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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의 역사를 읽고(버나드 로 몽고메리, 승영조 옮김, 책세상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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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졸업생 (123.♡.33.101)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967회   작성일Date 25-10-25 13:47

    본문

    <전쟁의 역사>는 기본학교 책 읽기 모임에 선정된 책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어야 한다고 여긴 이유는 <최진석의 대한민국 읽기>에서 아자 가트의 <문명과 전쟁>과 함께 언급된 책이기 때문이다. 최진석 교수님과 같은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싶은 욕망을 품은 기본학교 칭구들이라면 기본적으로 읽었을 것으로 생각되니, 나 또한 따라 읽었다. 


    이 책을 읽고 느낀 점은 다음과 같다.


    "평화를 원한다면, 그럴 만한 힘을 갖춰야 한다."



    이 책을 읽다보면, 왜 기본학교 책 읽기 모임 도서로 선정되지 않았는지 자연스럽게 끄덕이게 된다. (꾸벅꾸벅 졸아서 고개 끄덕인 거 아님) 이 책이 절판된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아자 가트의 <문명과 전쟁>에 비하여 지적 호전성이 덜 발휘되었다. 


    만약 누군가가 운전 중인 나를 위해 조수석에 앉아 이 책을 소리 내서 읽어줬다면? 나는 졸음운전으로 인해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이 책의 저자인 몽고메리를 직접 만나게 되겠지. 만약 그를 직접 만나, "장군님! 제가 장군님의 책 덕분에 여기로 왔습니다." 라고 말하면 감동 받을까? 조금 더 못나게 표현하자면, 은퇴한 장성 출신 할아버지가 거실 쇼파에 앉아 한 손에 신문을 돌돌 말아 움켜쥔 상태로 들려주는 훈계 같은 느낌이랄까. 듣긴 들어야 하는데, 귀는 열려 있지만 마음은 이미 컴퓨터 앞으로 향하고 있는 그런 느낌. 


    많은 사람들은 서양인은 호전적이고 동양인은 도덕적이라고들 말한다. 다시 말해 셔양인은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고 동양인은 집단주의 성향이 강하다고 하던가? 그런데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젊은 사람들은 대체로 호전적이고 늙은 사람들은 대체로 도덕 지향적이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나 헤르만 헤세가 노년에 쓴 글들만 보아도 그렇다. 가르치려는 듯한 내용을 넘어, "젊은이들은 내 말을 듣도록." 이란 네온사인을 밝게 켜놓은 것 같은 느낌이다. 우리나라도 다르지 않다. 이어령 선생님이 젊은 시절에 쓰신 글과 말년에 쓰신 글을 비교해보면 바로 알 수 있다. 물론 이해할 수 있따. 긴 시간을 살면서 교훈과 지혜가 사라지는 건 아까우니까. 마치 평생토록 모은 우표 컬렉션과 희귀 동전들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과 다를 게 없겠지. 물론 예외도 있다. 일본 최초 노벨 문학상 유력 후보자였던 다니자키 준이치로는 늙어서도 특정 교훈을 전하려고 하지 않았다. 만약 이 사람이 초, 중, 고등학교 교장선생님이었다면, 은퇴를 앞둔 날에도 훈화를 하지 않았겠지. 


    최진석 교수님은 황당함을 이야기하실 때 돈키호테를 주로 예찬하셨다. 나에게 이 메시지는 다음과 같이 들렸다. "헤르만 헤세, 헤밍웨이 같은 글보다, 다니자키 준이치로처럼 나만의 글을 쓰겠다." 그래서 나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벅차고 설렜고 흥미로웠던 이유다.


