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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키호테 1~2권을 읽고, (안영옥 옮김. 열린책들,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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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졸업생 (123.♡.33.101)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1,168회   작성일Date 25-09-26 21:49

    본문

    이 책은 기본학교의 책 읽기 모임에서 첫번째로 채택된 책이다. 물론 나는 모임에 참석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모른다. 물론 참석한 분을 통해 대강 건너 들었지만, 뭐 수준 높은 이야기했겠지. 


    내가 <돈키호테>를 읽고 느낀 점은 다음과 같다.


    "헌 말, 헌 몸짓으로는 동네 개도 바꿀 수 없다."


    다시 말해, 옛 신념과 가치, 도덕으로는 세상을 설득하기는 커녕 비웃음만 살 뿐이다. 

    헌 말과 헌 몸짓은 더 나은 세계를 조직할 힘이 없다. 


    <돈키호테>는 제국 스페인의 쇠락기 속에서 탄생했다. 그래서 돈키호테는 마치 낡은 중세적 가치관이 현실에 작동하지 않는 상황을 상징적으로 그려낸 것처럼 다가왔다. 과거 스페인은 무적함대를 자랑하며 유럽을 호령하던 제국이었다. 신대륙에서 다량의 금과 은을 수탈했고, 카톨릭이라는 신념 하에 유럽 전역에 권위를 퍼뜨리는 초강대국이었다. 하지만 이는 곧 한계에 달했다. 무분별한 전쟁과 현실감각이 없는 재정 정책, 국내 농업과 산업 기반의 붕괴가 서서히 시작된 것이다. 특히 1588년 영국과의 전쟁에서 무적함대가 침몰한 사건은 스페인 제국의 쇠퇴를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그럼에도 스페인의 전쟁은 계속되었고 국가는 파산을 선언하게 되었다. 한때 유럽을 군사, 종교적으로 지배하던 스페인의 권위는 점차 퇴색되어 사라지고, 그 빈자리는 냉소와 사회적 불신, 경제적 불안으로 채워졌다. 그렇게 중세의 질서인 기사도 정신은 시대에 뒤처진 낡은 유물로 전락했고, 명예와 정의보다 실용과 생존이 우선시되는 가치가 부상했다. 귀족 계급은 영광을 위하여 전장을 누비지 않았고, 오히려 부르주아와 계산에 능한 시민 계급이 부상한다. 다시 말해 그동안 작동하던 중세적 가치관과 질서가 이제는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게 된 것이다. 이 지점에서 돈키호테는 무너져가는 스페인과 겹쳐 보인다. 돈키호테와 스페인의 말과 몸짓은 이미 낡아서 폐기해야 하는데, 이를 끝까지 붙들고 현실을 재구성하려고 한 것처럼 읽혀졌다.



    헌 말, 헌 몸짓의 돈키호테


    돈키호테 1부는 1605년에 출간되었고, 2부는 1615년에 출간되었다. 그리고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이 1637년에 등장했다는 점을 놓고 보면, 당시 유럽은 이미 중세라는 허물을 벗어던지고 있던 시기였다. 다시 말해, 돈키호테가 활동하던 시기는 중세 말기로 볼 수 있으므로, 돈키호테가 세상을 설득하려면 중세의 기사도 정신이 아니라 합리적 의심과 방법적 사유라는 근대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진행했어야 했다. 옷차림은 화려한 기사 장비가 아니라, 기능성과 편의성을 갖춘 의상에 나침반이나 망원경을 갖고 있었어야 했다. 그렇게 돈키호테의 헌 말, 헌 몸짓, 헌 가치관은 새롭게 부상하는 근대적 현실과 격렬하게 충돌하였으나, 세계가 근대로 전환하는 걸 막지 못했다. 


    돈키호테 주인공인 알론소 키하노는 중세 기사소설인 "아마다이스", "팔메린", "가우라"의 문장을 사유의 지도로 삼았다. 그렇게 그는 낡고 허름한 투구와 갑옷을 걸치고, 앙상한 말을 전설의 준마인 로시난테로 명명한다. 나아가 평범한 농촌의 여인인 알돈사를 귀부인 돌시네아로 격상시켰고, 여관은 성으로, 풍차는 거인으로, 양떼는 적군으로 변모하기 마련이다. 이 과잉 해석은 망상이라고도 볼 수 있겠으나, 동시에 언어적 실천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낡은 문법으로 현실을 재조립하려고 한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어떠한가? 사회는 그의 언어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기사가 품고 있는 명예라는 상징적인 화폐 가치는 이미 폭락한 상태였고, 그의 선전포고는 그 누구도 권위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남는 것은 조롱과 몰매의 연속이었다. 여기서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조롱과 몰매는 단순 우스꽝스러운 해프닝으로 볼 수 없다. 헌 말, 헌 몸짓으로는 세상은 커녕 동네 개도 바꿀 수 없다는 걸 보여준 것이다.


