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칠 팩터를 읽고 (보리스 존슨, 안기순 옮김, 지식향연,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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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칠 팩터>는 기본학교의 책 읽기 모임, 세 번째 책이다.
물론 나는 모임에 참석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모른다.
뭐 수준 높은 이야기 하지 않을까?
이 책을 읽고 느낀 점은 다음과 같다.
"한 사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위 느낀점은 나의 고유한 생각이라 보기 어렵다. 그저 <처칠 팩터>의 내용 일부를 옮겨 놓았을 뿐이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역사는 방대하고 비인격적인 경제 세력의 이야기라는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들의 주장을 처칠은 몸으로 저항했다. 그래서 처칠 요인(처칠 팩터)의 핵심은 바로 단 한 사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처칠 팩터> 14p.
"시대가 사람을 만드는가, 사람이 시대를 만드는가?" 영국의 정치인이자 저널리스트인 보리스 존슨은 앞선 물음을 물고 늘어지면서 <처칠 팩터>를 썼다. 보리스 존슨은 어떤 이유로 처칠을 다시 소환한 것일까? 내 생각은 단순하다. 처칠은 과거에 우리의 문명을 구한 인물이며, 이 정신은 현재 영국에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1940년 5월 28일 독일과의 협상 여부를 두고 벌어진 전시 내각의 결정을 극적으로 재현하면서 시작한다. 연속된 패전과 고립 속에서 내각은 "계속 싸울 거냐, 항복할 거냐"에 대해 논쟁하기 바쁘다. 결국 내각은 처칠의 손을 들어주고 영국은 항복이 아닌 결전을 택한다. 이후 <처칠 팩터>는 처칠의 생애, 정치, 문화적 업적 그리고 전후 세계 구상을 촘촘히 따라간다. 그렇게 저자는 "단 한 사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게 기본학교 책 읽기 모임의 세 번째 책으로 선정된 이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
한 사람이 세상을 바꿀 때
"오늘날 처칠이 중요한 인물인 까닭은 과거에 우리 문명을 구원했기 때문이고 게다가 그렇게 할 수 있는 인물도 처칠뿐이었다."
<처칠 팩터>, 14p
위 문장에서 저자인 보리스 존슨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그에게 역사란 구조에 의해 바뀌는 게 아니라 개인의 결단에 의해 바뀐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경제의 흐름과 기술의 발달, 대중의 관성 등이 역사를 결정하는 게 아니라, 단일 인물이 거대한 파도의 흐름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하여 그는 대안이 부재한다고 말한다. <처칠 팩터>는 1940년 5월 28일 전시 내각이 히틀러와의 협상 여부를 앞두고 사흘째 격론을 벌이던 상황에 집중했다. 회의실 내에는 애틀리, 체임벌린, 로이드 조지 등의 유력자들이 자리하고 있었으나, 그 누구도 처칠처럼 무모해 보이는 배짱과 담대함을 갖추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실제 핼리팩스는 프랑스가 무너지는 상황에서 이탈리아를 매개로 타협하려 했다. 체임벌리 또한 확신이 없는 상태였다. 애틀리 그리고 자유당 대표인 싱클레어는 우호적이었으나 발언권이 약한 상태였다. 여기서 처칠만이 이 회의에서 유일하게 항복은 더 끔찍하다는 신념을 밀어붙였다. 그렇게 처칠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오랜 역사를 지닌 섬나라 영국이 결국 최후를 맞아야 한다면 우리 모두 땅 위에 쓰러져 자기 피로 질식해 죽은 후라야 합니다."
<처칠 팩터> 31p.
여기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영국 지도부 대부분은 히틀러와의 협상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다시 말해, 처칠이 아니었다면 역사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이는 처칠을 숭배하기 위함도 있겠으나, "한 사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라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단 하나의 에피소드만으로 "한 사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라는 말에 동의하기 힘들다. 그래서 <처칠 팩터>는 처칠을 둘러싸고 있는 국제정치적 구조가 호의적이지 않았다는 걸 조명한다. 당시 영국의 외교, 군사 환경을 보여주는데, 미국은 제1차 세계대전의 참전 경험 그리고 막대한 희생으로 인하여 고립주의 여론이 강했다. 루스벨트 또한 선거를 의식하여 개입을 꺼려하고 있었다. 소련은 독일과 불가침 조약을 맺고 폴란드를 분할한 상태였다. 이탈리아는 강철 동맹으로 히틀러 편에 서 있었다. 프랑스는 나약하게 무너지고 있었고, 영국은 외딴섬에 불과했다.
