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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클리드의 창>을 읽고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 전대호 (옮긴이), 까치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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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졸업생 (77.♡.246.8)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108회   작성일Date 26-06-25 07:21

    본문

    <유클리드의 창>은 기본학교 책 읽기 모임 책으로 선정된 책 중 하나다. 


    유클리드라는 이름은 상당히 익숙하다. 중학교 수학 시간인 자연수, 소수, 복소수 파트에서 1과 자신만을 약수로 가지는 수인, 소수가 무한대라는 사실을 수학적으로 증명한 인물이라고 소개되기 때문이다. 사실 나처럼 공부 못하는 애들이 다 그렇다. 복잡한 핵심 개념을 이해할 지능이 없으니, 쓸데없고 자질구레한 잡지식에 환장한다. 그래야 적어도 남들 앞에서 아는 척은 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막상 이 책을 펼쳐보면 유클리드 한 사람의 전기는 아니다. 그런데 왜 책 제목이 ‘유클리드의 창’인가? 여기서 창은 ‘창문(window)’다. 유클리드가 창틀을 닦아놓은 이래로, 저자는 수학과 물리학 역사 속에서 그 창문이 어떻게 다섯 번이나 깨지고 새롭게 열리며 인류의 시야를 뒤흔들어놓았는지 파고든다. 


    <유클리드의 창>이 기본학교 책 읽기 모임 도서로 선정된 이유 : 질문의 힘

    이 책을 읽다보면 맹목적 암기보다 질문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다. <유클리드의 창>에서의 가우스는 정해진 공식대로만 계산을 강요하는 권위적인 분위기 속에서 재능을 잃을뻔 했으며, 아인슈타인 또한 학창시절 주입식 교육과 기말시험 압박에 대한 회의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고로 이 책이 말하는 혁명적 사고란 정해진 규칙을 수동적으로 외우는 데에서 오는 게 아니라, 호기심과 자유로운 사유가 허용될 때에야 드러날 수 있다고 말한다.

    <유클리드의 창>을 보면 권위를 의심하고 딴지 걸어보는 태도가 결국 또 다른 창조였다. 가우스와 리만은 2,000년 넘게 신성불가침으로 여겨지던 유클리드의 평행선 공리를 의심했다. 그리고 그 절대성을 부정하면서 비유클리드 기하학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열었다. 아인슈타인은 뉴턴의 절대시간과 절대 공간을 부정하면서 특수상대성이론과 일반상대성 이론을 창조했다. 기존 체계에 대한 파괴적 부정을 통해 드러난 것이다.

    어떤 순진한 사람은 새로운 건 이미 어딘가에 추상적인 형태로 존재하고, 인간은 그것을 그저 발견할 뿐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수학을 좀 하는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코웃음을 칠 것이다. 이 책에서 볼 수 있듯이 수학적 대상은 인간 정신 바깥에 미리 존재하고 있는 게 아니다. 인간이 능동적인 구성 활동을 통하여 만들어내는 산물이다. 발견이 아니라 창조하는 것이며, 드러내는 게 아니라 구성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창조를 드러내는 행위라 말하는 건 창조의 절반만 본 것이다. 기본학교 책 읽기 모임에 <유클리드의 창>이 선정된 이유도 이에 기인한 거겠지.

    한국 정치를 조금 들여다 보면 묘한 패턴이 보인다. 스스로를 보수라 여기는 사람은 더불어민주당을 먼저 비판하고, 스스로 진보라 여기는 사람은 반사적으로 국민의힘을 겨냥한다. 이슈의 내용이 무엇이든 상관 없다. 비판의 대상이 정해져 있고, 논리가 뒤에 따라온다.

    <유클리드의 창>을 몰입하여 읽은 칭구들이라면, 이게 바로 그 잘난 과거 수학자들이 유클리드의 공리를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평생을 바쳐 헛짓거리하던 꼴과 유사하다는 걸 눈치챘을 것이다. “내가 보수인데 진보는 틀렸어.” 라는 전제 자체는 절대 들여다보지 않고, 그저 자신의 정당성을 증명하려는 수식만 미친 듯이 끄적이고 있는 셈이다. 