    누군가는 "전쟁의 역사란 책을 읽었는데 왜 계속 딴소리하냐?" 라고 물을 수 있다. 이유는 단순하다. 재미가 없었기 때문. 어쩌면 내가 역사에 흥미를 갖지 못하는 이유도 이에 기인할 것이다. 이런 재미없는 책을 재미있게 읽는 방법은 단순하다. 내가 이 책에서 무엇을 뽑아낼 것인지 목표를 품고 있으면 된다. 예를 들면, "이 책을 읽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한국과 북한 나아가 세계 3차 대전 가능성에 대해 논하고 싶다." 같은 게 대표적이다. 기본학교 칭구들이라면 목표보다 목적을 두고 읽을 수 있따. 예를 들면 "최진석 교수님 정도의 시선으로 전쟁에 대해 논하고 싶다." 가 있겠다. 그 이유는 앞서 말한 것처럼 <전쟁의 역사>는 <최진석의 대한민국 읽기>에서 <문명과 전쟁>과 함께 언급된 책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최진석 교수님과 비슷한 시선으로 전쟁에 대해 논해보고 싶다면, 적어도 아자 가트의 <문명과 전쟁>, 몽고메리의 <전쟁의 역사>라는 두 권의 책은 읽어야 한다 .



    어떤 책이냐?


    이 책의 저자인 버나드 로 몽고메리는 제 2차 세계대전의 영웅이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지휘한 인물이다. 그는 은퇴한 후 실제 전쟁을 경험한 군인의 시각으로 전쟁사를 바라보았다. 제목만 놓고 보면 각종 전투 전략과 병기 관련된 이야기로만 가득 채워져 있을 것 같아 군인들이 무조건 읽어야 할 할 책 정도로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전쟁을 통하여 인간을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다.그리고 문명사적으로 전쟁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누구나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이 책이 쓰여진 1960년대의 영국은 제국의 쇠락이라는 문제와 냉전이라는 불안 속에 있었다. 다음은 내 주관적인 생각인데, 시대적 상황으로 인하여 저자는 전쟁을 냉철한 시각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벼랑 끝에 내몰린 강아지처럼 긴장된 상태로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다시 말해, 전쟁을 어떻게 예방하고 인간성을 지켜야 할 것인지에 초점을 맞췄다. 


    이 책의 매력은 전쟁을 군인의 관점으로 바라보았다는 점이다. 지루한 역사학자였다면 연대기를 충실하게 따르며 사건만 나열했겠지만 이 책은 그러지 않았다. 예를 들어 해전 사례를 말할 때 살라미스, 트라팔가, 알라메인, 미드웨이 등의 이야기에서 공통적으로 전하는 메시지는 바다를 장악한 국가가 패권을 지배했다는 메시지를 하나의 문장으로 응축시켰다. 


    책이 두꺼워서 진입장벽이 높을 수 있지만, 실제 텍스트 양은 그리 많지 않다. 사진과 그림이 많이 수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마치 어린 시절에 즐겨보던 백과사전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물론 어린이들이 읽는 백과사전보다 2~3배 두껍지만.


    부족한 점이 있다면 전쟁으로 인한 사상과 경제 구조 변동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다루지 않았다. 그래서 이 부분을 기대하고 읽는 사람들은 가볍게 읽는 걸 권하고 싶다. 




    1부. 전쟁의 본질과 제너럴십


    1) 전쟁의 본질


    전쟁은 왜 일어나냐? <전쟁의 역사>가 바라보는 전쟁이란 "합의를 도출시킬 방법이 없을 때 중재자." 이다. 다시 말해 경쟁 관계에 있는 집단 간의 장기적 무장 충돌로 정의했따. 이어서 대전략, 전략, 전술이란 개념을 설명한다. 대전략은 한 민족의 모든 자원을 조정하는 것, 전략은 군사력을 분배하고 적용하는 기술, 전술은 실제 전투에서의 군사력을 운용하는 것이다. 


    개념 정의를 마친 후 전쟁의 요소를 제시한다. 바로 이동과 화력이다. 다만 최근 장갑차와 무선 통신 기술의 등장으로 현대전은 새롭게 바뀌었다. <전쟁의 역사>는 정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본인은 막사에 적장인 로멜의 초상화를 걸어두고 그의 심리까지 들여다보려고 했다는 경험까지 공유한다. 이는 단순한 일화가 아닌, 전쟁이라는 건 상대방의 마음까지 이해하는 것이 승리의 핵심이라는 걸 드러내기 위함이다. 