고로, 구조적으로 놓고 보면, 영국은 히틀러와의 협상 쪽으로 무게가 실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처칠은 역풍을 무릅쓰고 "타협은 항복과 같다."라는 자신의 직관을 강하게 밀어붙인다. <처칠 팩터>는 이 부분을 반복적으로 상기시켜, 처칠이라는 개인의 선택이 기존의 파도를 거슬러 올라간 사건이라는 걸 각인시켰다.
<처칠 팩터>가 말하는 "한 사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라는 주장은 다음과 같이 요약해 볼 수 있다. 만약에 처칠을 대체할 만한, 다시 말해 처칠과 비슷한 주장을 한 인물이 존재했거나, 구조가 협상 쪽을 지지하지 않았다면, 처칠의 선택은 개인적인 성격으로 인한 일탈로 치부될 확률이 높다. 하지만 실제는 그 반대였다. 덕분에 처칠의 선택은 역사의 전환점으로 부각될 수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수업을 들은 젊은이들은 처칠이 유대인을 구하려고 히틀러와 싸운 인물이라고 어렴풋이 기억한다. 하지만 최근 조사 결과를 보더라도 대부분 젊은이들은 처칠 하면 영국 보험 회사 광고에 등장하는 개를 연상한다"
13p
위 구절은 "왜 처칠을 기억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 단순 처칠을 숭배하기 위함으로 읽힐 수 있다.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한 사람이 역사의 추를 옮길 수 있다." 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대중들에게 전달하기 위함으로 읽혔다.
세상을 바꾸는 힘, 언어
<처칠 팩터> 7장, '영어에 생명을 불어넣다'는 처칠의 언어 능력을 다룬다. 저자는 처칠의 연설은 단순한 미사여구를 나열한 게 아닌, 언어를 통하여 전쟁에 대한 심리를 바꾸어낸 것으로 보았다.
"문학적 특징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본 처칠의 연설문은 키케로의 문장처럼 장중하고 극적 효과를 노렸다. (중략) 처칠에게는 언어를 현란하게 구사하는 능력이 있었다. 하지만 감정이 있었을까? 진실이나 진정성은 있었을까? (중략) 대중의 귀를 만족시켜 주고 기분 좋게 자극하며 심지어 열광시킵니다만, 그가 자리를 뜨는 동시네 연설 내용도 사라지고 맙니다. "
117~118p
처칠의 초창기 시절 연설은 현란함에 초점을 두었다. 이는 당시 하원에서도 감탄과 흥분을 유발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동시대 정치인인 로이드 조지나 몬터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그 감동은 연설이 끝나면 곧 사라져 버렸다." 처칠의 언어는 청중의 귀를 만족시키는 데에는 능했다. 하지만 가슴속에 오랫동안 각인시킬 힘은 부족했다. 이는 진정성이 부족으로 볼 수 있다. 감정 호소보다 언어의 기교에만 치중하는 데 가까웠다. 그래서 연설을 들은 청중들은 열광하였으나 시간이 지나면, 내용 자체를 기억하지 못해, 정치적 행동까지 나아가지 못했다.
처칠의 언어는 지도자 위치에 올랐을 때 변한다. 1940년 5월 총리에 오른 직후 하원에서 열린 연설이 대표적인 예다. 프랑스는 이미 나치 독일에게 무너지고 있었으며, 영국은 유럽 대륙에서 고립된 상태에 가까웠다. 국민은 불안했으며, 내부에서도 히틀러와 타협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었다. 하지만 처칠은 주저하지 않았다. 영국이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에 대해 명확하게 전달했다.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프랑스에서, 바다에서, 공중에서 싸울 것입니다. (중략)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우리는 섬을 지킬 것입니다. 우리는 해변에서 싸우고, 상륙지에서 싸우며, 들판과 거리에서 싸우고, 언덕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항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처칠 팩터> 301p.
이 구절은 단순 전쟁 계획이 아니다. 영국 국민에게 간단명료하게 전달한 선언문에 가까웠다. 당시 영국은 프랑스가 무너져도 싸우겠다는 것으로, '싸운다.'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사용한 건 영국 국민 개개인에게 항전의 의지를 주입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처칠은 해변, 상류지, 들판, 거리, 언덕 등 구체적인 지리로 확장하여, 국민이라면 그 누구나 싸울 자리가 있다는 걸 그려볼 수 있도록 이끌었다. 그렇게 처칠은 군인들만의 전쟁이 아닌, 국민 전체가 전쟁을 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성공적으로 전달할 것이다.
