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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판하고 보는 습관이 있는 사람, 낭만이 없이 심각하기만 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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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쓰기운동가 (123.♡.33.101)
    댓글 댓글 12건   조회Hit 16,971회   작성일Date 24-10-05 22:13

    본문

    우선 비판하고 보는 습관이 있는 사람, 낭만이 없이 심각하기만 한 사람.

    이들은 읽기에 익숙하나, 쓰기에 익숙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들은 쓰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고통을 가볍게 여겨, 시니컬한 비판의식으로 무장하여 빨간펜을 들고 교정하기 바쁘다. 그렇게 그들은 과거에 읽었던 것, 경험했던 것에만 심취하여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버버리고, 이들은 다른 사람들을 새로움이 아닌 과거에 묶어놓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은 누군가가 생산해 놓은 것에 기생하며 생명력을 갉아먹는 존재에 가깝다. 그러니 집단의 생산성을 저해시키는 존재이기도 하다. 
    이를 캐릭터로 만들어 보자면, 조용한 도서관의 모퉁이에 앉아 책을 읽다가 다른 방문자의 선택을 지켜보며, 그 선택이 자신의 기준과 부합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신랄하게 비판하는 데 익숙한 사람에 가깝다.

    진짜 사실은 경험과 쓰기

    내 안에 있는 지식들을 바탕으로 내 앞에 놓인 문제를 다룰 때 어려움이 많다. 예를 들면, 사실과 사실인 것처럼 보이는 걸 구분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여 가짜뉴스에 속거나 가짜뉴스를 재배포하기도 한다. 최진석 교수님께서도 수학과 과학을 중요시 여기신 이유, 동양철학보다 서양철학을 먼저 공부하길 권한 이유라 생각한다. 수학과 과학은 객관적이고 명확한 사실을 바탕으로 세계를 이해하려는 시도에서 비롯된다. 그러니 수학과 과학, 서양철학 지식을 읊는 것이 아니라, 수학적, 과학적, 서양철학적 사고를 하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사실과 사실인 것처럼 보이는 것을 구분하는 데 도움이 된다. 

    사실과 사실인 것처럼 보이는 것을 구분하는 또 다른 방법은 직접 경험하는 것이다. 만약 경험이 어렵다면 직접 써보면서 생각을 정리해 나가는 것도 대안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정보를 수용하기만 할 뿐, 직접 쓰는 일을 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정보 소비자는 많지만 정보 생산자는 많지 않다. 당연하다. 소비하는 것보다 생산하는 게 어렵고, 읽는 것보다 쓰는 게 어렵기 때문이다. 읽기는 고독이 따라온다면, 쓰기는 고독과 고통이 따라온다. 


    다시 우선 비판하고 보는 습관이 있는 사람, 낭만이 없이 심각하기만 한 사람.

    이들의 공통점은 무언가에 저항하는 걸 상당히 멋있는 것으로 여긴다. 그리고 기존의 질서와 체제에 저항하여 무언가를 성취하고 싶다는 욕구를 감추고 있어 음흉함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진짜 나 자신으로 사는 사람은 자신의 기질에 따라 당당하고 자연스럽게 야성을 드러낸다. 그러니 욕구를 감추지 않고, 도덕에 갇히지 않고 부도덕한 곳으로도 자유롭게 나아갈 수 있다. 

    가장 쉽게 야성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야 말로 쓰기다. 물론 자발적이고 의식적인 노력이기 때문에 어렵다. 더 나아가 세상과 타인을 바라보며 자신만의 시각을 드러내고 독자적인 언어로 풀어내야 하므로 더 어렵다. 하지만 지금 느끼는 감정에 이름표를 붙이고 그 감정에 대해 탐구해나가기 시작한다면, 우선 비판하고 보는 습관, 낭만이 없이 심각하기만 한 태도에 감춰진 두려움과 불안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를 해소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모색할 수 있지 않을까. 
    추천1 비추천2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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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창훈님의 댓글

    이창훈 아이피 (211.♡.4.136) 작성일 Date

    https://nwna.or.kr/bbs/board.php?bo_table=free&wr_id=2039&page=1
    위 게시물에서 경민님은 한 토막의 글을 대개 1~2시간 내에 뱉어 내십니다.
    누구는 한 토막마다 3~4시간 쓰고 지우기를 거듭하는데
    1~2 시간의 고독과 고통 가지고 엄살이 심하시네요.

