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사단법인 새말새몸짓
로그인
  • 참여
  • 자유게시판
  • 참여

    자유게시판

    90년대생들의 비밀 : 부도덕함에 대해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변지선 (118.♡.238.33)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731회   작성일Date 24-09-18 05:59

    본문

    영택이는 톰 포스트와 핵티비스트 활동했던 당시의 인터뷰를 마친 뒤, 치열함이 없는 평화로운 일상을 보냈다. 그 이후 톰 포스트의 작품이 성공적으로 출간되었는지, 흥행했는지는 관심이 없었다. 아직까지 본인의 귀에 닿지 않은 것으로 보아, 둘 중 하나는 실패한 게 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택이는 그때의 생각을 다시 정리할 겸 인터뷰 내용들을 일기처럼 들춰볼 때가 있다. 그리고 아래는 톰 포스트와 인터뷰한 내용의 일부다.


    Q. 당신이 보기에 어산지는 어떤 인물이었나?

    A.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슈퍼스타들을 따라다니는 파파라치 정도다. 차이가 있다면 파파라치는 슈퍼스타의 취약한 사생활을 집중 보도하여 관심을 받는다면, 그는 국가의 취약성을 폭로해서 관심을 받은 것이다. 그런데 파파라치보다 더 큰 관심을 받았던 이유는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물결도 무시할 수 없다. 그의 밑에 드리워진 도덕적 우월감이라는 거대한 그림자가 가치를 부풀린 것이다. 사람들이 바라본 어산지의 그림자는 호랑이였지만 실체는 길고양이에 불과하다. 


    Q. 지금도 그를 지지하는 기자들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A. 그럴 수 있다. 우리나라도 범죄를 저지른 정치인, 연예인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러려니 한다. 그런데 어쩌면 그를 지지하는 기자들은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하느라 도덕적 우월감에 찌들어 구체적인 현실을 보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다시 말하자면, 도덕적인 자신의 모습에 매료되어 현실을 외면하고 거울만 보고 살아가는 것이다. 초창기의 어산지는 공익을 위한 폭로로 인정을 받았지만, 추후에는 선택적인 정보 공개를 하지 않았나? 이건 공익이 아닌 사익에 가깝다고 볼 수밖에 없다. 사실 나도 구체적인 내막은 모른다. 그와 깊은 대화를 해본 적이 없어서.


    Q. 당신은 PC주의를 싫어하는 것처럼 보인다. 

    A. 그렇지 않다. 도덕적 사명감, 정치적 올바름 모두 좋다. 그런데 구체적인 현실, 사실을 외면하면 폭력으로 이어진다. 과거 독일은 더 위대한 민족, 국가가 되기 위해 우생학이라는 생물학적 개념을 추종했었다. 얼마나 합리적이고 올바른가? 그런데 우생학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면서 범죄자, 알코올 중독자, 장애인, 노숙자 등 도태된 것처럼 보이는 인간들을 말살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낳았고, 집단 학살까지 이어졌다. 독일뿐만 아니다. 러시아, 중국 일본도 구체적인 현실을 보지 못한 채 도덕적으로 보이는 특정 가치를 맹목적으로 쫓다가 폭력을 낳았다. 정치적 올바름, 도덕적인 것들 모두 좋다. 그런데 구체적인 현실을 외면하면 폭력이 된다. 구체적인 현실을 보지 않고 사용하는 도덕, 이념 사상, 지식은 무고한 사람들을 향한 미사일 폭격에 가깝다. 


    Q. 당신은 부도덕적인가? 

    A. 지금의 나는 매우 도덕적이다. 그런데 큰 꿈을 꾸고 있는 사람들은 부도덕적일 수밖에 없다. 그때 우리의 스케일도 그래서 커진 것이다. 처음 공격할 때는 유명 웹사이트를 스캔 후 보안 취약점을 살폈다. 그 다음 익스플로잇 공격을 통하여 네트워크로 침투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 흥미로운 정보를 살폈다. 그런데 토끼만 사냥하면, 호랑이도 사냥해보고 싶은 호기심이 생긴다. 부도덕적이었던 우리는 .mil이나 .gov 웹주소를 보유한 곳들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도덕적이었다면 이런 곳을 보지도 않았을 것이고 스케일도 커지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침투까지의 과정은 오래 걸린다. 그러니 단순 부도덕함으로는 스케일이 커질 수 없다. 부도덕함 보다 더 큰 호기심, 상상력이 갖춰져야 한다.

