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람 만들기 1~2편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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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람 만들기1>은 기본학교 독서모임을 통해 읽었던 적이 있었고 이 책의 저자인 함재봉 교수님의 강의도 따로 들은 적이 있었다. 당시 나와 함께 강의를 들었던 기본학교 2기 졸업생은 나에게 "재미있지 않아?", "재미있지?" 를 대략 5~6번 정도 물었다. 당시 나는 "아~~ 그래요??" 라는 답으로 일관했다. 함재봉 교수님은 독립운동가 집안이고 기본학교 2기 졸업생이신 그분 또한 독립운동가 집안이었기 때문에 동질감이 발휘된건가 싶었다. 그런데 한국사람 만들기 1, 2를 읽고 난 뒤에 생각이 바뀌었다.
호기심이 발동하여 이 책을 다시 읽게 되었는데, 역시 모든 책은 호기심에 기반해서 읽어야 최고인 듯하다. 그래야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사람 만들기>에 대한 호기심이 생긴 이유는 단순하다. 어느 순간, 이 책이 현대의 필요에 의하여 쓰여진 역사 서적처럼 다가왔기 때문이다. 최진석 교수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적 호전성을 강하게 발휘한 책이라 볼 수 있겠다. 지적 호전성이 강하게 발휘된 부분을 꼽자면 한국인의 정체성을 다섯 개의 축, 친중 위정척사파, 친일 개화파, 친미 기독교파, 친소 공산주의파, 인종적 민족주의파 등으로 재구성한 시도가 대표적이겠다. 이 책을 읽고 느낀 점이 무엇이냐, 한 줄로 정리한다면 다음과 같다.
"역사를 필요에 의해 쓸 줄 모르는 국가는 미래가 없다."
지적 호전성을 발휘하여 현재 필요에 의한 역사를 쓰자는 건 역사를 왜곡하자는 게 아니고, 없던 이야기를 지어내는 것도 아니다. 이는 그저 새로운 시대정신을 창조하기 위한 과정일 뿐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어떤 필요에 의하여 쓰여진 것일까?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 책은 한국 사람이 이제 조선의 가치관과 정체성이 아닌 대한민국의 가치관과 정체성으로 현재를 바라봐야 한다는 필요에 의하여 쓰여진 것처럼 보았다. 다시 말해, 한국 사람이 조선의 성리학, 주자학적 태도를 답습하는 게 아닌, 조선의 역사관으로 현재를 바라보는 게 아닌,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누구이고 대한민국이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지 스스로 묻게 만들기 위함으로 보였다.
내가 생각하는 역사란,
이 책을 읽으며 든 생각은 역사란 현대인이 필요에 의해 쓰여진 것이다. 인간이 스마트폰을 만들었지만, 인간의 삶은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짜여졌다. 역사도 다르지 않다. 현대인의 필요에 의하여 쓰여지고 필요에 의하여 받아들여진 역사는 현대인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을 모두 바꿔버린다. 그렇게 확신을 주고, 적이 누구인지 가리키고, 특정 방향으로 이끌게 한다. 많은 사람들이 역사책을 읽으면서 특정 국가를 미워하게 되는 이유가 이에 기인한다.
역사를 지나치게 숭고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서점에 즐비해 있는 역사 관련 서적만 보더라도 모두 현대인이 필요에 의하여 쓴 것이기 때문이다. 고려시대, 조선시대 유물은 당시의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므로 그들의 것이라면, 역사는 현대인을 위한 것이다. 누군가는 역사를 객관적인 사료 그 자체로 여길 수 있겠지만, 당시 사람들의 감정과 의도, 행동의 맥락을 완전무결하게 파악하여 절대무오류성으로 무장한 역사를 기록하는 건 신의 영역이다. 나아가 모든 맥락을 구체적으로 담을 수 있겠지만, 수십, 수백만 페이지를 모두 담을 수 없으니 생략과 도식화를 거치면 어쩔 수 없이 간소화되면서 특정 방향을 가리킬 수밖에 없다. <한국사람 만들기1>에서도 이를 발견할 수 있다. 이 책은 고려에서 조선시대의 인간형이 어떻게 변화하였는지를 보여주는데, 세밀하게 파고드는 게 아닌 큰 틀로 서술했다. 그러므로 역사란 불변하는 고정된 무엇으로 바라볼 게 아니라, 현대의 필요에 의하여 다시 쓰고 받아들이는 무엇으로 보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라면.
