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90년대생들의 비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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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택이는 존경하는 철학자와 포근한 온돌방 같은 곳에서 함께 식사하는 자리를 가졌다. 그의 마음은 함께 나눈 백숙의 깊은 맛이었을까, 막걸리 특유의 진한 향이었을까, 아니면 철학자의 흥미진진한 이야기였을까. 영택이는 이에 흠뻑 취한 나머지 과거를 다시 되짚었다.
철학자는 식사 중 이렇게 말하였다. "서양에는 젊은 부자가 넘쳐나는데, 우리나라엔 그런 이들이 드물다." 영택은 생각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또래들은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즐기는 반면,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은 대기업이나 국가에 소속되어 익명으로 은신하는 걸 선호한다. 생각해보면 돈을 많이 번 젊은 세대들을 보면, 유튜브, 웹툰, 웹소설,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해외직구 등으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일하며 익명성을 유지하지 않던가. 이는 FPS 게임에서 음침하게 숨어서 활동하는 스나이퍼를 선호하는 경향과도 맞닿은 것으로 생각했다.
영택이는 과거 자신이 몸 담았던 핵티비스트 모임에서 이러한 문화 차이를 더욱 분명히 확인했다. 그는 자신이 일으킨 조용한 변화에 만족했지만, 비밀 채팅방의 일부 멤버들은 자신의 업적을 과시하고, 심지어 자신이 하지 않은 일까지 자신의 공으로 돌리는 모습을 보였다. 영택은 이러한 행동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영택이가 추구하는 가장 기본적인 가치는 익명성을 지키는 것이었다. 영택이에게 익명성은 단순 가면이 아니었다. 익명성은 허영심을 내려놓고 메시지를 강력하게 전달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힘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익명의 닉네임을 사용하고 있어도 허영심과 파벌을 만들기 시작하여 누구인지 특정할 수 있게 되는 순간, 익명이 아닌 것이다. 물론 익명성의 가치를 잊고 허영심에 찌든 멤버들의 행위가 영택이의 핵티비스트 모임의 명성을 높이는 데 일조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이외에도 서양에서 활동하던 몇몇 해커들은 자신의 업적을 당당하게 드러냈다가 감옥으로 끌려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무려 200억 원의 돈을 벌어들이고 8년 간 감옥에서 생활했다. 물론 200억을 모두 몰수당했는지 모르겠으나, 영택이에게는 달갑지 않게 다가왔다. 그에게 거액의 돈을 만질 수 있는 대가로 감옥에서 8년을 보내는 것보다, 빈곤 속에서라도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이 더 소중했다. 물론 감옥에서 출소한 다음 새말새몸짓에 10억을 기부할 수 있다면 그것이 좋은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영택은 자신이 주창한 가치가 재물보다 중요하다고 맹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택이가 비트코인을 통해 후원금을 받으려고 한 가장 큰 이유는 비밀채팅방의 멤버 중 한 명이 마음에 쓰였기 때문이다. 영택이는 모든 멤버의 신상을 알고 있었던 건 아니지만, 가장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멤버 2명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다. 멤버 A는 20대 후반이었고 어떤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미국에서 2명의 조카를 부양하고 있었다. 다른 한 명, 멤버 B는 정치적 욕망에 불타는 20대 중후반의 사회운동가였다. 당시 영택이는 자신의 형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멤버 A를 향한 특별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 적어도 이 멤버가 돈 문제로 힘겨워하지 않길 바랬기 때문이다. 영택이가 후원금을 모으기로 한 이유였다.
영택이가 멤버 A에게 마음이 끌렸던 이유는 그의 형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형은 대학에서 만난 첫사랑과의 조급한 사랑의 결실로 인해 이른 나이에 아이를 갖게 되었다. 하지만 이 아이는 자아가 깃들기도 전에 급성 백혈병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렇게 영택이의 형은 서울대학교 병원과 소아암 재단에서 운영하는 숙소가 두 번째 집이 되었다. 서울대학교 병원 소아암 센터 복도는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장소였다. 작은 몸으로 큰 아픔을 견디는 아이들, 그리고 그들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부모들. 특히 항암 치료 후 면역력이 제로가 되기에 식사 제한은 병실에 모인 아이들에게 큰 고통이었다. 무엇이든 먹고 싶어하는 아이들의 갈망, 그 갈망을 억제할 수 없는 부모들의 마음. 병실 안에는 자리해선 안 되는 컵라면과 과자 냄새가 짙게 배어있었다. 이 모든 것은 치료의 과정, 생존의 싸움의 일부였다. 다행이도 영택이의 조카이자 영택이 형의 딸은 자아가 없는 2살 정도의 아기였다. 그래서 항암 치료를 받고 나서 군것질 투정이 아닌 잠과 구토만을 반복했다.
