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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절점이 희미해진 상징계 그리고 결핍된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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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김민석 (203.♡.249.135)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66회   작성일Date 26-04-13 12:43

    본문

    우선 밝혀야 하는 것은 태고 때부터 자리잡은 나약한 인간의 생존기술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생후 보호자와의 절대적 양육기간이 다른 포유류들보다도 길 수밖에 없는 인간은 고유한 상실을 통해서 언어와 법을 받아들인다. 이것은 곧 문명화된다는 의미다.어쩔 수 없는 경로와 선택 심지어 이렇게 되어야만 하는 강력한 믿음과 소망에 의해서 운명과 같이 되어버린 그러한 방식은 현재와 달리 과거에는 강력한 규율과 상처를 통해야만하는 강력한 조작이었다. 그러한 조작에 의해서 약자들의 무리 형성이라는 불안전한 결합이 공동체로써 안정화 되었다.
     상실, 그것은 생존을 위한 공동체 형성 조건이자 공동체의 입성 조건이며 그러한 구조가 가능하게 하는 무의식적 위치를 결정짓는 조건이다. 문명은 성립된다. 그리고 문명에 의해서 인간에 의해서 일정한 방식으로 방법으로 구조적으로 그것을 유지 보수 발전시킨다. 이렇게 해서 완성되는 것은 오로지 새로운 국가적 이유에 대한 필요성 뿐이다.국가적 이유, 그것은 최종적 성격을 띄고 있으며 더불어 결정적이고 강력한 원인자다. 이것이 필요성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이유는 상실과 더불어 나타나는 무엇이 상실되어 있는지도 알지 못하지만 그 흔적에 끊임없이 영향받는 분열된 주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상실 그 자체에서부터 가능한, 언어와 같이 구조화된 무의식 언어 구조의 일정한 방향성 속에서의 끊임없는 의미화 연쇄가 나타는 곳을 상징계라고 하는데, 상징계의 공간에서 성립되는 것은 다음과 같다.
    대타자의 공간에서 형성되는 상상계적 환상을 통해서 상실 이전에 있었던 무엇인가는 팔루스로써 번역되고 그것은 언제나 희망과 소망 그리고 원할 수 있는 무엇인가로 제시된다. 이것은 상실의 영향력이 강해지면 강해질 수록 즉, 상실이 만들어낸 공백이 약화될 수록 '결정적'이게 된다.

    그렇다면, 공백은 어떨 때 약화되는가? 그것은 의미화 연쇄의 결핍화에 있다. 그것의 최초의 시작 그것의 원동력은 어머니의 욕망에 대한 의미화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다시말해, 타자에 대한 욕망에 대한 궁금증 또는 욕망이 자기 자신으로 대상화되는 것이다. 타자의 기쁨이 자신의 존재 방식으로써 의미화되었기에 의미화 연쇄의 방향성이 존재하는 것이고 언어 구조 자체의 핍진성은 곧 상상되는 방식으로 의미부여된다. 고로 그것의 결핍화는 대타자의 욕망에 대한 의문점에서 시작된다.
    대타자는 어떤 인물도 초월적 존재도 아니다. 그것은 상징계에서 하나의 공간으로써 작용한다. 그리고 그것은 결핍된 채로 존재하는 것으로 주체에 외-존하며 보증자 없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직접적으로 결핍된 것으로 제시될 때, 마치 광활한 공간의 창조주로 즉 환상으로 나타난다. 아니면, 세계나 인생에 대한 거대한 의미나 비밀로써 나타난다. 다시 말해 의미화 연쇄가 정상 작동이 된다면, 대타자는철저히 결여된 것이지만 그 대상이 주체에 의해 어떠한 속임수로서 당장의 욕망의 방향성과 의미를 제시해 준다. 그러나 공백이 불안정해지면 기표연쇄가 느려지거나 정지되면서 실제의 위협이 출몰한다. 그것은 억압되었지만 억압의 기능이 약화되어 나타나는 상실 이전의 어머니적 욕망이다. 그렇게 그것은 엄청난 위협으로써 자리잡으면서 계속 해서 공백의 울타리를 건축하려 무의식은 계속해서 작동한다.
    그렇게 되면, 대타자의 욕망은 더욱더 과장되어 부풀려 지는 동시에 의미화 연쇄 역시 망상적으로 진행된다. 망상적 의미화 연쇄는 결절점의 기능이 상실되거나 약화되면서 폭력적이게 되거나 기이한 언어 사용을 수행하기도 한다.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결국 그러한 환상은 팔루스의 방향성 즉, 타자에 대한 욕망의 원인으로써의 작용이 계속되면서 결국, 대타자의 결핍을 메우려는 '아버지'의 욕망 계속해서 추구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결절점이 약화된 것으로써 죽은 아버지가 아닌 살아있는 아버지라는 것이다
     