    그럼에도 돈키호테를 아름답게 바라보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는 도망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롱과 몰매를 버티며 자신의 믿음을 삶의 끝까지 밀어붙였다. 다만 부분이 독자를 난처하게 만든다. 마치 서울 지하철 1호선에서 어느 할아버지와 유사하다. 백발의 할아버지는 정자관에 흰색 도포를 입고, 곰방대 담배를 피우며, 콧수염을 쓰다듬다가, 지나가는 젊은 사람들에게 조선시대 유교 논리로 훈계하는 모습. 할아버지의 태도가 틀렸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분이 품은 덕성, 의지에서 묘한 존엄이 새어 나오기 때문에 안쓰러워 보일 수밖에 없다. 다만, 그 분이 품은 존엄과 의지만으로는 세상을 설득하기는 커녕 동네 강아지도 바꿀 수 없다는 점에서 내가 이 책을 읽고 느낀 "헌 말과 헌 몸짓으로는 그 누구도 설득시킬 수 없다"란 생각은 더욱 또렷해진다.


    돈키호테 2권으로  넘어가면서 실패의 성격이 변한다. 2권의 주변 인물들은 돈키호테를 읽은 독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렇게 공작과 공작부인은 연극을 연출하듯 돈키호테의 신념을 놀잇감으로 소비한다. 나무 목마를 타고 떠나는 비행, 바라타리아 섬의 가짜 통치 등이 돈키호테의 진심을 회화하는 장치로 볼 수 있다. 여기서 볼 수 있는 건, 돈키호테가 품은 헌 말, 헌 몸짓이라는 낡은 가치는 반대편과 논쟁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권위가 사라져버린 헌 말과 헌 몸짓은 공론장에서 조롱 당하며 조용히 소진될 뿐이다. 그럼에도 돈키호테는 알량한 체면을 위해 믿음을 고수한다. 패배 직전까지 신념을 지키려고 애쓰는 그의 완고함을 바라보고 있으면, 공공 영역에서는 그 어떤 변화도 일으킬 수 없지만 개인의 윤리로는 빛을 발할 수 있다는 작은 희망을 품게 한다.


    결정적인 장면은 하얀 달의 기사와의 결투다. 패배하는 자는 모험을 끝내는 것인데, 이는 곧 신념을 철회하는 것이다. 결국 돈키호테는 쓰러지고 라만차로 돌아와 자신의 본명인 알론소 키하노를 되찾는다. 나에게 이 장면은 돈키호테가 그동안 고수하던 헌 말 헌 몸짓을 내려놓은 것으로 읽혔다.



    새 말 새 몸짓의 가능성, 산초 


    돈키호테의 곁을 지키던 산초는 조금 다른 유형의 인물이었다. 그는 가난한 농민으로 중세의 기사도 정신을 품지 않았다. 돈키호테를 따라다니게 된 것도 숭고한 명예나 기사도 정신 따위는 없다. 그저 섬 하나를 주겠다는 약속에 이끌렸기 때문이다. 여기서 산초가 얼마나 현실적이고 이해득실을 따지는 성격이었는지 알 수 있다. 마치 우리나라 이공계 엘리트 청년들이 정년 없이 100살까지 일을 하며 안정적인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의사를 꿈꾸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산초에게는 계산적인 면모만 보이지 않았다. 돈키호테의 말은 기사도 문학에서 볼 수 있을 법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었따면, 산초의 말은 속담이나 체험 그리고 현실 감각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산초의 말은 돈키호테에 비하여 덜 고상하게 다가올 수 있겠으나 그의 말은 현실에 발을 딛고 있었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을 설득시킬 수 있었다. 이는 바라타리아 섬 총독으로 임명되었을 때 볼 수 있다. 공작 부부는 장난 삼아 산초를 총독으로 임명한다. 그들은 산초가 가난한 농민이므로 무지함과 어리석음을 드러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산초가 판결을 내린 뒤에 집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제가 보기에 라세데모니아인들에게 법을 주었던 리쿠르고스라도 위대하신 판사 나리께서 내리신 판결보다 더 나은 판결은 내리지 못했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 <돈키호테 2>, p. 635


    이는 고대 그리스의 입법자들도 산초보다 더 나은 판결을 내릴 수 없었다는 것이다. 산초가 편결을 내리는 자리에서 귀족이 사용하는 화려한 수사나 권위적인 어투가 아닌, 자신의 경험과 속담을 바탕으로 현실의 문제를 해결했다는 게 핵심이다. 예를 들어 재산 분쟁과 같은 도덕적 딜레마를 다루는 과정에서 그는 삶의 맥락을 고려하고, 타인의 처지를 헤아리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법학 교육이나 권력의 장치에 비롯된 게 아니라 농민으로 살아오면서 겪은 체험 그리고 지혜를 활용한 것이다.


