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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0년대생들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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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변지선 (218.♡.110.45)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1,172회   작성일Date 24-09-02 20:24

    본문

    아침 공기가 영택이의 뺨을 스치며 지나간다. 도시의 소음이 점점 커지는 가운데, 그의 발걸음은 경찰청을 향하고 있었다.
    ‘왜 오라고 한 거지.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
    의경으로 복무할 때 경찰의 날에 표창장을 받았던 기억이 가장 먼저 들었기에 지금 이곳에서 과거에 함께했던 경찰관을 마주치지 않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경찰청 정문에 가까워지자 영택이의 의경 시절 기억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모아이 석상 같은 얼굴의 경찰특공대 출신이신 경위님. 많은 사람들에게 엄격했지만 유독 자신에게만큼은 부드러우셨고 장난스러우셨던 분. 분대원 일지를 가장 길게 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특별하게 바라봐 주셨던 경사님, 영택이를 부대 내에서 가장 특별한 존재로 바라봐 주신 총경님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을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악습을 요구하던 전입 온 경위님과 대화로 다투던 기억까지. 그 분이 지금의 자신을 보면 얼마나 우습게 여길까.
    영택이가 사이버 수사과 안으로 들어서자, 까무잡잡한 피부의 남자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은 마치 시츄 강아지처럼 크고 동그란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 눈빛 속에는 권태로움이 가득했다.
    “영택 씨죠?”
    그 목소리는 마치 오래된 기계가 돌아가는 것처럼, 메마르고, 감정이 배제되어 있었고 공기를 한순간에 차갑게 만들었다.
    “네..”
    “이쪽으로 오시죠.”
    그의 말에 영택이는 조사실로 천천히 발을 옮겼다. 
    눈앞에 펼쳐진 조사실은 영화 속 풍경과 달랐다. 창문을 통해 쏟아지는 햇살이 방 안을 황금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부드러운 크림색 벽지가 어우러져 작은 회의실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창가에 놓인 화분의 잎사귀가 미세하게 떨리며 생동감을 더했다.
    "일단 여기 앉으시고, 지금 카메라가 고장이 나서요. 우리가 지금 이 내용을 음성으로 녹취할 예정입니다. 괜찮으시죠? 그리고 혹시 영택 씨도 녹취하실건가요?“
    “아뇨. 저는 경찰분들을 믿습니다.”
    “신분증이랑 하드 디스크 가져오셨죠? 그리고 이거 작성해 주세요.”
    햇살 가득한 조사실 안에서 영택이의 손이 미세하게 떨린 채로 작성했다. 작성을 마친 그의 손끝에서 신분증과 하드 디스크가 시츄를 닮은 경찰관에게 건네졌다. 그 순간, 마치 자신의 일부를 내어주는 듯한 묘한 감각이 영택이를 휘감았다. 시츄 눈빛의 경찰관은 하드 디스크를 어디론가 가져간 뒤, 다시 조사실로 들어와 내 앞에 앉았다.
    경찰관은 영택이가 작성한 신원 관련 기록지를 쓱 보며,
    “자, 영택 씨는 진술을 거부할 권리, 변호인을 선임할 권리, 진술이 법정에서 불리하게 사용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에 동의하시죠?”
    경찰관의 목소리는 오래된 레코드판에서 흘러나오는 것처럼 단조로웠다. 
    “네.”
    “하시는 일이 어떻게 되시죠?”
    “돈을 벌지는 못하고요. 플랫폼 개발하고 있습니다.”
    “어떤 플랫폼이죠?”
    “도시 데이터를 시민들이 모두 볼 수 있도록 하는 플랫폼입니다. 오늘의 날씨를 스마트폰으로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듯이, 도시 데이터도 스마트폰으로 쉽게 볼 수 있도록 하는.”
    “혼자 해요?”
    “아뇨. 친구들이랑.”
    “그렇구나~ 해킹하셨죠?”
    “네? 어떤 걸..?”