    '죽은 자', '산 자'라는 용어부터 정리해야 겠다. 이것은 우선 생물학적 관점에 대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살아있는 아버지, 죽은 아버지, 그것은  '전이 가능성' 의 대상을 염두해두는 용어다. 일례로, 한 인간의 무의식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대상이 필요한데, 하나는 전이 대상으로써의 보호자 다른 하나는 전이 대상을 지배하는 무형의 법칙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자의 대상은 욕망의 한해서 온전히 그것을 추구할 수 없는 '죽은 자'다. 욕망은 언제나 현실에 의해 좌절될 뿐만 아니라, 언어에 의해서 왜곡되고 번역되면서 우회된 채 제시된다. 후자 역시 이 관점에서 죽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욕망을 실현시킬 수 있는 존재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가령, 흔히 고대의 왕의 존재는 절대적인 것이라는 식으로 생각되어 오지만 그것은 오산이다. 오히려 가장 강력한 법칙에 최전선에서 지배되고 있는 존재자로서 국가의 질서에 쐐기나 말뚝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래서 언제나 왕은 새롭게 세워지고 부재하지 않는다.
    왕이 따라야할 규칙을 왕이 실천하지 않으면 그 왕은 죽임 당한다. 특히, 동양에서의 왕은 제사장의 역할을 하면서 하늘(천)의 명을 대신 이행하고 번역하는 역할을 하는데, 하늘이 명을 받아 땅에 적용하는 그것에  오류가 있다면 왕에 대한 자질이 의심될 것이고 왕은 자리를 위협당한다. 德(덕)의 개념의 등장이 인간의 시대의 도래라고도 볼 수 있지만, 오히려 그것은 인간이 진정으로 욕망에 관해 죽어 있는 사태를 받아들인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곧 현재 인간 문명과의 질적인 동일성의 탄생인 것이다. 왕은 신하와 백성들의 전이 대상으로써의 아버지의 역할을 한다. 그리고 언제나 결국, 죽어있어야한다. 그것이 덕德이 있는 존재자고 또 욕망의 주체이며 언제나 아버지를 갈구하는 신경증자에 대해서 하나의 의지할 수 있는 희망이자 롤모델, 희망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반면, 살아있는 아버지는 무엇인가? 지금까지 다룬 왕이 성군이라 부를 수 있다면, 반대로 푹군이라 부를 수 있다. 프로이트의 저서에 나오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는 부족의 아버지이며 주지육림의 쾌락을 누리는 하나라 걸왕의 비극을 시사한다. 이들은 채울 수 없는 상실을 보상받기 위해 왕의 권력을 쾌락으로 맞바꾼다. 또한, 상실에 대한 근본적 불안이 폭력성으로 들어나면서 살아있는 아버지의 무의식 주체는 공포의 대상이 된다. 이들의 어리석음 그것은 그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다. 앞서 말한 듯 왕이 왕답지 못하면 살해 당한다. 그것은 어떤 법도에 어긋나는 것도 덕德이 상실되어서 하늘이 내린 벌도 아니다. 그것은 전이 주체에 의한 공격성에 의해서 살해당한다. 전이 대상자들의 상징계 마저도 영향을 미치는 파급력은 하나의 문명을 흔들정도로 막강하다.(트럼프 암살 시도 사건에 대해서 생각해 보라!)
    문명사적 관점으로 제시되는 상실과 상실에 대한 보상의 메커니즘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전이 조건을 고대의 왕으로 제시되었다. 그리고 오늘날 죽지도 살지도 않은 아버지의 무의식이 출현하고 있다는 것이 나의 현재적 혼란에 대한 나의 진단이다.

    그러한 진단은 다음과 같다.
    하나의 실존적 양식으로써 작동하는 그러한 무의식은  다시 죽기를 원하지만, 그 죽음에 대한 용기도 그것을 받아들일 지식도 없으며 살아있는 아버지가 주는 쾌락의 단편을 핥고 있을 뿐이다.
    삶은 무질서 속에서 그리고 최소한의 규칙만을 갖기에 자기 자신조차 의심하는 동시에 언제나 다시금 자신이 아버지의 위치로 되돌아갈 수 있기를 기약한다(그것은 물론 죽은 아버지를 향해 있다.). 이 기약할 수조차 없는 모순 속에서의 삶은 끊임없이 자신이 아버지라고 주장하는 무법자를 감당해야 하는 타자의 인내심에 달려 있다.
    아버지의 지위를 회복하려는 자가 있다면, 그러한 아버지적 특성을 내제화한 존재자가 있을 터,  계속해서 후자는 전자에게 끈질긴 확인과정에 사로잡히며 그 확인 과정은 분노와 죄책감으로 점철된다.
    무의식은 "아버지가 누구인가?"를 끊임없이 물으며 한 때 아버지였던 자에 대한 적대감 속에 머문다. 아버지를 참칭하는 자에 대한 극렬한 모멸감과 한 때 아버지였던 자에 대한 적대감에 대한 초자아의 공격에 그 스스로도 상징계가 흔들린다.