    전쟁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인간이다. 전투의 승패는 군인들의 가슴속에서 이미 좌우된다. 군대의 진정한 힘은 사기와 투혼 그리고 상호 신뢰에서 비롯된다. 현대전에서 지휘관이 인간적인 문제에 제대로 접근하지 못한다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고 지적한다. 여기서 볼 수 있듯, <전쟁의 역사>는 인간 중심적으로 역사를 들여다 보고 있다.


    2) 제너럴십


    <전쟁의 역사>는 전쟁의 본질을 다룬 다음, 이를 수행하는 제너럴십에 대해 접근한다. 프랑스 왕국 초기 총리인 탈레랑은 전쟁은 심각한 일이므로 군인들에게 맡길 수 없다고 말한다. 이에 저자는 같은 이유로 정치가들에게만 맡길 수 없다고 지적한다. 다시 말해 정치와 군인의 면밀한 협조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전쟁의 역사>가 말하는 제너럴십은 지휘의 과학이자 기술이다. 이론적인 내용을 실전에 원만하게 적용시킬 수 있는 능력이 갖춰져야 하기 때문이다. 마오쩌둥은 피의 대가로 얻은교훈은 진지하게 연구할 수 있지만, 우리 자신이라는 시험대에도 올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프로이센 3대 국왕인 프리드리히 2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 군에는 마혼 번의 작전을 수행한 노새 두 마리가 있는데, 그것들은 아직도 노새다!" 이는 연구가 없는 경험, 경험이 없는 연구 모두 불완전하다는 것이다. 


    나아가 구체적인 제너럴십의 원칙도 제시했따. 총사령관은 군대가 살아가고 일하고 싸울 수 있는 심리적 환경을 창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전투의 전술적인 방법인 기습, 역량, 협조, 단순성, 신속한 행동, 기선제압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지휘관은 탁월한 사색가이자 잡다한 것들 속에서 핵심을 추려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고로, 장군이란 만들어지는 것이지 태어나는 게 아니라는 메시지를 전한 후 역사 속으로 들어간다.



    2부 고대 전쟁, 서구 군사 전통의 뿌리


    2부는 인류가 전쟁을 생존 수단에서 문명의 조직 원리로 발전시켰다고 말한다. 그리고 1부에서 제시한 전쟁 이론인 대전략, 전략, 전술이 어떻게 실현되었는지를 보여줬다. 


    초기 전쟁의 기원을 통하여 인류가 전쟁을 하게 된 이유는 단순한 폭력성이 아닌 경제적 문제, 생존 경쟁에서 찾았다. 원시인들에게 먹거리와 안전한 주거지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제적, 생존의 이유를 전쟁의 원인으로만 단정 짓지 않았다. 전쟁은 명예와 종교 그리고 소속감, 즉각적인 이득 등의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리스 시대에 들어서면서 전쟁은 조직화된다. 페르시아 전쟁은 정복의 개념이 아닌 문명 간의 충돌로 보았다. 그리스를 구하는 게 아시아인의 학정으로부터 유럽을 구한 것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여기서 벌어진 마라톤 전투와 살라미스 해전은 서구 문명의 운명을 좌우한 순간이었다. 당시 그리스 군사는 청동 투구와 흉갑 그리고 커다란 방패로 무장한 보병들이 빽빽한 대형을 이루어 전진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이는 당대 최강 전술이었다. 그리스 군사 체계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에 의하여 정점을 찍게 된다. 그는 보병과 기병을 결합하여 새로운 전술을 창조했다. 