대한민국에서 자주 보이는 갈등은 친중 vs 친일이다. <한국사람 만들기1~2>를 읽으면 이 복잡한 갈등 구도의 원인을 들여다 보고 나름 명쾌한 해답을 낼 수 있다.
중국을 향한 시선, 문화의 스승이자 이념적 경쟁자
<한국사람 만들기1>에서는 조선 사람을 중국과의 관계 속에서 설명한다. 고려에서 조선으로 전환될 때의 핵심은 송나라의 주자성리학을 국가 운영을 위한 핵심 사상으로 삼았으며, 강남농법을 통하여 생산 기반을 강화했다. 이는 단순 제도를 수입한 것으로 볼 수 있겠으나, 저자는 조선인으로의 전환을 가져온 것으로 해석하였다. 다시 말해, 조선 사람은 성리학에 기반한 윤리, 질서를 따라 살아가는 존재인데, 이는 중국의 세계관을 받아들인 결과다. 그러므로 중국은 단순 외부의 세력으로 간주하는 게 아닌, 조선의 정체성에 커다란 영향을 준 스승의 자리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에 상황이 복잡해진다. 명나라는 의존 그리고 충성을 다해야 하는 대상이었는데, 청나라는 오랑캐로 규정되어 멸시, 공파의 대상이 되었다. 이 상황 속 위정척사 사상이 피어났다. 그렇게 중국은 존경과 거부라는 상반된 태도를 함께 품게 만들게 만드는 존재가 된 것이다. <한국사람 만들기2> 에서는 이러한 맥락을 그대로 이어가 중국이 공산주의의 원류로 등장하면서 친소 공산주의 담론이 형성된다. 다시 말해 중국은 배워야 할 대상이었지만 동시에 극복해야 하는 대상이 된 것이다.
일본을 향한 시선, 침략자이자 근대화의 자극제
<한국사람 만들기1> 에서 일본은 임진왜란을 일으킨 침략자로 등장했다. 이와 동시에 일본이 메이지 유신을 통하여 서구 문명을 빠르게 흡수해 근대화를 달성한 국가로 그려진다. 이는 조선의 지식인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위정척사파는 일본을 서구 문명을 필터 없이 흡수한 타락한 국가로 배척하였으나, 개화파는 일본을 따라잡아야 하는 근대화의 롤모델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일본은 단순 적대국의 위치를 넘어 조선사람이 품고 있던 기존의 인식을 흔들고 새로운 정체성을 촉발시킨 존재였다.
<한국사람 만들기2>에서는 일제강점기를 중심으로 일본을 다각도로 그려냈다. 일본은 한국인에게 식민 통치라는 고통과 트라우마를 안겼다. 이와 동시에 서구 제도를 전달하는 통로이기도 했다. 근대적 법률 체계와 교육 제도, 행정 제도 등이 일본을 통해 도입되었기 때문이다. 저자가 친일 개화파에 대해 말하는 지점이 여기서 등장한다. 그렇게 일본은 한국인에게 민족주의의 씨앗을 심어주기도 하였으나 근대 국가의 기반을 마련한 모순적인 존재가 되었다.
종합
이처럼 중국과 일본은 한국인의 정체성을 좌우한 국가였다. 중국은 조선의 사상과 질서를 규정하였다면 근대 이후에는 이념의 경쟁자가 되었다. 일본은 전근대에서는 침략자였으나 근대 전환기에는 근대화의 롤모델, 일제강점기에는 억압자이자 근대 제도의 매개체라는 모순적인 존재다.
고로, 두 나라는 한국인의 적이 아니라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끼친 존재였다. 이 두 국가 간의 역사를 통해 한국인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끊임없이 물을 수밖에 없다. 이 책의 품는 지점은 여기에 있다. 친중, 친일, 친미 등으로 특정 국가를 숭배하거나 배척하는 태도를 넘어, 한국인의 정체성이 어떻게 규정되었고 긴장 속에서 재구성되었는지를 보여주었다.