    아버지에 대한 환상, 이에 따르면 그 스스로가 되어야만 하는 것이고 찾아내야만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 미완적 존재에 마침표를 찍어내려는 욕망은 계속된다. 다시 말해, 의미의 방향성도 기표연쇄 경로도 이따금씩 발생하는 봉합지점이 나타내는 결정적 흔적은 존재완성의 환상을 부추긴다.이것은 누군가의 특수한 생활양식이 빚어낸 한 인간의 삶을 분석해 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대타자에 환상적 접근 방식으로써 공식화 해 볼 수 있다면 시대적 증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 과거에 강력한 아버지에 대한 믿음이 팽배했을 때 (아니 그것 밖에 남지 않았을 때), 그들의 행했던 무지막지한 추진력과 초인적 인내가 가능했지만 그것이 사라졌을 때 대체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사라진 자는 허무주의자 물질주의자로 전락한다. 혹자는 이에 대해 미래에 대한 희망이 사라졌기 때문에 더이상 발전할 수 없기 때문에, 너무나 빨리 시간이 지나서, 이미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너무 늙어버렸기 때문이라고도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당장 인정받을 수 있고 누구나에게나 접근 가능한 무엇인가를 추구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두가지 측면으로 나뉘어 분석되는 아버지를 찾아다니는 신경증 환자의 환상이다. 사람들의 방황 이것은 결국, 사회의 안전망을 크게 위협하고 저해하는 핵심적 요소가 되는데 이 원인을 희망의 부재라고 한다. 반대로 희망이 존재했을 때는 사회적 관점으로 다시말해, 사회적 발전이 크게 두드러지고 물질적 조건이 비약적으로 발전했을 때를 말하고 있다. 사회발전으로 이룩한 다양한 물질적 풍요가 희망에서부터 잉태되었다는 생각의 결론 자체가 희망이 상실된 이후로 사회의 몰락까지 이어진다는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사회의 발전이 개개인에 적용할 수 있는 희망(물론, 그것 역시도 번역된 희망)이라면, 희망이 사라진 것 그것은 번역된 일자적 희망이 아닌, 파편화된 믿음 그 자체다.
    믿음과 희망이 사라진 것 그래서 사회의 부흥까지 이어지는 결과론적 희망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다른 문법으로 다른 언어로 계속해서 살아숨쉬고 있다. 그것이 없다면, 아버지가 될 수 있냐 없냐로 그와 같이 될 수 있냐 없냐의 문제 자체가 사라질 것이 기 떄문이다. 또한 희망의 부활, 희망의 복귀 혹자가 말한 과거의 반복 즉, 같은 질량의 희망은 없다. 다시 말해, 같은 아버지는 없다. 과거와 같이 무궁한 발전 소위, 한강의 기적은 재현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외부적 요인의 궁핍함이 희망의 존재를 대신하는 논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즉, 외부환경의 궁핍함이 곧 희망이라는 믿음을 부여해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전이 대상이 진정으로 죽어 있을 때 가능한다. 차라리 현재는 외부의 풍요가 희망을 사라지게 하는 것으로 분석하는 것이 더 타당해 보인다. 외부의 풍요는 아버지의 종교를 약화시킨다. 신경증자의 무의식은 더욱더 공백을 강화시키기 위해 충족된 무엇인가 현실화된 무엇인가에 대한 것을 환상화 시키지 않는다. 환상은 방어를 위해서 더욱더 강력한 결정적인 순간 그리고 풍요로운 물질에 대한 환상을 요구하고 그것은 희망이 아닌, 망상으로 귀결된다...
    죽기를 원하지만, 그래서 자신의 거세된 욕망과 더불어 철저한 규율에 자신의 신체를 던져넣어 전이대상이 되기를 원하지만, 그것은 신체와 정신의 과부화를 일으키는 막대한 학대와 인내의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기에 늘 그렇게 했듯이 살아 있는 신체에 대한 막대한 환상을 생산해 낸다. 이것은 니체의 진단과 같이 갈 수 있다.그렇다면, 늘 그렇듯이 위버맨쉬(Ubermensch)가 기도되어야 하는 것인가?
    그렇지만, 그러한 분별된 인간 뛰어난 인간을 기도하기에는 시간도 여유도 없을 지도 모른다. 고독한 인간, 또 다른 생각에 충실하게 실천할 인간이 남아 있는 자리는 더욱더 좁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불확실성을 견딜 수 있는 인간 그리고 그것에 동조할 인간은 더욱더 위험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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