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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스모스를 읽고 (칼 세이건, 홍승수 옮김, 사이언스북스,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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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졸업생 (123.♡.33.101)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1,268회   작성일Date 25-10-03 20:24

    본문

    기본학교의 책 읽기 모임 두번째 책은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였다. 

    나는 책 읽기 모임에 참석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모임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모른다. 

    뭐 수준 높은 이야기 했겠지.


    이 책은 크게 두 버젼이 있는데, 내가 읽은 건 그림이 큼지막하게 수록된 45,000원짜리다.


    이 책을 읽고 느낀점은 다음과 같다.


    "산업화, 민주화 세대의 성취와 한계를 동시에 직시하고, 오늘날 우리의 역할을 스스로 정의하자."



    왜 그렇게 느꼈냐?


    <코스모스> 책 표지만 보아도 천문학을 다룰 것 같다. 하지만 책장을 넘기다 보면, 독자는 별과 은하 그리고 행성과 관련된 지식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이 책은 우주라는 방대한 스케일을 시작으로 하여 인류 문명, 현대 사회 그리고 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 굳이 도식을 만들어 보자면 다음과 같다. 


    우주(물리적 기원)-> 문명(역사의 성취와 몰락) -> 현대사회(위기와 선택지) -> 나 자신(성찰과 책임)


    <코스모스>는 우주의 시간을 코스믹 캘린더를 통하여 압축적으로 보여주었다. 1년이라는 틀 안에 150억 년의 우주 역사를 담으면, 인류의 역사는 12월 31일 자정 몇초 전에 불과하다. 이 책을 읽은 독자가 닿는 지점은 "우주는 드 넓고, 인간은 그저 먼지." 같은 겸손일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나는 우주의 먼지다. 그렇다면 어떤 선택을 해야 우주의 먼지가 우주의 눈덩이로 불어날 수 있을까?" 와 같은 물음을 던지게 한다. 이는 "산업화, 민주화 세대의 성취와 한계를 동시에 직시하고, 오늘날 우리의 역할을 스스로 정의하자." 란 결론에 닿은 이유이기도 하다. 


    "알렉산드리아와 그 대도서관을 낳은 고전 문명이 붕괴되면서 도서관도 서서히 파괴되어 갔다. (중략) 고전 문명이 이룩했던 업적의 숭고함과 그의 파괴가 얼마나 큰 비극을 인류에게 안겨 줬는지 아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이다"

    코스모스, chapter1. 45~46p.


    "오늘날 우리는 그들에 대해서 아는 바가 거의 없다. 하지만 오늘의 우리 문명이 알게 모르게 그들이 이룩했던 문명에 의존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로 남아 있다.“

    코스모스, chapter3. 88p


    "현대 문명은 현 시점에서 하나의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다. 어쩌면 이 갈림길에서의 선택이 인류라는 종 전체에게 중차대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이 갈림길에서 어느 쪽을 택하든 (중략) 인류의 운명은 과학에 묶여 있다."

    <코스모스> 머리말 11p.


    위 세 구절이 인상 깊었는데, 이는 하나의 메시지로 묶을 수 있다. 찬란한 문명은 성취와 파괴의 위험 가능성을 내포하며, 현재의 번영은 과거의 토대 위에 세워져 있고, 오늘날 우리는 갈림길 앞에서 선택해야 한다.


    나에게<코스모스>란 우주라는 거울을 통하여 이 세상을 보여주는 책처럼 다가왔다. 물론 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우주를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다소 어렵게 다가올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어휘들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도 좋겠지만, 맥락을 통해 가늠할 수 있다.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인데 부록만큼은 명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코스모스>를 관통하는 메시지


    내가 생각하는 <코스모스>의 핵심은 맨 뒷 페이지 부록1, 2에 있다고 생각한다. 


    부록 1은 √2가 무리수임을 증명할 때 사용했던 귀류법을 다루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귀류법의 예시는 다음과 같다. 


    √2가 유리수라고 가정한다. - > 그러면 분모와 분자가 모두 짝수여야 한다. - > 모순이 발생한다. -> 따라서 √2는 무리수다.


    우주와 관련된 책인데 왜 이러한 부록을 남겨놓은걸까? 이유는 단순하다. 귀류법이 과학적 사고의 기본 체계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과학적 사고란 이미 입증된 연구 결과를 외우는 게 아니라, 특정 가정의 반박을 통하여 드러난 모순을 제거해 나가는 과정에 가깝다. <코스모스>가 우주와 문명을 설명할 때 사용했던 방법론이 부록 1의 논리에 입각한 것이다. 


