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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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대중은 개 돼지입니다." 이는 유명한 영화 대사이자, 고위 공무원 N씨의 발언이기도 하다.
이 말은 대중을 정치적으로 무지하고, 충동적이고 우둔다하는 뜻을 담고 있다. 이러한 편견은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가치와 정반대 방향으로 흘러가게 만드는, 엘리트 중심적인 시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생각의 점유율이 높아진다면, 엘리트와 민중 사이의 분열로 이어져, 포퓰리즘이 등장한다. 그렇게 등장한 포퓰리즘에 대중들이 휘둘리기 시작하면 대중의 정치적 의사 결정 능력에 대한 신뢰도도 떨어질 것이다. 이 포퓰리즘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은 어디에 있을까? 최진석 교수님이 거듭 강조하시는 생각하는 시민이다.
계층 차별적 시각이 낳은 포퓰리즘에서 생각하는 시민으로
사실 대중, 민주주의에 대한 불신은 민주주의의 역사에서 자주 등장한다. "어차피 대중은 개 돼지입니다." 와 같은 대사가 영화에 등장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 말의 구조는 대중을 비판적 사고로만 무장하고 행동하지 않는 집단으로 분류해놓고, 엘리트는 개방성, 총명성으로 무장시켜 놓았다. 이러한 편견은 대중을 부정적인 집합체로 여겨, 대중의 정치적 역량 그리고 기여도를 폄하하게 되어, 계층 차별적 시각을 더욱 공고히 한다.
"어차피 대중은 개 돼지입니다"와 같은 발언의 문제는 민중을 이루고 있는 복잡성과 다양성은 간과하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각 개인이 품고 있는 정치적 의사 결정 능력과 기여를 과소평가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대중을 단순화하고 일반화하게 되는 순간, 사회, 경제적인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모색하지 않고 모든 것을 대중을 향해 손가락질 하게 된다.
그렇게 민중을 향한 부정적인 시각으로 이루어진 엘리트 중심적인 태도는 포퓰리즘을 낳는다. 요즘의 포퓰리즘은 엘리트의 독선과 민중을 무시하는 반발심으로 등장할 수 있으며, 사회 내 계층 간의 긴장과 분열을 더욱 심화시킨다.
'포퓰리즘'과 '민주주의'라는 용어는 모두 '국민' 또는 '민중'이라는 공통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이들이 향하는 방향은 차이가 있다. '포퓰리즘'은 민중, 대중을 뜻하는 라틴어 포풀루스(populus)에 뿌리를 두고 있다면, '민주주의'는 보통 사람을 뜻하는 그리스어 데모스(demos)에 뿌리를 두고 있다. '민주주의' 는 보통 시민 전체의 권리와 참여를 강조하는 정치 체제를 의미하며, 권력의 근원이 모든 시민에게 있다는 방향을 두고 있다. 하지만 '포퓰리즘' 은 다르다. 과도한 민족주의적 또는 노동자중심적인 방향으로 사회적 대립을 조장하는 정치적 전략에 가깝다. 아이러니하게도 사회, 경제적 문제에 대한 단순한 해결책을 제시하여 복잡한 문제를 외면하게 만든다. 이어서 이는 특정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는 듯하지만 하지만 실은 권력의 집중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경향이 있다. 민주주의는 다양성 포용, 권력 분산, 시민의 광범위한 참여와 권리 보장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우리는 과도한 계층 차별주의적인 시각에 대해 저항해야 할 필요도 있지만, 이로 인해 등장하는 포퓰리즘의 등장에 대해서도 저항해야 한다. 민중과 엘리트 사이의 건설적인 대화와 협력을 장려할 수 있는 길은 어디에 있을까? 결국 그 길은 생각하는 시민이 아닐까? 그 길을 향한다면, 사회적 분열을 극복하고 모든 시민이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진정한 민주주의에 닿을 수 있을 것이다.
생각하는 시민이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전통적인 도덕과 종교적 가르침이 지배하던 정치 사상을 향한 공격에 가까웠다. 권력의 본질 그리고 정치적 행동에 대해 현실적인 접근을 하여,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가장 큰 논란은 정치적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을 선택할 때 도덕적 판단이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일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일반 시민과 사회 엘리트 사이의 대립 구조에 대해 보다 냉철하게 분석하였다. 그리고 이 대립을 정치 체제의 동력으로 보았다. 엘리트는 지배, 대중은 저항한다는 그의 생각은 권력과 정치적 변화를 깊게 들여다 본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대립은 여러 정치 체제의 형태로 변주하게 만드는 힘이다.
마키아벨리는 시민들이 지향하는 목표가 엘리트의 목표보다 더 정직하다고 보았다. 엘리트는 권력과 부를 유지하고 확장하려는 경향이 있어, 시민들을 억압한 것으로 보았다면, 시민들은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에 살고자 하는 욕구를 갖고 있었다. 그래서 마키아벨리는 권위적인 군주제가 아닌, 공화정이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에 더욱 적합하다고 보았다.
사실 마키아벨리의 대표적인 저서는 <군주론>이지만 그의 깊은 생각은 <로마사 논고>에 더 많이 담겨져 있다. 그는 평화로운 사회의 이상을 신화로 바라보았다면, 계급 간의 대립과 반복이 자유의 근간으로 해석하였다. 이러한 대립이 없으면 자유를 수호하는 법과 제도는 탄생할 수 없다고 보았다. 다시 말해, 스스로 생각하는 시민들의 참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 번 강조한 셈이다. 시민들이 자신들의 요구사항과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법적 체제의 구축은 사회적 정의와 자유를 보장하는 데 매우 필수적이다. 그리고 시민들은 요구사항과 권리를 주장할 때 과도한 도덕적 판단은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
내가 생각하는 마키아벨리는 단순 권력의 획득 유지 뿐만 아니라 사회 내에서의 자유와 정의를 어떻게 유지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지에 대해 고민했고, 그 답을 생각하는 시민으로 내렸다. 최진석 교수님 또한 "비범한 인물은 평범한 보통사람들의 대척점에 서 있는 툭수한 엘리트가 아니다. 사람이라면 누군가 가지고 있는 비범함과 고유함을 깨친 일반 시민의 또 다른 이름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비범함과 고유함을 깨친 일반 시민은 누구인가? 결국 생각하는 시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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