    “에이~ 다 아시면서, 여기 기록이 다 남아 있어요.”
    “그렇군요. 증거가 남아있다면 제가 맞겠죠.”
    영택이와 경찰관은 다른 위치에 있었지만, 둘의 목표는 동일해 보였다. 지금 이 조사를 빨리 끝내고 싶다는 것.
    “플랫폼을 개발하실 정도면, 해킹도 쉽게 할 수 있었겠네요.”
    “뭐..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주로 몇 시에 활동하셨죠?”
    “글쎄요. 제가 작업하는 시간은 주로 새벽 대여서, 아마 새벽 3~4시 정도가 아닐까요?”
    경찰관의 시선이 두꺼운 A4용지 뭉치로 향했다. 그의 까무잡잡한 손가락이 서류를 넘기는 소리가 방 안을 채웠다. 스윽, 스윽. 마치 시간의 흐름을 재촉하는 듯한 소리였다. 영택은 그 모습을 지켜보며 숨을 죽였다. 시츄의 표정을 읽으려 애썼지만, 오래된 석고상처럼 무표정했다.
    “새벽 5시네요. 그런데 해킹은 왜 하신 거죠?”
    “그러게요. 아마 정보를 열람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요?”
    “그게 불법이라는 걸 몰랐나요?”
    “구체적인 법령은 모르지만, 나쁘다는 건 알고 있었습니다.”
    수사가 순조롭게 무르익어 갈 때 즈음, 조사실의 문이 갑자기 열리는 소리에 영택이와 시츄 경찰관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긴장감 넘치는 공기로 변했다.
    문간에 서 있는 남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의 호흡은 마치 방금 달려온 것처럼 가빴고, 볼은 상기되어 있었다. 진한 쌍꺼풀과 굵은 눈썹, 그리고 짧게 깎은 스포츠머리는 그가 누구인지 명확히 말해주고 있었다. 
    “저기요 영택 씨죠?”
    강하게 째려보는 것으로 보아 화가 단단히 난 것 같다.
    “네?”
    “자료 다 어디 갔어요?”
    그는 영화에서 본듯한 강력계 형사처럼 영택이를 취조하기 시작했다.
    “네?”
    “자료 다 어디 갔냐고요.”
    “아. 다 지운 거 같은데요?”
    “저기요. 다 지우면 어떡합니까?”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가 아니고, 영택 씨 이걸 다 지우면 제가 당신을 어떻게 보겠어요?”
    '모든 걸 지우는 건... 일상이었을 뿐인데.'
    영택이에게 모든 데이터를 지우는 건 보편적인 생활양식처럼 자리해 있었고, 안티포렌식은 양치질처럼 기본 중의 기본이다. 이는 증거를 인멸하기 위함이 아닌, 혹시 모를 데이터 유출을 막기 위함이다. 그런데 이걸 수사관에게 말하면 조사 시간이 더 길어질 뿐이니 침묵했다.
    “거봐요. 압수수색해야 한다고 했잖아요? 김 검사도 이 사안은 압수수색을 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진한 눈썹의 경찰관, 그의 분노 어린 눈빛이 시츄 경찰관을 향했다.
    “그 검사가 뭘 몰라서 그래. 다른 사안은 다른데, 이거는 아니야. 불구속 수사를 해도 문제가 없어.”
    시츄 경찰관은 그 시선을 느끼고 미세하게 몸을 굳혔다. 얼굴에 당혹감이 스쳐 지나갔다. 마치 예상치 못한 공격을 받은 듯한 표정이었다.
    ‘같은 팀인데도 체계가 잡혀있질 않네..’
    영택이는 당나라 군대를 보는듯했지만, 편안한 환경에서 조사가 빨리 끝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표정관리에 힘썼다.
    “영택 씨, 지금 영택 씨 때문에 일이 이렇게 늦춰지는 거 알아요? 지금 그쪽 때문에 국립 과학 수사대까지 보내야 할 수도 있어요.”