    이창훈이라는 사람은 하루 동안 접하는 다른 누군가의 생각이 100 토막 정도 됩니다.
    그중 5 토막쯤에 문제의식을 느낍니다.
    그런데 요즈음 문제의식을 느끼는 5토막 중 경민님의 생각이 4~5개입니다.

    제가 경민님 생각을 100% 엎어 버리는지도 모르지만
    경민님 생각이 100% 엎어지는 것을 보고 (이창훈에게는) 우선 비판하고 보는 습관이 있다고 추정하는 것은 억지입니다.

    쓰기로 야성이 충분히 드러나고 있으니 이성도 함께 드러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profile_image

    경민이님의 댓글의 댓글

    경민이 아이피 (123.♡.33.101) 작성일 Date

    사실 비판은 좋습니다. 가치와 가치, 견해와 견해의 대립이 이루어진다면 서로의 사고를 넓힐 수 있겠죠? 예를 들면 자유 VS 안전, 공정 VS 효율이 있겠죠?

    비판하고 보는 습관이 있는 사람, 낭만이 없이 심각하기만 한 사람의 특징은 누군가가 자유가 좋다고 말했을 때, 안전을 주장하는 게 아니고, 자유가 좋다고 언급한 이유나 근거만 비판해요. 마치 빨간펜을 들고 이게 틀렸고 저것도 틀렸고 같은 형식이죠. 마치 다른 사람의 창작물이 없으면 자신의 생각을 표출할 수 없는 기생충처럼요.

    지금 이 댓글은 어떤가요? 정말 비판을 하고 싶다면, 우리가 함께 성장하고 싶다면, 제가 강조한 쓰기보다 더 나은 가치가 있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제가 이 글에서 정말 하고 싶은 말은 쓰기의 가치입니다. 저는 읽기보다 쓰기가 더 가치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쓰기를 읽기 우위에 놓았죠?

    제가 댓글로 종종 "'익명 또는 집단에 스스로를 파묻고 내 말과 행동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행태'에 대해 글로 써보셔라. 절대 비판하지 않고 좋은 말만 하겠다.'" 라고 말한 이유도 이에 기인하죠. 물론 이건 본인 선택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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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창훈님의 댓글의 댓글

    이창훈 아이피 (211.♡.4.136) 작성일 Date

    경민님에게서 '(글을) 내 위층에 모셔 두고 숭배하는 태도'가 엿보입니다.
    경민님은 다른 사람이 경민님의 글을 올려다 보며 숭배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본인이 작성한 글마저 숭배하며 떠받드는 경민님은 글 아래층 어디가에서 이창훈을 찾고 있지만
    기본학교에서 공부한 이창훈은 경민님의 글을 (최진석, 김태유 교수님의 글과 마찬가지로) 재료 삼아 아래층에 놓아 둡니다.
    경민님께서 선택한 '숭배하는 삶의 태도'로는
    수많은 글뿐 아니라 그 수많은 글 위층에서 노는 이창훈 같은 사람의 무게도 같이 떠받들어야 합니다.

    한국의희망 정치학교 교장이셨던 최연혁 교수님에 따르면
    어떤 주제를 논할지 선택하는 것뿐 아니라
    어떤 주제를 논의에서 제외시키는 것도 권력의 원천입니다.

    30분도 채 생각 안 하고 일단 휘갈겨 놓고 보는 경민님의 전술에 문제의식을 느낀 이창훈은
    경민님보다도 많은 게시물을 작성해 경민님의 글을 덮어버리는 전략보다
    경민님의 글을 엎어버리는 전략의 효율이 높다고 판단했습니다.