    그리스 시대의 알렉산드로스라는 천재적인 영웅의 시대는 로마 팽창기에 의하여 접어든다. 로마는 제도와 조직의 힘을 통하여 전쟁을 이끌어갔기 때문이다. 로마군은 빽빽하게 모여 경직되어 있는 그리스의 전열을 넘기 위하여 장기판처럼 배치하여 수비와 공격은 단순하고 유연하게 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한다.  나아가 요새화된 진지와 철저한 병참 구조는 로마를 가장 강력한 수비군으로 만들었다. 이러한 인내심과 조직력이 한니발이라는 천재적인 장군을  극복한 것이다. 


    하지만 로마는 외부의 침입이 아닌, 내부의 제도적 부패와 정신의 쇠퇴에서 비롯되었다. 방대한 영토를 유지하기 위한 행정력 그리고 사기가 무너지면서 제국은 스스로 무너졌다. 이는 현대 국가에서도 적용되는 교훈이다.



    3부 중세 전쟁, 새로운 세력


    3부는 제국의 몰락으로 인한 혼란 속에서도 전쟁이 문명의 발전 동력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로마 제국이 무너지고 나서 유럽은 분열과 같은 혼란에 빠졌지만 비잔틴 제국과 노르만 세력, 십자군, 중세 후기의 왕국들이 군사 체계와 기술을 구축한다. 중세 초기의 이슬람 팽창은 유럽을 위협하였으나 비잔틴 제국의 그리스 불(Greek Fire)이란 무기와 중장기병 전술을 통하여 동로마는 군사적 우위를 지켰다. 이는 단순한 방어가 아닌, 군사 이론의 제도화 그리고 병참 체계의 발전으로 전쟁이 국가 단위로 커지기 시작한 것이다.


    노르만 정복, 십자군 전쟁은 전쟁이 종교와 정치가 결합된 사례로 바라보았다. 윌리엄의 헤이스팅스 승리는 기병과 궁수를 섞은 복합전술이라는 군사 교리를 보여주었다면, 십자군은 성과 신앙을 바탕에 둔 전쟁 구조를 형성했다. 하지만 살라딘의 포위 공격을 받아 참패한 것을 통하여 전쟁은 전략과 판단력이 중요하다는 걸 강조했다.


    중세 후기에 접어들면서 전쟁의 방향성은 기술에 의하여 좌우되었다. 장궁과 석궁 그리고 화약과 대포가 등장하면서 기사 계급은 무너졌다. 그렇게 전쟁 판도는 장군이라는 소수가 아닌, 체계적인 전술과 조직력에 좌우됐다. 백년전쟁을 통하여 민족의식과 중앙집권이 강화되면서 전쟁은 국가 형성의 기틀이 되었다. 



    4부 유럽 전쟁, 기술과 전략, 정치의 결합


    16세기 에스파냐는 유럽 최초의 근대 제국이었다. 페르난도와 이사벨이 나라를 통일한 다음 카를로스 1세 때에는 유럽 전역에서 전쟁을 벌인다. 이 시기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변화는 화약무기의 등장이다. 화승총과 대포, 머스킷 등의 신무기들이 전쟁의 판도를 바꿔놓았다. 배에도 대포를 장착하였고 요새 건설 기술도 발전하여, 전쟁은 육지에서 바다로 확장된다. 그러다 1588년 에스파냐의 무적함대가 패배하면서 해양 패권은 잉글랜드에게로 넘어간다.


    오수만 제국의 등장은 유럽과 이슬람 세계의 충돌을 보여주는 상징에 가깝다. 예니체리와 같은 체계적인 군사조직을 기반으로 하여 종교적 제국주의를 펼치기 시작한다. 1453년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하면서 동로마제국은 막을 내리는데, 1571년 레판토 해전에서 패배하면서 해양 주도권이 다시 유럽에게 넘어간다. 