    진한 눈썹의 경찰관은 날카로운 눈빛이 다시 영택이에게 향했다.
    “죄송합니다. 제 잘못을 피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습니다. 경찰관분들 바쁘시니 저도 모든 조사에 성실하게 임하려는 마음뿐입니다.”
    “자자~ 됐고, 빨리 들어가 봐.”
    시츄 경찰관은 조용히, 하지만 확실한 눈빛으로 동료를 밀어냈다. 그의 눈빛에는 '내가 알아서 하겠다'라는 메시지가 명확히 담겨 있었다. 진한 눈썹의 경찰관의 얼굴에 순간 당혹감이 스쳐 지나갔다. 그의 눈빛이 흔들렸다. 혼란과 어쩔 수 없다는 체념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이 그의 표정에 스쳐 지나갔다. 이에 진한 눈썹의 경찰관은 조사실에서 조용히 빠져나갔다. 
    “그런데 왜 해킹을 하신 거죠? 혹시 플랫폼 개발을 위한 목적이었나요?”
    시츄 경찰관은 다시 조사를 진행하기 위해 영택이에게 알 수 없는 해킹 동기를 묻기 시작했다.
    “음.. 사실 어떤 걸 말씀하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전화로 통보할 때 말해주지 않았나요?”
    “네. '그냥 해킹했죠?' 라고 말씀만 해주셨거든요. 그런데 플랫폼 개발 목적은 아닙니다. 사실 이 플랫폼은 도둑고양이처럼 해킹하지 않고, 모두가 공정하게 도시의 데이터를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거든요.”
    “그게 어떤 데이터인데요?”
    “안전과 관련된 데이터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해봐요.”
    시츄 경찰관은 어느 순간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영택이의 말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안전과 관련된 데이터는 크게 범죄와 사고가 있습니다. 각 동네마다 강력 범죄 그 안에서도 촉법소년 범죄 그리고 무단횡단 사고, 고독사, 자살 등등입니다.”
    “그 데이터를 왜 공유하려고 하는데요?”
    “전 이 데이터가 도시가 그리고 있는 어둠이라 생각합니다. 만약 이 데이터를 모든 사람들과 공유하기 시작한다면, 시민들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뛰어들 거예요."
    “그걸 어떻게 확신하죠?”
    “예를 들어서, 경찰관님이 살고 계신 동네의 강력 범죄 건수가 다른 동네에 비해 높게 나타났어요. 그러면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지 않을까요? 그러면 동네 사람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율 방범대를 조성하거나 또 다른 조치를 취할 것입니다. 반대로 강력 범죄 건수가 다른 동네에 비해 낮게 나타났다면, 여성들은 막연한 걱정과 불안에 시달리지 않고 마음 편안하게 귀가할 수 있겠죠.”
    “그게 목적인가요?”
    “네. 저는 데이터가 사람들을 바꾸고, 그러면 사회도 바뀔거라 생각해요. 그리고 도시 문제를 드러내는 데이터를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시작한다면, 시민들의 관심을 갈망하는 언론사는 도시 문제를 집중적으로 취재를 하기 시작할 것이고요. 그렇게 된다면 언론에 대한 신뢰도도 높아질 수 있을 거예요. 더 나아가 선거철에는 포퓰리즘 공약을 내세우는 정치인은 사라지고, 그 동네에 드러난 문제를 해결할 정치인이 등장할 수 있겠죠.”
    “아니. 가만 보면, 착하고 참한 청년인데, 왜.. 그런 짓을”
    “그러게요.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뭔지 모르겠지만..)”
    “영택 씨는 요즘 애들이랑 많이 다르네~”
    조사실의 분위기는 순간 미묘하게 변했다. 시츄 경찰관의 눈빛에서 권태로움은 사라지고 생기 넘치는 호기심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아닙니다. 그저 그런 사람이죠.”
    “에이~ 내가 여기 영택 씨 또래 경찰관들도 많이 보는데~ 달라 달라.”
