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곡, 날조의 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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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오웰의 <1984>는 말한다.
"우리는 누구나 사실이 아니라고 알고 있는 것들을 믿어놓고는 나중에 그것이 잘못이라고 밝혀지면 뻔뻔하게도 자신이 옳았음을 입증하기 위해 사실을 왜곡할 수 있따. 지적으로는 이 과정이 한없이 계속될 수 있다. 이를 제지할 유일한 요소는 잘못된 믿음이 머지않아 부정할 수 없는 진실에, 대개는 전장에서 맞닥뜨리는 것이다."
조지 오웰의 통찰은 현대 사회에서 여전히 유효하다. 왜곡과 날조가 드러났음에도 정신승리하며 박박 우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각종 언론인, 정치인은 거짓임이 명백히 드러났음에도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여 정신승리하기 바쁘다. 세상과 자기 자신을 왜곡된 시선으로 날조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왜곡과 날조를 작동시키는 엔진은 무엇일까?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 자기정당화(self-justification)가 아닐까??
인지부조화라는 엔진
인지부조화는 자신의 신념과 행동 또는 결정이 서로 상충할 때 겪는 불편한 심리적 상태를 의미한다. 인간은 자신이 세상과 본인을 이해하고 설명하려는 욕구와 스스로를 논리적이고 일관된 존재로 여기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다. 하지만 본인의 신념과 행동이 충돌할 경우 이 일관성이 박살나, 심리적 긴장상태가 발생한다. 이러한 긴장 상태는 심적으로 커다란 불편함을 안겨준다. 심적인 불편함은 단순 내적 갈등에 그치지 않고, 자아존중감에 대한 위협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특히 본인이 똑똑하고 도덕적이며 합리적이라고 믿는 사람일 수록 인지부조화는 더욱 심화되며, 자신의 행동이 자아 이미지를 손상시킨다면 이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로 다가온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가짜뉴스를 유포했는데,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증거가 명백하게 드러난다면 그는 심리적 갈등을 느끼게 된다. 솔직한 사람은 "내가 잘못 알았구나." 라고 인정할 수 있으나, 이는 자신의 지성을 부정하는 일이므로 자존감을 위협하게 된다. 그래서 몇몇은 이러한 위협을 피하고자 다양한 방법으로 부조화를 해소한다. 그리고 그 끝에는 결국 정신승리다.
예를 들어, "가짜뉴스를 유포해놓고 사실이 아님이 밝혀진 경우를 생각해보면, 일부는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게 아닌, "이 정보가 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아. 지금 내가 추구하는 대의가 정당해." 같은 식으로 정신승리를 한다. 이는 자신이 전달한 정보의 진실성이 아니라, 그 정보를 받치고 있는 있는 맥락이나 의도를 강조하여,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여기서 진실은 부차적인 문제가 되어버리고 본인이 옳다고 느끼는 대의를 부각하여 본인이 느끼는 부조화를 해소한다.
또 다른 정신승리 방법으로는 자신의 행동과 신념이 상충할 때, 자신의 신념을 더욱 고수한다. 이는 반대되는 증거를 의도적으로 외면하거나 잘못된 것으로 간주하면서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왜곡, 날조한 사실이 드러난 상황에서"그런 주장은 내 신념을 흔드려는 음모야." 같은 식으로 자신의 신념을 고수하는 것이다. 이러한 행동은 본인이 품고 있는 신념과 상반되는 증거를 외면하고 자신의 믿음을 공고히하는 방식으로 부조화를 줄인다.