    내가 느낀 점은 이 귀류법에 입각한 것이다. 산업화, 민주화 세대가 이룩한 성취는 아름답다. 빈곤에서 풍요로움, 독재에서 민주주의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성취를 일방적으로 찬양한다면 어떻게 될까? 현재 당면한 기후위기, 저출산, 지역 불균형, 정치 분열 등의 모순을 외면하게 된다. 반대로 성취를 폄하하고 한계만 들여다 본다면 어떻게 될까? 과거 세대의 희생과 노력은 평가절하하고, 사회적 자신감 뿐만 아니라 연대의 기반이 무너질 것이다. 고로, 두 태도 모두 모순이자 지속가능성이 없다. 그러므로 귀류법적으로 접근하면, 양쪽의 가정을 반박하여 모순을 제거해야 한다. "윗 세대의 성취와 한계를 동시에 직시하는 시각을 품고, 오늘날 우리의 역할을 스스로 정의하자." 같은 느낀점이 나온 이유다. 


    부록 2는 피타고라스 학파의 정다면체를 다루고 있다. 여기서 그려진 정사면체, 정육면체, 정이십면체 등 완전한 대칭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도형은 혼란스러운 세계에서 질서를 찾으려는 상징물로 다가왔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혼란스럽다. 저출산 문제는 인구구조의 불균형을 유발하여 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는다면, 지역 격차는 사회 단절을 심화시키고, 정치 분열은 공동체를 두 갈래로 찢어버린다. 겉으로 보면 각각의 문제는 개별적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입체적으로 바라보면 이 모든 문제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을 수 있다. 정다면체의 각 면이 모서리와 꼭짓점으로 이어져 하나의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처럼 사회 문제 또한 유기적으로 얽혀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의 문제를 단편적으로 보는 게 아니라, 입체적이고 통합적인 시각으로 새로운 질서에 접근을 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이 새로운 질서가 하나의 시대정신이라 생각한다.


    고로, 나에게 <코스모스>가 품고 있는 가치란, 우주에 대한 지식을 전파하는 데 있지 않다.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출발점으로 우주를 삼은 것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우주를 탐구하는 넓고 높은 시선을 통하여 우리의 문명과 사회 그리고 나 자신을 다시 돌아보게 만들었다는 데 있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파괴가 문명의 덧없음을 상기시킨 것처럼, 현대 문명에서의 선택의 갈림길은 우리의 선택이 얼마나 중대한지를 깨닫게 한다. 여기서 부록 1과 부록 2는 이 방대한 <코스모스>가 세상을 바라본 방식에 가깝다. 부록 1은 비판적인 시각과 성찰이라면, 부록 2는 통합적 사고, 조화를 꿈꾸는 상상력이겠다.


    <코스모스>의 모든 장을 꼼꼼하게 읽고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도 좋다. 하지만 나는 부록 1과 부록 2를 제대로 이해하고 나서, 이 책을 읽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우주에 대한 호기심에 머무르지 않고 지금의 나, 우리가 사는 세상, 지구의 존속을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산업화, 민주화 세대의 성취와 한계를 동시에 직시하고, 오늘날 우리의 역할을 스스로 정의하자." 처럼 느낄 수 있겠지만, 스케일이 더 큰 사람은 지구방위대 느낌으로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님 말고~



    대한민국 산업화, 민주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코스모스>는 말한다. 고대인들은 천둥, 별빛, 해와 달의 움직임을 설명하기 위해 신화를 만들었다고. 우르의 점성가를 시작으로 바빌론의 제사장,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모두 그럴싸한 이야기들을 떠들어댔다. 당시의 신화는 단순 망상과 상상력의 결과가 아니었다.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나름 진지한 시도였다. 


    "이 신화들은 인간의 속성 중 가장 중요한 요소인 '뻔뻔함'을 잘 드러낸다. 여기에 예시된 고대 신화들의 우주관과 현대의 대폭발 우주론 사이에 단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과학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제안의 사실 여부를 검증하기 위하여 실험하고 관찰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현대를 사는 우리는 창조 신화들에 응분의 존경심을 표해야 한다."

    <코스모스>, chapter 10, 420p. 


    칼 세이건은 신화를 망상이라 폄하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진지한 시도로 해석하여 존경을 표했다. 다만 신화가 과학으로 대체된 이유는 단순하다. 과학은 신화처럼 짜맞추는 형식의 이야기가 아니라, 질문-> 검증 -> 실험 -> 관찰 -> 오류수정 이라는 체계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신화는 감각적이고 충동적인 사고에 가까웠다면, 과학은 방법론의 엄밀함에 의거 더 강한 설득력을 갖추고 있었다. 