    “깊게 대화를 안 해보셔서 그런 것 같아요. 사실 이건 90년대생들의 비밀과도 같거든요.”
    “어떤 비밀? 해킹하는 게?”
    “아니요. 새로운 꽃을 피우는 거요.”
    “꽃?”
    시츄 경찰관은 수사에 흥미를 잃었는지 키보드와 거리를 둔 채로 의자에 깊숙이 몸을 기대며 팔짱을 끼기 시작했다. 그의 영택이를 향한 메마른 눈빛은 부드러운 관심으로 바뀌어 있었다. 
    “우리 대한민국에는 2개의 꽃을 피웠다고 생각해요. 하나는 산업화, 하나는 민주화. 그리고 아직 새로운 꽃을 피우질 못했잖아요? 우리 90년대생들은 그 꽃을 피우고 싶어 해요. 물론 기성세대들이 우릴 우습게 보니까, 비밀로 간직하고 있을 뿐이죠.”
    “에이~ 우리가 청년들을 왜 우습게 봐~?”
    “그렇지 않아요. 사실 민주화 세대들도 청년 시절 기성세대에게 비슷한 말을 들었을 거예요. ‘시위 나가지 말고 공부나 해라’ 같은. 우리도 비슷해요. 그럴 시간에 ‘학점관리나 해라‘, ‘취업 준비나 해라.‘ 같은 잔소리만 돌아오거든요. 그래서 우리 90년대생들은 대한민국에 새로운 꽃을 피우고 싶다는 비밀을 품고 있어요. 그래서 90년대생들의 비밀이죠.”
    “그 꽃이 뭔데요?”
    “&@&&화 입니다.”
    “&@&&화?”
    “네.”
    “그게 뭔데요?”
    “이 꽃은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를 하나로 묶을 겁니다. 좌파도 우파도 하나로 묶을 거고요. 동네 문제를 드러낸 데이터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산업화 세력도 민주화 세력도, 좌파도 우파도 없습니다. 모두가 하나로 뭉쳐야 하거든요. 마치 IMF 금 모으기 운동이나 태안 석유 유출 사고 때처럼요.”
    “그러니까, 플랫폼을 통해 도시의 데이터를 시민들에게 공유하면, 좌파 우파 가릴 거 없이 모두가 하나가 되어 문제를 해결할 것이다? 그게 대한민국에 피어날 새로운 꽃이다?”
    “네. 맞습니다. 스마트폰으로 날씨를 확인할 수 있듯, 동네의 데이터를 스마트폰으로 간단하게 확인하게 된다면 모두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하나로 똘똘 뭉칠 거예요. IMF 때처럼요. 시민들이 이 문제를 바라보기 시작하면, 언론은 정치적인 이슈만 다루는 게 아닌, 도시 문제를 다루기 시작할 것이고요. 그러면 언론에 대한 신뢰도 높아질 것이고요. 이어서 문제의 해결책을 내놓는 지식인들이나 공무원에 대한 신뢰도 다시 회복될 거라 생각합니다. 뿐만 아니라 도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준다면, 기업은 탐욕스러운 존재가 아닌 고마운 존재로 다가올 수도 있겠죠. 우리나라는 인구 밀집도가 상당히 높기 때문에 신뢰를 바탕으로 하나로 뭉칠 수 있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그게 끝인가요?”
    “당연히 끝은 아니죠. 산업화와 민주화에 비해 더 찬란하고 아름다워야 하거든요. 사실 데이터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세대는 우리 세대잖아요?”
    “네. 그렇죠?”