자기정당화라는 엔진
자기정당화는 자신의 잘못이나 실수를 인정하기 어려울 때 작동하는 심리적 기제다. 자신의 행동과 결정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스스로 똑똑하고 윤리적인 사람으로 간주하려는 자아 이미지를 유지하고픈 욕구에서 비롯된다. 자기정당화는 주로 자신의 행동이 누군가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거나 잘못된 결과를 초래했을 때 작동한다. 이는 무의식적으로 작동하는 경우가 많아, 정당화를 시도하는 당사자조차도 자신의 의도를 명확하게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자주 볼 수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을 긍정적으로 보고 싶어 한다. 그래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본인이 추구하는 자아 이미지에 위협을 가하게 된다.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자신의 판단이 부족했거나 행동이 부도덕적이었다는 것을 수용하는 일과 같다. "나는 똑똑하고 바른 사람이야." 같은 내적 신념을 손상시키기 때문에 심적인 불편함이 따라올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잘못을 인정하는 대신, 자신의 행동이 옳았다는 이유를 만들어낸다. 예를 들어 "나는 충분히 합리적이었다.", "나는 그 상황에서 최선의 결정을 내렸어." 같은 정신승리로 자신의 자아 이미지를 보호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왜곡, 날조, 가짜뉴스 유포자는 "당시에는 진짜로 보였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거야." 같은 식으로 자신의 행동을 합리적이고 타당한 선택으로 정당화하는 방식이다. 그렇게 본인의 기억을 왜곡하고 잘못된 행동을 반복적으로 정당화하는 걸 넘어, 몇몇은 자신의 기억까지도 조작하여 자신이 한 행동을 더욱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엔진을 작동시키는 확증편향
인지부조화와 자기정당화가 일상화 되어 있는 사람들은 기존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고, 자신과 반대되는 정보는 무시하거나 의도적으로 왜곡한다. 이를 확증편향이라 한다. 자신의 믿음을 강화하고 새로운 정보는 외면하는 것이다. 가짜뉴스를 퍼뜨려 놓고, "이건 사실이 아닐 수 있지만, 본질은 진실이야." 같은 주장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고수하는 것이다. 이러한 확증편향적 사고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을 수록 교정하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그 이유는 자신의 행동에 시간과 노력을 많이 투자할 수록 그 행동을 정당화하려는 경향이 강해지기 때문이다. 이는 경제학, 심리학에서 자주 다뤄지는 "매몰 비용 오류(Sunk Cost Fallacy)"를 통해 이해할 수 있다. 이미 투자한 자원을 회수하려는 심리적 경향으로 인해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는 현상을 뜻한다. 예를 들어, 가짜뉴스를 유포한 사람이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여러 번 논쟁을 벌이고, 자신의 의견을 방어하기 위해 추가적인 자료를 찾느라 시간을 쏟았다면, 본인이 틀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더 어려워진다.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그동안의 모든 투자와 노력이 무의미해진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매몰비용 효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현재를 기준으로 판단을 내려야 한다. 다시 말해, 매몰비용이란 이미 지나간 것이므로 고려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심리학적으로도 과거의 선택은 그대로 받아들이고 새로운 정보를 바탕으로 의사결정하는 능력과 자질을 키워야 한다.
마치며
누군가는 잘못을 인정하는 것을 패배라 생각할 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와 문화는 다르지만 지구 반대편 미국의 역사를 보면 꼭 그렇지 않다. 미국의 42대 대통령 빌 클린턴의 섹스 스캔들은 당시 미국 사회에서 큰 파장을 일으켰다. 그가 탄핵 소추를 당한 이유는 섹스 스캔들 그 자체가 아니라, 대배심에서 거짓 증언을 했기 때문이다. 클런턴의 친구인 정치 컨설턴트는 솔직히 인정하고 용서를 구할 것을 충고했다. 클린턴은 친구의 뜻을 따라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하자 여론은 잦아들었다. (물론 미국 서구권 특유의 사생활과 정치적 성과를 분리하려는 태도에서 비롯된 것도 무시할 수 없다.) 진실을 직면하고 용서를 구하는 태도가 불신사회를 신뢰사회로 바꾸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다.
왜곡과 날조의 엔진인 인지부조화와 자기정당화는 인간에게서 나타나는 본능적인 심리적 기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를 단순하게 여겨선 안 된다. 이미 우리 사회에서 날조와 왜곡을 일삼는 일들이 암덩어리처럼 불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작동하는 자기정당화와 인지부조화라는 엔진은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지 않고 이를 더 강하게 고수하게 만들며, 왜곡, 날조된 정보가 사회로 퍼지는 데 일조하게 만들 것이다. 하지만 이 엔진의 작동원리를 이해하고 의식적으로 통제하려는 노력을 한다면 사회적 문제 뿐만 아니라, 더 성숙된 개인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빌 클린턴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패배가 아니라 성숙의 과정이다. 용기를 갖춘 개개인이 이루는 사회야 말로 진정 건강한 사회에 가깝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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