    가우스에게서 배워야 할 것은 정리를 더 기깔나게 증명하는 잔기술이 아니다. “애초에 이 공리가 맞긴 한 걸까?” 같은 판 자체를 엎어버릴 수 있는 과감한 질문이다. “우리 진영이니까 이건 맞고, 제네는 틀렸다.” 같은 썩은 공리 자체를 의심할 줄 알아야, 이슈를 이슈 그 자체로 볼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짓거리를 하면 현실에서 중립기어를 박는 비겁쟁이로 낙인찍히기 십상이다. 오죽하면 가우스도 비유클리드 기하학을 발견해 놓고도 세상의 조롱이 두려워 긴 세월동안 입을 꾹 다물고 쫄아 있었을까. 그럼에도 가우디는 그 생각을 남겼고, 그것이 아인슈타인의 물리학으로 이어졌다. 이 책은 나 자신에게 솔직해질 수 있는 힘, 미움받을 용기, 권위에 딴지를 걸 용기를 안겨준다. 

    아쉬운 점

    역자 후기에서도 볼 수 있으나, 이 책은 대중 친화적인 책이다. 마치 험난한 고산봉을 등반하겠다고 나섰는데, 헬리콥터가 나를 정상에 내려다주고 따뜻한 컵라면까지 쥐어주는 기분이랄까. 리만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수식 하나 없이 나불거릴 뿐이다. 피타고라스 정리의 기하학적 증명은 땀방울까지 묘사할 기세로 상세하게 다뤘으면서 아인슈타인 이론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측지선 방정식은 마치 존재하면 안 될 금기어처럼 쏙 빼놓았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기하학이 어떻게 물리학으로 진화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과정을 보여주지 않고, 할머니가 들려주는 말랑말랑한 동화처럼 퉁 처버렸다. 

    물론 1장의 유클리드와 3장의 가우스는 흥미로웠다. 하지만 2장과 4장을 읽을 때에는 깡 마른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칠 뻔했다. 2장은 데카르트의 좌표기하학이 갖는 수학적 의미보다, 데카르트의 사생활이 지면을 다 잡아먹었다. 누가 보면 파파라치인 줄. 물론 중세 지성사라는 배경 설명은 좋다. 하지만 오렘의 그래프에서 데카르트의 해석기하학으로 넘어가는 그 숨막히는 스릴이, 얼음이 다 녹아 버린 콜라처럼 밍밍하게 희석되어버렸다. 4장 아인슈타인도 마찬가지다. 에테르 논쟁이나 맥스웰 전자기학이나 로렌츠 수축이니 하는 성장 배경을 떠드느라, 진짜 알맹이인 일반 상대성 이론과 리만 기하학의 관계는 뒷방 늙은이 신세가 되어버렸다. 나처럼 핵심 개념보다 자잘한 이야기에 열광하는, 전형적인 공부 못하는 놈에게는 너무나도 찝찝하고 아쉬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다른 책을 찾아보게 만들지.

    마지막 5장의 끈 이론도 아쉽다. 이게 왜 기하학의 혁명 챕터에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앞선 네 장은 유클리드의 공리 체계, 데카르트의 좌표계, 가우스의 곡률, 아인슈타인의 시공간 곡률로 이어져, “공간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바꿔놓는다. 그런데 끈 이론은!?!?!? 여분 차원이나 M-이론의 행렬 표현이 기하학의 개념을 어떻게 뒤집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거의 전무하다. 그래서 이 장은 기하학 혁명이라기 보다 물리학자들의 도전기처럼 읽힐 뿐이다.

    물론 이해할 수 있다. 출판사도 먹고 살려면, 더 많은 독자들을 끌어모아야 하니까. 다만 서사에 살을 붙이다 보면 엄밀성이라는 뼈대가 흐물흐물 물렁뼈가 되어버리고, 복잡성은 단순해진다. 이게 <유클리드의 창>이 품고 있는 한계지만, 진입 장벽을 개구리도 뛰어넘을 수 있을 만큼 낮춰준 대중친화적인 책이라는 점에서는 가치가 있다.