    "익명 또는 집단에 스스로를 파묻고 내 말과 행동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행태"가 마음 한구석에서 떠나지 않으신다면 이것을 경민님 본인의 글감으로 삼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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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민이님의 댓글의 댓글

    경민이 아이피 (123.♡.33.101) 작성일 Date

    시간을 들여서 생각하신 댓글이기 때문에 저는 최대한 친절하게 답했는데, 돌아오는 대부분의 댓글은 인신공격과 텅 빈 생각들 뿐이어서 조금 허탈합니다. 그래도 3개나 댓글을 달아주셨으니 제가 마지막으로 답하겠습니다.

    일단 메시지는 답하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도 드러내지도 못하고,
    누군가의 생각이 있어야만 말할 수 있는 기생충과 다를 게 없는 모습 잘 보았습니다

    우리가 비판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미 최연혁 교수님께 배웠죠?
    가치와 가치 간의 대립 그리고 메신저를 공격하면 안 된다는 걸 우린 이미 배웠죠.
    하지만 정작 그쪽은 제가 논하지도 않은 걸 말하고, 메신저를 먼저 공격하셨죠?
    이미 제가 물었던 것에 대해 답하지 않은 건, 인신공격하는 태도, 반박하지 못하고 딴소리하고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최선을 다해 답했습니다. 하지만 수치심이라고는 1도 없이 또 같은 태도로 일관했죠?

    최연혁 교수님을 언급하셨는데, 아래는 본인이 쓴 댓글입니다. (가장 첫번째 댓글 가져옴)
    "도덕적인 사람 옆에서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부도덕한 사람 주변에서는 행복할까요. 누군가가 망가지는 모습이 정말로 무한한 행복을 줄 수 있다면 KBS는 왜 매일 아침저녁으로 개그콘서트를 편성하지 않았을까요. 행복을 내 안에서 찾지 못하기에 100년이 다 가도록 헤매는 것은 아닐지요."

    여기에 어떤 가치가 있나요? 그래서 제가 뒤이어 물었죠.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결국 마지막 댓글에서야 말씀하셨죠?

    이 댓글이 최연혁 교수님이 말한 비판, 토론하는 방법인가요?
    모든 지식에는 체계라는 게 있어요. 중심개념이 있고 그 다음에는 이차개념, 주변개념 같은 게 연결되어 있죠. 지금 그쪽은 중심개념을 다루지 않고 이차개념과 주변개념만 다루고 있어요. 그래서 이상한 말들만 쏟아지는 것입니다. 중심개념을 가운데에 놓고 다른 개념들을 차례대로 다뤄야하는데 말이죠. 그래서 지금 여기서 최연혁 교수님을 논하는건, 오류입니다. 본인의 비판하는 방법 태도부터 다루고 그 다음을 논하셔야죠.

    여기서 다양한 글들을 보고 우리가 더 재미있는, 나은 생각으로 발전시킬 수 있길 바랬을 뿐이죠.
    그래서 저는 현실에서도 "우선 비판하고 보는 습관이 있는 사람, 낭만이 없이 심각하기만 한 사람." 과 어울리질 않아요. 생각이 확장되질 않거든요. 이런 사람이 있는 집단도 가질 않습니다. 이 글을 보고 뜨끔하셨을지 모르겠지만, 사실 이런 사람을 기본학교에서 사양하는 이유를 저만의 방식으로 생각해본 것입니다. 물론 창훈님을 보고 떠올라서 그런 것도 있죠.

    제 글을 숭배해달라고 하질 않았어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면, 제 글에 섹스 같은 키워드를 적었을까요? 글을 똥이라고 가볍게 뱉었을까요? 가치가 담겨있지도 않은 공허한 댓글에 열심히 답을 했을까요?
    그래서 부도덕 경진대회에서도 계속 어떤 걸 말하는 것인지 물었잖아요. 저는 생각을 확장시키고 싶었을 뿐입니다.

