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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도덕 논란에 관한 것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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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박성진 (121.♡.160.219)
    댓글 댓글 7건   조회Hit 544회   작성일Date 24-11-16 17:24

    본문

    () () '무엇으로 정의 내릴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어떠한 관점으로 도덕을 바라보는가'에 따라 차이가 발생한다. 고로 논쟁이 벌어지지 않으면, 그것이 더 기이한 현상이다. 이에 부도덕에 대한 여러 관점을 아래와 같이 정리해본다

     

    [부도덕에 대한 여러 관점: 4가지]

    1. 덕 윤리의 관점에서 부도덕은 도덕적 ''의 결여이다. 도덕적 행위란 인간으로서의 '최선의 상태'를 실현한 것이며, 부도덕은 이러한 중용(中庸)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고로 '중용의 상태'에 대한 개인 간의 합치가 명확하게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부도덕을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2. 도덕성을 의무와 보편적 원칙에 따라 바라보면, 부도덕은 이성적으로 보편화될 수 없는 행위, 즉 칸트의 '정언명령'을 위반하는 행위일 수 있다. 따라서 부도덕은 윤리성의 법칙에 대한 적극적 위반을 의미할 수 있다.

     

    3. 공리주의 관점에서 부도덕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감소시키는 행위이다. , 부도덕은 개인이나 사회에 부정적 결과를 초래하는 어떠한 특정 행위일 수 있다.

     

    4. 대도폐언유인의(大道廢焉有仁義), 대도(大道)가 쇠퇴하자 인의(仁義)가 나타났다. 도덕의 출현이 오히려 인간의 본성을 억압한다. 도덕적 판단에 매몰되어 절대적 가치를 부여하면, 인간은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 노자의 관점에서는 부도덕이 '인위적인 도덕과 법률에 의해 왜곡된 상태'라고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도덕을 살펴보자면, 니체의 '노예 도덕'이 떠오른다. 인간은 타인의 억압 속에서 자신의 열등감 혹은 무력함을 정당화하기 위해 도덕이라는 가치 체계를 구축한다. , 강자 혹은 패권이 있는 곳의 행동에 대한 반작용으로 '' ''을 정의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렇기에 감각적 사고를 바탕으로 다소 사회에 불편을 초래할 수 있는 여러 행동을 '부도덕'으로 규정하기도 한다.

    *노예 도덕이 단순히 약자의 자기 정당화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억압 받는 사람들이 생존하기 위해 선택한 윤리체계로서 그 유용성과 한계가 공존한다.

     

    반대로 '주인 도덕'의 경우, 강력하고 창조적인 사람들이 만들어낸 가치 체계로 '' ''을 외부 기준이 아닌 자신의 관점에서 정의한다그렇기에 소수의 누군가는 타인이 주장하는 부도덕에 대한 관점을 신경 쓰지 않고, 기존의 도덕에 벗어나는 불편함을 초래하기도 한다. 부작용으로는 그들의 도덕 체계가 특정 집단의 억압이나 착취로 이어질 수 있다. 

     

    기존에 만연해 있는 도덕의 기준에서의 단순 확장이 새로운 도덕이 될 수 있지만, 기존 도덕 체계가 자신이 바라본 인간의 본질적 가치에 반한다면, 그것이 부도덕으로 보일지라도 세상에 불편함을 초래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고 구현해야 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생기는 도덕적 공백에 대한 성찰도 필요하다

     

    니체의 철학은 네이밍에서부터 오는 불편함이 있을 수 있다. 우리는 노예제도에서 해방되었지만, 과거 절대 인구 총계 대비 양극화는 심화되었고 더욱 심오해진 인비져블 노예제도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자유와 도덕의 경계 속에서 어디를 더욱 바라볼 것인가?


    -


    P.S

    현대 사회에서는 표현의 자유가 타인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 않더라도 간접적인 해악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으면 부도덕으로 간주한다. 이에 표현의 자유가 잠재적 피해를 고려하게 된다면, 그것은 이미 자유에서 이탈 된 것이다.