    다음은 책과는 다소 무관하고, 다소 무례하고 다소 건방진 생각이다. 개인적인 생각인데 초 중등 교사 자격 요건은 최소 석사 이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교육이 나처럼 핵심 개념을 이해 못하고 자잘한 것에 집착하는, 전형적인 공부 못하는 학생을 품으려면 학부 4년 교육과정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물론 학부 4년의 교육과정을 거치면 교육과정의 교과서를 가르치기에는 충분할 수 있느나, 교과서 밖으로 나가려는 일탈 청소년을 붙잡아두기에는 부족하다.적어도 대학원 랩실 구석에서 곰팡이가 슬도록 파고들어 본 사람만이 교과서 밖의 질문 앞에서 동공지진을 일으키지 않고 우아하게 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 내 학창 시절을 돌이봐도 그렇다. 교과서에 있지만, 교과서가 제대로 다루지 않는 내용으로 질문했을 때 제대로 답을 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우리 같은 학생들은 그들을 똑똑한 교사와 멍청한 교사로 무자비하게 분류해버렸다. 교권이 바닥에 떨어진 요즘 교실에서 학생들의 시선은 더 냉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불신이 집으로 흘러가면 학부모는 교사의 자질을 의심하고, 결국 사교육이라는 거대한 블랙홀에 휩쓸리게 되는 악순환의 연속인 것이다. 

    교사 입장에서도 학부모 민원을 처리하는 것과 학생의 질문에 답하며 호기심이 어디로 뻗어나가는지를 지켜보는 것 중, 무엇이 교육자로서 더 보람있는 일이냐 묻는다면 당연히 후자일 것이다. 누군가는 학생이 AI를 쓰면 되지 않냐고 할 수 있겠지만, 이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물론 모든 교육 현장에서 석사 정도의 학위를 갖춰야 한다는 건 아니다. 특성화고나 마이스터고 같은 직업계 고등학교는 실무와 진로가 핵심이기 때문에 굳이 석사는 필요하지 않을 것 같다. 다만, 고등학교는 3년 연임 단임제 같은 걸 도입하는 게 좋을 듯 하다. 한 교사가 3년 동안 학생과 호흡을 맞춰야만 개개인의 기질과 관심사를 바탕으로 더 나은 진로 상담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며

    <유클리드의 창>을 통하여 알 수 있는 것은, 수학이 단순 도구가 아니라는 점이다. 리만이 순수학 수학적 놀이로 개발한 곡면 이론이 아인슈타인의 우주론을 낳았고, 칼루차가 우편으로 아인슈타인에게 보낸 여분 차원 이론이 끈 이론의 핵심이 되었다. 수학자들이 “이런 공간이 있을 수 있따.” 고 상상한 것들이 물리학자들의 실험과 관측을 통해 현실로 드러나는 패턴이 이 책의 핵심 구조다.

    또 하나의 굵은 뼈대는 지식의 역사는 결국 수난의 역사라는 점이다. 히파티아는 살해당했고, 피타고라스 집단은 몰살당했고, 갈릴레오는 가택연금, 가우스는 침묵, 데카르트는 교회를 두려워하고, 뵤요이와 로바체프스키는 생전에 주목받질 못했따. 마이컬슨은 에테르가 없다는 증거를 발견했음에도 관심을 받지 못해 실망했다. 슈바르츠는 긴 시간 동안 조롱을 받아야 했다. 이처럼 혁명은 저항 속에서 태어난다.

    이 책은 다소 따분할 수 있는 내용을 재미있게 풀려고 노력한 책이다. 피타고라스와 예수의 유사성을 대담하게 비교하는 것을 시작으로, 슈뢰딩거의 피동방정식이 애인과의 밀회 중 탄생했다는 사실을 전해주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과학사를 공부하고 싶은 사람 뿐만 아니라, 우주에 호기심을 갖고 있는 사람, 천재의 삶을 보고 싶은 사람에게 부담 없이 권하기 좋은 책이다. 

    아래는 이 책의 내용을 짧게 요약한 내용이다.