전장 속 빗발치는 총탄은 적군을 향해 나아간다면, 리더의 연설은 아군의 정신상태를 강하게 무장시킨다. 그렇게 처칠의 연설은 총과 검보다 더 넓게 울려 퍼져, 영국을 굴복하지 않을 집단으로 변모시켰다. 처칠의 언어는 국민들의 마음을 두려움에서 희망으로 바꿨고, 민주주의 국가 전체가 독재와 맞설 수 있는 시대정신의 기반이 되었다.
영국의 총리 처칠의 언어는 단순 정치인의 공약이나 약속, 수사학적인 장식이 아니었다. 그저 "영국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 그 자체였다.
세상을 바꾸는 힘, 결단력
"처칠은 전쟁이 4년을 끌 것이라고 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크리스마스면 끝나리라 말했다. 베르사유가 함락되리라 예측했던 처칠은 대부분의 정치인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수집했으므로 상황을 제대로 파악했다. (중략) 처칠은 독일에서 어떤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지 열심히 추적했고, 유대인이 박해당한다는 사실을 1932년부터 줄곧 의회에 알리면서 나치의 이념을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1933년 11월 히틀러가 투표에서 지지율 95퍼센트를 획득하자 처칠은 나치가 "전쟁이 영광스럽다고 선포했고", "이방인과 야만인의 시대 이후로 교육을 병행하지 않으면서 아동에게 강한 폭력 충동을 주입시킨다."라고 주장했다."
266p.
1930년대 영국의 정계는 안일함을 넘어 평화를 사랑하고 있었다. 국민들도 전쟁이라는 불확실성과 공포보다 안정을 원했고, 정치인들도 국민들의 바람을 거스르려 하지 않았다. 언론 또한 "전쟁은 크리스마스 내로 끝난다." 같은 달콤한 말을 뱉으며 대중들을 안심시켰다. 하지만 처칠은 달랐다. 그는 외신과 군서 정보를 끊임없이 취합하여 국제 정세의 흐름을 냉철하게 꿰뚫어 보았다. 히틀러의 군비확장, 라인란트 재무장, 유대인 박해는 그가 감지한 이상 징후였다. 처칠은 이를 알렸으나 돌아온 것은 냉소와 조롱이었다. 처칠의 경고는 정치적 고립을 낳았다. 그렇게 전쟁광 또는 과거에 묶인 퇴물이라는 낙인도 찍혔다. 하지만 그가 외면당하던 시절에 쌓아놓은 정보와 말들은 휘발되지 않았다. 1940년 프랑스가 무너지고 영국 본토가 위기에 처하자, 국민과 정치권은 처칠에게 의지하게 된 것이다.
처칠의 예견이 옳았다는 사실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고립 속에서도 옳다고 믿는 말을 멈추지 않고 지속했다는 점이다. 마치 돈키호테가 중세의 가치관 중 정의 그리고 약자 보호라는 가치를 끊임없이 추구했떤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리더의 언어는 대중의 환호를 얻는 데에만 그치는 게 아닌, 불편한 진실을 말하여 냉소와 조롱을 감수할 줄 알아야 한다. 처칠은 인기보다 책임에 무게를 두었다. 그래서 처칠의 결단은 고집이 아닌 용기에 가까웠다.
고집과 결단은 종이 한 장 차이에 가깝다. 이 차이는 책임감이다. 처칠은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진실을 외면하는 게 더 큰 죄라 생각했다. 그 믿음은 전쟁의 혼란 속에서도 강력한 의지로 작용했고, 역사가 그를 기억하는 이유는 세계 대전에서의 승리자이기 때문이 아닌, 패배의 공포가 턱 끝까지 차올랐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침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강력한 결단력도 중요하지만 책임질 수 있는 용기가 뒤따라야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이다.
누군가는 우리 사회에 처칠 같은 리더가 없다고 말할 수 있다. 대중이 듣고 싶어하는 말만 하거나, 포퓰리즘 정책만 던지거나, 본인이 뱉은 말에 끝까지 책임지지 않으려 하는 정치인들만 보고 있어도 그런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런데 매 선거철마다 "뽑을 사람이 없다.", "그 사람이 그 사람이다." 와 같은 냉소 섞인 말만 반복적으로 뱉어낸다면, 우리 사회에서는 링컨, 처칠, 만델라와 같은 인물은 절대 등장하지 못할 것이다.