영택이는 모니터 앞에 놓인 세계에 변화를 야기할 수 있었지만 눈 앞에 놓인 현실 세계를 바꿀 수 없었다. 그의 눈앞에 펼쳐진 두 세계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영택이는 모니터 안에 있는 멤버 A 만큼은 자신의 형처럼 비극으로 이어지지 않길 바랬다. 그렇게 영택이는 핵티비스트 모임의 명성을 이용해 비트코인 후원금을 모금했다. 그렇게 모인 12,000달러는 모든 멤버들에게 공평하게 분배되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영택 자신을 위한 선택이기도 했다. 영택이의 시선이 닿은 곳은 결국 자신의 세계였고, 그는 그 세계를 더욱 아름답게 만들고자 했다. 멤버 A에 대한 관심은 어쩌면 영택 자신의 세계에 대한 집착과 강박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의 세계를 지키는 것은 멤버 A가 경제적 어려움으로 잘못된 길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데에 있었다. 그것이 영택이가 추구하는 핵티비스트 모임의 철학을 지키는 길이기도 했다. 영택이는 자신의 몫으로 받은 후원금을 형에게 모두 주려고 했다.하지만 영택이의 형은 도움을 거절했다. 자존심 때문일까. 영택이 아버지의 황소고집을 닮아서 그럴까. 아니면 다른 사람들에게 짐이되고 싶지 않아서일까. 영택이의 형은 가족과 친척들의 경제적 지원까지도 모두 거절했다. 추후 들은 이야기로는 과거에 가입했던 어린이보험, 소아암재단에서의 후원 덕분에 경제적인 부담이 크지 않았다고 하였다. 오히려 소아암 완치하고 나서도 보험금이 남아 아이의 명의로 목돈을 만들어줬다고 하더라. 영택이의 어머니는 이를 마음의 빚으로 여겨, 영택이에게 맛있는 거 사줄 돈인 10만원을 매달 소아암재단에 기부하고 있다.
영택이가 영국 중대조직범죄청 출신의 화이트 해커에게서 들은 이야기는 익명성의 가치를 지켰어야 했다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 계기였다. 당시 검거된 비밀채팅방 멤버들의 패턴은 분명했다. 그들은 동일한 닉네임을 고수하며 활동했다. 그러나 영택은 다른 길을 택했다. 그는 자신의 닉네임을 공백으로 남기거나, 다른 이들의 행동을 흉내내다가 언제든지 사라지는 신기루 같은 존재가 되어 익명성을 유지하려 노력했다. 이런 그의 전략 덕분에 FBI, 영국 중대조직범죄청, 런던 경찰청의 눈을 피할 수 있었다. FBI가 비밀채팅방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영택의 배경이 그에게 독특한 우위를 제공했을 수도 있다. 그와 함께 활동했던 대부분의 멤버들이 미국 또는 영국 국적을 가지고 있었던 반면, 영택은 한국인이었다. 이러한 국적의 차이는 수사 기관들의 시선에서 그를 벗어나게 하는 데 일조했다.
영국 중대조직범죄청 출신 화이트 해커와의 인터뷰를 통해 영택은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당시 미국과 영국의 수사 기관들 사이에는 줄다리기가 있었다고 했다. 두 기관은 비밀 채팅방 멤버들의 신원을 확보하고 기소하기로 결정했지만, 가장 큰 문제는 그들을 어디에서 기소할 것인가였다. FBI와 런던 경찰청 사이의 이러한 긴장은 대한민국 국적의 영택이에게 또 다른 은신처를 제공했다. 이러한 상황은 영택이 디지털 세계에서의 자신의 활동을 보다 교묘하게 숨기는 데 도움을 주었다. 영택이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당시 기술적인 상황 뿐만 아니라, 국제적 법 집행 사이의 복잡한 관계로 인해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었다.