    이 글도 부족하다는 걸 알아요. 제가 10분 정도 가볍게 생각하고 휘갈긴 것이니까요. 글을 보면 아시겠지만, 글쓰기의 중요성을 말했지만, 글쓰기가 가치있는 이유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논하질 않았죠? 그래서 저도 이 글을 보고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어요. 30분만 더 생각했다면 저 이유를 써놨겠죠. 댓글에서 비슷하게 말한 적이 있어요. '유머에 심취해서 써야 할 내용을 빼먹었다.' 숭배하길 바랬다면, 이런 유머를 썼을까요?

    이번에도 본인이 보고 싶은 대로 마음대로 직조해서 보셨죠? 이번에도 없는 사실을 마음대로 만들어서 날조하셨죠?
    왜곡과 날조, 뇌피셜이 없으면 승부할 수 없는 사람.
    사실 이런 대화를 하면 저까지 바보가 되는 기분입니다. 더 이상 답하지 않을게요.

    저는 맹목적으로 좋은 사람이라 생각해서 다 친절하게 답했을 뿐인데, 인신공격이 반복되니 여기서 더 대화할 필요가 있을까 드는 기분입니다.
    그럼 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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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창훈님의 댓글의 댓글

    이창훈 아이피 (211.♡.4.136) 작성일 Date

    "~해야 한다", "~여야 된다"가 뭐 이리 많은가요.
    경민님 본인이 그 많은 도덕을 짊어진 채 살아간다고 해서
    다른 사람도 경민님처럼 짐 지는 삶을 살아가도록 만들려는 건가요.
    그 많은 도덕 가운데 몇 개를 내려놓고 부도덕을 행해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생각을 확장하고자 하는 경민님의 목적 덕분에 제 생각이 몇 곱절 확장됐습니다.
    경민님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2022년 11월부터 2024년 10월까지 제가 이만큼 성장할 수 없었을 겁니다.
    (앞뒤가 맞건 안 맞건) 논리로 저를 이만큼 몰아 붙이는 사람과 겨뤄 본 적이 없었고, 이 압박을 이겨내며 제가 더 큰 사람이 됐습니다.

    저는 경민님이 스스로를 최진석 교수님이나 기본학교보다 더 소중한 존재로 생각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어쩌면 제가 경민님 이상으로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아 보았기에 이만큼의 소명의식을 느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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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민이님의 댓글의 댓글

    경민이 아이피 (123.♡.33.101) 작성일 Date

    또 왜곡과 날조를 하셔서 답합니다.

    1. "~해야 한다", "~여야 된다"가 뭐 이리 많은 이유
    이건 단순한데, 저는 생각을 확장시키고 싶었고, 우리가 함께 성장하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최연혁 교수님께 맥락에 맞지 않는 말을 점잖게 "엉뚱하다." 고 말씀하셨고.
    "쉽게 말할 수 있는 걸 어렵게 말한다." 같은 지적 받으셨죠.
    추가로 신 선생님에게는 펙트체크가 제대로 되지 않은 가짜 뉴스다 같은 지적도 받았고요.
    (물론 저도 최연혁 교수님께 지적을 받은 게 있고요.)
    "~해야 한다", "~여야 된다" 라고 말한 이유는 제가 원하는 건 생각 확장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대화할 의미가 없다고 본 것이고요.
    종종 이런 대화를 하는 것도 우리에게는 도움이 되죠. 생각을 다시 한 번 되짚어보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질문이나 공격이 들어오기 때문에 마음의 근육이 생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인신공격은 선을 하셨죠? 이건 대화나 토론이 아닌, 상대를 깎아내리고 싶어하는 심뽀 밖에 없으니까요. 마치 창훈님이 다른 댓글에서 공직에서 오랫동안 헌신한 신 선생님을 음흉하게 깎아내린 것처럼요.