마치며
<한국사람 만들기1~2>가 말하는 건 단순하다. 이제는 조선의 눈으로 현재를 볼 게 아니라 대한민국의 눈으로 현재의 가치와 필요에 맞게 스스로를 정의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조선을 넘어 더 넓은 역사관으로 바라보는 게 좋겠다.
예를 들어 일본이 싫다면 조선의 역사관으로 바라볼 게 아니라, 고려의 역사관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그 이유는 과거 고려 때는 일본보다 경제, 문화 등에서 모두 앞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조선의 역사관으로 일본을 바라보면 한과 서글픔에 젖기 마련이지만, 고려의 역사관으로 보면 일본을 이길 수 있다는 호전적인 환상이라도 품을 수 있다. 더 거슬러 올라가 삼국시대 때는 남성들이 화장을 할 정도로 아름다움을 추구했다. 반대로 조선은 모든 의복과 머리를 획일화할 정도로 아름다움을 억눌렀다. 그런데 요즘은 중년 남성들도 눈썹 문신을 할 정도로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있지 않나? 그러니 현대의 가치관과 부합하는 시대는 조선이 아니라 삼국시대가 더 가깝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명나라 유학자의 여곤의 이야기를 통해 아름다움을 멀리하는 집인 원미헌(遠美軒)에 대해 숭배하는 걸 보면,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은 조선의 세계관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듯하다.
최진석 교수님은 말의 질서가 무너졌다고 하신다. 여기서 말의 질서를 회복하려면 조선시대를 들여다 볼 게 아니라 삼국시대의 설화인 <온달전>을 들여다 보는 게 더 낫다. 누군가는 이를 좋은 여자를 만나 인생역전한 어느 남성의 이야기 정도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온달전>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말의 질서다.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고구려 왕은 딸인 평강공주에게 "계속 울면 바보 온달에게 시집 보내겠다." 라는 실언을 했다. 그리고 평강공주는 아버지의 말을 그대로 따라 온달과 결혼한다. 평강공주의 내조 덕에 대장군이 된 온달은 "신라 땅인 아차산성을 점령하지 못하면, 죽어서도 돌아오지 않겠다."라고 맹세한다. 하지만 그는 전쟁에서 패배하여 전사했다. 그런데 온달의 관은 움직이질 않았다. 그의 맹세가 관까지 붙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평강공주가 직접 와서 "이제 돌아가자ㅠㅠㅜㅜㅠㅜㅠㅜㅠㅜㅠㅜㅠㅜㅠ" 라고 눈물, 콧물을 흘리며 말하자, 그제서야 온달의 관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삼국시대의 <온달전>이 현대에도 아름답게 들릴 수 있는 이유는 현재 대한민국은 신분제가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조선시대였다면? 평강 공주는 뒤주에 갇혀 죽었을 것이고, 온달은 눈과 귀가 제거된 채로 어딘가에서 바보처럼 쓸쓸히 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기본학교에서 책 읽기 모임 책 중 아자 가트의 <문명과 전쟁>, 앨런 라이언의 <쩡치사상사> 와 같은 역사서적이 있는 걸 보았다. 지적 호전성을 발휘한다는 건 역사 서적을 읽고 과거를 줄줄 외는 게 아니다. 역사를 유물처럼 모셔놓을 게 아니라 현재 필요에 의해 발굴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읽고 해석하며 발버둥치는 것이다. 그럴 때에야 미래를 열 시대정신과 희미하게 마주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함평은 생각이 시작되는 곳이 되지 않을까 정도의 생각이다. 물론 나는 기본학교 책 읽기 모임에 참석하지 않아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모르겠지만 수준 높은 이야기를 했겠지 뭐.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든 생각은 <한국사람 만들기 3, <한국사람 만들기 4>, <한국사람 만들기 5>가 남아 있어 섬뜩하다는 것. 그리고 기본학교 2기 졸업생 중 한 명이 함재봉 교수님의 강의를 듣고 나에게 다가와 "재미있지 않아요?" 라고 끊임없이 물었던 이유는 '미래를 열 시대정신을 희미하게 마주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정도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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