진정한 리더는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도 아니며, 각성하여 다른 사람으로 탈바꿈하는 것도 아니다. 오직 국민들의 관심, 참여 끝에 서서히 성장해나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치인과 지도자를 탓하기 앞서, 우리가 어떤 리더를 원하는지 들여다 고심할 필요가 있다. 처칠은 당시 국민이 원하는 리더였고 그를 리더로 만들었다. 그리고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열린 1945년 영국 총선에서 클레멘트 애들리에게 선거에서 패배했다. 당시 국민은 전쟁으로 인한 피로감으로 복지와 재건이라는 가치를 내세운 지도자를 선택한 것이다.
세상을 바꾸는 힘은 결단력 보다 언어?
현재 강력한 결단력을 보여주고 있는 리더는 어디에 있을까? 굳이 찾아보자면 프랑스에서 볼 수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연금개혁, 군사비 증액, 유럽의 전략적 자율성을 강조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프랑스 거리는 마크롱의 뜻에 반발하는 파업과 시위가 반복적으로 따라오고 있다. 여기서 마크롱의 결단은 처칠의 결단처럼 국민들에게 사랑받기 어려운 길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처칠과 차이가 있다면 강력하게 결단한 것들의 옳고, 그름을 넘어,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언어의 힘이 갖춰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프랑스는 노벨 문학상 수상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나라답게, 마크롱의 연설 또한 훌륭하다. 이를 들여다보면 주로 합리성과 통계라는 탄탄한 논리에 기반하고 있다. 2023년 4월 17일의 연설에서 그는 연금 개혁의 불가피성을 주장했다.(* 하단 링크 1) 국민들의 분노는 이해하지만, 제도 개선의 틀 내에서 이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하며, 수치와 통계, 재정 불균형성을 제시했다. 그의 논리는 탄탄했지만 행정 보고서처럼 다가왔다.
2025년 3월 5일에도 마크롱은 국민들에게 전쟁과 불확실성 시대를 선언했다.(*하단 링크 2) 프랑스가 군사, 경제, 외교 노선을 스스로 선택하기 위해서는 상대가 공격할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의 힘을 키워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또한 논리와 합리성에만 치중한 나머지 국민들을 설득시키는 데에는 덜 투자한 것으로 다가왔다. 다시 말해, 마크롱의 언어는 짜임새가 있으나 처칠의 연설처럼 국민들의 감정을 고양시켜 설득시키는 힘이 다소 부족하게 다가왔다.
1940년 6월 4일 윈스턴 처칠의 "We shall fight on the beaches" 연설 내용은 다음과 같다. 당시 역국군은 독일 기갑 부대의 포위로 절망적인 상황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해군과 공군이 벌어준 시간 덕에 됭케르크 철수에 성공했고, 이를 발판 삼아 장기 항전 의사를 밝히며, 국민을 결집시키는 데 초점을 맞췄다. 마크롱의 연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처칠은 간결한 어투 그리고 반복을 통하여 청중의 감정을 고양시키고, 감각적인 묘사로 정서를 극대화시켰다는 점이다.
여기서 마크롱의 언어는 <처칠 팩터>가 지적한 처칠의 초창기 연설과 닮아 있다. 이미 위에 있는 내용이지만, 다시 가져와보았다.
"문학적 특징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본 처칠의 연설문은 키케로의 문장처럼 장중하고 극적 효과를 노렸다. (중략) 처칠에게는 언어를 현란하게 구사하는 능력이 있었다. 하지만 감정이 있었을까? 진실이나 진정성은 있었을까? (중략) 대중의 귀를 만족시켜 주고 기분 좋게 자극하며 심지어 열광시킵니다만, 그가 자리를 뜨는 동시네 연설 내용도 사라지고 맙니다. "
117~118p
마크롱은 프랑스의 행정 엘리트 시스템을 통해 등장한 대통령이다. 그렇게 그의 언어는 합리성과 제도적 논리 구조에 치중하고 있다. 하지만 국가의 리더는 정책을 설명하고 당위를 입증하는 것을 넘어, 국민의 감정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언어가 갖춰져야 한다. 모두의 미움을 받는 결단이 절대적으로 옳은 일이라 할 수 있어도, 그 결단이 국민 스스로를 위한 선택임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면 공동체는 조용히 분열될 수밖에 없다.
한 사람이 세상을 바꿀 때 필요한 힘이 결단력 보다 언어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 이유다.