영택가 가장 사랑한 세계였던, 핵티비스트 모임은 명성이 높아짐에 따라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가 처음 등장했을 때 주창했던 가치와는 달리, 언론 매체, 경찰, 심지어 다른 해커들까지도 영택의 활동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영택은 자신을 컴퓨터를 통해 메시지를 전하는 사회 운동가로 생각했지만, 다른 이들은 그를 해커 범죄 조직의 일원으로 간주했다. 이러한 시선의 차이에 대해 영택은 체념의 상태에 빠졌다.
영택이는 개인 컴퓨터와 인터넷 혁명과 함께 등장한 새로운 시대의 일원이었다. 그가 사용했던 방식은 전문 사이버 범죄자들조차 사용하지 않을 정도의 기초적인 기술에 가까웠다. 심지어 일반인들도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영택의 행동은 사실상 사람들에게 컴퓨터를 활용해 익명으로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 것이었다.
영택과 함께했던 멤버들은 능력 있는 해커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그저 능력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에 불과했다. 초보자들조차도 마음만 먹으면 원하는 정보를 직접 가져올 수 있는 사회가 되어버린 것이다. 영택의 세계는 그가 처음 가졌던 이상과 다르게 변해가고 있었고, 그는 이 변화를 어찌할 바를 몰라 하고 있었다. 그의 선한 의도는 오해와 불신 속에서 점차 퇴색되어 가고 있었다.
영택의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는 점점 더 깊어져 갔다. 대중의 평가는 그의 기대와는 달랐고, 그의 아이디어와 철학은 사회의 고집스러운 저항에 부딪혔다. 기존 사회가 코로나 바이러스를 받아들이기까지 다양한 도전에 직면했던 것처럼, 영택의 생각도 시간이 지나면 이해받고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희망을 가졌지만, 현실은 그의 예상과 달랐다. 언론과 대중의 상상력은 영택이 창조한 핵티비스트 모임의 본래 취지를 왜곡시켰다. 더 나아가 영택이의 핵티비스트 모임의 이름을 달고 활동한 다른 멤버들로 인해 그의 철학과 가치는 점점 퇴색되었다. 그렇게 영택이의 핵티브스트 모임은 새로운 해커 단체의 이미지가 만들어졌다. 이것이 영택이가 가장 사랑했던 가치를 내려놓고 팀을 떠나게 된 결정적인 이유였다.
영택이 기대했던 것은 하나의 가치를 바탕으로 한 집단지성의 발휘와 더 나은 대안의 목소리였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과도한 자유는 무질서로 이어졌고, 결국 핵티비스트 모임은 보수적이고 아집을 품어버린 집단으로 변질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결국 일부 멤버들이 법의 처벌을 받는 결과로 이어졌다.
핵티비스트 모임은 영택이가 초기에 주창한 가치와 달리, 잉여로운 사람들의 공허함을 달래주는 트롤들의 집합소로 전락한 셈이다. 현실에서는 무의미한 존재일지라도, 이 디지털 세계에서는 강력한 권력을 품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기 때문이다. 잉여로운 존재들은 이러한 강력한 위치에 끌려 영택이와 함께하고 싶어했고 같은 이름으로 활동했다. 그리고 영택은 군중 속에서도 진정성을 품은 사람에게 임무를 부여하고 비밀 채팅방으로 초대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영택이 원래 꿈꿨던 세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나중에는 멤버들이 익명성이란 가치를 망각해버린 나머지, 본인에게 심취하며 행적을 드러내기 바빴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는 자신 초대한 멤버들이 자신이 창조한 세계를 어떻게 변질시키게 되었는지를 목격하게 되었다.