    “그런데 우리가 개발하려는 플랫폼은 데이터 접근이 어려운 산업화, 민주화 세대들에게도 떠먹여 주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이제 어르신들도 우리 세대처럼 플랫폼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자신의 목소리가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 지 마주할 수 있을 거예요. 이건 도시의 문제를 들춰내어 해결할 뿐만 아니라, 도시인들의 소외 문제까지 줄일 수 있을 거예요. 그렇게 객관적인 데이터로 도시의 문제를 모든 세대가 바라보고 해결하다 보면, 아파트 공화국 그리고 초개인화로 쪼개어지고 있는 우리 사회가 다시 하나로 뭉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블록체인 기술까지 연구해서 여기에 도입한다면 스마트 시티의 기초를 구축할 수 있겠죠. 이 꽃은 우리를 하나로 뭉치게 만들어 주고, 도시의 소외와 어둠을 밝혀줄 거예요. 물론 아직은 개발 단계여서 환상만 품고 있을 뿐이죠.”
    “그런데 그 데이터를 정부 기관이 허락해 줄까요?”
    “맞아요. 그게 가장 중요해요. 사실 신뢰가 갖춰져야 합니다.”
    “그 신뢰를 어떻게 얻을 수 있죠?”
    “우리가 이 사회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드러내야죠. 우리가 외면하고 있는 도시의 데이터들을 볼 수 있을 때에야, 도시에서 소외받고 있는 사람들을 지킬 수 있다고 말을 해야죠. 사실 이렇게 들여다볼 수 있으면, 사회적 비용도 줄일 수 있을 거예요."
    “그게 전부인가요?”
    “음.. 조금 조심스럽지만, 남자의 성기를 여성의 입을 넣는 행위 있잖아요? 그.. 오랄.. 그게 어떤 의미라고 생각하세요?”
    “네!?”
    시츄 경찰관은 지금 자신의 귀를 의심했는지, 시선을 위로 향하여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다 입을 벌려 손가락을 넣는 시늉을 했다.
    "남자의 성기를 여성의 입에 넣는 건, 자신의 민감하고 소중한 부위를 맘껏 다뤄도 된다는 의미잖아요. 그런데 이건 상대를 향한 강한 신뢰가 갖춰져야 가능한 거예요. 사실 정부가 우리와 같은 청년들에게 그런 데이터를 주기 위해, 기존의 체계를 바꾸는 게 쉽지 않겠죠. 하지만 서로가 강한 신뢰를 넘어 사랑하게 된다면 충분히 가능할 거라 생각해요. 남성의 성기를 여성이 입으로 유린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는 것처럼. 정부 부처에서도 소중한 데이터를 허락해 줄 겁니다.“
    “허허.. 왜 하필 비유를..”
    “물론 저와 다른 꽃을 피우고 싶은 90년대 생도 있겠죠. 근데 이건 제가 대한민국에 세 번째로 피우고 싶은 꽃입니다.”
    “그런데 왜 하필 90년대생이죠? 80년대 생도 있을 텐데.”
    시츄 경찰관은 영택이에게 예리한 질문을 던졌다.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경찰은 역시 다르다.
    “80년대생은 이미 결혼할 나이잖아요. 그들은 대한민국이 아닌, 가정에 꽃을 피우고 싶어 할 거예요."
    “그러면 2000년대생들은요?”
    “2000년대생들도 대한민국에 새로운 꽃을 피우고 싶다는 꿈을 꿀 수 있겠죠. 하지만 90년대생과 달라요. 90년대생들은 어렸을 때 일본 만화를 보고 자랐거든요. 그것도 로봇 만화. 그게 꿈의 스케일을 키워줬어요. 로봇들은 항상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동네와 나라를 지키거든요. 그 만화를 보고 자란 우리는 자연스럽게 로봇처럼 동네와 나라를 지키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되었어요. 더 나아가 IMF를 극복한 풍경, 금 모으기 운동을 하는 어른들, 아나바다 운동을 실천한 경험, 2002 월드컵의 4강 기적 등의 찬란한 풍경을 90년대생들이 두 눈으로 보면서 우리도 성공적인 이야기를 써 내려갈 수 있다는 용기로 이어지게 되었어요. 그런데 2000년대생들은 이걸 교과서로만 접했잖아요? 90년대생들과 2000년대생들의 차이는 어린 시절 본 만화로 키워온 꿈의 스케일 그리고 경험의 차이가 있어요. 물론 2000년대생들을 폄하하고 싶지 않아요. 다만 산업화와 민주화에 이어 새로운 꽃을 피우고 싶어 하는 비율을 따지자면 우리 90년대생들이 2000년대생들보다 많을 거예요. 물론 90년대생들만의 비밀스러운 꿈이어서 처음 들어보시겠지만.”