    2
    우리의 대화는 논리적이지 못했어요. 그래서 저는 절망스러웠습니다. 논리적이지 못한 이유는 창훈님은 제가 다루지 않은 내용을 왜곡해서 논하셨잖아요. 그리고 우리는 가치와 가치를 논하지 않았고 제가 말한 이유에 대해서만 다퉜잖아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제 글과 생각을 설명하거나 보충하는 것 뿐이었습니다.

    3
    이번에도 왜곡과 날조를 하셨는데, 저는 최진석 교수님과 기본학교보다 저를 더 소중하고 사랑하는데요?  최진석 교수님과 기본학교를 저보다 더 소중히 여겼다면, 제 삶을 잠시 뒤에 제쳐놓고 모든 행사에 다 참석하지 않았을까요? 저는 저를 더 사랑하고 특별하게 여기는데, 왜 그렇게 왜곡해서 보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기본학교와 최진석 교수님의 찬양글만 쓰지, 제 저급한 생각들을 여기다 던져놓았을까요? 그리고 기본학교를 더 사랑했다면 여기서 이런 수준 낮은 대화를 나눴을까요? 기본학교보다 저를 소중히 여기지 않았다면, 그쪽이 말하는 '섹스' 같은 부류의 이상한 글을 여기다 털어놓을 수 있었을까요? 저를 소중히 여기기 때문에 더러워 보이는 생각도 당당하게 내비칠 수 있는 겁니다.
    오히려 글을 쓰지도 못하고 조용히 댓글로만 의견을 표명하는 그쪽이야 말로, 자기 자신을 진실되게 바라보지 못하는 것 같은데요? 자기 자신의 생각을 부끄럽게 여기는 것 같은데요?

    3
    물론 제가 최진석 교수님을 엄청 좋아하니까, 저 자신보다 교수님을 더 소중하게 여기는 것처럼 보일 수 있어요. 스무살 즈음 많이 방황했을 때 사실 한 쪽으로만 기울어져 있던 저를 바로 잡아주신 분이시고 보이지 않는 용기를 심어주신 분이었으니까요. 너무 감사한 마음을 항상 갖고 있고요.
    그런데 이건 가까운 동지와 했던 말인데. 누군가를 존경하고 사랑한다는 것은 대상을 계속 바라본다는거에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바라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대상의 높이까지 다다르거나 더 나아가 이를 넘어서는 목표를 품는 것이 바로 진정한 선망과 존경의 의미라고 생각해요. 건강한 존경은 단순한 흠모가 아니라 그 이상을 꿈꾸며 스스로를 성장시키고자 하는 욕망과 도전의식을 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누군가를 진짜 존경한다면 그 대상을 뛰어 넘으려는 마음까지 품어야 한다고 말했죠.

    우린 그렇게 가깝지도 않았고 사적인 대화도 하지 않았죠. 저는 기본학교와 최진석 교수님보다 저를 더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데, 정작 본인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뭘 알고 있는 것처럼 말씀하시죠? 이렇게 가짜뉴스 유포자의 행태와 태도는 아직도 바뀌질 않았네요. 사실 이런 사람들이 폭력을 정말 가볍게 일삼습니다. 본인을 한 번 들여다 보세요. 무지함과 보이지 않는 폭력성마저도 과도하게 숭배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제가 글을 써보시라고 한 것이었어요. 물론 기생충 마인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쓰지 못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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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창훈님의 댓글의 댓글

    이창훈 아이피 (211.♡.4.136) 작성일 Date

    "더 이상 답하지 않겠다"
    "더 대화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면서
    저보다 3~4배의 분량으로 글을 토해 내시는군요.

    제가 최연혁 교수님께 지적 받았다는,
    '맥락에 맞지 않는 말'이 뭐였는지 궁금하고, '쉽게 말할 수 있던 것'이 무엇인지도 궁금하네요.
    신 선생님께서 지적하셨던 연설문 과제를 이 게시물의 꼬리 게시물로 달겠습니다.
    어떤 부분이 가짜 뉴스인지 경민님께서 지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경민님의 생각이 저급하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저는 경민님의 존재 덕분에 이만큼이나 수준 높은 대화가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기본학교 3기 중에서 어린 축에 속했고
    형님 누님들보다 스스로에 대해 고민할 시간의 총량이 몇 년씩은 적었습니다.
    수업 당시 최진석 교수님의 말씀 중 곧바로 소화하지 못하겠는 내용도 있었고
    왜 '추상'만큼 중요한지 도저히 모르겠던 '은유'는 졸업 몇달 뒤 최연혁 교수님을 통해 갈피를 잡았습니다.

