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인과 현대인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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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는 본질에 앞선다' - 장 폴 사르트르
즉, 태어날 때 정해진 성격·본질·운명·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살아가는 과정 속 선택, 행동, 관계, 책임이 쌓이며 “나는 누구인가”가 만들어진다
길을 지나가다보며 여러 근대인들을 마주친다. 얼마를 벌어야 한다. 무엇을 이루어야 한다. 어떤 게 이상적이다.
딱히 틀린 말 같지는 않다. 하지만 뭔가 모를 이질감을 느낀다. 그 말이 왜 태어났는 지 생각해보면 그 시대상에 맞는 말이기 떄문에 태어났다
우리가 살아가는 자본주의는 팽창하는 습성을 지녔다. 그리고 팽창하기 위해 어떤 사람들을 어떤 목표를 가지게 해야 한다.
더 많이 벌어야 하고, 더 날씬해보여야 하고, 더 목적에 부합해야한다. 주변을 보면 명확하다. 대한민국은 돈이 종교인 나라다.
청소년들은 대학을, 졸업생들은 취업을, 직장인들은 돈을 위해 산다.
적다 보니 -내가 느낀 이질감의 원인을 찾았다. 이건 '현대적이지 않다'
모든 생산은 이제 AI가 대체하게 될 것이다. 실제로 딥마인드(DeepMind)의 ‘알파폴드(AlphaFold)’가 단백질 구조 예측 문제를 보면 명확하다
천재 수학자 수십 명이 50년 동안 붙어도 못 푸는 문제를 AI가 하루만에 해결했다.
더 이상 우린 생산적이지 않다. 그 어떤 인간도 AI를 생산력에서 이기지 못한다. 즉 목적을 달성하는데 인간은 불필요하다
AI만 그런가? 아니 자본도 그렇다. 대한민국은 현재 저성장 국면에 다다랐다. 새로운 혁신이 없는 이상 더 이상 급진적인 성장이 없을 것이다.
젊은 세대들은 집을 꿈꾸기도 어려워졌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 힌트를 나는 사르트르의 말에서 찾는다. 추상적으로 또 구체적으로
'존재는 본질에 앞선다' 즉, 우리가 태어난 데에는 어떠한 목적도 없다
우린 어떤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지 않다. 아니 목적이 있다해도 정확하지 않다. 돈 떄문에 살 것인가? 그럼 밥 먹는 시간은 낭비한 시간인가? 정의나 도덕 같은 가치 떄문에 살 것인가?
아마 그 가치로 판단할 수 없는 수 많은 상황에 둘러 쌓일 것이다.
그러면 현대인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 주어진 대로, 내가 끌리는대로, 내 직관대로
수업 중 반복해서 듣는 질문이, 어떻게 수준 높은 직관과 수준 낮은 직관을 구별하는가라는 질문을 듣는다. 내 생각은 이렇다. 애초에 직관에는 수준이라는 게 없다. 수준 낮은 직관은 직관이 아니다.
직관을 직관이지 못하게 하는 것은 바로 두려움이다. '이러지 않으면 어떠할까?'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자연스럽게 내가 끌리는 것을 탐색해야 한다. 인간은 그러할 때 가장 큰 힘을 발휘한다. 그거 왜 해? 라는 질문에 '좋아서'라는 답을 할 수 있을 때 - 그 때 비로소 현대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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