    시츄 경찰관은 고개를 끄덕이며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그의 호기심이 해결되었는지, 다시 수사의 끈을 조여 영택이에게 질문을 이어나갔다. 둘이 주고받는 질문과 답변은 물 흐르듯 연결되었다. 특히 영택이는 모든 잘못을 털어놓고 처벌을 받겠다는 마음으로 창밖으로 스치는 햇살처럼 빠르고 구체적으로 답을 했다.
    *
    시츄 경찰관이 대면 수사를 시작할 때는 다소 밋밋하고 사무적이었지만, 영택이가 90년대생들의 비밀을 고백한 뒤에는 태도가 달라졌다. 영택이의 솔직한 고백 중에서 유리하게 적용될 수 있는 정보가 나올 때마다 그의 눈빛은 반짝이며 생기를 띄었다. 그는 열정적으로 변해, 중요한 말들을 다시 한번 말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그 말들을 신중하게 기록하며, 수사의 끈을 놓치지 않고 한층 더 깊이 파고들었다.
    수사를 마친 후, 인쇄된 수사 기록지에 사인과 지장을 찍으니, 오후 12시 10분 정도가 되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시츄 경찰관은 배고팠는지, 굳은 표정으로 일어나 조사실에서 나갈 준비를 했다.
    "네. 저 때문에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이제 가셔도 됩니다.”
    “저기.. 제가 정말 죄송해서 그러는데, 반성문 쓸 수 있을까요?”
    “지금요? 굳이 작성하실 필요는 없지만..”
    “아뇨. 제가 지금 쓰지 않으면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거 같습니다.”
    “네.. 그러면 여기 마지막 칸에다 쓰세요.”
    “감사합니다.”
    영택이는 자신이 어떤 행위로 인해 왜 이곳에 왔는지 정확히 모르는 상황이지만, 자신의 행위가 국가, 지역 사회, 그리고 일하며 세금을 내고 있는 기성세대와 삼촌, 이모, 형, 누나, 친구, 동생들에게 미친 영향에 대해 사과하고자 했다. 그는 조사실 차가운 책상에 앉아, 조용히 그리고 심각하게 사과의 글을 써 내려갔다. 대략 10분 동안 장문의 사과 메시지를 끄적인 다음 모든 처벌을 피하지 않겠다는 다짐까지 남겨놓았다.
    “끝났어요?”
    시츄 경찰관은 함께 점심 식사를 하러 갈 동료 경찰관들을 흘깃 살피며 물었다.
    “네. 감사합니다. 그리고 괜히 번거롭게 해서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수고하셨어요. 그리고 통보는 우편이랑 문자로 갈 거예요."
    “네. 감사합니다.”
    영택이가 경찰서를 나서 집으로 가는 길은 유난히 무겁고 길게만 느껴졌다. 수사할 때 새로운 꽃을 피우고 싶다며 떠벌거렸지만, 실제 자신이 진정 그런 변화를 이끌 자격이 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잘못된 행동으로 인해 경찰의 조사를 받은 주제에,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을까.
    2시간 동안, 그는 목적 없이 거리를 헤맸다. 그의 머릿속에는 도덕적 가치를 내세우며 사람들의 신임을 얻었던 정치인들이 왜 조사를 앞두고 극단적 선택을 하는지에 대한 생각이 끊임없이 맴돌았다.
    그리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정치인을 조금이나마 공감할 수 있었다. 이 모든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간절한 바람, 단지 수사를 빨리 끝내고 싶다는 것을 넘어서는 자기 자신에 대한 강한 부정이었을 지도 모른다.