    17세기에 진입하면서 전쟁의 성격이 바뀐다. 종교적인 대립에서 정치의 수단이 된 것이다. 30년 전쟁이 가장 대표적인 예다. 스웨덴의 구스타프 아돌프는 보병, 기병, 포병을 결합한 근대적인 전술을 완성하는데, 이는 나폴레옹이 착안하게 된다. 잉글랜드 내전에서는 올리버 크롬웰이 규율과 종교적인 열망으로 무장한 군대로 왕권을 무너뜨린다. 이는 정치 혁명과 군사 혁신이 만난 새로운 전쟁의 형태였다.


    18세기의 말버리 공작은 빠른 기동과 외교적 협상을 통하여 동맹군을 이끌어, 전쟁이 정치적인 측면으로 변모하게 된다. 프로이센의 국왕인 프리드리히 대왕은 사선 전술을 통하여 전투의 효율을 높이고 전쟁을 국가 정책의 연장선으로 바라보는 근대적인 전략 개념을 구축한다. 


    나폴레옹, 넬슨, 웰링턴의 시대는 전쟁이 국가 총동원의 체제로 접어든다. 프랑스 혁명으로 애국심에 기반한 국민군이 등장하고, 나폴레옹은 유럽 전체를 뒤흔들었다. 넬슨은 트라팔가 해전에서 전열을 파괴하는 혁신적인 전술을 선보이고, 웰링턴은 워털루 전투에서 지휘와 병참의 완성형을 선보인다.


    4부 유럽 전쟁은 기술이 전략을 바꾸고, 전략이 국가를 바꾸고, 국가가 세계를 지배하게 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전쟁은 소수의 영웅의 싸움이 아니라 제도와 기술 그리고 외교가 총동원되는 시스템으로 진화한 것이다. 이 시기는 전쟁이 문명의 구조를 좌우하는 근대적 시스템으로 자리 잡게 된 전환기였다. 



    5부 동양 전쟁, 정신과 질서라는 조화


    몽골은 13세기, 세계를 뒤흔들었던 유목 제국이다. 칭기즈칸과 그 후계자들은 기동력과 조직력, 심리를 무기로 하여 유라시아를 지배했따. 기만, 포위, 허위 퇴각 등의 전술은 전통적인 전술을 압도했따. <전쟁의 역사>가 바라보는 몽골 제국이 무너진 이유는 정신적인 통합이 없이 힘으로만 세워진 구조에 있다. 몽골은 전쟁의 효율과 폭력의 극단으로 세계를 지배하였으나 문화적 기반이 갖춰지지 않은 제국은 스스로 무너진다는 것이다.


    이에 중국은 정반대였다. 전쟁을 국가 통치의 일정 부분으로 여겨 제도화했다. 화약을 발명하고 화기와 야포 등을 개발한 문명이지만 이 기술은 정복이 아니라 질서 유지와 안정적인 통치에 있었다. 중국에서의 무력은 하나의 행정적인 도구에 가까웠고, 전쟁은 확장보다 질서를 회복하기 위함으로 보았다. 손자병법에서 볼 수 있듯,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을 최상의 가치로 여겼는데, 이를 동양적인 전쟁관으로 본 것이다.


    일본은 중국과 조금 다른 방향으로 전쟁을 바라본다. 사무라이 계급에게 전쟁이란 생존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그저 명예와 도덕을 실천하기 위한 장이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하나의 체계로 무장되어 있었던 것이다. 16세기에 유럽에서 총포가 들어왔을 때에도 일본은 하나의 도구로만 받아들였을 뿐이다. 일본에게 전쟁이란 정신성에 뿌리를 두고 있엇다. 다시 말해 기술 그 자체보다 마음가짐이 전쟁의 승패를 좌우한다고 여겼따.


    인도는 또 다른 축을 이루고 있다. 광대한 영토는 종교와 언어, 문화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고 전쟁도 이에 기인했따. 고대의 힌두 전사들은 다르마(의무), 아르타(이익)을 조화시키는 걸 전쟁 철학으로 발전시켰따. 추후에는 이슬람 투르크 세력이 무굴 제국을 세우고, 18세기에는 마라타 기병이 제국을 위협했고, 결국 영국 의 식민 세력이 들어서면서 인도의 전쟁사는 정신성과 제국주의가 충돌하는 곳이 되었다. 


