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론물리학의 최전선이 천 년 전 대승불교와 마주하는 장면은 이 책에서 기묘하고 신비로운 대목이다.
기본학교에서 공부한 친구들이라면 이 대목에서 묘한 기시감을 느꼈을 것이다. 세계를 고정된 실체 (有)로 보지 않고 관계와 작용으로 읽어내야 한다는 시선. 확정성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으라는 요구, 최진석 교수님이 강조하시는 '경계에 서라'는 말은 결국 명사가 아닌 동사의 셰계로 이동하라는 뜻이기도 한데, 헬골란트의 물리학이 이 지점을 가리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로벨리가 셰익슾히어의 <템페스트> 를 인용하며, "구름 걸린 탑도, 화려한 궁전도.. 녹아내려 구름 한 조각 남지 않을 것"이라 쓸 때, 나는 최진석 교수님의 노자 강의에서 들었던 도가도 비상도(道可道 非常道)의 서양 물리학 버전을 읽는 기분이 들었다. 물론 노자는 실험장비가 없었겠찌만.
경계할 점과 아쉬운 점
이 책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을 꼽으라면 방금 다뤘던 나가르주나 장이다. 그리고 가장 조심스럽게 읽어야 할 장 또한 나가르주나 장이다. 저자 또한 나 같은 사람이 있을 거라 생각했는지 영리하게 방어선을 쳐두었다. 고대 문헌에서 중요한 것은 "저자가 원래 말하려던 것이 아니라 그 문헌이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라고. 그런데 내 귀에는 이렇게 들렸다. "나는 나가르주나를 내 필요에 맞게 읽어볼게!" 나가르주나의 공은 해탈이라는 기획 하에 형성된 개념인 것이지 물리 이론의 존재론이라고는 볼 수 없다. 다시 말해 사유의 방향이 다르다.
고로 경계할 점은,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 말하는 물리학과 동양사상의 공명은 유비(類比)일 뿐이지, 논증이라고 볼 수 없다. 유비는 사유를 자극하는 매력적인 도구이다. 그런데 유비를 논증으로 오독하는 순간, "양자역학이 불교를 증명했네? ㄷㄷㄷㄷㄷㄷㄷ" 같은 사이비 담론으로 미끄러질 위험이 있다. 로벨리 또한 그 선을 넘지 않으려고 노력한 점이 보였다. 다만, 이 책의 제목부터 문체가 낭만적으로 쓰여져 있기 때문에 쉽게 미끄러져 오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고백하자면 나 또한 대여섯 번 미끄러졌다.
아쉬운 점은 이 책의 제목이다. 출판사도 먹고 살아야 하고, 책을 팔아야 하니까 이해할 수 있다. 이 책의 원제는 'Helgoland'다. 그런데 한국어판 제목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은 마치 인간의 의식이, '내'가 세계를 존재하게 만든다는 선언처럼 읽힌다. 다만 정작 본문에서는 정반대를 말한다. "인간이, 그의 정신이 자연의 문법에서 특별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터무니 없는 일"(166p.)이며, 관찰이란 의식이 아니라 임의의 두 물리적 대상 사이의 상호작용이고, 현상을 초월적 주체와 연관 지은 것이야 말로 레닌의 오류였다고 비판까지 한다. 고로, 이 책은 제목과 본문이 다른 책이다. 제목에 이끌려 이 책을 선택한 독자들은 적지 않은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 뭐 어쩌겠어. 이미 돈 주고 샀는데. 출판사가 승리한 거지.
마치며
나는 앞서 말했듯 "어려운 양자역학을 얼마나 쉽게 풀어냈을까?"에 무게를 두고 읽으려 했다. 일단 읽기는 쉽다. 복잡한 수식도 없고, 이야기와 비유가 독자를 저자의 매력 속으로 끌고간다. 다만, 이 책을 덮고 나면 양자역학을 더 깊이 이해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세계가 모호하게 다가온다. 어쩌면 이것이야 말로 저자가 의도한 방향일 지도 모른다. 로벨리에게 과한이란, 답을 소유하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개념적 토대에 끊임없이 질문을 제기하는 반항적 사고의 동력이기 때문이다. 최진석 교수님께서 과학적 사고를 강조하시는 이유도 이에 기인할 것이다.
양자역학은 오늘도 많은 곳에서 물포자를 양산하고 있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이 책에서 만큼은 그 악명 높은 양자역학이 삶을 위로하는 이야기로 다뤄진다. 복잡한 미분 방정식 하나 없이 그 일을 해냈다는 점에서 이 책은 매력이 있다.
- 다음글베스의 모정 4 26.07.11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