    이 지점에서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산업화와 민주화는 우리가 자부심을 가질만한 성공 신화에 가깝다. 하지만 이 신화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신화로 세계를 설명하다가 과학에 대체된 것처럼, 이제는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신화는 오늘날의 모든 문제들을 설명하거나 해결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 우리 사회에 같은 문제가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이유가 이에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고대의 신화가 번개의 본질을 설명하지 못하고 번개로 인한 인명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고로, 산업화와 민주화를 신화처럼 신성시하는 태도로 이를 붙잡는 건 고대인이 신화만으로 세계를 이해하려고 했던 것과 큰 차이가 없다. 이제 우리는 칼 세이건처럼 신화를 존중하되, 과학적인 태도로 질문하고 검증하며 오류를 발견하며 수정하려는 태도를 갖춰야 한다. 


    산업화 민주화의 성취는 훌륭하다. 하지만 이를 의심하지 않고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신화를 박제하여 모셔놓느라 생생한 서사를 써내려가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이제 우리는 질문을 던지고 행동하고, 실험하며, 기존의 믿음을 수정할 수 있는 시대정신을 품을 필요가 있다.



    시대정신을 창조해야 하는 이유


    <코스모스> 4장, 천국과 지옥은 금성과 지구의 운명을 대조적으로 그렸다. 금성과 지구는 크기나 기원이 비슷한 쌍둥이에 가깝지만 한 곳은 온실 효과를 통제하지 못하여 지옥이 되어버렸고, 다른 한 곳은 생명이 번성하는 곳이 되었다. 


    저자는 금성의 환경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우리의 이웃 세상이 무시무시하고 불유쾌한 장소인 것으로 판명이 났다. 그렇지만 금성 문제는 좀 더 다루어야 한다. 금성은 그 자체만으로도 매우 흥미로운 곳이기 때문이다."

    <코스모스>, chapter 4, p168


    1950년대 이후 전파 관측을 통해 금성의 실체가 드러났을 때 금성의 온도가 섭씨 400도를 훌쩍 넘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는 걷잡을 수 없는 온실 효과가 원인이었다. 그리고 저자는 지구 또한 금성과 같은 위험이 있다고 말한다.


    "지구의 경우. 또 다른 요인 때문에 풍경과 기후가 바뀐다. 그것은 지적 생물의 활동이다. 금성처럼 지구에도 이산화탄소와 수증기가 존재하므로 온실 효과가 작용한다. 온실 효과가 없었다면 지구 전체의 평균 온도는 영하에 머물렀을 것이다. 온실 효과 때문에 지구의 바다는 액체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고 생물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

    <코스모스>, chapter 4, 170p


    여기서 작은 차이가 운명을 바꾼다는 점을 깨달을 수 있다. 금성이 온실 효과를 제어하지 못하여 지옥이 된 것처럼, 지구 또한 인간이 어떠한 선택을 하는 지에 따라 파국을 맞이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여기서 위 메시지는 대한민국에도 그대로 적용시킬 수 있다.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 번영으로 이어질 수 있고 지옥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단편적으로 보면 대한민국 또한 기후변화, 지구온난화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르다. 다소 식상하지만, 나는 크기와 기원이 비슷한 금성과 지구의 관계가 북한과 대한민국의 관계로 다가왔다. 


    금성의 섭씨 400도 그리고 두꺼운 대기에 갇혀 햇빛조차 제대로 닿지 못하는 환경은 외부와 단절되고 자유를 잃어버린 북한을 연상케 한다. 금성은 온실 효과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여 지옥이 된 것처럼, 북한 또한 내부의 모순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여 북한 주민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


    지구가 온실 효과를 일정 부분 유지하고 있으면서 생명체가 살기 좋은 균형을 만들어낸 것처럼, 대한민국은 산업화의 그늘, 민주화라는 갈등이 있었으나 사회적 합의를 통해 균형을 잡았다. 그 덕분에 자유와 번영이 공존하는 사회로 성장할 수 있었다. 