    <전쟁의 역사>가 바라보는 동양은 정복보다는 통합을 추구했으며, 승리보다는 질서를 추구했따. 하지만 이 방식은 문명마다 차이가 있었다. 몽골은 힘, 중국은 제도, 일본은 정신, 인도는 신념에 기초하고 있었다. 



    6부 1815-1945 전쟁, 산업혁명과 전쟁의 기계화


    나폴레옹 이후로 유럽은 잠시 평화를 누렸다. 하지만 산업혁명은 전쟁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철도와 전신, 강선포, 후장식 소총 등의 도입은 병력의 이동과 지휘 통제 방식을 혁명적으로 바꿔놓았다. 


    19세기 후반 몰트케와 비스마르크의 프로이센 군사체계는 철도와 참모 제도를 활용하여 전쟁을 과학적으로 계획하는 모델을 구축했다. 그러나 러일전쟁에서 드러난 참호전, 기관총의 중요성을 유럽은 무시했다. <전쟁의 역사>가 여기서 강조하는 건, 기술은 발전했으나 인간의 사고는 전근대에 머물러 있었다는 것이다. 크림전쟁에서의 나이팅게일 간호활동은 의료 체계 개선의 계기가 되었다는 점도 환기시킨다. 다시 말해 이 시기에는 기술 뿐만 아니라 인도적인 체계가 함께 발전되었다는 점도 보여준다. 


    제 1차 세계 대전은 기계문명으로 인하여 인간의 존엄성이 무너진 사건으로 본다. 기관총과 포탄, 독가스, 철조망 등은 인간의 신체를 갈기 갈기 찢었다. 그렇게 전쟁은 한 치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상태로 인류 문명의 비극만 연속적으로 기록되었다. 탱크와 항공기가 처음으로 등장했으나 전세를 바꿀 수 없었다. 전쟁이 끝났다. 전쟁이 끝나고 체결된 베르사유 조약은 패전국 독일의 분노를 키우며 다음 대전의 씨앗이 되었다.


    1939년 폴란드 침공으로 시작된 전쟁은 과학과 산업, 프로파간다, 심리전이 통합된 전쟁이었다. 독일은 기동성을 바탕으로 유럽을 지배하였으나 알라메인 전투와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인해 전세가 역전된다. 태평양에서는 미군이 섬을 하나씩 점령해 나가면서 진격하기 시작했고,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되면서 인류는 스스로 만든 파괴의 한계를 목격한다. 


    6부는 인류가 전쟁을 통하여 기술의 정점에 도달하였으나 이와 동시에 정신적 한계에 마주한 과정을 보여주었다. 



    7부, 불가해한 숙명, 진짜 평화는 인간성 회복


    전쟁은 인간의 덕목과 잔혹함이 동시에 드러난다고 말한다. 전시에는 동지애와 용기, 희생이라는 가치가 피어나지만, 동시에 인간성의 고삐가 풀리기도 한다. 나치의 학살 같은 사례를 통하여 볼 수 있듯이, 문명적으로 진보된 시대여도 전쟁은 언제든지 잔혹해질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전쟁의 승패는 정의보다 힘의 가치에 의존한다. 하지만 진짜 군인은 타인을 적으로 삼지 않고, 인간 내면의 야수를 적으로 삼는다는 말을 통하여 윤리가 없는 전쟁은 문명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경고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로 미국과 소련으로 양분되고, 이념의 전쟁은 평화라는 껍데기 속에서 지속되었다. 전쟁이 총 대신에 체제와 사상으로 이어진 새로운 형태의 충돌로 볼 수 있다. 베트남 전쟁, 한국전쟁도 이와 같은 상징적인 결과로 보았다. 핵무기의 존재는 오히려 전면전을 억누르는 거짓 평화를 낳았다. 


