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의 무위통치와 개헌에 대해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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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새말새몸짓 유튜브에서 진행되는 최진석 교수님의 노자 강의가 기대된다. 솔직히 말하자면 공자는 다소 지루한 면이 있었다. 교수님 잘못이 아니다. 그냥 내 취향, 관심사가 아니었을 뿐이다. 그런데 이번 노자 강의는 짱짱 기대된다. 가장 기대되는 부분은 노자가 제시한 무위 사상이다. 어쩌면 이 기대감은 최근 개헌이라는 화두와 맞물려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동안 노자의 무위 통치는 유토피아처럼 들리곤 했다. 이번 헌법 개정 관련 이슈에 관심을 갖다보니 영국과 미국이 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 두 나라가 무위통치에 가까워 보였기 때문이다.
영국의 헌법은 미국이나 한국처럼 성문화되지 않은 불문헌법 체계를 취하고 있다. 그렇다고 하여 영국에 헌법이 없다고 할 수 없다. 대헌장, 권리장전 같은 기본 문서들을 바탕으로 하여 수백년 동안 축적되어 온 법원의 판례와 헌법적 관행들이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였여 국가의 근본 규범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영국의 헌법은 미국이나 프랑스처럼 특정 시점에 지식인이나 정치인이 모여 인위적으로 설계한 게 아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일어난 치열한 투쟁과 타협의 결과물들이 쌓여서 형성된 자생적 질서다. 이 대목에서 영국의 불문헌법은 프리드리히 하이에크가 주장한 자생적 질서 그리고 노자가 말한 무위 통치와 비슷해 보인다.
물론 영국의 불문헌법 체계가 형성될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하다. 프랑스 대혁명이나 미국의 독립처럼 기존의 체제를 무너뜨리고 국가를 새롭게 설계한 사건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아가 영국 사회는 건전하게 토론하고 공론을 모으는 분위기를 지금처럼 유지시킬 수 있다면, 현재와 미래의 헌법적 감각은 자연스럽게 효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 이는 법전에 하나하나 명시했기 때문이 아니다. 영국의 왕족이 의회의 결정에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는 전통, 내각이 하원의 신임을 잃었을 때 스스로 사퇴하는 관행은 모두 성문법이 아니라 관행이 만든 질서다. 앨런 라이언의 <정치사상사>가 국가를 지탱하는 제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습속, 시민적 문화라고 말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영국 헌법의 핵심 원리는 의회 주권에 있다. 의회는 어떠한 법률도 제정하거나 폐지할 수 있고, 의회가 만든 법률을 무효화할 수 있는 상위의 성문 헌법재판소 같은 기관이 없다. 다시 말해, 고정된 헌법적에 국가의 미래와 역동성을 옭아매지 않겠다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변화하는 시대의 새로운 가치들은 선출된 의회라는 공론장에서 이루어지는 논의를 통해 그때그떄 유연하게 제도 안으로 흡수되는 것이다. 이는 노자의 무위 통치와 닮아 있을 뿐만 아니라, 최진석 교수님이 5.18을 헌법 전문에 새기는 것에 대해 반대하시는 주장과도 궤를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역사적 가치는 고정된 활자로 박제시키는 게 아니라, 사회적 습속 안에서 살아 움직이도록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미국의 헌법은 영국처럼 자연스럽게 이룩된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헌법은 영국과 비슷한 방향을 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미국 헌법은 1992년 제 27조 수정안을 통과시킨 이후로 2026년 현재까지 단 한 차례도 개헌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1세기의 복잡다단한 사회를 성공적으로 통제하는 중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성문법의 외피를 입고 있지만, 운영은 영국의 판례법칙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고 사회가 변할 때마다 개헌을 통하여 헌법을 뜯어고치지 않았다. 오히려 영국식의 불문헌법처럼 시대적 상황과 요구에 맞춰서 기존 헌법 조문을 유연하게 해석하는 방식을 택했다. 18세기에 작성된 '부당한 수색과 압수로부터 자유로울 권리' 조항을, 현대에는 디지털 프라이버시 보호'의 근거로 확장하여 해석한 것이다. 이처럼 긴 시간 동안 사법부의 판결과 해석이 쌓이면서 미국 헌법은 개헌을 하지 않고도 건강하게 살아 숨쉬는 것이다.