    1장 

    이집트인들은 세금을 거두기 위하여 기하학을 만들었고, 바빌로니아인들은 복잡한 공학 문제를 풀기 위하여 수를 사용했따. 그들은 피타고라스 정리를 알았고, 원주율의 근삿값도 구했따. 하지만 결정적으로 그들은 질문하지 않았다. “왜 이것이 성립되는가?” 그들에게는 쓸모만 있으면 충분했따. 이 무관심이 그리스인들이 일으킨 혁명의 시발점이다.

    저자는 탈레스부터 시작한다. 상인 출신 탈레스는 이집트에서 배운 기하학적 사실들을 연역의 사슬로 묶으려 했다. 그 길 끝에 피타고라스가 있다. 피타고라스와 그의 집단은 수를 종교처럼 숭배했으며, 현의 진동과 음계 사이의 수학적 관계를 발견함으로써 인류 최초로 자연법칙을 실험적으로 발견한 사람이 되었따. 하지만 그들은 루트2가 분수로 표현될 수 없다는 사실, 즉 무리수의 존재를 발견함에도 이를 비밀로 감추었다. 그 이유는 “모든 것이 수이다.” 라는 본인들의 철학이 흔들렸기 때문이다. 이 비밀을 발설한 히파수스는 살해당했따.

    이 혼돈 속에서 유클리드가 등장한다. 그는 자신의 업적을 주장하지 않았따. 그저 그리스 기하학 지식 전체를 23개의 정의, 5개의 공리, 5개의 일반 관념으로 정리하고, 465개의 정리를 논리적으로 도출해냈다. 핵심은 무엇을 증명했느냐가 아닌, 어떻게 했느냐였따. 전제를 명시하고 정의를 엄밀히 하고, 증명의 각 단계를 오직 허용된 논리 규칙에 따라 밟아갔는데, 이는 이성의 탄생이라 해도 무관할 정도다.

    특히 5번 공리, 평행선 공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다음과 같다. 

    “두 직선이 한 직선과 만날 때, 같은 쪽에 있는 두 내각의 합이 두 직각(180도)보다 작으면, 이 두 직선을 무한히 연장할 때 그 두 내각의 합이 두 직각보다 작은 쪾에서 반드시 만난다.”

    이를 조금 쉽게 말하자면, 직선 밖의 한 점을 지나면서 그 직선과 평행한 직선은 오직 하나뿐이라는 것이다. 

    유클리드는 1번부터 4번 공리에 비하여 5번 공리가 복잡하고 다른 공리들과 달리 자명하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알았는지, 가능하면 사용하지 않으려 했다. 그리고 유클리드가 마주한 이 찝찝함이 수학사를 이끈다. 

    2장

    중세가 지적으로 부활하는 시기는 아랍 세계를 통하여 그리스 고전이 유럽으로 유입되었을 때이다. 오렘과 같은 학자는 14세기에 그래프를 발명하기도 한다. 오렘은 수평축에 시간, 수직축에 속도를 놓아 운동을 시각화했고, 이를 통하여 갈릴레오보다 200년 앞서 등가속도 법칙을 발견했따. 하지만 교회의 권위에 의하여 스스로 물러선다.

    데카르트는 달랐따. 병약한 귀족의 아이로 태어나서 늦잠 자는 것을 평생 습관으로 삼았던 인물은 군인으로 여행하던 중 거리에 붙은 수학문제 공고를 보고 비크만이라는 노인을 만나게 되어 기하학 혁명의 씨앗을 얻는다. 그리스 기하학이 너무 번거롭다고 느낀 데카르트는 공간을 수로 번역하는 작업을 했다. 그렇게 x축과 y축이 생겼고, 원 방정식도 만들어졌따.

    이것이 좌표기하학이다. 이제 기하학적 문제는 대수학 문제로 변환되고, 수의 연산으로 풀 수 있게 되었다. 직선과 원, 타원, 쌍곡선, 포물선이 모두 방정식이 된 것이다. 뉴턴과 라이프니츠의 미적분학, 근대 물리학과 공학의 발전이 이 토대 위에 세워진 것이다. 