언어의 힘은 사랑에서
"처칠은 여느 때보다 탁월한 연설로 역사의 요구에 응답했다. 그러한 연설들이 웅변무대에서 반드시 걸작은 아니었다. 히틀러와 처칠의 연설을 유튜브에서 듣고 비교해 보라. 군중을 선동하는 능력만으로 판단한다면 두말할 필요도 없이 나치 지도자가 훨씬 앞선다."
p.120
처칠은 히틀러에 비해, 강력한 카리스마로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한 능력이 부족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히틀러보다 처칠을 더 높은 곳에 위치시키고 있을까? 그저 전쟁의 승자여서 그렇게 바라보고 있는 걸까? 내 생각은 사랑에 있다. 히틀러의 언어는 증오의 힘으로 국민들을 하나로 뭉치게 한 수사에 기인했다면, 처칠의 언어는 공동체를 향한 사랑과 헌신을 바탕으로 국민들을 하나로 뭉치게 만들었다.
나는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고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산업화, 민주화 세대의 성취와 한계를 직시하고, 우리 역할을 스스로 정의하자."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산업화, 민주화 세대의 성취와 한계를 동시에 바라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동시에 바라보기 위해서는 사랑이 선행되어야 한다. 사랑한다는 건, 오랫동안 바라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굳이 예를 들자면, 어린 시절의 내가 부모님을 향해 똥, 오줌을 발사해도 나를 오랫동안 바라보며 기저귀를 갈아주신 것, 나의 장점과 단점이 명화 하게 드러날 때에도 나를 오랫동안 바라보며 아껴주신 것들은 나를 사랑해 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러므로 산업화, 민주화 세대의 성취와 한계를 제대로 직시하기 위해서는 일단 산업화, 민주화 세대를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
프랑스 마크롱의 대통령은 사랑이라는 부분에서 다소 부족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그는 행정 시스템만 들여다보느라, 국민들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여, 국민이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없는지 간과한 것으로 보였다. 연금개혁, 군사비 증액이라는 선택을 통계, 제도적 맥락 내에서 설명하는 데 집중하느라, 국민 개개인의 삶과 감정을 살피지 못한 것이다. 현재의 상황과 제도적 합리성을 오랫동안 바라보느라, 국민을 바라보고 이해하려는 언어를 준비하지 못한 것이다.
"청중은 삶에서 느끼는 불안을 웃음으로 덜어 낼 수 있었으므로 처칠이 던지는 농담을 좋아했다. (중략) 무엇보다 처칠은 청중이 듣는 즉시 이해할 수 있는 말을 사용했다. (중략) "처칠이 민심을 얻을 수 있었던 승리의 공식은 번뜩이는 웅변과 불현듯 허를 찌르는 재치, 그리고 친근한 회화체 표현을 구사한 것이었다. 이 공식은 단 한 번도 실패하지 않았다."
123~124p
처칠은 고상한 문체가 아닌, 짧고 소박한 단어를 선택했다. 자유를 획득한 ‘liberated’를 풀려난 ‘freed’로 바꿔, 국민이 바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처칠의 언어에는 국민들을 오래 바라보고 생각한 흔적으로 볼 수 있다. 나에게 이 부분은 국민을 향한 사랑으로 읽혔다.
<처칠 팩터>를 읽고 느낀 점 중 하나는 언어의 힘이란 결국 사랑의 깊이에 따라 좌우된다. 사랑은 결국 오랫동안 바라보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럴 때에야 지도자의 언어는 공동체를 결집시키는 힘으로 전환될 수 있을 것이다.
역사를 바꾼 인물도 완벽하지 않다.
"처칠은 갈리폴리에서 수천 명의 생명을 희생시키는 정도에 머무르지 않았다. 1940년 프랑스 함대를 파괴하라고 명령했으며 독일에 지역 폭격을 강행했다. 현대 정치인이라면 생각할 수도 없는 명령을 처칠은 당차고 자신만만하게 내렸다."
p 206
<처칠 팩터>는 처칠을 역사를 바꾼 인물로 그려놓았다. 하지만 그러한 인물 또한 완벽하지 않다는 점을 보여줬다. 사실 많은 위인전을 보면, 존경심을 심어주기 위하여 불편한 부분은 다루지 않거나, 실수에 대해서도 정당화한다. 하지만 이 책은 다르다. 처칠의 언행 중에서도 불편했던 사실들은 그대로 기록한다. 그렇게 당시 역사적 맥락과 인물의 한계까지도 담아놓았다.
아 그것보다 너무 길어졌네? 이만 줄이고 군것질하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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