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과 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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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글에서는 ‘개성이 왜 이익이 되는가’에 대해 설명해보고자 합니다.
이번 설명에는 기하학적 도식이 포함되어 있으며, 이를 위하여 여러분에게 안 익숙한 단어들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하나의 세계가 있습니다. 거기에는 개성있는 x 와 y가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z 라는 사람이 ‘난 너희와 다르다’며 존재감을 과시하려 합니다.
각 인물들의 개성은 화살표의 형태로 나타낼 수 있는데, 그림으로 표현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얼핏보면 z 는 새로운 존재입니다. 매우 개성이 강한듯 보입니다.
그러나 x와 y는 z를 금세 파악하고는 비웃습니다.
z가 가리키는 방향은 x와 y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분해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대체 가능하므로, z는 ‘개성이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에 답답함을 느낀 z는 기존의 세계를 벗어나려고 몸부림을 칩니다.
열심히 몸부림 친 z는, 기존의 세계에서 튀어나옵니다. 쉽게 말해, 차원을 벗어납니다.
이제, 평면에 존재하던 x, y는 평면 바깥의 z를 대체할 수 없습니다.
z는 비로소 개성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서 제가 질문을 던져봅니다.
‘개성없는 z가 있던 세계와 개성있는 z가 있는 세계 중, 생존에 더 유리한 세계는 무엇일까?’
저는 여기에 ‘개성있는 z가 있는 세계가 생존에 더 유리하다’ 고 답하겠습니다.
아래 그 이유를 설명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유를 설명하기 앞서, 아래의 내용들을 전제로 깔아두겠습니다.
1. ‘개성없는 z가 있는 세계’를 ‘단순한 세계’라고 부른다.
2. ‘개성있는 z가 있는 세계’를 ‘황당한 세계’라고 부른다.
3. 개개인의 개성은 매순간 발전한다. (+1로 표기)
4. 인간의 생존의 질과 양의 증가량은, 세계관의 크기에 비례한다. (세계관의 크기 = 개성의 곱)
단순한 세계에서의 z의 발전은 세계관 확장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그림4 왼쪽)
z의 발전 내용이 이미 x와 y의 발전내용에 포함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반면 황당한 세계에서의 z의 발전은 세계관을 확장하는데 기여합니다. (그림4 오른쪽)
당연하게도 z가 기여하는 만큼, 세계관의 확장 속도도 빨라집니다.
황당한 세계의 세계관은 애초에 거대했기에, 세계관 총량 증가량은 압도적으로 차이가 납니다.
이렇듯 개성있는 개인은 세계관의 한 축을 담당합니다.
그리고 개인의 발전은 세계관의 확장을 가속화 시킵니다.
거대한 세계관을 바탕으로 나의 생존의 질과 양을 상승시키기 위해, 다시 한번 물어야겠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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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이창훈님의 댓글
이창훈 아이피 (211.♡.4.136) 작성일 Date
상도 형님은 제가 대체할 수 없는 차원을 살아 가신다고 느낍니다.
소개해 주신 '카라바조' 전시회와 '후쿠자와 유키치'의 [학문을 권함]으로부터
제 세계가 폭발하듯 확장됐습니다.
한상도님의 댓글의 댓글
한상도 아이피 (183.♡.104.228) 작성일 DateMe, too~
맞말추님의 댓글
맞말추 아이피 (123.♡.33.101) 작성일 Date도덕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의 개성과 자유를 억누르는 사회에 대한 일침이군요.
이창훈님의 댓글의 댓글
이창훈 아이피 (223.♡.87.36) 작성일 Date
다른 누군가와 사회를 이루면서도 내 개성과 자유가 100% 그대로라면
1인 독재 체제에서 내가 그 1인 독재자이기 때문입니다.
한명 한명이 대등하게 (또는 위계에 따라) 존중받는 경우라면
사회를 이룸과 동시에 너도 나도 얼마간의 개성과 자유를 포기해야 합니다.
경만이님의 댓글의 댓글
경만이 아이피 (123.♡.33.101) 작성일 Date
1, 개성과 자유의 제한은 어디까지나 상호 존중과 합의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권력이나 특정 도덕적 기준에 의해 강제로 결정되어서는 안 됩니다.
2. 댓글에서 언급한 1인 독재 체제는 극단적인 사례이죠. 저는 이에 대해 옹호하지 않았죠? 오히려 창훈님의 글인 은유와 진흙탕(https://nwna.or.kr/bbs/board.php?bo_table=free&wr_id=2223&page=2)에서 전체주의, 1인 독재 체제의 색깔이 드러나 있습니다. 모두가 양보를 해야 하는 상황이어도 개인의 개성과 자유를 억압할 당위는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숭고한 도덕을 떠 받드는 창훈님은 아이러니 하게도 저에 대핸 인식 공격을 하셨고, 김태유 교수님의 강연 내용을 왜곡, 날조하는 걸 넘어 가짜뉴스를 유포하셨죠. 더 나아가 산업정책을 "이 물건 만들어 내고 저 물건 만들지 말아라" 라며 어긋난 지식을 인정하지 않고 고집부리셨죠.
창훈님의 이러한 모습은 초등학생이라면 이해할 수 있지만, 성인이라면 쉽게 존중할 수 없는 자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