    하지만 데카르트는 갈릴레오의 박해를 보고 두려워했따. 그는 출판은 19년이나 미루고, 방법서설에서도 자기 이름을 표지에 넣지 않았다. 말년에 스웨덴 여왕의 초청을 받아 새벽 5시 강의를 강요받다가 폐렴으로 숨졌다.

    3장

    “평행선 공리가 과연 타당한가?”

    누군가가 2,000년 동안 아무도 던지지 못한 질문을 던진다. 

    수많은 학자들이 평행선 공리를 증명하려다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실수는 공리와 동치인 다른 명제를 전제로 가져다 쓰는 순환논법이었따. 2,000년 동안 수학자들은 이 공리가 전제로 너무 복잡하기 때문에 정리하려 했찌만, 역설적으로 그 시도 자체가 이 공리가 다른 어떤 것과도 독립적이라는 걸 입증하고 있었다.

    가우스는 15세에 혁명적인 꿈을 꿨다. 유클리드의 평행선 공리를 위반하는 논리적으로 일관된 기하학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수십 년에 걸쳐 쌍곡선 기하학을 완성하였으나 발표하지 않았다. 철학자 칸트의 추종자들이 유클리드 공간을 “사유의 불가피한 필연”으로 선언했기 때문이다. 그는 불필요한 논쟁에 노출시키고 싶지 않았다.

    나아가 가우스의 삶은 비극의 연속이었다. 아버지의 무관심, 후원자들은 없고, 첫 아내 요한나는 출산 중 죽는다. 

    비 유클리드 기하학은 결국 가우스와 연결된 두 사람에 의하여 독립적으로 발표되었다. 가우스 사망 후 그의 논문들이 발견되면서 세상에 알려진다. 이후 리만이 강연에서 가우스의 혁명을 완성시킨다. 구면 기하학을 타원 공간으로 해석하고, 공간의 곡률이 더 높은 차원의 공간에 의존하지 않고도 내재적으로 탐구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것이다.

    힐베르트는 이후 유클리드 체계 전체를 재건한다. 정의되지 않은 용어 8개와 공리 20개로 유클리드가 암묵적으로 전제한 것들을 모두 명시한다. 이렇게 수학은 물리적 현실의 반영이 아닌, 공리 체계로부터의 논리적 도출 게임이 되었다. 하지만 괴델이 불완전성 정리를 증명하면서 수학의 기초론 전체가 흔들린다.

    여기서 <유클리드의 창>은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를 가볍게 다뤘다. 첫 번재 불완전성 정리를 다루었지만 두 번재 불완전성 정리를 다루지 않았다. 사실 두 번째가 더 날카롭운데 말이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수학의 철학>, (아카넷 2002)에서 볼 수 있는데, 현재는 절판된 책이다. 아래는 <유클리드의 창>이 다루지 않은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에 관한 이야기를 보충한 내용이다. 이공계 학부 생이면 토끼와 거북이처럼 다 아는 이야기를 굳이 더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나에게는 이 부분이 너무 너무 재미있거든.

    20세기 초 수학자인 다니엘 힐베르트는 힐베르트 프로그램을 제시한다. 

    1. 수학 전체를 하나의 형식적인 체계(공리+규칙)으로 포착할 수 있다.

    2. 그 체계가 모순이 없다는 것을 수학 자체의 방법으로 증명할 수 있다.

    3. 어떤 수학적 명제든 참인지 거짓인지 결정할 수 있다.

    형식주의자라 할 수 있는 힐베르트에게 이는 지극히 합리적인 목표였다. 인류 역사상 최고의 천재라 불리는 폰 노이만도 형식주의자였다. 이들의 논리를 정리하자면 수학을 기호들의 게임으로 구축한 다음, 그 게임이 자기 모순에 빠지지 않음을 보이면, 수학의 기초가 완벽하게 정당화된다는 것이다. 

    <유클리드의 창>에서도 다룬 내용이지만 괴델의 첫 번째 불완전성 정리는 이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산술을 포함하는 어떤 형식 체계일지라도, 그 체계가 모순이 없는 한, 그 체계 안에서 참이지만 증명할 수 없는 명제가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이다. 