    영택이는 플랫폼 개발을 함께 했던 5명의 친구들과 연락을 끊고 조용히 잠적했다. 그들은 본인이 없이도 충분히 문제를 해결할 역량을 갖추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아니, 사실은 그들이 영택이보다 더 뛰어났다. 그중 세 명은 한양대, 고려대, 성균관대의 컴퓨터공학과 학생이었으며, 그중 두 명은 이미 취업이 확정된 상태였다. 나머지 한 명은 상필이라는 친구로, 경찰대를 차석으로 졸업하고 대체 복무 중이었다. 
    영택이와 상필이는 의무경찰로 복무하던 중 만나게 되었다. 상필이는 경찰대 1학년 시절 겪었던 각종 악습들을 영택이에게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그는 당시의 경험을 털어놓으며 경찰대에 그려졌던 악습이 이곳에서도 그려지지 않도록 하겠다며 다짐했다. 영택이와 상필은 그런 악습을 근절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며, 깊은 신뢰와 우정을 쌓아갔다.
    영택이가 상필이를 선택한 이유는 단순히 친분 때문이 아니다. 상필이는 사람과 사회를 읽는 시선이 남달랐다. 특히 상필이는 경찰대학 언론 동아리에서 학보사에 속해 있었던 만큼, 자신은 듣고 읽고 쓰는 것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상필이는 당시 프로파일러로 유명했던 경찰대학교수가 정치인으로 전향할 것 같다는 말을 영택이에게 비밀스럽게 던진 적이 있었다. 
    이외에도 영택이가 베스트셀러로 유명한 페미니즘 관련 서적을 읽는 모습을 보며, 역차별에 대한 불평을 조용히 털어놓기도 했다. 같은 경찰대학을 졸업했어도 남성은 대체 복무로 인해 진급의 속도가 여학생보다 느리다는 것이다. 그때 당시에는 엄살 같았지만, 2024년에 놓고 보면 타당한 지적이다. 
    이외에도 대한민국에서 손에 꼽히는 전문가들과 인터뷰를 요청할 때, 다들 바쁘다는 이유로 거절하지만 경찰대학이라고 말하면 모두 시간을 내서 승낙해 줬다는 이야기도 해줬다. 
    상필이가 사람과 사회를 읽는 능력 그리고 학보사에 있으면서 거미줄처럼 희미하게 연결된 끈을 활용한다면, 개발 속도를 높일 수 있을뿐더러 막힌 길을 쉽게 헤쳐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영택이는 경찰 조사를 마치고 생각했다. 자신이 이곳에 있을 필요가 없다는 걸.
    *
    시간이 흘러 약 2~3주 후, 영택이는 국립 과학 수사대에 보냈던 하드디스크를 찾으러 오라는 문자를 받았다. 그날 아침, 그는 평소처럼 9시에 경찰청 사이버 수사대로 향했고, 시츄 경찰관으로부터 하드 디스크를 건네받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의 우편함에서 눈에 띄는 우편물을 발견했다.
    우편물을 무심코 뜯어보니 영택이 눈에 들어온 글귀가 있었다.
    '증거 불충분 무혐의'
    영택이는 지금 이 순간으로부터 빨리 벗어나고 싶어, 그 우편물을 가루보다 잘게 찢어내어 분리수거장으로 걸어가, 폐휴지함에 모두 털어냈다.
    *
    “지금 그 말을 믿어도 되는 건가?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는데? 증거 불충분 무혐의라니?”
    영택이와 인터뷰를 하던 톰 포스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있었던 일을 말할 뿐이다. 나는 그 상황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고 잊고 싶었기에 구체적으로 살피지 않았다. 그래서 말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다.”
    “알았다. 지금의 당신이 생각하기에, 그때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는가?”
    톰 포스트는 영택이가 핵티비스트로서 마지막으로 활동한 그때를 물었다.