    그때 나와 관계를 맺었던 인물도 큰 영향을 끼쳤다. 나와 가까웠던 인물이 안티 화이트 헤커 운동가였다. 그는 내가 아는 화이트 해커들보다 진취적이었다. 그렇게 세상을 바꾼 건 누구였나? 고상한 척하는 도덕적인 화이트 해커였나? 아니면 부도덕적인 우리였나? 물론 화이트 해커분들을 존경한다. 다만 내가 부도덕을 향해 조금 더 긍정적인 시선을 보내는 이유, 도덕적인 초등학생보다 부도덕하고 솔직한 미취학 아동과 대화하는 게 더 재미있는 이유다.


    Q. 어산지의 부도덕함에 대해서는 왜 그렇게 비판적인가? 

    A. 뭐라 정의를 내리기 어렵다. 굳이 답을 한다면 일관성 부족이다. 여기서 일관성은 자신의 추구하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부도덕을 감수할 줄 아는 것이다. 그런 그에게 일관성이 있었나? 나도 깊은 내막은 알 수 없지만, 그는 선택적 정보 공개를 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정보공개라는 가치에 일관적이었다면, 사람들이 메신저를 공격했을까? 특정 언론사가 부도덕한 방법으로 취재해 정부의 민낯을 폭로하는 기사를 작성했어도 추후 가짜 뉴스와 선동적인 뉴스만 남발하면 당연히 메시지가 아닌 언론사를 향해 비판하는 것과 같다. 물론 그는 권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의 필요성을 상기시켰다. 이 지점은 가치 있다. 그런데 그거 하나 잘했다고 나머지 잘못까지 눈 감을 필요가 있나?


    Q. 국가까지 공격하게 된 이유도 부도덕함이었나? 

    A. 맞다. 호기심과 부도덕함이다. 생각해 보면 별거 없다. 아프리카나 남미는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보안망이 허술해서 쉽게 해킹할 수 있었다. 몇몇 페이지에서는 SQL오류가 발생했는데, 여기에 SQL 구문을 넣으면 데이터베이스를 빼갈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해당 정부와 관련된 인물들의 데이터를 손에 넣었다. 그 이후 우연히 어산지가 우리에게 접촉을 시도하게 되었고 우리는 북부 아프리카 지역의 국가 정보를 심층적으로 탈취했다. 그중에서도 군인들 정보는 별 필요가 없더라. 군인들은 부가적인 인증 절차를 밟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따분하게 이메일을 수집하고 관련 내용들을 살펴보다, 부정부패 관련 문건을 발견해서 시작하게 된 것이다.


    Q. 당신은 어산지와 생각이 많이 다른 것 같다. 프로젝트는 어떻게 같이 했나? 

    A. 시작만 같이 했고 끝은 함께하지 못했다. 우리는 사막에서 꽃이 피어나고, 나비가 춤을 추며, 개구리가 노래하는 풍경을 그리려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보공개를 통한 선동뿐만 아니라, 우리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시민단체를 지원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정보공개를 통한 유명세를 얻으려고 할 뿐, 시민단체를 향한 지원까지 고려하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익명의 존재였기에 신뢰가 부족해서 그렇게 반응한 것일 지도 모른다. 그래도 불을 우리가 지폈으니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가 한 것은 무책임한 돌팔매질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시민단체와 조용히 소통하고, 서방에 공유하며 모금 활동을 했다. 내 입으로 말하기 그러지만, 그는 도덕적 우월감에 심취하기만 할 뿐 책임을 끝까지 다하지 않았고, 나는 우월감을 누리지 않고 책임을 다했다. 사실 내 과거도 당당하지 않다. 다만 그때 당시 누가 더 윤리적이었냐 묻는다면 나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투표를 한다면, 내가 65: 35 정도로 이길 것이다.


    Q. 그때 당시 모든 국가에 자금 지원을 한 것인가? 놀랍다. 

    A. 아니다. 그 정도의 스케일을 감당하기엔 능력도 인력도 부족했다. 당시 우리의 유명세 때문에 내부 스파이가 잠입할 수 있어 추가 인원들을 모집할 수 없었다. 추후 당신을 통해 알게 되었지만 그때 즈음 비밀채팅방에 FBI의 시녀가 된 인물이 있지 않았나? 나도 이 부분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비밀스럽게 활동할 수밖에 없었다.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지만 초창기 함께한 국가와 유럽과 인접한 몇몇 국가를 위한 모금만 했다. 물론 많은 돈을 모금하지는 못했다. 