    저는 기본학교를 다니는 동안의 변화보다
    기본학교를 졸업한 뒤 지금까지의 변화가 더 크다고 느낍니다.
    경민님, 상도님, 성준 형님과의 토론뿐 아니라
    영화와 현대미술, 음악회를 소개해 주신 누님들의 도움 덕분에 가능했습니다.
    한분 한분께 정말 감사합니다.

    2023년 5월의 저였다면 경민님의 글에 이만큼 적극 대응하지 않았겠지만
    2024년 10월의 저에게는 (경민님의 태도가)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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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민이님의 댓글의 댓글

    경민이 아이피 (123.♡.33.101) 작성일 Date

    제가 답하지 않겠다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답한 이유는 적어도 인정하진 않을까 하는 못난 기대가 있었습니다. 추가로 더 새로운 이야기나, 생각거리라도 나오진 않을까 하는 바보 같은 기대였고요.

    날조, 왜곡, 인신공격한 것에 대해 인정할 줄 알았는데, 역시 이 부분은 빼놓고 말하시네요.
    제가 날조, 왜곡한 것에 대해 정정하자 인정도 안하고 감성팔이하시네요?
    처음 대화할 때부터 제 태도에 가치를 두고 대화를 하면 되는건데, 왜 인신공격과 날조, 왜곡을 하나요?


    제 태도를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라고 생각하셨잖아요?
    그런데 저에 대해 아는 게 1도 없으시고, 저에 대해 생각했던 것들이 모두 본인의 망상이었다는 게, 제 답변을 통해 드러났죠? 그런데 뭘 해결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네요. 일단 그쪽이 병원에 가시면 해결될 것 같아요.

    제 태도가 문제라고 말씀하셨는데, 어떤 태도인지에 대해 말하지 않았죠?
    제가 부도덕에 대해 논했다고 해서 부도덕한 사람으로 보이시나요?
    섹스를 자유롭게 말해서 매일 방탕하게 섹스하는 사람으로 보이시나요?
    제가 과거에 인스타그램을 비공개로 활동하는 이유에 대해 말한 적이 있는데요. 거기에 아름다운 섹스에 대한 주관적인 생각을 남긴 적이 있었는데, 평범한 예술고등학교 1학년 여학생이 첫경험을 저에게 배우고 싶다는 메시지를 보냈거든요. 저도 부도덕과 섹스를 자유롭게 외치지만 도덕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그 친구를 포함한 미성년자로 보이거나 메시지를 보내는 모든 사람들을 차단하고 비공개로 활동한다고 말했어요.
    참고로 또 왜곡, 날조해서 바라보실까봐 말씀하자면, 제가 인스타그램에 남겼던 아름다운 섹스는 행위 자체가 아니라, 서로의 결점이나 신체적 콤플렉스도 사랑스럽게 키스할 수 있을 정도로 아껴줘야 한다는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이처럼 제 이야기에 대해 하나도 모르잖아요. 알려고 하지도 않았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제 태도에 대해 논하시나요? 과학적 지식을 읊는다고 과학적 사고를 하는 게 아닙니다.
    관찰에서 가설, 실험, 데이터 수집, 분석 같은 절차라도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쪽은 지금 관찰에서 가설 단계에 닿은 걸 결론으로 단정지었잖아요?