    힐베르트는 참인 명제는 모두 언젠가 증명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었따. 공리와 규칙이 충분히 갖춰진 체계면 그 안에서 참인 것은 모두 꺼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괴델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아무리 정교한 체계를 만들어도 그 체계의 규칙으로는 닿을 수 없으나, 분명히 참인 명제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고로, ‘참이다’와 ‘증명 가능하다’는 같은 말이 아니다. 

    여기서 두 번째 정리가 더욱 날카롭다.

    힐베르트의 또 다른 목표는 형식 체계가 모순이 없다는 것을 그 체계 자신이 증명하는 것이었다. “우리 규칙이 문제가 없다는 것을 우리 규칙으로 보여줄게.” 같은 식이다. 괴델의 두 번째 정리는 이것도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어떤 형식 체계도 자기 자신이 모순이 없다는 사실을 자기 자신 안에서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판사가 자기 재판의 공정성을 자기 스스로 판결하는 꼴이라 볼 수 있다. 그 판결이 맞다 하더라도 판결 자체의 신뢰성은 법정 밖에서 보증될 수 있다. 힐베르트는 수학이 스스로의 안정성을 스스로 보증할 수 있다고 믿었으나, 괴델은 그것이 원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걸 증명했다.

    괴델이 보여준 두 개의 불완전성 정리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수학적 진리는 형식 체계의 산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체계는 진리의 일부를 포착할 뿐이며, 언제나 체계 밖으로 빠져나오는 진리가 있다는 것이다. 체스의 규칙을 아무리 정교하게 만들어도 그 규칙으로는 도달할 수 없으나 분명히 가능한 국면이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다. 힐베르트는 수학을 기호의 게임 안에 완전히 가둘 수 있다고 믿었으나, 괴델은 완전히 가둬놓은 우리가 근본적으로 샐 수밖에 없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렇게 수학은 스스로를 완전히 정당화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가 흥미로운 이유는 괴델이 당시 주류였던 형식주의를 무너뜨렸다는 것만이 아니다. 인류 역사상 최고의 천재라 불리우는 폰 노이만은 괴델의 첫 번째 불완전성 정리를 듣자마자 그 논리를 바로 이해하고 두 번째 정리를 유도해냈다. 그런데 괴델이 이미 그것을 증명해놓고 출판 준비 중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군말 없이 자신의 두번째 정리를 철회했다. 폰 노이만이 천재 이상이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신과 반대 되는 주장을 그 자리에서 거부하는 게 아닌, 스스로 검증해보고 확인하는 태도를 갖췄기 때문이다.

    이런 식상한 이야기를 다룬 이유는 이 이야기가 과거의 나에게는 큰 울림이었고, 뼈 아픈 반성을 안겨주었다. (물론 이거 하나로 바로 반성하진 않는다. 최진석 교수님이 말씀하시는 '정해진 마음'처럼 이와 유사한 이야기를 자주 접하다보면 자연스럽게 큰 울림이 되고 반성하게 된다. 사람이 바뀌려면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무튼, <유클리드의 창>에서 다뤄지지 않은 게 아쉬워서 그냥 추가해봤다.

    여담이지만, 폰 노이만이 보여준 태도는 기본학교의 김문수 교수님에게서도 엿볼 수 있었다. 그래서 과거의 나는 다소 건방지게, 김문수 교수님께 일화를 담은 책을 써달라고 권한 적이 있었다. 리처드 파인만보다 더 매력적이고 훌륭한 천재들이 즐비함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천재'라는 단어를 들으면 리처드 파인만을 먼저 떠올리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는 다른 천재들보다 많은 책을 남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을 써달라고 한 것이다. 김문수 교수님의 태도가 앞에서 다룬 폰 노이만 이야기 못지 않게 큰 울림을 주거든.

    4장

    이 장은 에테르에 대한 내용을 다룬다. 빛이 파동이라면 전파되는 매질이 있어야 한다는 논리에서 에테르가 나왔다. 맥스웰은 전자기 이론을 완성하면서 에테르 속을 움직이는 지구의 속도를 측정하는 실험을 구상했고, 마이컬슨이 이를 실험했다. 결과는 아무것도 없었다. 차이가 검출되지 않았던 것이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으나 도화선이 켜졌다.