물론 모든 국가가 이러한 길을 걷는 건 아니다. 최근 프랑스와 독일은 변화하는 현실에 맞춰 성문 헌법을 개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처럼 개헌을 단행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진영의 뿌리에는 합리론이 자리하고 있다. 이는 인간의 이성과 설계를 통하여 사회라는 거대하고 복잡한 유기체를 통제하고 구축할 수 있다는 계몽주의에 가깝다.
최근 일본 또한 기존 헌법에 의문을 품고 개헌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 보수 세력은 현행 헌법을 승전국인 미국이 패전국인 일본에게 강압적으로 주입한 헌법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현행 헌법은 일본 사회 기저에 흐르는 천황 중심의 고유한 전통이나 정통성이 헌법에 제대로 녹아들지 못했기 때문에, 일본 고유의 역사관과 정통 정신을 반영한 자주 헌법을 자신들의 손으로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이러니 하게도 이에 대한 대안이 과거 메이지 헌법이다. 메이지 헌법은 성문헌법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일본 고유의 역사적, 종교적 감각을 반영하고 있으며, 국가적 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자유로운 전쟁 가능성도 열려 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과거의 메이지 헌법이 현행 헌법보다 더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국가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전후 수십 년 동안 개헌을 감행하지 못한 이유는 단순하다. 일본 국민들은 과거 군국주의가 남긴 공포와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비상사태라는 명분 아래 천황의 권위 뒤에 숨어 있는 국가 권력이 개인의 삶과 자유를 희생시켰던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이로 인하여 과거 일본은 영국식 자생적 질서 같은 우회로를 택했다. 일본 헌법 제 9조는 군대 보유를 문서상으로 명백하게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일본 헌법 조문을 고치는 게 아니라, "국가를 방어하기 위한 최소한의 실력 행사는 위헌이 아니다." 라는 해석을 통하여 자위대를 창설했다. 나아가 2014년 아베 신조는 헌법을 단 한 글자도 수정하지 않은 상태로, 동맹국인 미국이 공격받았을 때 일본이 대신 반격할 수 있는 권리인 집단적 자위권을 합법화했따.
이번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 정권은 이러한 우회적인 해석을 하지 않고 개헌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우고 있따. 이들이 지향하는 종착지는 그동안 보수 진영이 열망해 왔던 메이지 헌법을 현대적으로 부활시키는 것이다. 대규모 자연재해나 외부 무력 공격 등 예기치 못한 긴급사태가 발생했을 때, 국민의 기본권을 일시적으로 제한시킬 수 있는 긴급사태 조항을 명문화하겠따는 것이다. 이는 일본을 전쟁이 가능한 국가로 개조하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물론 일본의 개헌 장벽은 까다롭다. 보수 진영이 의회 의석을 상당수 장악했어도 국민투표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일본의 유권자들은 우리나라 유권자들처럼 헌법 개정이라는 이념적인 투쟁 그 자체보다, 물가, 고령화, 경제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두고 있다.
이러한 풍경을 들여다보면, 우리 대한민국의 현실도 다르지 않음을 마주할 수 있다. 정치권의 요구대로 헌법을 뜯어고치고 정치 구조를 새로 설계한다고 해서, 우리의 실질적인 살림살이가 더 나아질까? 개헌안이 통과된다고 해서 우리 이웃들과 더 따뜻하고 친근한 공동체적 연대를 맺을 수 있을까? 여기서 나의 얄팍한 지식과 경험에 따르면 소수의 지식인과 정치인들이 주도한 인위적인 개헌안 그 자체보다 노자가 설파한 무위 통치 그리고 프리드리히 하이에크가 강조한 자생적 질서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영국이나 미국처럼 말이다.
물론 이 길이 쉽지 않다는 건 알고 있다. 대한민국은 영국처럼 수백 년 동안 주체적인 관습과 서서히 무르익은 민주적인 습속을 축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법의 글자를 바꾸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오만은 경계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나 또한 교수님처럼 5.18을 헌법 전문에 수록하는 걸 반대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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