    Q. 하지만 우리가 입수한 비밀 채팅방 내용에는 모금활동을 찾아볼 수 없었다.

    A. 맞다. 혹시 모르기 때문에 모금은 소수의 평범한 사람들과 했고, 내가 핵티비스트라는 사실도 처음에는 감췄다. 그런데 내가 출처가 불분명한 핵심 정보들을 계속 전달하자 그들이 의심하더라.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밝혔다. 나를 포함해서 총 세 명이었는데, 한 명은 누구였는지 명확히 밝힐 수 없고, 다른 한 명은 그리스 국적의 평범한 여대생이었다. 그때 즈음 그리스가 국가 경제 위기로 시끄러웠는데, 그녀는 EU였는지 UN이었는지 기억은 안 나는데 거기로 취업해서 그리스 경제를 꽃피우고 싶다는 말을 하더라. 그래서 함께 했다. 


    Q. 당신의 국적과 정체도 밝혔나? 

    A. 브라질 사람인 척했다. HEUHEAUEAHA 같은 브라질 웃음 채팅 용어를 쓰면서. 물론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흉내를 내려면 그 나라에 대해 공부해야 하고 공부하다 보면, 나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나? 물론 지금 생각해 보면 딱히 도움이 된 건 없다. 어쩌면 브라질의 문화나 구체적인 현실은 관심이 없었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그리고 함께한 사람들도 거짓임을 알고 이해해 준 것으로 보였다.


    Q. 당신의 조직은 다수 공격에서 소수 공격으로 방향이 바뀌었는데 이유가 있는가? 

    A. 효율적이고 안전하니까. 대규모로 몰아치는 디도스 공격 방식 보다 소규모로 활동해서 데이터를 훔치는 게 더 효율적이었다. 초창기에는 사람들에게 소프트웨어를 다운 받도록 하여 공격했다면, 추후에는 웹 브라우저에서 직접 LOIC을 공격을 할 수 있었다. 물론 무고한 웹 서퍼들을 공격에 가담시킨 것도 있다. 이러한 환경이 갖춰지니 소수로 활동하는 합리적이었다. 

    확실한 목표를 향하려면 소음이 덜한 환경을 형성하는 게 좋다. 영국 여자를 만나고 싶다면 런던을 벗어나고, 프랑스 여자를 만나고 싶다면 파리를 벗어나야 한다. 영국과 프랑스 여성들의 평균 신장은 나보다 작은데, 시끌벅적한 런던과 파리에는 나와 눈높이가 비슷하거나 키가 조금 큰 여성들이 상당히 많다. 그런데 고요한 소도시로 향하는 순간 길거리 여성들은 평균 신장에 가까워진다. 이처럼 함께하는 사람이 많으면 소음이 커지고 구체적인 목표가 불분명해진다. 그렇게 그 집단만의 도덕에 젖기도 한다. 


    Q. 다수가 그리는 집단지성의 가치를 무시할 수 없지 않나?

    A. 그렇다. 그런데 관심이 없었다. 그때 당시의 나는 집단지성을 통제, 관리하는 핵심 멤버들과 소통할 수 있었고 많이 배웠다. 나를 포함해서 대략 5~6명 정도였다. 거기에 있는 사람들은 1990년대부터 활동했기에 나보다 경험도 많았고 NASA부터 FBI 네트워크까지 침입한 경험이 있는 베테랑들이다. 그곳에서 SQL 인젝션 같은 기술부터 다양한 공격 백터를 익힐 수 있었다. 내 실력이 출중한 건 아니지만, 규모가 있는 공격들을 감행한 덕에 들어갈 수 있었다. 

    특히 그곳에서 FBI와 연계된 비영리 기관을 해킹하여 FBI 요원들의 개인정보를 확인할 수 있었고, 약 2만 명 중 75%의 비밀번호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때는 MD5 해시를 데이터베이스에 넣어 쉬운 비밀번호부터 풀어나가는 방식으로 접근했는데 이름부터 비밀번호 이메일 주소까지 모두 알아냈다. 마음만 먹으면 그들의 개인정보를 이용해 페이팔에서 돈을 쓰며 배불릴 수 있고, 훔친 데이터베이스를 스패머에게 팔 수 있었지만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반대로 다수가 그리는 집단은 어떠한가? 때론 하찮은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패리스 힐튼의 티모바일 계정을 해킹해 누드 사진을 공유하지 않았나? 하지만 그곳은 달랐다 책에서도 볼 수 없는 새로운 세상을 공유하면서도, 최소한의 원칙을 지켰다. 부도덕적이었지만 윤리적이었다.


    Q. 그때 돈을 많이 벌 수 있었는데, 아깝지 않은가? 

    A. 그렇다고 볼 수도 있다. 어쩌다 알게된 교수님은 젊은 나이에 창업하셔서 돈을 많이 버셨는데, 그때의 돈을 벌기는 커녕 이상한 활동만 하지 않았나. 그래서 잠깐 전화를 할 때 과거에 대한 아쉬움을 간접적으로 토로하기도 했다. 


    추천3 비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