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와 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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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이 되지 않기 위해, 닭이 아님을 끊임없이 증명하고 확신하기 위해 기존의 것들과는 다른 것들을 주입하고 반복•숙달케한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이 필요할 정도로 그리고 그러한 부정을 수집하고 내면화해야 할 정도로 닭이 아님은 그 자체로 참이 아니다.
이것은 닭임을 확정하는 기존의 것들과 그 확신을 보증하는 즉, 닭이 닭임을 구분하고 위치지어주는 타자에 의해서 닭이 그 자체로 닭일 뿐임을 그 관성적이고 진부한 그런 확인이 닭이 아님에서부터 아님을 다시 부정한다.
감각적 확신까지 어쩌면 무엇인가에 의해서 점령당한 식민지로 파악해야만 하는 정신의 시작점에서부터의 부정은 가히 정신병자와 같다.
닭이 아님의 부정적 의미가 끊임없이 부정의 부정을 반복하면서 그 반복속에서 차이가, 변화가 들어나지 않고 결국 닭에서 머무르면서 있다간 닭이라고 확신하는 외부의 힘으로 부터 그것이 낙인이 되고 만다.
낙인이 찍힌채 다시 닭이 아님을 증명해내고야만 하겠지만, 외부에서도 내부에서도 가해지는 어떤 압박상태는 점차 증가하고 그러한 확신이 점점 더 가까워졌을 때 닭이 아님을 주장하는 자로부터 통과되는 상징은 자신이 닭이 아님을 다사 한번 외치고 있을 것인가?아니면 목이 잘려 마땅한 수많은 닭 중 하나라는 확신을 대타자에게 다시금 확인받을 것인가?
천체물리학의 지식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 밤 하늘의 반짝이는 별이 얼마나 멀리 있든 간에 단번에 눈 안으로 들어오는 것에 경이로움을 느끼고 총을 처음보는 사람이 총에 방아쇠가 당겨지자 표적에 순식간에 적중된 것에 당황하는 모습을 보일 것이다.
그것은 시작과 결과의 빠름 때문에 그 과정과 매개를 알아차리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것에 있으며 또한 그 중간과정의 생략이 그런 감정적 경정을 불러일으킨다.
그런 감격과 당혹스러움의 감정은 자신이 기존에 갖고 있던 무엇인가를 부정하는 것 그것이 단번에 확신으로 가닿는 것에서 불러와 진다.
이러한 이율 배반이 진실로 스스로에게 진리라면, 또 다른 눈과 감각들을 그리거 그러한 것을 부정성속에서 피어나게 해야할 소명으로써 나아가야한다.
스스로에게 떨어져나간 무엇인가가 밖았에 것에 접목되어 그것이 실로 혐오스러운 것이 되고 그리고 그것이 자기자신의 일부라는 것이 명백해졌을 때, 사랑과 혐오가 긍정과 부정이 섞여있음을 거부할 수 없을 때, '아님'만을 그래서 계속해서 반복속에서 있으면서 그 반복을 끝내줄 또 다른 것이 나타나길만을 바랄지 아니면 반복에서 그 반복을 기꺼이 수행할지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이 필요할 정도로 그리고 그러한 부정을 수집하고 내면화해야 할 정도로 닭이 아님은 그 자체로 참이 아니다.
이것은 닭임을 확정하는 기존의 것들과 그 확신을 보증하는 즉, 닭이 닭임을 구분하고 위치지어주는 타자에 의해서 닭이 그 자체로 닭일 뿐임을 그 관성적이고 진부한 그런 확인이 닭이 아님에서부터 아님을 다시 부정한다.
감각적 확신까지 어쩌면 무엇인가에 의해서 점령당한 식민지로 파악해야만 하는 정신의 시작점에서부터의 부정은 가히 정신병자와 같다.
닭이 아님의 부정적 의미가 끊임없이 부정의 부정을 반복하면서 그 반복속에서 차이가, 변화가 들어나지 않고 결국 닭에서 머무르면서 있다간 닭이라고 확신하는 외부의 힘으로 부터 그것이 낙인이 되고 만다.
낙인이 찍힌채 다시 닭이 아님을 증명해내고야만 하겠지만, 외부에서도 내부에서도 가해지는 어떤 압박상태는 점차 증가하고 그러한 확신이 점점 더 가까워졌을 때 닭이 아님을 주장하는 자로부터 통과되는 상징은 자신이 닭이 아님을 다사 한번 외치고 있을 것인가?아니면 목이 잘려 마땅한 수많은 닭 중 하나라는 확신을 대타자에게 다시금 확인받을 것인가?
천체물리학의 지식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 밤 하늘의 반짝이는 별이 얼마나 멀리 있든 간에 단번에 눈 안으로 들어오는 것에 경이로움을 느끼고 총을 처음보는 사람이 총에 방아쇠가 당겨지자 표적에 순식간에 적중된 것에 당황하는 모습을 보일 것이다.
그것은 시작과 결과의 빠름 때문에 그 과정과 매개를 알아차리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것에 있으며 또한 그 중간과정의 생략이 그런 감정적 경정을 불러일으킨다.
그런 감격과 당혹스러움의 감정은 자신이 기존에 갖고 있던 무엇인가를 부정하는 것 그것이 단번에 확신으로 가닿는 것에서 불러와 진다.
이러한 이율 배반이 진실로 스스로에게 진리라면, 또 다른 눈과 감각들을 그리거 그러한 것을 부정성속에서 피어나게 해야할 소명으로써 나아가야한다.
스스로에게 떨어져나간 무엇인가가 밖았에 것에 접목되어 그것이 실로 혐오스러운 것이 되고 그리고 그것이 자기자신의 일부라는 것이 명백해졌을 때, 사랑과 혐오가 긍정과 부정이 섞여있음을 거부할 수 없을 때, '아님'만을 그래서 계속해서 반복속에서 있으면서 그 반복을 끝내줄 또 다른 것이 나타나길만을 바랄지 아니면 반복에서 그 반복을 기꺼이 수행할지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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