    물론 바라타리아 섬의 총독직은 놀이에 가까웠기에 산초의 권력은 허망하게 사라진다. 하지만 이 모습은 독자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남겼다. 세상을 바꾸는 힘은 현실과 접촉되어 있는 언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 언어는 경험으로 책임지는 판단 그리고 타인의 사정까지 끌어안는 공감으로 구성된 것이다. 산초가 보여준 판결은 일시적이었고 권력의 놀음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읽힐 수 있겠지만, 그 속에서 그려진 산초의 논리와 태도는 세상을 설득할 수 있는 힘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돈키호테가 고집하는 낡고 고결한 기사도 언어보다, 산초의 현실적인 언어가 변화 가능성을 품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전자는 과거의 이상과 도덕만 반복하느라 현실과 괴리되었다면, 후자는 지금 이 곳의 문제를 해결하며 새로운 길을 제시했다. 


    이는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수 많은 정치인들은 권위적이고 추상적인 담론만을 내뱉을 뿐, 현실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끊임없이 반복된다. 고로 추상적인 담론에만 머무를 게 아니라 추상적인 담론에서 구체적인 생활, 경험 그리고 실천까지 파고 들어야 한다. 이러한 언어가 공론장에 울려 퍼질 때에야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으로 전환될 것이다. 나에게 <돈키호테> 의 산초는 헌 말, 헌 몸짓이 설득력을 잃은 시대에 우리가 어디에서 가능성을 찾아야 하는지 가리킨 이정표로 다가왔다.



    가난한 사회에서 그려지는 사회 분열


    <돈키호테>에서 그려진 스페인 풍경은 경제적 몰락으로 인한 사회적 균열이 현실감 있게 드러났다. 사실 이 소설에서 가장 명랑한 사람은 돈키호테 한 사람 뿐이다. 그 외의 인물들은 대체로 우울한 그림자에 드리워진 채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돈키호테도 가난하다는 걸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스페인에서 귀족이 농민처럼 노동하는 것이 수치스럽게 여겨졌으며, 이달고 계층은 경제 활동을 하지 않으면서도 명예를 지키기 위한 형식적인 삶을 그대로 이어 왔다. 돈키호테 또한 노동을 하지 않고 영지나 수입도 거의 없이 과거의 영광만 되새기듯 기사도 소설을 읽으며 나르시시즘에 가까운 망상에 빠져든다. 그가 입고 타는 갑옷과 말이 모두 낡고 초라하다는 건, 현실을 벗어나려는 심리적인 탈출구이자 경제적 현실을 회피하려는 상상의 산물이라고도 볼 수 있다.


    산초 판사는 이러한 경제적 문제를 더 선명하게 보여준다. 그는 돈키호테가 섬을 하사하겠다는 약속에 의하여 여정을 결정하는데, 당시 토시 소유가 민중에게 얼마나 중요한 가치였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다시 말해 경제적인 안정이 곧 신분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걸 가늠할 수 있다. 


    작품에서 그려진 풍경만 보아도 경제적 상황을 쉽게 가늠할 수 있다. 돈키호테가 들리는 마을들은 대체로 황량하고 상업이나 생산이 활발하지 않다. 여관은 허름하고, 음식은 초라하며, 여행자들은 늘 돈이 부족하다. 귀족들 또한 계산을 미루거나 속임수를 쓰는 모습을 보인다. 귀족인 공작과 공작부인 또한 부유하다고 보기는 어렵고 과거의 영광을 공연과 연극으로 재현하며 소비하는 계층에 가깝다. 


    "지금은 부지런함보다는 게으름이 승리를 거두고, 노동보다 오락이, 덕보다는 악습이, 용기보다 오만이, 황금시대와 편력 기사들로 오직 빛을 발하면서 유지되었던 군사의 실천보다 이론이 승리를 차지하고 있지."

    <돈키호테 2> p.70


    이처럼 귀족들은 생산에 특별한 기여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타인의 환상과 열정을 조롱거리로 삼는 데 몰두할 뿐이다. 당시 귀족들이 생산은 없고 소비만 하는 계층으로 전락되었다는 점을 가늠할 수 있다. 실제 스페인은 반복되는 전쟁과 방탕한 재정 운영으로 파탄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귀족은 명예와 허위의식을 유지하려는 모순된 태도만 유지했다. 작품 곳곳에서 세금 징수와 채무, 국가의 파산이라는 표현이 등장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경제적으로 대세 하락 중인 대한민국은 어떠한가? 

    어라!? 에어프라이기에 돌린 삼겹살이 다 구워졌네?

    이만 줄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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