    핵무기의 등장은 전쟁의 개념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핵 억지력의 균형은 제 3차 세계 대전을 막는 방패이기도 하지만, 이는 공포 위에 세워진 평화라고 비판했다. 핵은 전쟁의 본질인 승리에서 공존의 공포로 변모시켰고, 평화는 결국 두려움을 견뎌야 하는 것으로 정의되었다.


    다시 말해 기술 보다 정신, 무기보다 의지, 공포보다 신념이 역사를 지킨다는 결론이다. 



    마치며, 대한민국은 무엇을?'


    대한민국의 보수는 안보, 진보는 평화를 외친다. <전쟁의 역사>는 어느 쪽에 가까울까? 이 책이 반복적으로 밝히는 진실은 다음과 같다. 역사에서 평화를 지킨 건 선한 의지에 입각한 평화가 아니라 힘이었다. 다시 말해, 힘을 갖춘 나라만이 안전하게 자신을 지킨다. 이는 다소 냉철하게 다가올 수 있으나 3천 년이라는 전쟁사가 거듭 말하고 있는 사실이다.


    진보적 가치로 평화가 어떻게 유지되는지, 보수적 가치로 안보가 무엇을 지키는 것인지 명확하게 설명하면 좋겠지만, 이 둘의 끝에는 전쟁을 하지 않는 것으로 귀결된다. 그런데 이는 북한의 선의나 중국의 너그러운 배려로 따라오는 게 아니다. 전쟁을 시작할 생각조차 못하게 만드들 힘을 갖추고 있을 때에야 따라오는 것이다. 


    <전쟁의 역사>는 기술 혁신이 전쟁의 판도를 어떻게 바꿨는지를 보여줬다. 화약이 기사 계급을 무너트렸고, 철도는 나폴레옹의 전쟁을 끝마쳤고, 항공기는 제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떻게 해야할까? 최근 K-9 자주포와, K-2 전차, FA-50 전투기는 세계 방산 시장으로 뻗어나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집중해야 할 영역은 다른 곳에 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그리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쟁을 통해서 볼 수 있듯이, 무인 드론, 사이버 전력, 인공 위성 기반의 정보 통신, 정밀타격 등이다. 이를 만들 수 있냐 없냐를 넘어서 이 변화하고 있는 시대에 제대로 탐승할 의지가 있냐 아니냐에 달려 있다. 


    물론 아무리 훌륭한 무기가 있다 하여도, 국민들이 싸울 의지가 없다면 전쟁을 수행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다. <전쟁의 역사>는 사기와 의지, 협동심을 끝도 없이 강조했다. 


    <전쟁의 역사>는 마지막에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진정한 군인은 타인을 적으로 삼지 않고, 인간 내면의 야수를 적으로 삼는다. 한 군인으로서 나는 희망한다. 황금빛 노을이 지고, 반목과 싸움을 잠재우는 소등 나팔소리가 울리는 그날이 오기를. 이윽고 찬란한 태양이 솟아오르며 세계 온 나라의 친선과 평화를 깨우는 기상나팔이 울리는 그 시대가 오기를."

    961p.


    여기서 우리가 현재 바라봐야 할 것은 무엇인가? 외부의 북한인가? 중국인가? 일본인가? 미국인가? 러시아인가? 진짜 적은 우리의 무지와 안일함 그리고 분열이다. 전쟁을 막을 능력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평화만 외치고 있는 것이야 말로 우리의 적이라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인구는 줄고 있으며, 주변의 강대국들은 팽창하고 있다. 북한은 핵을 꾸준히 개발하고 있다. 그렇다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평화를 외칠 것인가, 아니면 능력을 갖춘 상태에서 평화를 외칠 것인가? 


    다시 말해 전쟁을 원하지 않되, 전쟁을 두려워 할 필요도 없다. 우리가 준비되어 있을 때에야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단든 것이 이 책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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