    “실패에 가깝지 않을까? 사막에서 개구리가 노래를 부르고, 나비가 춤을 추길 바랬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당시 프랑스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하고, 이탈리아 총리가 자리에서 스스로 내려오면서 나는 긍정적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전이 발생하고, 브렉시트까지 이어지는 걸 보고 나는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도 그곳에 겨울이 찾아왔다고 평가하듯 나도 동의한다.”
    “그때의 본인을 지금 평가한다면?”
    “부끄럽게 생각한다. 그곳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하지만 지난 일이니 어쩔 수 없지 않나.”
    “당신은 조금 특별했다. 난 다른 대안이나 방법을 갖고 있을 줄 알았다.”
    “난 특별하지 않다. 피카소와 같은 특출난 천재가 아닌 이상, 세상 사람들이 다 거기서 거기이지 않나. 나도 거기서 거기인 사람이다. 사실 노엄 촘스키와 최진석이라는 지식인은 나에게 숙고의 중요성을 말해줬다. 그래서 당시 숙고하고 숙고한 끝에 신중하게 결정을 내렸지만 결국 그렇게 되었다. 그저 그런 사람에게 모든 선택은 도박에 가깝고, 모두 긍정적인 결과를 보장하지 않는다.”
    “그때를 후회하는가?”
    “그렇지 않다. 난 그 시기만의 도덕, 그 시기만의 정의를 지키려 노력했다. 난 거기서 거기인 사람들처럼 어떻게 돈을 벌고, 어떤 차를 구입하고, 어떤 여자를 만나 가정을 꾸려나가다, 관에 들어갈지 고민하지 않았다. 그때만큼은 그저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 난 그때의 나를 사랑한다. 그래서 후회하지 않는다. 다만 당시 능력이 부족했을 뿐이다.”
    “지금도 그저 그런 사람이 아닌가?”
    “모르겠다. 나는 경찰 조사를 받은 후에 컴퓨터와 나를 노출시키는 일을 피하게 되었다. 뒤이어 편집증적인 피해 망상이 나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히고 있다. 아직도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당신의 그 상처를 이야기에 사용해도 괜찮은가?”
    “뭐든. 마음대로 가공해라. 그 이야기 그리고 이야기 속 인물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다면, 지금 날 괴롭히는 질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 플랫폼은 성공했는지 궁금하다.”
    “내 속 마음을 터놓는 유일한 친구에게 물어보니, 모두가 뿔뿔이 흩어졌다고 하더라. 그 친구는 대학원 생활 병행과 함께 인디게임을 개발하고 있고, 나머지는 대기업에 취업하고 또 다른 한 명은 경찰을 그만두고 로스쿨로 향했다.”
    “그 플랫폼을 시작도 못해보고 끝낸 것에 대해 아쉬움은 없나?”
    “없다. 나는 그저 그런 사람이다. 그러니 그때의 나와 비슷한 꿈을 품고 행동하고 있는 사람들이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그들이 오히려 나보다 더 찬란하고 아름다움 꽃을 피우지 않을까.”
    *
    영택이는 플랫폼을 통해 데이터로 도시의 어둠을 밝혀 시민을 깨운다면, 산업화와 민주화에 이은 새로운 꽃이 대한민국에 피어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 경찰 조사를 받게 되었는지는 아직도 모른다. 어쩌면 핵티비스트 활동을 그만두고, SQL 맵부터 백트랙5 등 다양한 해킹 기술을 연습했던 게 문제였을 지도 모른다.
    이 기술을 나쁘게 활용하면 이웃이 사용하는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크랙 할 수 있고, 인터넷으로 어떤 활동을 하는지 모두 들여다볼 수 있다. 하지만 영택이는 이 기술을 긍정적으로 활용하면 자살하는 이웃을 보다 빠르게 알아차려, 자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물론 의도치 않게 옆집 아저씨가 비키니 사진을 감상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낸 걸 알게 되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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