    로렌츠와 피츠제럴드는 에테르를 살리기 위하여 물체가 운동 방향으로 수축한다는 가설을 내놓는다. 푸엥카레는 빛의 속도가 우주의 속도 한계일지도 모른다고 추측한다. 아무도 전체 그림을 보지 못한 것이다.

    여기서 아인슈타인이 무언가를 보았다. 특수 상대성 이론의 출발점은 두 공리였다. 

    1. 등속운동은 정지와 구별되지 않는다.

    2. 빛의 속도는 관찰자의 운동 상태와 무관하게 우주의 모든 관찰자에게 동일하다.

    아인슈타인은 위 두 가지 가정을 무조건 참이라고 가정한 뒤에 논리를 전개했따. 그러자 상식을 부수는 결론들이 우수수 쏟아져 나왔다.

    1. 나에게 동시에 일어난 두 사건이 빠르게 움직이는 다른 사람의 눈에는 동시에 일어난 것이 아닐 수 있다는, 동시성의 상대성

    2.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는 길이가 찌그러지듯 짧아진다.

    3. 빠르게 움직일수록 시간의 흐름은 고무줄처럼 늘어나 더 느리게 흘러간다.

    그렇게 유명한 공식인 E=mc^2 이 탄생하면서 질량과 에너지는 결국 형태만 다를 뿐 같은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일반 상대성 이론은 여기서 더 나아간다. 중력이란 힘이 아니라 질량에 의해 시공간이 휘어지는 현상이다. 물질이 공간을 휘고, 휜 공간이 물질의 운동을 결정한다. 이를 표현하기 위해 아인슈타인은 리만의 기하학을 필요로 했다. 가우스와 리만이 수학적 유희처럼 만들어 놓은 추상적 도구가 우주의 물리적 실체를 기술하기 위한 언어로 사용된 것이다.

    수성의 근일점 이동 문제를 시작으로 빛의 중력 편향, 중력파 등등 이 모든 예측들이 확인되었다.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이 장에서 가장 매력적인 점은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을 도출하는 구조가 유클리드의 정리와 유사하다는 점이다. 유클리드는 누구나 참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최소한의 절대적 전제를 깔아두고 논리적인 추론만으로 기하학적 정리를 도출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또한 두 가지의 공리를 선언해놓은 다음에 도출했기 때문이다.

    5장

    이 장은 끈 이론을 다루고 있따.

    양자역학, 일반 상대성 이론은 검증되었지만, 서로 충돌한다. 양자역학은 플랑크 길이 규모의 공간에서 요동을 예측하고, 아인슈타인의 이론은 충분히 작은 공간은 근사적으로 평평해야 한다고 한다. 이는 둘 다 옳을 수가 없다.

    슈바르츠는 1970년대부터 끈 이론에 매달렸다. 입자들이 점이 아니라 작은 끈이라는 이 이론은 0보다 작은 확률, 허수 질량 등의 난처함을 품고 있었다. 물리학계는 이를 대놓고 비웃었다. 리처드 파인만은 그를 향해 “오늘은 몇 차원 속에 계시나?” 라고 조롱할 정도였다.

    하지만 슈바르츠와 그린은 주요 결함을 제거하는 데 성공하였고, 위튼이 다섯 가지 상이한 끈 이론 모두가 M-이론이라는 하나의 더 큰 이론의 근사적 형태임을 선언한다. M-이론에 의하면 하나의 더 큰 이론이라고 지각하는 것은 행렬이라는 수학적 배열의 근사치에 불과하고, 어떤 근본적인 의미에서 시간과 공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유클리드 이래 가장 획기적인 공간 개념 변화다. 하지만 실험적 검증이 이루어지지 않았따. 

    저자는 자신이 젊은 시절 위튼과 같은 학교를 다녔다는 사실이 이 장을 더 흥미롭게 만든다. 어느 교수는 저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네는 똑똒하지만 에드 위튼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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