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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걸리버 여행기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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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권철민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96회   작성일Date 21-01-14 23:38

    본문

    난 책을 읽는 것이 좋다. 일종의 명상수련과 같다. 책을 읽는 순간은 온전히 책에 빠져드니 다른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고민이 없어지고, 저자가 안내하는 세상에서 고요히 선정에 들듯 머물 수 있어 좋다. 그리고 이렇게 어설프나마 글로 그 기억을 남기는 순간은 더 좋다. 글자 하나하나 내 머릿속에서 나오는 것이다 보니 더더욱 딴 생각할 틈이 없다. '위빠사나' 명상수련이 이런 방법과 유사하다고 본다. 일체의 움직임을 멈추고 오로지 자신의 호흡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왜 오만가지 망상이 없겠는가? 그렇지만 '내가 이러이러한 망상에 빠졌구나!' 깨치는 순간 망상은 사라진다. 반가부좌로 앉아있으면 채 5분이 지나기도 전에 다리가 저려온다. '다리가 저리구나!'깨치는 순간 그 고통 또한 사라진다. (믿지 못하겠지만 경험해 보면 신기할 정도다.) 이 방법이 2천5백년 전 부처님이 가르쳐 주신 수련방법이라고 한다. 그 분 역시 보리수 아래에서 이렇게 수련하시고, 깨달음을 얻어 중생을 가르쳤다. 그 가르침이 오늘날에도 생생하게 많은 지구상의 인간들에게 행복을 선사하고 있다.

    걸리버 여행기 얘기를 하려다 샛길로 빠졌다.

    기왕 이렇게 된 거니 한가지 더 생각을 적어본다. 연대장 때다. 난 독서를 많이 강조했다. 실재 어느 병영소식에서 보니 우리 젊은이들이 군대에 와서 의외로 책을 많이 보게 된다는 얘기를 한다. 당연하다. 낯선 또래 속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수직관계는 정말 견디기 힘든 상황일 수 밖에 없다. 명절에 시댁 마당에 들어서는 며느리의 심정이 아닐까! 어쨌든 그 도피처로 책이 아마도 큰 역할을 하리라. 그래서 난 지휘관 때에 부하들에게 책을 억지로라도 읽도록 시간을 만들어 주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어느날 연대 참모 중 한 친구가 한마디를 던졌다.

    "연대장님! 책을 읽고 싶어도, 읽을 시간이 없습니다."

    아무리 여건을 만들고, 강조해도 본인이 좋아서 하지 않는 일은 힘들 수 밖에 없고, 둘러 댈 핑계는 주변에 널려있기 마련이다.

    난 어릴 때 책을 읽고 싶어도 읽을 수가 없었다. 집안에 읽을 책 자체가 없었고, 책을 사서 본다는 것은 사치 그 자체였으니까. 시골이라 도서관도 없었을 뿐더러 도서관이 뭔지도 몰랐다. 내가 정말 교과서가 아닌 책을 접한 것은 중학교를 졸업하는 해였다. 제자에게 각별하셨던 영어선생님 댁에 초대되어 갔는데, 와우! 거실 한 쪽이 서재로 꾸며져 있고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고전문학전집이 잔뜩 꽂혀 있었다. 선생님은 앞으로 영어공부 열심히 하라며 옥스퍼드 영영사전을 선물로 주셨다. "나도 선생님처럼 책을 많이 읽어야지!" 난 선물로 받은 사전을 고이 가슴에 품고 집으로 오면서 결심했다. 이 경험이 내가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게 된 또 하나의 이유가 되었다.

    아! 독서라는 주제를 생각하다 보니 너무 많이 옆길로 샜다.

    걸리버 여행기! 동화 아니었나?

    동화 속에서는 소인국, 거인국에 가게된 걸리버의 재미있는 경험담었는데....

    이건 동화가 될 수 없는 내용이었네.^^

    거인국, 소인국 만이 아니라 하늘에 떠다니는 섬, 그 섬이 지배하는 지상나라, 영원히 죽지않는 사람들이 사는 나라, 일본(이 부분 삽화에 'sea of corea"가 명시되어 나온다고 한다. 동해라는 바다 명명의 근거 중 하나라고 한다.),

    그리고 저자가 제시한 이상국가인 휘넘이 사는 마인국의 이야기가 있었다.

    그리고 이 책이 발간된 1726년 당시에는 금서가 될 만큼 문제작이었다고 한다. 당시의 정치현실과 권력자들에 대한 실랄한 풍자와 신성 모독적 내용 때문에. 당시의 영국사회를 상상하기 어렵지만 어쨌든 그가 이상적인 나라로 묘사한 마지막 여행국인 휘넘들이 사는 나라를 들여다 보면 저자가 느낀 당시의 유럽 상황은 상상하기 힘들만큼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인간의 이성에 대한 절대적 자만심이 넘치며, 권력을 위해서는 도덕과 인간성을 기꺼이 희생하는 시대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비단 그 때 그 곳 만이랴! 지금도 세계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다. 인간 욕심의 끝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그 결과로 현재는 코로나라는 재앙으로 2년째 감금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저자는 한줄기 빛과도 같이 희망의 싹을 키워놓고 있다. 릴리펏의 비서실장 렐드렛살, 브롭딩낵의 소녀 그럼달크리치, 라퓨타의 문오디, 휘넘의 밤색 하인 말, 걸리버를 영국으로 귀국시켜주는 선장 페드로가 그들이다. 내가 봐온 영화나 책의 영향이겠지만 내 생각에 인간의 불완전성은 그것으로 가치가 있다. 완전하고 싶은 욕망이 '신'을 만들어 내고, '운'이라는 것을 믿는다는 사실만으로도 인간이 얼마나 가엾은 존재인 지는 충분하다. 역설적이게도 그래서 삶은 희망이 있다. 모두가 부처가 되어서, 모두가 천국에 올라가서 기쁨도 슬픔도 없이 산다면 그건 또 어떤 삶일까? 그런 삶을 사느니 그 무엇도 아닌 상태도 돌아가 버리는 것이 낫겠다 싶다. 영원한 삶을 선물받은 스트럴드 브럭의 서글픈 모습이 우리에게 죽음에 대한 찬사를 보내고 싶은 마음을 들게 하는 이유다.

    걸리버 여행기! 저자의 의도가 무엇이든 동화로서, 현재도 앞으로도 계속 고전이 될 이 책은 어른이 되어서는 수 백, 수 천년 변함없는 인간의 욕심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주고 반성하게 해주는 윤리 도덕책으로써 손색이 없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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