    같은 출발선 그리고 같은 뿌리를 갖고 있는 두 체제가 다른 결과를 낳았다는 건, 금성과 지구의 차이 만큼이나 또렷하다. 물론 우리나라가 걸어온 길이 항상 정답에 가까웠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스스로 돌아보며 조정하였기에 그나마 나은 결과를 낼 수 있었다. 우리 또한 과거의 성취만 강조하며 자기 만족에 빠지거나, 한계만 말하며 냉소에 젖게 된다면 금성또는  북한과 같은 파국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내가 느낀 점인 "산업화, 민주화 세대의 성취와 한계를 동시에 직시하고, 오늘날 우리의 역할을 스스로 정의하자."란, 우리의 윗세대를 비난하기 위함도 아니고 떠받들기 위함도 아니다. 그저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는 지에 따라 우리 윗 세대와 뒷 세대가 자유롭게 번영할 수 있는 터젼을 마련해줄 수 있을 것이란 생각 뿐이다. 만약 산업화, 민주화 세대화 세대의 성취를 찬양하거나 한계만 지적하기 바쁘다면, 금성과 북한처럼 폐쇄적이고 불모의 땅으로 전락할 것이다.



    나를 돌아보는 시간


    <코스모스> 5장, '붉은 행성을 위한 블루스'에서 화성은 인류의 상상력이 오랫동안 머물렀던 별로 그려진다. 19세기 천문학자인 로웰은 화성 표면에 운하를 보았다고 주장한다. 이는 화성에 고등 문명이 살고 있는 행성으로 오랜 시간 각인시켰다. 그리고 세이건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로웰이 화성과의 평생에 걸친 사랑을 시작하기 전에 스키아파렐리 같은 사람들도 운하 비슷한 것들을 관측한 적이 있다. 스키아파렐리는 그것을 가냘픈 흠이라는 뜻으로 "카날리"라고 불렀다. 하지만 로웰은 그것을 행성을 대규모로 개조하고 있는 지적 생명의 흔적으로 해석했다. 인간은 감정이 연루되면 스스로를 기만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웃 행성에 지성을 갖춘 존재가 살고 있으리라는 생각보다 더 인간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것은 없지 않겠는가?"

    <코스모스>, chapter 5, 225p.


    위 인용구를 볼 수 있듯, 과학적 탐구는 늘 진실과 환상의 경계를 흔들어 놓았다. 인간은 종종 감정에 휘둘려 본인이 보고 싶은 걸 사실이라 여긴다. 하지만 그 환상이 과학의 동력이기도 하다. 화성 문명을 향한 판타지는 허상에 가까웠으나, 그것이 화성 탐사의 원동력이 되었기 때문이다. 


    화성 탐사는 인류가 다른 행성 표면에 처음으로 연구 장비를 내려놓게 만들었으나, 화성에 문명은 커녕 사막에 가까웠다. 화성의 대기와 토양 그리고 기후에 대한 데이터들을 통해 생명체 존재 여부가 가능한지에 대한 실험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화성 표면에서는 생명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


    여기서 독자는 다시 한 번 성찰을 하게 된다. 현재까지 지구를 제외한 다른 행성에서 생명체는 발견되지 않았다. 만약 우주에 지적인 생명체가 우리뿐이라면, 인간은 얼마나 외로우면서도 특별한 존재인가? 화성의 황량함은 푸른 바다와 숨 쉴 수 있는 공기를 지닌 지구가 특별하게 다가온다. 


    황량한 사막을 본 뒤에야 푸른 지구의 가치를 깨닫는 것처럼, 나의 초라함을 직시할 수 있을 때에야 내 존엄도 함께 따라온다. 돈키호테처럼 황당무계한 꿈을 꾸는 인간들은 대체로 외롭고 쓸쓸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쓸쓸함 속에서 특별함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고로, 화성을 통하여 지구의 특별함을 바라보는 시각은 나 자신의 특별함을 들여다보는 시각과 다를 게 없다. 


    <코스모스>의 서술 방식은 대체로 "우주 - 지구 - 나" 같은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처음에는 우주의 방대함을 다루지만, 곧 지구의 소중함을 환기시키고, 나 자신을 향한 질문을 던지게 이끌어준다. 그렇게 우주를 탐험한다는 것은 나 자신을 탐험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닫게 해준다. 무한히 펼쳐진 우주를 이해하는 과정은 밟다보면 나 또한 작은 우주와 다를 게 없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된다. 



    우리는 별의 먼지? 


    <코스모스>는 인간이 우주를 관찰하는 존재가 아닌, 우주 자체의 산물이라고 이야기 한다.


    "생명의 기원과 진화는 별의 기원과 진화와 그 뿌리에서부터 서로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첫째, 우리를 구성하는 물질이 원자적 수준에서 볼 때 아주 오래전에 은하 어딘가에 있던 적색 거성들에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우주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원소들의 원자 번호에 따른 상대 함량 비율의 분포가 별에서 합성되는 원소들의 상대 함량 비율과 딱 들어맞기 때문에 그것들이 모두 적색 거성과 초신성이라는 특별한 용광로와 도가니에서 제조됐음을 그 누구도 의심할 수 없다."