영택의 삶에서 이 경험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가져왔다. 술자리와 같은 사회적 모임에서 주인공이 되려고 애쓰며 눈과 목에 힘을 주는 이들을 피하게 된 것이다. 영택은 대신에 진실되고 솔직한 사람들에게 더욱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는 방대한 지식을 단순히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그 지식을 자신의 영감과 경험을 반추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에게 매력을 느꼈다. 이러한 사람들은 흔치 않다. 그리고 그들의 특징은 진실함과 깊이 있는 사고에 있다. 영택에게 이들은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보석과 같았다. 그들은 일반적인 사회적 기준으로는 주목받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들만의 독특한 가치와 통찰력을 지니고 있었다. 이런 사람들과의 교류는 영택에게 새로운 관점과 생각을 제공했고, 그의 삶에 더욱 풍부한 의미를 부여했다.
지금의 영택이가 내놓은 원인은 '시스템의 부재'였다. 핵티비스트 모임의 시스템이 더욱 체계적이고 명확했다면 모든 것이 다르게 흘러갔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와 식사를 함께한 철학자는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 "사람이 문제다" 라는 그의 단언은 영택이의 생각을 흔들었다. 문제의 본질은 인간의 본성과 그들의 행동에서 비롯된 것이다. 영택이는 이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 만약 그가 자신의 가치를 끊임없이 되새기면서, 그 가치에서 멀어진 멤버들과 결별 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까?
영택이의 마음속에는 깊은 회의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키보드 앞에서의 노력과 헌신에도 불구하고, 당시 공격했던 사이비 종교는 여전히 문제없이 활동하고 있다. 그는 변화를 일으키고자 했지만, 실제로는 아무런 변화도 만들어내지 못했다고 느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사이비 종교도 종교의 자유라는 맥락에서 보면, 어느 정도 인정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이르러 정신승리하게 되었다.
이러한 문제를 마주한 영택이는 드 넓은 세상을 보기 위해 의지했던 사회과학 도서를 더 이상 읽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는 그에게 세상을 보는 새로운 창을 열어주었던 중요한 도구였지만, 자신의 세계를 아름답게 가꾸는 데에는 걸림돌이 되었기 때문이다. 영택이는 세상과 담을 쌓고 자신을 마주하게 되었고 담은 인문학, 철학, 문학 서적으로 견고하게 쌓아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에 빠졌다. 그에게 이것은 세계와의 분리, 단절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세계를 더 아름답게 가꾸는 길이었다.
영택이는 철학자와의 식사를 마치고 집에 도착한 뒤, 영국의 중대조직범죄청(Serious Organised Crime Agency) 소속의 화이트 해커 출신이자, 현 칼럼니스트 겸 작가라고 소개한 자와 매우 짧게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아래는 매우 간략하게 요약했다.
Q. 당신이 끝까지 답해주지 않은 게 있었다. 당시 주창했던 가치가 무엇인가?
A. 난 기억력이 좋지 않다. 그래서 사실은 모르겠다. 굳이 답하자면, 내가 지키고자 했던 가치는 노엄 촘스키의 가치를 대변하는 것에 가까웠다. 당시의 나는 10대 청소년이었다. 그러니 세상을 바꿀만한 가치, 슬로건을 내세울 정도로 지식과 경험은 제한적이었지만, 촘스키의 사상은 나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반미 정서가 강했다. 동계 올림픽 쇼트트렉 종목에서 미국의 선수가 반칙으로 우리나라 선수의 금메달을 빼앗아 갔다. 그리고 양주군에서 여중생 두 명이 미군이 조종하던 장갑차에 깔려 숨진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미국을 강력하게 비판한 인물이 노엄 촘스키였기에 그의 말은 나에게 성서와 같았다. 그렇게 나는 나는 그의 철학과 세계관을 대변하는 앵무새가 되었다. 당시 주창하던 가치는 그의 틀 안에 있다고 보면 된다. 나머지는 당신의 상상력에 맡기겠다.
Q. 당신이 보고 싶었던 풍경은 무엇인가?
A. 아마추어들이 나서는 세상이다.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단위는 능력있는 프로보다 아마추어들이 더 많지 않나. 민주주의가 단지 전문가나 능력 있는 프로들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일반인들, 즉 아마추어들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믿었다. 아마추어가 제도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들의 실천적인 행동 양식을 통해 제도의 전통을 유지하거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당시 소수의 의견보다는 다수의 의견이 그리는 세상이 더 아름답고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믿었다. 소수가 아닌 다수가 그린 세상 또는 풍경이 더 아름다울거라 생각했다. 물론 누군가는 나의 생각을 엘리트주의와 대비된다고 여길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엘리트주의 또한 아마추어들을 엘리트처럼 행동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고로 큰 틀에서 보면 엘리트주의와 다르지 않다.