     

    장 자크 루소의 <사회계약론>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지만, 어디서나 사슬에 묶여 있다." 

     

    도덕이라는 사슬에 묶이지 않고자 늘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자 하는 기본학교 동지분들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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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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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만이님의 댓글

    경만이 아이피 (123.♡.33.101) 작성일 Date

    마지막 줄에서 무릎을 탁 쳤습니다ㅠㅠ
    내가 이래서 기본학교를 좋아했구나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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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진님의 댓글의 댓글

    박성진 아이피 (121.♡.160.219) 작성일 Date

    경만님 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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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창훈님의 댓글

    이창훈 아이피 (211.♡.4.136) 작성일 Date

    성진 형님 안녕하세요 :)

    4번 관점에서 대도(大道)의 '도'는
    도덕(道德)의 '도'가 아닌지요!

    "대도폐언유인의"는
    "큰 도(덕)이 쇠퇴하자 인의가 나타났다"고 읽어야 하지 않을까요.
    도덕이 사라지자 인간의 본성이 억압되는 상황으로 보입니다!

    도교 유교 등 중국 철학에서 "도"라는 개념은
    불교의 "공"과 같이
    (옳다 그르다 바르다 나쁘다 판단하기 이전의)
    이 세계의 모든 것이 (또는 세계 자체가) 존재하는 방식에 가깝습니다.

    서양 철학을 번역하느라 빌려 쓴 "도(덕)"과는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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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진님의 댓글의 댓글

    박성진 아이피 (121.♡.160.219) 작성일 Date

    창훈님 반가워요!

    “도덕이 사라지자 인간의 본성이 억압되는 상황으로 보입니다.”
    저의 글이 그렇게 읽힌다는 것인지, 저렇게 보아야 한다는 것인지 조금 헷갈립니다. 전자든 후자든, 반대로 이해하신 것 같습니다.

    우선 대도폐언유인의의 ‘도’는 창훈님께서 말씀하신 '세계 자체가 존재하는 방식의' 의미가 분명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위자연의 도가 없어지자, 옳고 그름의 인위적 분별이 생겼다.’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을 곧 ‘도덕의 출현이 인간의 본성을 억압한다’로 연결됩니다. 제가 중간 연결고리를 생략했군요.

    결국, 여기서 서양 철학의 도덕은 ‘대도’가 아닌 ‘인의’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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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창훈님의 댓글의 댓글

    이창훈 아이피 (211.♡.4.136) 작성일 Date

    (도와 덕이 세계 자체가 존재하는 방식이라면)
    '인', '의'도 인간의 본성이겠지만
    '도', '덕'은 그보다도 더 뿌리 깊은 인간의 본성입니다.

    인: "네 말이 이치에는 맞는데, 너가 사람이면 형님한테 그따위로 말해도 돼?"
    의: "너가 잘하는 건 알겠는데, 아무리 그래도 누구 찍어 누르는 건 의롭지 않잖아!"

    '인', '의'라는 얕은 본성이 출현하자
    '도', '덕'이라는 깊은 본성이 억압되는 것입니다.

    (또는 '도'와 '덕'의 두께가 얕아 '인'과 '의'가 끼어들 틈이 생기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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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진님의 댓글의 댓글

    박성진 아이피 (121.♡.160.219) 작성일 Date

    인의를 본성으로도 볼 수 있겠지만, 이 한자성어의 맥락에서는 인위적 윤리규범 쪽이 더 가깝다고 생각이 드네요. 마지막 문구의 필력에 감탄하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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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창훈님의 댓글의 댓글

    이창훈 아이피 (211.♡.4.136) 작성일 Date

    문장을 쓰고 나니 제 '도'와 '덕'을 더욱더 두텁게 쌓아야겠다는 각오가 부끄러움과 함께 솟아 나더라구요!

    형님 덕분에 생각을 새로 쌓아 올렸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