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일본역사기행 후기
페이지 정보
본문
지난 목요일에 시작한 역사기행을 벌써 1주일이 지나서야 교수님이 주신 숙제를 제출합니다.
배움이 더딘 사람이라 이번 기행이 내면으로 갈무리되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 기간 동안 제 생각은 “소명을 가진 사람은 얼마나 강력한가”라는 하나의 감탄과
“시대가 사람을 만드는가? 사람이 시대를 만드는가? ”라는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되었습니다.
사람이 시대를 만드는 것이 더 주도적입니다. 더 인위적입니다. 주도적이고 인위적인 행위는 소명을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소명을 가진 사람만이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지만, 한 개인의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시대는 쉽사리 열리지 않기에 여러 사람의 힘을 하나로 모은 응집된 힘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개천을 위해 모인 사람들 개개인의 시간이며 그들 한 명, 한 명의 소명이며 결정체이기도 합니다.
지동설은 코페르니쿠스에서 갈릴레이로 갈릴레이에서 케플러와 뉴턴으로 이어졌고,
중세에서 르네상스로 넘어가는 약 1000년, 르네상스에서 근대 산업시대로 넘어가는 500년이 걸리기도 했습니다.
근대화라는 시대의 문은 1800년대의 조선에게 쉽사리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한 두 번개항의 기회가 왔지만 우리는 스스로 그것을 회피해버렸습니다.
조선의 근대화는 한 두명의 개인의 힘으로 열기에는 너무나 거대하였기에 움직임을 확인하기 어려웠습니다.
1876년의 강화도 조약이후 1910년의 경술국치까지 고작 34년 만에 이루어진 일이었습니다.
일본은 1853년 미일통상조약 이후 1876년 강화도 조약까지 23년 걸렸습니다.
조선은 10년 더 준비할 시간이 있었지만 기한이 지난 역사적 소명은 조선의 국권피탈을 가져왔고
시대를 준비한 소명은 10년 더 짧은 시간이었지만 제국의 시대를 만들었습니다. 가슴이 답답한 느낌입니다. 이를 만들어낸 요시다 쇼인과 쇼카 손주쿠의 학생들의 대단함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요시다 쇼인이 쇼카손주쿠라는 개인학사에서 힘을 응축시켰습니다.
현 시대의 불편함을 인식하고 시대의 문을 함께 열어재낄 사람들을 모으고 있었습니다.
92명의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였고, 그 곳에는 지적으로 성숙된, 육체적으로 준비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다카스키 신사쿠, 기도 다카요시, 등과 우리에게 익숙한 이토 히로부미와 같은 인물들이 쇼카손주쿠 출신입니다.
요시다 쇼인은 죽음으로 메이지유신을 시작할 수 있는 불씨를 만들어주었고
다카스키 신사쿠나 기도 다카요시 같은 사람들이 그것을 큰 불로 만들어 메이지유신을 성공합니다.
특히 다카스키 신사쿠는 공산사 거병을 일으키면서 단지 80여명의 기병대원만으로 조슈번을 도모했습니다.
80여명의 기병대원들이 1000여명의 조슈번의 정규군을 압도하여 조슈번을 장악했습니다.
이들이 장악한 조슈번은 사쓰마번과 더불어 메이지유신의 큰 2개의 축이 됩니다.
고작 80여명으로 성공한 거병은 기병대의 소명의 크기와 강렬함 때문입니다.
강한 소명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면 시대를 열어재낄 힘이 됩니다.
이들은 자신의 소명을 개인적 욕망과 국가적 대의를 엮어 만들어냈기 때문에 강력할 수 있었습니다.
일본에 인재가 많아서 일본은 근대화에 성공하였고 조선은 인재가 없어서 근대화에 실패하였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주도성의 차이’이 입니다.
오랜 시간 허울 좋은 사대교린정책을 펼친 조선 인재의 사고방식,
혹은 남의 힘을 빌려 사용하는데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인식적 한계가 차이를 가져왔습니다.
조선의 주도권을 조선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명나라와 청나라에게 쥐여줬고 일본은 막부가 가진 주도권을 천황이 다시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막부와 개화세력사이의 외세의 힘을 빌리지 않는다는 암묵적 합의가 그대로 이행되었을 뿐입니다.
100여명도 되지 않은 쇼카손주쿠나 공산사의 기병대들, 그리고 기본학교 억지우연을 한 번은 맞춰볼 법한 일입니다.
지금 나의 소명은 얼마나 커다랗고 강렬한가가?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만큼의 주도적인가?
혹은 지적, 신체적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인가? 를 고민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하는가? 의 숙제도 생겼습니다.
일본 여정을 마치면서 느낀 하나의 부끄러움은 메이지 유신을 이룬 일본의 위인들에 대해 많이 공부하고 알게 되었지만
일제시기동안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자신을 산화시킨 많은 독립운동가들 알지 못하다는 점입니다. 알아야할 것, 공부해야할 것, 생각이 많아진 기행이었습니다.
- 이전글전봉준과 다카스기 신사쿠 – 공산사와 사쿠라야마 신사편 24.09.12
- 다음글나는 예술적으로 살고 있나? - 모리정원편 24.09.11
댓글목록
한국사 9등급님의 댓글
한국사 9등급 아이피 (118.♡.238.33) 작성일 Date헉!!! ㅠㅠㅠㅠㅠ 교수님의 정수리는 검정빛으로 채워져 있었는데! 이제 베이지색으로 바뀌었군요!!!! 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