Q. 당신이 생각하는 아마추어란 무엇인가?
A. 아마추어는 매우 특별한 존재다. 아마추어는 단순히 기술적으로 부족하거나 프로가 되지 못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과 개성을 가진 특별한 존재다. 프로가 정해진 커리큘럼을 따라 기본기가 탄탄한 반면, 아마추어는 커리큘럼 밖에서 자신의 기호와 취향에 맞게 자신만의 길을 걷는다. 그래서 나는 아마추어가 프로보다 더 개성적이고 스타일리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마추어는 프로와 달리 결과보다 과정에서 오는 즐거움과 자기 표현에 더 큰 가치를 두며, 이는 관객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직접 참여하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우리와 같은 아마추어가 행동하니, 우리보다 실력이 뛰어나고 스타일리쉬한 자들이 사이버 세상으로 뛰어들지 않았나? 이것이 아마추어가 가진 힘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이 올림픽이 추구하는 아마추어 정신이 아닐까? 물론 요즘의 올림픽에는 아마추어 정신이 없지만.
Q. 당신의 핵티비스트 모임은 아나키즘에 가깝게 다가왔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A. 미안하다. 난 사회주의와 아나키즘을 정확히 모른다. 그래서 제대로 답하기 어렵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세상이 존재자 간의 관계나 세계와의 상호작용에 따라 변화하고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군중 속의 개별적인 주체들이 일반 법칙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를 추구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 이유다. 객관적 현실을 직면하지 않고서는 주관적 실존이 자리 잡을 수 없듯이, 당시 지식과 이론이 사회를 지배하고 개인의 변화와 움직임에 제약을 가한다고 느꼈고 이 벽을 무너트리기 위해 움직였다. 그래서 사이비 종교와 방송사, 공룡기업, 국가에게 질문을 던진 것이다. 난 이게 사회주의와 아나키즘에 가까운지 모르겠다. 그것보다 당시의 내가 참 바보 같다. 하지만 이해해달라. 그때의 나는 낯선 이성의 숨결보다 음모론과 더 가까이 닿고 싶은 나이였다.
미안하지만 인터뷰는 여기서 마치겠다. 독감인지 배탈인지 모르겠지만 난 두통과 설사가 멈추질 않아, 침대와 화장실을 오가기 바쁘다. 그럼 20000 (굿바이라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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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어려운책과사전을좋아하는사람님의 댓글
어려운책과사전을좋아하는사람 아이피 (211.♡.181.17) 작성일 Date
영택이가 도대체 누구인지, 이 글을 쓴 사람이 누구인지 전혀 모르겠지만 영택이의 이야기가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프로들의 세계에 아마추어로 뛰어든다는 것이 두려웠는데 영택이가 말한 아마추어의 정의와 가치에 대해 들으니 용기가 샘솟는 거 같아요,,!! 나도 할 수 있다!!
궁금한 점 1. 이야기1, 2에서 영택이는 인터뷰를 더 이상 안 하겠다고 했는데 왜 계속하는 걸까요?(비판하는 건 아님. 인터뷰 재밌음)
궁금한 점 2. 영택이의 이야기를 계속 듣고 싶은데 몇 편까지 연재될 수 있을까요?
답변을 기다리면서 이만 줄이겠습니다. 굿바위(그럼 20000 이라는 뜻)
변지선님의 댓글의 댓글
변지선 아이피 (218.♡.110.45) 작성일 Date
1.
상대방의 대화스킬이 뛰어나서 그런 것일 수도 있을거 같아요. 때로는 과거의 잘못을 낭만적으로 포장할 때가 있음에도 일단 비판하지 않고 온전히 들어주려고 노력하거든요. 영택이는 진실한 사람을 좋아하는데, 저 사람 또한 상당히 진실된 인물이었습니다. 그래서 인터뷰 요청이 오면 여유가 될 때 받아준 것 같습니다.
2.
상도님이 이야기 형식으로 글을 쓰신 게 재미있어 보여서 따라했거든요. 아마 질릴 때까지?? (지금 질린 상태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