    상도님, 성준님, 우영님 같은 뛰어난 인재랑 관계를 맺으면 성장할 수밖에 없죠. 그런데 그쪽은 지금 뭐하나요? 저도 앞서 언급한 분들을 보면서 느끼고 배우는 게 많고, 이분들이 논하는 주제에 대한 책을 읽어야겠다는 자극이 따라오고 용기도 생깁니다. 꿈도 흥미로워서 응원하고 싶을 뿐만 아니라, 옆에서 지켜보고 싶게 만들 정도입니다.
    그런데 그쪽은 뭔가요? 대화에서 조금이라도 우위를 점하고 싶은 욕심에 휩싸여 인신공격과 날조, 왜곡만 하고 있잖아요? 그리고 다른 사람 글에서도 계속해서 꼬투리만 잡고 있잖아요?
    제가 보기엔 오히려 퇴보하셨고요. 정신승리, 날조, 왜곡, 인신공격에 관한 부분만 성장하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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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창훈님의 댓글의 댓글

    이창훈 아이피 (211.♡.4.136) 작성일 Date

    저는 경민님께서 "익명 또는 집단에 스스로를 파묻고 내 말과 행동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https://nwna.or.kr/bbs/board.php?bo_table=free&wr_id=1941&page=4
    경민님과의 논쟁이 시작된 9월 11일의 위 글에서
    날조, 왜곡, 인신공격을 '102살 경만이'와 '이창훈' 중 누가 밥먹듯 사용하고 있는지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맥락에 맞지 않는 엉뚱한 말'과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의 실체를 밝혀 주세요.
    경민님께서 신 선생님에 기대어 인용하신, "팩트체크가 제대로 되지 않은 가짜 뉴스"가 어느 부분인지도 지적해 주세요.
    https://nwna.or.kr/bbs/board.php?bo_table=free&wr_id=2091&page=1

    퇴보로 보이더라도 저는 후퇴할 생각이 없습니다.
    제가 걷기로 결정한 제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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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창훈님의 댓글의 댓글

    이창훈 아이피 (211.♡.4.136) 작성일 Date

    아이작 뉴턴(1643~1727)은 서른 세 살에 편지를 쓰며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섰기에 다른 사람보다 멀리 볼 수 있었을 뿐"이라며
    본인이 로버트 훅(1635~1703)과 르네 데카르트(1596~1650)의 창작물에 기대었음을 밝힙니다.

    앞 시대의 선도자가 쌓아 놓은 토대 위에 오늘의 것을 쌓아 올리기에 문명입니다.
    한국 문명은 신라와 고려, 조선, 개화기 선배들이 살아 온 한반도 똑같은 자리에 쌓아 올려지고 있습니다.

    비문명적으로 살아가시려면 수렵-채집할 땅부터 알아보시는 편이 좋겠습니다.
    이곳에서 하던 수렵-채집을 저곳에서 그대로 되풀이하는 수평적인 새로움도 있지만
    뉴턴이나 한국 선배들이 보여 준 수직 차원의 새로움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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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민이님의 댓글의 댓글

    경민이 아이피 (123.♡.33.101) 작성일 Date

    우리가 여유롭게 받아들여서 근거나 이유에 대해서도 비판할 수 있어요. 하지만 제가 다루지도 않은 걸 만들어서 마음대로 비판했고, 인신공격도 했죠?
    인신공격하면 제 생각을 엎을 수 있을거라 생각하셨나요?
    제 생각은 가치와 가치가 대립했을 때, 그리고 상대의 가치가 더 우위에 있다고 판단되었을 때 엎어지는 것입니다.
    이유나 근거를 비판한다고 해서 글의 방향성은 바뀌지 않으니까요.
    제 생각을 엎었다는 것은 망상입니다. 꿈에서 깨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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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창훈님의 댓글의 댓글

    이창훈 아이피 (211.♡.4.136) 작성일 Date

    "이 문제를 해결해야만 한다"는 소명의식 또는 욕망으로 가득한 이창훈은
    경민님께서 느끼신 그 부도덕을 향해 가볍게 건너 갔습니다.
    https://nwna.or.kr/bbs/board.php?bo_table=free&wr_id=20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