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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미용실 사장님과 싸운 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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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양수빈 (156.♡.59.33)
    댓글 댓글 3건   조회Hit 18,402회   작성일Date 24-04-10 21:34

    본문

    어느날 거울이 나에게 말해주었다. 내 머리카락이 정전기의 장난에 휘말린 것 같다고. 자세히 들여다 보니, 몇몇 머리카락이 하늘을 향해 춤추고 있었다. 내 마음의 평온함, 주변 분위기의 엄숙함을 떠나, 내 머리카락만은 그들만의 즐거운 파티를 벌이고 있는 것 같았다. 이제는 한껏 들 뜬 머리카락들에게 파티를 마쳐야 한다는 걸 알릴 시간이다. 그렇게 나는 미용실로 향했다. 


    하지만 미용실이라는 곳은 항상 낯설고 불편한 공간이다. 팔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고, 눈을 제대로 뜨는 것조차 어려운 상태에서, 오랜 시간 동안 거울과 마주 앉아야 한다. 이는 마치 어린 시절, 고독한 의자에 앉아 벽을 바라보며 긴 시간 반성했던 시간들을 떠올리게 한다. 미용실의 의자에 앉은 상태로 거울을 바라보면 어렸을 때로 돌아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렇게 나는 '왜 어제 운동 대신 야식을 선택했는지', '왜 책을 읽기보다는 침대에 누워 유튜브를 보며 시간을 보냈는지' 등 과거 못난 나의 모습들이 머릿 속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모터 돌아가는 소리가 귓가에 멤돌 때 즈음 뭔가 잘못되었다는 불길한 예감이 내 머릿 속을 가득 채우기 시작한다. '아, 이건 내가 원했던 스타일이 아닌데...' 나름 크게 중얼거렸지만, 내 목소리는 강력한 모터 소리에 파묻혀 버리고 만다. 그렇게 나는 거울을 바라볼 용기를 잃고, 무릎만 바라보며 모터 소리가 멈추기만을 애타게 기다린다.


    대기 중인 손님은 마치 정치 평론가가 된 것처럼, 정치 이야기에 열중하고 있다. 그의 목청에 힘이 들어간 걸 보니, 점점 우스꽝스러워지는 내 머리 모양은 관심사가 아닌 듯하다. 지금 내 머리가 본인의 미래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니... 참 아이러니 하다. 난 정치 이야기에 열중하고 있는 그에게, 지금 이 모터 소리가 끝나기 전에 이 곳을 떠나야 한다고 외치고 싶지만, 내 목소리는 모터소리에 묻혀 닿지 않을 게 뻔하다. 그렇게 나는 눈을 질끈 감고, 모터 소리가 끝날 때까지 침묵을 유지하다, 거울을 피해 미용실을 빠져나왔다. 


    머리를 자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마주치는 사람들의 시선이 내 머리카락에 꽂힌다. 그들의 눈빛을 들여다 보니, 내가 이발사와 격렬한 실랑이를 벌인 사람으로 오해하는 것 같다. 사실 나는 미용실 의자에 앉아 있었을 뿐인데, 난 싸움 같은거 싫어하는데... 그들에게 오해한 것이라고, 지금 이 상황을 설명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하지만, 그 전에 커다란 모자를 찾아 내 머리를 감추는 것이 급선무다.


    문득,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며 정치 이야기에 열중하던 그 손님의 운명이 궁금해진다. 나와 같은 상황을 마주하고 있을까? 어쪄면 그 분은 자신의 변화된 모습을 마주하지 못했을 것이고, 앞으로도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그 분은 눈과 귀를 막은 채, 정치의 세계에 빠져, 그 순간 순간만을 즐기기 바쁜 사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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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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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창훈님의 댓글

    이창훈 아이피 (211.♡.4.136) 작성일 Date

    '나'는 대기 중 뭘 하고 있었길래
    정치 이야기에 열중하던 손님처럼
    곧 마주할 순간을 알아차리지 못했을까요?

    그 손님은 미용사를 신뢰하기에
    다른 관심사에 몰두한 게 아닐까요?

    다음 손님과 거리 사람들이 과연
    나와 똑같은 기준을 가질지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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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수빈님의 댓글의 댓글

    양수빈 아이피 (156.♡.59.5) 작성일 Date

    1. '나'가 들어갔을 때에는 파마 약을 바른 뒤, 기다리고 있는 아주머니 한 분만 계셨기 때문에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ㅠㅠ
    2. 그 손님은 미용사를 신뢰한 것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맹목적 믿음에 가깝습니다. 어쩌면 그 손님은 원하는 머리가 특별히 없었기에, 어떤 머리가 나와도 게의치 않았을 것입니다.
    3. 맞습니다. 다른 손님 그리고 거리 사람들은 나와 똑같은 기준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이는 부끄러운 감정에 휩싸인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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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창훈님의 댓글의 댓글

    이창훈 아이피 (211.♡.4.136) 작성일 Date

    때로 애만 태우다 마는,
    몰래 달아나고파 마음 졸이는
    '나'를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