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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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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한상도 (210.♡.149.16)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3,175회   작성일Date 23-06-06 17:45

    본문

    민지는 어릴적부터 체스를 좋아했다.

    체스를 둘 친구가 주변에 없다보니, 엄마를 졸라 체스 학원에 등록했다.

    ‘미당체스학원’의 원장 선생님은 친절했고, 민지는 그런 선생님과 체스를 두는 것을 좋아했다.

    수업 시간에 배우는 것들도 신선했고, 점점 자신의 실력이 자라나는 것도 즐겼다.


    그러던 어느 날, 새로운 친구가 학원에 들어왔다.

    민지와 동갑인 지혜는 체스에 대해 잘 몰랐다. 왠지 관심있어 하지 않는 듯 보였다.

    다만 지혜의 어머니가 체스 드라마 ‘퀸즈 갬빗’을 인상깊게 보았다는 것은 원장 선생님을 통해 알고 있었다.


    민지는 동갑내기 친구가 와서 설레었다. 빨리 지혜와 체스를 두고 싶었다.

    그러나 지혜는 체스에 대해 전혀 몰랐고, 민지는 그런 지혜에게 친절히 가르쳐 주었다.

    지혜는 떠듬떠듬 하나씩 배워갔지만, 왠지 몹시 긴장하는 듯 보였다.

    연습 경기에서 지기라도 하면 지혜는 울먹울멱하며 스트레스를 받았고, 민지는 늘 져 주었다.


    민지의 헌신 덕에 지혜는 학원에 잘 적응했고, 조금씩 체스에 대해 알아갔다.

    지혜가 한달 즘 다니고 나니, 원장님이 레이팅이 무엇인지 알려주었다.

    레이팅이란, 체스를 두는 사람의 실력을 수치화 한 것으로, 초보는 300점, 중수는 1000점, 고수는 2000점 대의 점수를 받을 수 있다고도 설명했다.


    원장 선생님은 인터넷 체스 사이트에 들어가서 20명 정도와 무작위로 경기를 하고 나면 사이트에서 알고리즘 계산을 통해 자동으로 레이팅을 매겨주니, 한번 해보자고 했다.

    테스트 결과, 민지는 800점대였고, 지혜는 300점대의 레이팅 점수를 받았다.

    지혜는 울먹였고, 민지는 그런 지혜를 바라보았다.


    다음 날, 지혜의 어머니가 학원에 방문했고, 지혜의 표정은 굳어있었다.

    지혜와 체스를 둘 생각을 하고 있었던 민지는 체스는 두지 않고 책만 보고 있는 지혜를 보고 깜짝 놀랐다.

    체스의 이론과 전술에 대해 공부를 하는 모양이었다.

    같이 체스를 두자고 해도, 지혜는 전술 공부를 해야 한다며 거절했다.


    지혜는 늘 온라인 체스를 두었다. 속도는 더뎠지만 레이팅은 차근차근 올랐다.

    세 달 즘 지나자, 지혜의 레이팅이 900점에 도달했다. 민지는 인터넷 체스를 또 둔 적은 없어 800점 그대로였다.

    지혜는 학원에 와서 민지에게 체스를 두자고 했다. 민지는 기뻤고, 둘은 체스를 두었다.

    몇 수를 두고 나니, 지혜는 민지가 알 수 없는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세미-클로즈 게임이네, 나는 킹즈 인디언 디펜스가 익숙하지”


    아마도 자기가 공부한 내용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듯 했지만, 민지는 알아듣지 못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민지는 지혜가 강해졌다는 것을 느꼈다. 특히 초반의 몇 수가 위협적이었다.

    결국 지혜가 승리했고, 민지는 지혜의 성장에 놀랐다. 지혜는 왠지 굉장히 뿌듯해 하는 것 같았다.

    지혜는 “다음에는 플랭크 오프닝으로도 한번 해봐야지” 라며 혼잣말을 했다.


    민지는 지혜의 성장에 자극을 받았다. 지혜의 한 수 한 수에 힘이 느껴졌다.

    공부란 참 대단한 것이구나. 민지는 생각했다.

    민지는 오랜만에 느껴지는 패배감에 승부욕이 불타올랐다.

    민지도 오늘부터 온라인 체스를 많이 두어보기로 했다.


    시간이 흐르고, 지혜와 민지는 1100대의 레이팅에 도달했다.

    그들은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성장했고, 누가 더 잘하는지 구분하기는 어려웠다.

    둘은 학원에서 체스를 자주 두곤 했는데, 서로의 플레이에 대해 느끼는 바가 달랐다.

    지혜는 민지가 가끔 엉뚱한 수를 두는 것이 너무 불편했고, 때로는 그것이 승부를 가를 때가 있어서 괴로웠다.

    민지는 지혜가 강한 상대이나, 정해진 수순을 따른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자주 있었으며, 당황할 때마다 무너지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했다.


    어느 정도 성장을 하고 나니, 지혜와 민주는 서로에게 봐주지 않는 상대가 되었다.

    각자 최선을 다했고, 경기는 치열했다.

    원장 선생님은 지혜와 민지의 경기를 보면서 민지가 약간 우위에 있다고 생각했다.

    여러번 경기를 경험할 때마다, 지혜는 민지가 강한 상대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시점부터 민지는 지혜가 머뭇거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기물을 내려놓는 손 동작에 자신이 없었고, 한 수 한 수에 너무 많은 시간을 들였다. 가끔은 시간패로 지는 일도 있었다.

    특히 경기가 끝나고 나면 이기든 지든 책에서 배운 이론을 읊어가며 설명하는 지혜의 모습을 볼 때마다, 지혜에게 체스는 즐거운 활동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지혜는 민지가 공부도 하지 않으면서 실력이 느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간단한 이론에 대해 질문해도 민지는 전혀 대답하지 못했다.

    지혜의 눈에 민지의 경기 방식은 둔탁했다. 아름답고 매끈하지 않았다. 무작스럽다는 생각이었다.

    반면 민지에게는 지혜가 매끄럽게 경기하는 것이 보이지 않았다. 민지는 늘 지혜의 킹을 잡는 것만을 생각했다.


    시간은 흐르고, 어느덧 지혜와 민지는 중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둘 다 1800대의 레이팅까지 도달할 정도로 실력이 많이 올랐지만, 지혜는 학원을 그만두기로 했다.

    과학고를 가기 위해서는 이제 공부에 전념해야 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민지는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10년 뒤, 지혜는 누구나 알 만한 명문 대학교에 입학했다.

    지혜의 인스타그램에는 핫플레이스와 여행사진으로 가득했다.

    민지도 자신의 성적에 맞춰 대학교에 입학했고, 학교생활과 알바를 병행하며 생활했다.

    민지는 종종 체스 동호회도 나가고 체스 유튜브 영상을 찍어 올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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