    <코스모스>, chapter 9, 378p.


    산소, 질소, 탄소, 철 등 인간의 몸을 이루고 있는 원소는 별의 핵융합 반응을 통하여 합성되었다. 초신성 폭발을 통해 이 원소들은 은하의 전역으로 흩어졌으며, 그 부산물 위에 새로운 태양계와 지구가 형성되었다. 그러므로 인간이란 존재는 우주와 완전히 분리되어 있는 개별적인 존재가 아니라, 별의 역사와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코스모스>는 이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태양과 지구에 존재하는 원소들의 상당 부분이 별에서도 발견된다. 그러므로 성분의 관점에서 볼 때, 우주는 하나의 물질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셈이다. 수많은 별들에서 발견되는 가장 흔한 원소들이 다름이 아닌 행성 지구에서의 생명 현상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는 수소, 나트륨, 마그네슘, 철 등이라니! 물질 공동체의 신비함에 우리는 그저 놀라기만 할 뿐이다. 그렇다면 밝게 빛나는 저 별들도 우리 태양과 같은 존재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50p.


    이 책을 읽으면, "인간은 우주의 먼지구나 ㅠㅠ" 같은 겸손함을 안겨주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이 우주의 일부이자, 우주의 산물로 다가온다. 그러므로 "별의 먼지"라는 은유적인 표현은 인간 존재의 미약함을 드러내기 위함이 아닌, 우주의 연속성을 드러내는 존재가 인간이라는 걸 드러내기 위함인 것이다. 


    위와 같은 깨달음은 양가적 감정을 안겨준다. 인간은 우주의 먼지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 수 있으면서도, 인간은 문명과 문화 그리고 역사, 나아가 자부심 또한 은하 어딘가에서 타올랐던 별의 부산물로 다가올 수 있다. 후자의 감정을 들여다 보면, 인간은 더 특별한 존재로 다가온다. 무생물의 세계에서 생명을 잉태한 지구 그리고 그 지구에서 의식을 지닌 인간의 등장은 우주가 스스로 성찰할 수 있는 기회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렇게 인간에게 우주란, 자기 자신을 들여다 보고, 이해하기 위한 거울로 다가온다. 


    고로, "인간은 별의 먼지다." 와 같은 말은 인간의 초라함과 더불어 인간의 존엄까지 담고 있는 말이다. 


    이러한 은유를 한국 사회에 그대로 적용시킨다면? 다음과 같다. 대한민국의 산업화, 민주화 세대가 이룩한 성취는 하늘에서 별똥별이 떨어지듯 우연의 결과가 아니다. 수많은 세대의 희생과 노력이 쌓인 결과다. 별이 타고 남긴 원소가 다시 새로운 별을 낳는 것처럼, 과거 세대의 성취와 한계는 오늘 우리가 다시 창조할 시대정신의 토양이기도 하다. 산업화는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뤄냈고, 민주화는 권위주의를 극복했다. 하지만 우리 앞에 지역 불균형, 정치 분열, 각종 갈등의 문제를 안고 있다. 우리가 성취와 한계가 동시에 존재하는 이 역사적인 사실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을 때에야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선택 그리고 설계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성취는 별의 죽음에서 남겨진 원소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끝이 아니다. 새로운 별빛이 될 토대이기도 하다. 오늘날 직면하고 있는 경제 성장 둔화, 정치 분열 등의 문제들은 몰락의 신호로 여겨질 수 있으나, 새로운 별빛이 될 수 있는 희망으로 전환하는 과정으로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새로운 별빛으로 이끄는 핵심 동력은 위에서 언급한 <코스모스>의 부록 1과 부록 2에 있다고 생각한다. 부록 1은 기존의 가정 및 제도를 검증하고 모순을 드러내어 수정해나가는 비판적인 성찰이라면, 부록 2는 사회 문제의 다양한 측면들을 입체적으로 연결시켜 균형있는 질서를 설계할 수 있는 통합적 사유에 가깝다. 이 두 가지가 결합된 사고를 할 수 있어야, 우리는 산업화와 민주화 세대의 성취와 한계를 동시에 직시하여, 비판적 사고와 자기 성찰 그리고 통합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새로운 시대정신을 세울 수 있지 않을까. 


    그것보다 왜캐 졸리지?

    이만 줄이고 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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